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91화 (91/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91화

“요즘 그 신우라는 이방인 자식, 너무 설치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루의 부하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

“…….”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놈의 리아 팔이라는 돌덩이가 무슨 아르드리를 결정한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이방인을 우리 통치자로 인정한다는 게…….”

서걱.

지금의 상황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는 너야말로 설치지 말지 그래? 혼혈 잡종 같으니라고.”

그가 죽은 이유는 하나뿐이다.

바로 그 몸속에 포보르 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

증거는 없다.

피부가 하얗고, 멀끔하게 생겼고, 송곳니가 조금 날카롭다 싶으면 그쪽 피가 섞여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유신우…….”

물론 그와는 별개로 유신우에 대해서도 증오심을 품고 있는 건 사실이다.

“……반드시 죽인다.”

아니, 오히려 별개가 아니라 더더욱 그 이유 때문에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신우 또한 다누 족과는 인종이 다른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찬란하게 빛나던 다누 족이 몰락하기 시작한 건 다 그 잡종들이 들어온 후부터다. 오하드가 아르드리가 되고, 이방인인 유신우마저 아르드리가 되었다. ……이런 일을 내버려 둬서는 안 돼.’

그는 다누 족에 외부 혈통이 섞여 들어온 게 이 모든 일들의 원흉이라 여겼다.

정작 가마솥을 훔치고, 브리이드를 죽이는 등, 다누 족에 가장 큰 피해를 끼친 건 자기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죽어라, 잡종.”

“사, 살려주십시오! 끄악!”

그런 사고방식을 거친 결과, 그는 다누 족 내에서 조금이라도 포보르 족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자들이라면 모조리 죽였다.

‘포보르 족과 다누 족 사이의 혼혈은 오하드처럼 백옥 같은 피부를 가졌다.’

그런 근거 없는 낭설에 입각해, 죄 없는 사람들을 마구 죽여나간 것.

물론 거기엔 단순히 혼혈을 죽이겠다는 목적만 들어 있는 건 아니었다.

현재 자신이 틀어쥐고 있는 군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숙청의 이유도 있다.

‘곧 포보르 족과 전쟁을 하는 날이 온다. 그때가 유신우를 죽일 기회야.’

그는 자기를 따르지 않는 군내의 인사들을 혼혈이라는 이유를 붙여 제거해 나갔다.

그리고 포보르 족과의 전쟁 도중에 유신우를 뒤통수칠 기회를 잡을 계획을 세웠다.

일대일로는 이길 수 없지만 여럿이서 덤비면 죽이는 게 가능할 테니 말이다.

분명 일이 끝나면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계획을 짠 이유는, 당연히 그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놈은 나에게 곧바로 왕위를 물려준다고 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면 말이 바뀌겠지.’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와 목적으로 다누 족 내의 여러 사람들을 제거해나가던 루 라바다.

그런 그의 행적을 알게 된 마나난이 이 광기를 말리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

“루. 요즘 네가 하고 다니는 일, 다 알고 있다.”

“뭘 말씀이십니까, 아버지?”

“포보르 족과의 혼혈이라며 사람들을 죽이는 것.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왜 말이 되지 않습니까? 애초에 지금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게 다 그 잡종 오하드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거, 아버지도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아.”

마나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저 오하드 개인의 문제다. 다누 족의 다른 혼혈들이 다 그와 같다고 생각하는 거냐?”

“다 같습니다. 애초에 순혈 다누 족도 아닌 자들이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죠.”

루의 완고한 태도.

마나난은 그런 그에게 뭔가를 말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너는…….”

하지만 한참을 뜸을 들이던 그는, 끝내 자신이 생각한 것을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아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결국 마나난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아버지.”

그런 그의 뒷모습에 대고 루가 말했다.

“일이 다 끝나면 우린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겁니다. 누구에게도 위협받지 않고, 행복한 나날들을 영유하던……. 그때로 말입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마나난은 한껏 굳은 표정으로 루의 거처를 떠났다.

* * *

“오늘 우리는 우리의 평화와 안전을 지켜낼 것이다! 저들 포보르 족을 모조리 몰아내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

“우오오오오!”

프라가라흐를 치켜든 마나난이 다누 족의 전사들 앞에서 연설을 마치자, 일제히 함성이 튀어나왔다.

다누 족의 사활을 건 총력전.

소집할 수 있는 모든 병사들을 모아 갖춰낸 대병력이, 지금 포보르 족의 수도를 향해 전력으로 진군하고 있다.

“결계를 부숴라!”

콰쾅! 쾅!

루의 손에서 발사된 마법의 돌, ‘타흘룸’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을 두드렸다.

포보르 족의 발전된 마법 능력으로 형성된 결계는, 타흘룸뿐만 아니라 다누 족의 다른 전사들이 던지는 투창 또한 거뜬히 막아냈다.

심지어 그 강력한 마나난의 프라가라흐마저 무용지물이었다.

“젠장. 놈들이 저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군.”

한참 동안 퍼부은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병사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힘만 빼다가 역공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그러나 다행히, 다누 족에게는 이런 상황을 위해 여태껏 준비해온 비장의 공성병기가 있었다.

쿵. 쿵. 쿵.

뒤쪽에서부터 땅을 울리는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한다.

도저히 쳐다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

넘실거리는 마나가 뭉쳐져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정령 거인이었다.

그 거대한 형체의 어깨 위에는 유신우가 앉아 있었다.

피잉.

유신우가 손가락으로 포보르 족의 마을을 가리키자, 거인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한순간 주변이 어두워진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의 밝은 섬광.

곧이어, 적의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보호막 위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투콰콰콰쾅!

고막이 찢어질 만큼 큰 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다누 족의 전사들은 하던 공격을 멈추고 모두 귀를 틀어막아야 했을 정도였다.

“으윽!”

“저게 도대체 뭐야?”

“우리 편인 건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정령 거인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그동안 누아다, 유신우, 오하드, 그리고 드루이드들이 철저하게 숨겨왔던 비밀 병기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유신우…….”

루는 그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유신우를 쳐다봤다.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된 듯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물론 지금은 진짜 왕이 맞지만. 루는 이방인인 그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이번 전투에서,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그를 제거할 작정이었다.

“결계가 깨졌다! 공격!”

“우오오오!”

마나난을 포함한 다누 족의 병사들은 깨어진 보호막 틈으로 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정령 거인은 방금 그 섬광 공격 한 번으로 현 다누 족 최강자인 마나난도 뚫지 못한 포보르 족의 결계를 부숴버렸다.

이제 남은 건 고스란히 약점을 노출한 포보르 족들을 일방적으로 살육하는 것뿐.

“꺄아아악!”

“살려줘!”

다누 족은 포보르 족들을 가차 없이 베고 찔렀다.

맨정신으로는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참혹하고 과격한 공격이 행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 다누 족은 포보르 족에 의해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당해왔다.

저들 역시 이쪽의 민간인들을 자비 없이 약탈하고 죽였으니, 그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는 것이다.

“죽어! 죽어!”

그 가운데서도 루의 잔혹성은 특히나 두드러졌다.

단순한 복수심을 넘어선, 원초적 혐오감의 적나라한 표출.

퍽! 퍽! 퍽!

상대를 한 방에 절명시킬 수 있는 날붙이를 들고 있었지만, 그는 굳이 돌덩이를 손에 쥐고서 손수 여자와 아이들을 때려죽였다.

그것으로 자신의 증오심에서 비롯된 갈망을 충족시켰다.

턱.

“루!”

그런 그를 멈춘 것은 다름 아닌 마나난.

“정신 차려라! 무장하지도 않은 민간인들까지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은가!”

“닥쳐!”

루는 그의 만류에 노골적인 반항심을 드러냈다.

“이들도 다 똑같은 포보르 족입니다!”

“이들이 자신의 손으로 우리의 동족을 죽인 건 아니다!”

“아니! 이것들은 그 약탈자들의 아내이며, 어머니이고, 또한 아들이고 딸입니다! 우리를 죽인 원수들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사람들을 위해 그런 행동들을 한 겁니다! 그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인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루의 말은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니, 실상은 더욱 잔혹하다.

왜냐하면, 이 순진하고 무고해 보이는 여자와 아이들도 약탈로 붙잡혀 온 다누 족의 시체에서 피를 나눠 마신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무고한 민간인 따위는 없습니다!”

마나난은 결국 루를 막지 못했다.

* * *

포보르 족과의 전쟁은 허무하게 끝났다.

그들의 전투 여력은 이상할 정도로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다.

막상 다누 족이 보호막을 뚫고 들어왔을 때, 그들에게 제대로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그건 아흐리만이 미리 그들 사이에 퍼뜨려 놓은 불신과 혼란 때문이었다.

이미 포보르 족은 전쟁을 하기도 전에 사회가 붕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살아 있는 포로는 이뿐인가?”

“예.”

한편, 마나난은 그 전쟁통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을 붙잡아 한곳으로 모았다.

아무리 그래도 싸울 의사 없이 항복한 자들까지 잡아 죽이는 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르드리. 당신이 이자들을 처분하기 바란다.”

마나난은 그들의 처분을 현 아르드리인 유신우에게 맡겼다.

그나마 그는 이 사이에서 조금이나마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할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왜냐하면 그 역시 어떤 여성 하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뭐, 이미 얘기된 거 아니었나? 배 태워서 다른 곳으로 보내는 거.”

“그래. 하지만 지휘자는 당신이니, 당신의 결정이 필요해.”

“그렇게 해, 그럼.”

“알겠다. 아르드리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지.”

마나난은 유신우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러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끔, 작게 속삭였다.

“……고맙다.”

이 살육의 광기 속에서 최소한의 선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스릉. 스릉. 스르릉.

그런데, 그 상황에서 갑자기 병사들이 무기를 뽑기 시작했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는데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멋대로 움직인 것이다.

“뭐하는 거냐? 너희들!”

마나난이 인상을 찌푸리며 프라가라흐를 뽑아 들었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병사들이 상급자의 명령을 어기고 포로들을 죽이려는 걸까.

‘……시선이 ……아르드리를?’

그러나 이내 마나난은 그 적개심이 포로들을 향한 것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들의 목표는 바로 유신우였다.

‘루……!’

그리고 병사들은 루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령거인의 소환이 해제되고 무방비가 된 지금.

루가 지금껏 공들여 장악해 놓았던 군권을 활용해 혼자가 된 유신우를 죽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그런 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신우, 아니 아흐리만은 태평하게 포로 중 하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이대로 그냥 보내주기는 좀 아쉬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것들이 바다를 건너갔다가 복수의 칼날을 갈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잖아? 그래서 아예 하나 정도는 본보기로 처참하게 죽여 버리는 게 어때? 지금 이 자리에서 말이야.”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자신의 목숨이 노려지는 것도 모르고, 심지어 말까지 바꾸고 있다.

마나난은 그런 그의 행동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 소리를 하는…….”

“그 본보기는 이 여자가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흐리만이 포로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건 아까 그가 살려서 데리고 온 포로였다.

한데 그걸 본 마나난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어떻게 생각해? 마나난.”

“…….”

“왜 대답이 없지?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잖아.”

아흐리만은 뭔가를 알기라도 한다는 듯, 아주 비열한 표정으로 씩 웃었다.

“혹시…… 이 여자, 너랑 아는 사이야?”

마나난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동시에 그가 지목한 포로 여성도 심하게 떨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루 라바다 역시 얼굴에 의문이 가득한 모습.

그런 그들에게 아흐리만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준비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이 여자가 사실은 네 절친이 너무나 사랑했던 여자라든가, 그 금지된 사랑 속에서 태어난 아이를 양아들로 삼아 지금까지 친아들처럼 키웠다든가, 뭐 그런 막장 같은 출생의 비밀이 숨겨진 건 아니지?”

양아들? 출생의 비밀?

자기 앞에서 대놓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그런 망언을 내뱉는 유신우를, 루는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너,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루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아흐리만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아흐리만은 쓱 웃으면서 땅에 떨어진 칼 한 자루를 그에게 건넸다.

“그래, 루. 방금 내 말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으니까, 네 손으로 죽이면 되겠네. 저 여자.”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마나난을 향하고 있었다.

“흥! 내가 못 할 것 같나? 내가 이깟 포보르 족 여자 하나도 못 죽일까 봐?”

루는 주저 없이 그 칼을 받아들고 포로 여성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 순간.

“잠깐!”

마나난은 그를 막았다.

“그러지 마. 제발.”

“……왜죠? 왜 막는 겁니까?”

루의 눈빛이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루…… 미안하다……. 그녀는…….”

마침내 어렵게 꺼내놓은 진실.

“……에스니. ……네 친어머니다.”

루는 칼을 휘두르려던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