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90화
포보르 족 마을 주변을 배회하는 오거 무리 하나가 보인다.
하나같이 피부가 번들번들하고 고운 게, 인간을 아주 많이 잡아먹은 녀석들임이 틀림없다.
‘이젠 내 먹잇감이다.’
다른 존재를 잡아먹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건 원래 내 능력이었다.
단지 그동안 아직 불완전한 유신우의 몸뚱이 덕에 그 힘이 개방되지 못했을 뿐.
하지만 발로르의 마안 덕분에 가능해졌다.
저 오거 족의 특성을 토대로 시스템을 조작해 만든 새로운 권능이, 나를 진정한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 것이다.
“으음?”
“넌 뭐냐?”
거친 생가죽으로 만든 조잡한 옷차림의 다누 족과는 달리, 이들은 꽤나 정교하게 만든 의복을 입고 있었다.
역시 뱀파이어의 선조다운 놈들.
그들이 나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며 칼을 뽑아 들었다.
“큭큭큭큭.”
촤아아악!
난 그놈들에게 문답무용으로 손을 뻗어 권능 ‘악룡 포식’을 사용했다.
내 손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아지다하카의 머리 형상을 이룸과 동시에 저 오거들 중 한 마리를 물어뜯었다.
“뭐, 뭐야!”
“마법이다! 다누 놈인가?”
“일단 죽여!”
그러자 저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중 하나는 뒤에서 마법을 시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 되지.”
악의의 전당.
내 등 뒤에서 소환된 10자루의 무구들이 각각의 오거들에게 날아든다.
투쾅!
천둥과 같은 파공음을 일으키며 8자루의 창칼들이 발사된다.
그걸로도 모자라 2개의 활에서도 끊임없이 화살들을 쏟아냈다.
에테르 증폭과 같이 제약이 큰 기술을 통하지 않고도, 아지다하카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악의의 전당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진짜 이 몸의 힘이다.
“커……헉.”
“내 용의 먹이가 되거라.”
푸확.
그렇게 제압당한 것들은 모두, 악룡 포식에 의해 시신 하나 남지 않고 깔끔하게 집어 삼켜졌다.
{근력이 1 증가했습니다.}
{반사 신경이 1 증가했습니다.}
{집중력이 1 증가했습니다.}
스탯 증가 메시지가 연달아 나타났다.
정수를 흡수함에 따라 이 오거들이 가진 힘을 내 것으로 만든 것이다.
“열한 마리나 잡아먹었는데 겨우 1? 그것도 활력이나 의지력은 오르지도 않았군.”
그래도 나름 전투 능력을 갖춘 오거들이라 기대했는데, 스탯 증가량이 실망스럽다.
워낙 이 몸과 수준 차이가 심하다 보니 별 도움이 되진 않은 모양이다.
물론 소모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는 데는 아주 좋지만.
힘을 강화하는 데 쓰려면 아무래도 충분히 대적 가능한 상대를 잡아먹어야 할 것 같다.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사실 처음부터 이들을 공격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
<악룡 포식>
-아지다하카의 머리를 구현해 대상을 잡아먹는다.
-잡아먹은 대상으로부터 정수를 흡수한다.
-흡수한 정수에 담겨 있는 신체정보를 기억해 해당 개체와 같은 형태로 변태한다. 기억할 수 있는 신체변형 정보는 최대 1개.
───
변신 기능.
오거들은 잡아먹은 대상과 비슷한 모습으로 점점 변화한다.
원래 가상 종족 특성에선 그 기능이 비활성화되어 있었지만.
난 그걸 복원시켜서 원할 때마다 변신할 수 있도록 시스템상의 기능을 조작했다.
울렁. 울렁.
신체가 재구성된다.
내 몸이 가장 마지막에 잡아먹은 인간 남성형 오거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화한다.
“됐어.”
창백하고 매끈한 피부,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검은 머리칼.
전형적인 뱀파이어의 모습이다.
난 이 상태에서 입고 있는 옷을 모두 인벤토리에 넣은 다음, 시체 중에서 가장 멀쩡한 옷들을 골라 벗겨 입었다.
푸욱.
그리고 칼로 배를 살짝 찔러 피가 흘러나오게 했다.
이로써 부상 입은 오거 족으로 변장 완료.
“그럼, 어디 한번 장난 좀 쳐볼까. 흐흐흐.”
악의와 혼란을 퍼뜨릴 생각에 벌써부터 웃음이 나온다.
* * *
난 포보르 족의 마을로 돌아갔다.
내 상태를 발견한 오거 한 마리가 깜짝 놀라 나에게 다가왔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다누 족에게 당한 거야?”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야. 그건…… 다누 족이 아니었어. 인간도 아니고, 오거도 아닌…… 이상한 괴물.”
한껏 공포에 질린 모습을 연기하며 대사를 내뱉는다.
이런 연기라면 난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다.
왜냐고?
내 앞에서 공포에 떠는 녀석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봐왔으니까.
“괴물이라고? 대체 무슨……!”
“큭.”
털썩.
난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도저히 버티기 어렵다는 듯, 죽어가는 연기를 했다.
“이봐! 당장 신선한 피를 가져와!”
그러자 그가 마치 치료약을 가져오라는 것처럼 피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오거들은 피를 마시고 체력을 회복하니, 치료약이 맞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참 역겹다.
인간의 몸에서 뽑아낸 치료약이라니.
‘물론 지금부터 내가 할 행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주변을 둘러보자 포보르 녀석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게 보였다.
주민 하나가 마을 근처에서 괴물에게 습격당했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그 당사자인 나에게 자세한 목격담을 듣기 위함이었다.
“그 괴물은 어떻게 생겼지?”
“정말로 다누 족이 아니었나?”
“발로르 님도 실종되었다던데, 설마 그것도 여기에 관련된 건가?”
“난 아까 봤어!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아가는 악마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다.
특히나 발로르의 실종과 결부되면서 의혹은 더더욱 크게 부풀려졌다.
바로 이 타이밍.
내 정체는 이 타이밍에 드러나야 한다.
“여기! 피를 마시게!”
아까 신선한 피를 가져다주겠다고 한 자가, 내게 토기로 만들어진 물병 같은 걸 건넸다.
찰랑거리는 붉은 액체.
언뜻 보면 포도주 같기도 한 그것은.
와장창!
내가 휘두른 악룡의 발톱에 의해 산산 조각났다.
물론 그걸 들고 있던 자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니!”
“그 괴물이 바로 나다!”
난 그 자리에서 손으로 눈앞에 있는 포보르 족 주민들을 연달아 찢어발겼다.
굳이 악의의 전당은 쓰지 않았다.
여기서 그만한 화력은 필요 없다.
“도, 도망쳐!”
“악마다! 진짜 악마!”
오히려 가능한 한 많은 목격자들이 여길 살아남아서 빠져나가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공포와 의심, 불신이 저들 안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크하하하!”
그렇게 난 또 다른 오거를 포식하고서, 현장을 빠져나갔다.
푸확!
“으아악!”
잠시 후, 다른 지역에서 또 하나의 포보르 족 희생자가 나타났다.
그 또한 내 불의의 습격에 의한 죽음이었다.
“저놈이다! 저놈이 악마다!”
물론 더 이상 그들은 그저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내가 놈들 사이에 숨어들어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무기를 들고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날 죽이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난 가벼운 발걸음과 변신 능력으로 절묘하게 빠져나갔지만 말이다.
“저놈이 악마 놈이다!”
“아, 아니! 아니야! 난……!”
그런데 저들의 그런 적극적 대응은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자기들끼리 무고한 사람을 지목해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래. 이거지.’
내가 바라던 광경이 펼쳐진다.
의심과 불신.
그로 인해 서로 간의 증오와 복수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게 다시 의심과 불신을 재창조해 낸다.
악의 순환이 이들 포보르 족 내부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놈들에게 마지막 일격을 먹이기만 하면 되겠군.’
공작은 성공이다.
지도자인 발로르도 죽었고, 포보르 족은 자기들 스스로 죽고 죽이느라 바쁘다.
그 와중에 다누 족은 유신우가 해놓은 일들 덕에 재결합하기 시작했다.
난 그 바통을 이어받아 시나리오를 완료할 것이다.
여길 빠져나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건 다른 누구보다 나야말로 원하는 일이니 말이다.
* * *
“신우, 이제 준비는……. 음?”
누아다 아르게틀람.
그가 내 얼굴을 보더니 멈칫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 같은데.”
놈이 나를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은.
‘죽여버리고 싶다.’
본능적인 살인 충동이었다.
난 그냥 신이라는 족속들 전부가 역겹고 증오스럽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 과거의 기억에서 나를 괴롭히던 오크 신 오딘이나, 엘프 여신 아르테미스만 증오하는 것도 아니고.
괜히 모든 신을 싸잡아서 혐오감을 느꼈다.
심지어 이들은 인간의 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말로, 이곳에서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인 포보르 족보다, 이 다누 족의 신이라는 족속들을 더.
죽여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후우. 참자. 이놈들은 그저 허상일 뿐이니까.’
물론 난 그런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진 않을 것이다.
왜냐면 이건 그저 시스템이 만들어 낸 가상의 세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짜 누아다, 진짜 마나난은 여기 있지 않고, 다른 곳, 신들의 세계에서 불멸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 터.
그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여기서 허튼짓을 한다면 괜히 나만 손해 보는 것이다.
‘우선 어떻게든 이 시나리오를 끝낸다.’
그렇게 난 원래 유신우가 하려던 일들을 차근차근 이어나갔다.
나 자신이 마치 그놈인 것처럼 연기하면서 말이다.
“기분 탓이겠지. 얼른 정령거인을 소환하자고.”
“……아, 그래. 그렇게 하자.”
난 누아다를 채근해 곧장 정령 거인 소환 과정을 시작시켰다.
“유신우. 너를 정당한 후임 아르드리로 선임한다.”
첫 번째 과정은 누아다가 나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
이렇게 되면 리아 팔의 작동 권한이 나에게로 넘어오게 된다.
{서브 시나리오 클리어}
{시나리오 보상, <정령 소환>을 배우기 위한 선행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시스템 조정으로 선행 스킬을 자동 습득합니다.}
{패시브 스킬 <기초 정령마술>을 습득했습니다.}
{액티브 스킬 <정령 소환>을 습득했습니다.}
정령 소환은 다누 족의 드루이드들이 사용하는 기초적인 마법.
후임 아르드리가 된 난 이걸 이용해 정령 거인을 소환할 수 있는데, 이때 정령 거인을 형성하기 위한 매개체가 필요하다.
“잘 부탁한다. 신우.”
누아다가 나에게 한마디를 던진 후, 몸에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하늘로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투명화하며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그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정령들과 같은 영체로 만든 것이다.
정령 거인을 형성하는 매개체, 일종의 중심핵이 바로 전대 아르드리인 그 자신인 것이다.
“신우, 이제 누아다 님을 불러내라.”
그사이 의식을 위한 재료 배치를 완료한 드루이드 옹구스가, 나에게 정령 소환을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
보통이라면 기초 정령마술 수준밖에 되지 않는 마법 능력으로 그런 거대한 힘의 존재를 불러내는 건 불가능하지만.
리아 팔과 오하드가 만들어낸 마법 술식을 사용하면 아르드리 자신이 정령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해낼 수 있다.
원래는 그걸 오하드가 하기로 했으나, 정치적 문제로 인해 그는 은신처에 숨어 있는 상태이고, 그 대신 예언에 의해 인정받은 내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
“아아. 그래.”
사실 난 이 지루한 과정을 빨리 끝내고 포보르 족을 박살 내러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정령 소환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영계에서 내 소환에 응하고자 대기하고 있는 누아다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그야말로, 자신을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강대한 정령들을 덕지덕지 붙여 만든 거대한 형체가 되어 있었다.
‘으음……?’
그런데, 여기서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건 또 뭐야?’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악의의 오른쪽 눈 세 번째 경지가, 정령 소환 마법과 시너지를 일으킬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