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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89화 (89/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89화

“발로르를 죽였다고?”

“그래.”

“확실한 거냐? 그 발로르를?”

“옹구스가 직접 확인했어.”

“하……. 하하!”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나는 누아다에게 희소식을 전했다.

최근 들어 좀처럼 웃지 않던 그가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미간에 가득하던 근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 정령거인을 불러내는 의식의 재료 확보는 거의 완성 단계고, 이대로 포보르 족과 전쟁을 벌이기만 하면 다누 족이 이 땅을 통일할 거야.”

메인 시나리오의 진행도 이제 막바지.

그때 리아 팔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후로부터 아직 한 주밖에 지나지 않았고, 재료를 모으는 것도 내일이면 끝이다.

이대로라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일찍 현실 세계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풍요의 가마솥 말인데.”

게다가 아직 경사는 하나가 더 있다.

“루에게 물어봤더니, 이제 내일이면 제단에 도착한다고 하더군. 그거면 다누 족은 다시 예전처럼 풍족한 식량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루가 숨겨뒀던 풍요의 가마솥이 마차에 실려 이곳으로 운반되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그걸 오하드가 훔쳐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걸 루가 되찾아온 것으로 해서 제단에 돌려놓기로 한 것이다.

서브 시나리오의 조건은 ‘가마솥을 제단에 돌려놓는 것’이니, 어떤 식으로든 그걸 원위치만 시키면 보상은 내가 받게 되어 있다.

“그거 잘됐군. ……루가 따로 했던 말은 없었나?”

“별 얘기는 없지. 뭐, 가마솥을 되찾아 온 공적이 본인 것이 될 테니까 아쉬울 게 없기도 할 테고.”

“그렇군.”

누아다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때 자신이 가장 신뢰하고 믿음을 주던 젊은 전사가, 실은 자신의 뒤통수를 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난 얼마 전 그에게 루의 행적에 대해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루에게 우리 둘 사이가 틀어지는 것처럼 속이려면, 누아다 또한 전말을 다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가 워낙 대인배 같은 인물이라, 내 의도를 충분히 이해해 줬다.

개인의 욕심이 아닌, 다누 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둘 다 진심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이제 때가 될 테니, 계획대로 내게 아르드리를 넘겨주기만 하면 돼.”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지.”

툭.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누아다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더니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신우. 네가 이곳에 나타나고 나서부터, 모든 일들이 다 잘 풀리기 시작한 것 같군. 넌 정말 우리 다누 족의 축복이다.”

“천만에.”

벨그레이브조차 얻지 못했던 것을 얻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 * *

{발로르의 마안}

난 그때 얻었던 전리품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들었다.

‘이걸…… 먹으라고?’

솔직히 좀 많이 구역질 난다.

이런 게 섭취용 아이템이라니.

생선 눈알도 아니고, 뱀파이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인간 눈알과 똑같이 생겼다.

-뱀파이어가 아니라 오거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템 설명에는 ‘가상 종족 특성’이라는 이름으로 ‘오거’라는 특성을 얻는다고 되어 있다.

가상 종족 특성이란 게 뭔지는 둘째치고.

분명 그때 봤던 발로르는 전형적인 흡혈귀였다.

창백한 피부에 날카로운 송곳니, 입가에 잔뜩 묻힌 피.

누가 봐도 뱀파이어라고 하기에 손색없는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눈알로 얻는 종족 특성은 오거라고 하고 있다.

‘내가 아는 오거는 덩치 크고 힘만 센 멍청이 종족인데.’

-그건 오크겠지.

‘오거는 아니야?’

-오거는 뱀파이어의 원종이다.

‘원종? 그건 또 뭐야?’

-원래 오거는 생명체를 잡아먹고 정수를 흡수하는 난쟁이들이다. 그놈들은 주변에 서식하는 종족 중 가장 강한 종족을 잡아먹고 강해지려는 습성이 있지. 뱀파이어는 그중 인간만을 잡아먹는 오거들이 진화해서 완성된 종족이다.

‘가장 강한 종족이라……. 그래서 이 포보르 놈들은 그렇게 다누 족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거군?’

-그런 셈이지.

대충 이곳의 비밀을 알 것 같다.

포보르 족은 인종이 다른 인간이 아니라, 오거들이었다.

그들은 이 지역 생태계 최강자인 다누 족이라는 인간들을 잡아먹었고, 그 결과 뱀파이어들처럼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 된 것이다.

그런 그들이 힘으로 다누 족을 굴복시킨 다음 행한 것은, 바로 ‘주기적이고 낮은 수준의 약탈’.

즉, 다누 족 마을을 마치 일종의 인간 농장으로 삼아서 꾸준히 식량을 얻는 행위였다.

‘……근데, 넌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는 거지?’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대체 이 아흐리만이라는 녀석은 어떻게 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가.

사실 그동안 가끔 결정적인 순간에 내게 훈수를 둘 때가 많았는데, 아예 이렇게 상세한 정보를 가르쳐 준 건 처음이다.

-그건 나도 모른다. 예전에 분명 이런 지식들을 습득할 만한 일이 있었을 텐데, 그건 네가 좀 더 과거의 기억을 봐야 알 수 있겠지.

‘과거의 기억이라…….’

생각해 보니 지금 난 꽤 오랫동안 아흐리만의 기억을 불러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번 모나를 잃고 나서 분노로 아르테미스를 뜯어 먹었던 기억 이후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무튼, 그럼 이건 어떻게 할까?’

다시 발로르의 마안으로 돌아와서.

난 지금 이걸 먹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

-먹어도 나쁠 건 없겠지.

‘종족 특성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는데. 이걸 먹었다가 혹시 막 내가 뱀파이어가 되거나 하는 거 아냐?’

-그런 건 걱정하지 마라. 괜히 ‘가상’ 종족 특성이 아니니까. 네가 피에 굶주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거기에 쓰여 있는 정수 흡수 능력을 가져올 뿐.

‘그렇다면 괜찮겠군.’

아흐리만의 이야기를 들은 난 곧바로 그것을 덥석 입안에 넣었다.

“우욱.”

……더럽게 맛없다.

하지만 난 꿋꿋이 참고 그걸 씹어 삼켰다.

구역질이 나왔지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든 버텼다.

{가상 종족 특성 <오거>를 획득했습니다.}

{신화적 인물 특성 <발로르>를 획득했습니다.}

그러자 곧,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나며 내 몸 안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난 특성창을 열어 새로 얻은 두 특성을 확인했다.

───

<오거>(가상 종족 특성)

-생명체를 잡아먹고, 해당 생명체의 정수를 흡수합니다. 정수를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해당 생명체의 신체적 특징이 나타납니다.(가상 특성으로 발동 불가)

<발로르>(신화적 인물 특성)

-살해한 생명체의 원혼들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흡수한 원혼을 해방시켜 마법과 강령술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예상했던 대로 꽤나 강력한 특성들.

오거 특성은 가상 특성이라 신체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건 오히려 내가 더 바라던 바다.

‘괜히 오크 같은 거 잡아먹다가 오크로 변하는 건 나도 곤란하니까.’

그리고 두 번째 특성인 발로르에는, ‘강령술’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이건 대놓고 그쪽 마법과 연계하라는 이야기 같은데…….’

그냥 특성 하나만으로 큰 효과를 낸다기보다, 다른 기술을 사용할 때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특성이다.

하기야, 발로르가 뱀파이어의 원조 격 되는 인물이니 강령술에 관한 마법을 쓰는 건 이상할 게 없다.

뭐, 당장 지금 가지고 있는 무구들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찬 내 입장에선 크게 와닿지는 않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됐고, 첫 번째 특성만으로 충분해.’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어서 정수를 흡수하는 능력. 그거면 됐다.

“흐음…….”

그런데 문득, 이 두 특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거…… 이때까지 내가 쓰던 아지다하카 특성이랑 비슷하잖아?’

다른 개체를 죽여서 그자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점.

영혼을 흡수한다는 점.

이 둘 다 여태껏 내가 유용하게 사용해왔던 ‘악의의 오른쪽 눈’ 특성과 상당 부분 겹치는 개념이다.

애초에 이 시나리오에 들어온 것도 그 덕분이고.

-맞아. 정답이야.

바로 그 순간, 확 바뀐 아흐리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홀리테 성 이후로 자못 점잖은 태도로 일관하던 그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온 것 같았다.

‘응?’

곧이어 내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체내의 용혈이 이종의 특성에 반응한다.}

{특성 <오거>가 권능 <악룡 포식>으로 변형된다.}

{발로르의 힘이 악의에 집어삼켜진다.}

{특성 <발로르>가 특성 <악의의 오른쪽 눈>에 병합된다.}

{<악의의 오른쪽 눈>의 세 번째 경지가 개화한다.}

어딘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특성들.

아니나 다를까, 그것들이 모두 순식간에 아지다하카의 특성과 권능으로 바뀌었다.

-크하하하하!

그러더니 내 오른쪽 눈에서 화끈거리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바깥으로 뛰쳐나가려는…… 그런 기분.

“끄으으아아악!”

곧장 난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눈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네 몸은 이제 내 것이다!

그렇게 나를 비웃는 아흐리만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강한 충격과 함께 내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드디어 돌아왔다.

나 앙그라 마이뉴가 다시 이 몸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큭큭큭. 거기서 발로르의 마안을 얻을 줄이야.”

유신우. 이놈이 발로르를 죽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발로르의 마안을 먹게 만든 다음, 악령 제어 특성을 얻는다.

그리고 그 특성을 토대로 악의의 오른쪽 눈을 상위 단계로 개화시킨다.

───

<악의의 오른쪽 눈>

-(3단계)무수한 혼들의 주인이요, 노예의 왕이로다. 손아귀에 있는 영혼들을 의지대로 통제한다.

───

이걸로 이 몸의 주인인 유신우 녀석의 영혼을 바깥으로 내보낸 것이다.

지난번 몸을 빼앗으려던 시도가 실패한 이후 긴 시간 동안 기다려왔던 절호의 기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녀석의 의식이 멀쩡할 때도 얼마든지 빼앗으려 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냥 그런 방식으로는 놈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을 터.

그래서 영혼을 한 방에 날려버릴 묘책이 필요했고.

난 이 ‘발로르의 마안’이라는 물건으로 그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제 네놈은 끝이다. 다신 돌아올 수 없을 테니, 잘 가라. 큭큭큭.”

유신우는 이제 다시는 이 몸에 돌아올 수 없다.

녀석이 어리둥절한 사이, 단박에 특성을 발동해 영혼을 쫓아내 버렸으니까.

그 순간 놈의 집착이 어찌나 강했던지 나도 정신이 날아가 버릴 뻔했지만, 결과적으로 승리자는 바로 나였다.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겠지.”

그 녀석은 아주 운 좋게 발로르를 죽였다.

하지만 그건 놈에게도 행운이었지만, 나에게도 행운이었다.

그 억세게 좋은 행운이 역으로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될 줄은 몰랐겠지만 말이다.

“그럼…… 어디 한번 끝내볼까? 이 지긋지긋한 메인 시나리오를.”

펄럭!

난 등 뒤에 아지다하카의 날개를 형성시켰다.

이것이 진정한 아지다하카의 힘.

유신우 그 녀석은 이런 걸 쓸 줄 모른다.

기껏 해봐야 에테르 증폭이라는 꼼수로 억지스럽게 악의의 전당을 사용하는 데 그칠 뿐.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크하하하!”

난 기분 좋게 웃으면서 하늘을 가로질러 포보르 족 마을로 날아갔다.

이걸로 전부 끝내버릴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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