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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88화 (88/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88화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했다.

루는 내가 아르드리가 되는 것을 돕기로 약속했다.

그 말인즉, 그때까지는 잠잠하게 지내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할 일은 정령거인을 불러내기 위한 의식의 재료를 모으는 것.

“이쪽이다.”

지난번 사람들 앞에서 브리이드의 정령을 소환해낸 드루이드, ‘옹구스’가 지팡이를 앞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도 같은 것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이렇게 길을 잘 찾아내는 거야?”

“에스 시어들이 나를 인도해 주신 거다.”

그는 과연 ‘드루이드’라는 직책에 맞게 자연계에 있는 영혼들과 자유자재로 소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참 편리하군.”

“편리한 것만이 다는 아니지.”

그렇게 옹구스의 인도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던 도중, 난 뭔가 수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잠깐.”

“왜 그러나?”

“발자국……. 누군가 우리와 같은 루트를 먼저 앞서나간 흔적이 있다.”

“발자국이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내 눈엔 보여.”

제아무리 대단한 정령들이라도 사냥의 여신이 부여한 추적술을 따라가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옹구스를 비롯한 드루이드들 모두가 갸우뚱하며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반면 내 추적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아델 및 클랜원들은 모두 바짝 긴장한 채 전투태세를 취했다.

“누구의 발자국인지도 알 수 있나?”

“그게 누군지 아는 사람이라면. 하지만…… 이건 처음 보는 거야.”

난 그 흔적들로부터 심한 이질감을 느꼈다.

물론 다누 족 안에만 해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거대한 왕국의 사람들 전부를 이제 겨우 온 지 2, 3주밖에 되지 않은 내가 다 파악하기는 당연히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냥 ‘모르는 사람’의 흔적 같은 게 아니다.

‘이종족……인가?’

사람과 비슷하지만, 사람과는 다른 무언가.

까드득. 츄콱.

저 멀리 이 흔적의 너머로부터, 소름 돋는 향과 소리가 날아와 내 감각을 자극한다.

진한 피 냄새.

뼈가 부러지고 살이 뜯기는 파쇄음.

그 모든 단서들을 은밀하게 따라간 끝에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뱀파이어……?’

인간과 거의 동일하게 생겼지만,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와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마물.

그것은 최상급 던전에서나 볼 수 있는, 뱀파이어였다.

“발로르…….”

옹구스가 갑자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눈앞의 마물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발로르.

난 그 이름이 포보르 족 왕의 이름이라고 알고 있다.

이 시련을 클리어하기 위해 반드시 없애야 할 대상인 그가 바로, 저기서 마물의 사체를 뜯어먹는 뱀파이어라는 것이다.

-후퇴해야 해. 저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린 모두 죽는다.

옹구스가 최소한의 목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정령을 통해 내 머릿속에 전음을 보냈다.

꿀꺽.

나도 놈의 강함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마나난과 누아다를 동시에 상대해도 압도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

지금 저기 안대로 싸매고 있는 한쪽 눈으로, 엄청난 마법을 쏴댄다고 들었다.

아마도 나 역시 저자와 대결하면 에테르 증폭으로도 이기지 못하겠지.

하지만.

‘지금 저 녀석은 혼자다. 그것도 아직까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어.’

동시에 이건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적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진행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신우! 지금 바로 바람의 에스 시어를 불러내 모두를 마을로 귀환시키겠다!

게다가 이쪽엔 귀환 수단도 있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도망칠 수 있는 일격이탈의 기회.

난 옹구스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내가 신호하면 귀환을 준비해라.”

-뭘 어쩔 셈이냐? 설마 놈에게 덤벼들기라도 할 작정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 같은 생각은 하지 마라! 발로르를 죽일 수 있는 건 정령거인이다!

옹구스는 나를 극구 만류했다.

하지만 이건 마냥 무모한 짓만은 아니다.

오히려 안전한 귀환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이건 우리 모두를 위한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날 도우라고.”

-……젠장!

옹구스는 결국 내 강경한 입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 * *

‘에테르 순환.’

난 우선 일행과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게 볼그를 소환한 후, 손안에서 사라지게 함으로써 강격파동을 형성시켰다.

“으음?”

그 순간 발로르는 뭔가를 느끼기라도 한 듯 내 쪽을 쳐다봤다.

내 몸에 흐르는 마력을 느낀 것이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이런 상황 때문에라도 발로르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뱀파이어들은 신체 능력도 능력이지만, 마법 능력이 극도로 발달한 마물들이었다.

오하드도 포보르 족에서 높은 수준의 마법 이론을 배웠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포보르 족이 뱀파이어들이라면 맞아떨어지는 얘기.

즉, 그런 뱀파이어들 중에서도 왕인 저 발로르라는 자는 옹구스가 정령술을 사용할 때 반드시 눈치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정령술을 사용할 때 방출되는 마력은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느껴질 정도. 저런 강자는 당연히 알아채겠지.’

물론 정령술의 시전 속도가 아주 빠르다면 상관없겠지만, 지난번에 봤듯 정령소환을 하는 데에는 꽤 큰 빈틈이 생긴다.

따라서 그 사이를 메워줄 공격이 필요한 것이다.

‘이왕이면 죽이면 더 좋고.’

철컥.

내 오른손에는 엑스칼리버가 쥐어져 있었다.

‘뱀파이어는 빛과 불 속성에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

머릿속에 바깥에서 들은 내용을 떠올리며, 난 업화의 구를 시전함과 동시에 참격 자세를 취했다.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것은 나도 처음.

이론과 실제는 항상 다르게 마련이지만, 적어도 기준이 될 수는 있다.

‘간다.’

강격파동연계.

성검 엑스칼리버 -클라렌트 성검반전.

쉬쉭.

간결한 이중 참격.

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빛과 불 속성 데미지가 녹아들어 있다.

“큭!”

불의의 기습에 외눈의 발로르가 크게 당황하며 물러났다.

안타깝게도 참격이 그를 동강 내지는 못했다.

화륵!

하지만 아지다하카의 검은 불꽃이 그의 몸에 들러붙었다.

저기 포함된 암흑 속성은 그에게 먹히지 않겠지만, 지속적인 화염 피해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어떤 놈이냐!”

발로르가 크게 흥분하며 내 쪽을 바라보며 안대를 벗으려고 했다.

찌이잉.

그사이 난 이미 파동의 극성 상태가 되었고, 아르테미스의 활을 소환해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

‘저격식 화살.’

다수를 쓸어버렸던 광역공격식 화살이 아닌, 일점에 위력을 집중시키는 저격식.

피이잉!

난 그걸 놈의 안대로 뒤덮인 눈을 향해 쏘아 보냈다.

푸콱!

“끄악!”

한 치의 오차 없이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놈의 손과 안대를 한꺼번에 관통해 눈알에 틀어박혔다.

아무리 단단한 피부라도, 일점에 파괴력이 집중된 아르테미스의 화살에는 뚫릴 수밖에 없다.

이걸로 짧은 순간이나마 그 발로르의 ‘저주받은 눈’을 봉쇄시켰다.

“공격!”

그리고 난 숨어 있던 클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막시모와 가렌, 두 사람을 제외하고 검은 정장을 입은 기사들이 한꺼번에 뛰어들었다.

그중 가장 빠른 것은 당연히 아델.

촤아악! 콰쾅!

살벌하리만치 강한 힘들이 하나의 적을 향해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지축이 울릴 정도로 큰 진동음이 사방을 뒤덮었다.

파아앗.

그사이, 한쪽 편에선 이미 옹구스가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 있었다.

-귀환 준비는 끝났다! 모두 내 쪽으로 돌아오라고 해!

이대로 빠져나가기만 하면 일격이탈 작전은 성공.

하지만 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피이잉!

난 다시금 아르테미스의 활을 쏘아 보냈다.

극성 상태는 파동과 달리 한 번 소모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잠시 동안 유지되는 것.

따라서 한 번 소환한 신화 무기는 극성 상태가 끝날 때까지 계속 사용할 수 있다.

피피피핑!

저격식 아르테미스의 화살이 연달아 발로르의 몸에 꽂혔다.

동시에 클랜원들의 공격도 쉬지 않고 행해졌다.

발로르는 남은 하나의 손으로 끊임없이 발악해 보지만,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힘과 스피드 모두 우리를 압도할 만큼 강력한 게 눈에 보이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기습이다 보니 싸움의 리듬 자체가 꼬여버린 것 같았다.

“젠장! 젠장! 끄아악!”

놈이 뭔가 하려고 할 때마다 내가 견제용으로 날려 보낸 눈먼 화살이 적중하고, 그렇게 스텝이 엉킨 틈에 아델의 참격이 날아든다.

그걸 뒤늦게 쳐내려고 하면, 이상할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에 들어온 다른 클랜원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만다.

심지어 그것이 의도하지 않은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덕분에 전투의 흐름 자체가 완전히 우리 쪽으로 넘어와 있었다.

‘됐다! 이걸로 끝낼 수 있어!’

발로르의 힘이 점점 빠지고 있다.

그렇게 승리를 확신한 순간.

“끄아아아아!”

발로르는 최후의 발악을 하려는 듯, 소리를 지르며 포효…….

촤아악!

……했지만,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아델의 검이 그의 목을 베었다.

발로르의 머리는 그 증오심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로, 몸에서 떨어져 나가 하늘로 떠올랐다.

“말도 안 돼!”

그 장면을 본 드루이드들이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옹구스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이들 모두의 목소리였다.

그토록 조용하던 이들이 이토록 격한 감정을 드러낼 정도의 대사건.

그런 이변이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 * *

“발로르를 이렇게 손쉽게 죽이다니!”

옹구스의 호들갑에는 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걸 성공할 수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난 적당히 피해만 입히고 귀환 마법으로 도망치려 했다.

충분한 보험을 들어두고 행한 극히 낮은 성공 확률의 작전.

그게 생각지도 않게 성공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운이 따라준 거라고 하는 수밖엔.

“오늘 뭔가…… 엄청나게 잘 풀리는 것 같은 날인 것 같습니다.”

아델 역시 자신이 한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어……. 대체 그 누가 그 포보르 족의 수장, 그것도 발로르가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거라 예상했을까.”

옹구스 역시 몇 번이나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놀라워했다.

그는 발로르의 얼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느낄 수 있는 자이니, ‘실은 발로르가 아니었다’ 같은 전개도 일어날 수 없다.

그가 저렇게 말하는 건, 확인 사살이나 다름없다.

“이런 날도 있을 수 있는 거지. 거물이 언제나 화려한 죽음을 맞는 건 아니니까.”

“그렇긴 하지만…… 허.”

이걸로 시련을 클리어할 수 있을 확률은 훨씬 더 높아졌다.

적의 최강자인 발로르를 죽였고, 이쪽은 정령거인을 불러낼 것이다.

그러면 포보르 족도 금세 무너진다.

“그럼, 다시 원래의 우리 목적대로…….”

그렇게 다시 의식의 재료를 구하러 가려던 찰나.

-이봐.

‘왜?’

-지금 네 앞에 있는 엄청난 보물을 놔두고 갈 셈이냐?

‘보물이라니?’

-발로르의 눈.

아흐리만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그 말이 떠올랐다.

‘발로르는 저주받은 눈으로 엄청난 마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내 앞엔 목만 분리된 채 죽어 있는 발로르의 눈이 보였다.

‘……설마 저걸?’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거다.

난 곧장 뭐에 씐 것처럼 그 앞으로 다가가 안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잠깐, 지금 뭐 하는……?”

난 주저하지 않고 그 얼굴에 씌어 있는 안대를 벗겼다.

“이봐! 뭐 하는 짓이냐! 그런 위험한…….”

모든 드루이드들이 순간 겁을 먹고는 뒤로 물러섰다.

개중에는 보호막을 전개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죽은 발로르가 마법을 사용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참, 나.”

그 대신, 나에게만 보이는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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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르의 마안>

-소모 아이템(섭취 가능)

-가상 종족 특성 <오거>를 습득합니다.

-<오거>: 생명체를 잡아먹음으로써 정수를 흡수합니다.

-신화적 인물 특성 <발로르>를 습득합니다.

-<발로르>: 악령들의 지배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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