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85화
“오하드가 축출되었고, 누아다 님이 결격사유를 가진 관계로, 루 라바다가 차기 아르드리임을 선언한다.”
루 라바다는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리’들의 동의를 받아 아르드리가 되었다.
사실 그는 오하드 쪽의 온건파와 충돌 때문에 대립각을 세우는 게 문제였을 뿐, 원래부터 차기 아르드리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긴 했다.
그건 심지어 누가 봐도 사이가 나빴던 오그마나 투이렌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다누 족 전체를 기만한 오하드를 축출해 내는 공까지 세웠으니,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제1순위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설마…… 이러려고?’
그 과정을 지켜본 나는 솔직히,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심가.
마지막 순간, 내 눈에 비친 루는 바로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너처럼 말이지.
아흐리만의 말대로, 어쩌면 난 그에게서 나 스스로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딱히 권력에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원하는 바를 이룬다는 점에선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그냥 감일 뿐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군.’
-과연 그놈이 그저 자신에게 돌아온 기회를 잡은 것뿐이었을까? 실은 브리이드를 죽이고, 증거를 조작하고, 너와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게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과한 비약 같은데.’
-글쎄.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심지어 풍요의 가마솥이 사라진 것도 루의 소행일 수 있어.
‘말도 안 돼.’
-그 억지 같은 일을 너도 해내지 않았었나? 염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적을 상대로 말이야.
아흐리만은 내가 했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전에 말했던 대로 정말 그저 자신의 목소리가 내게 닿지 않았을 뿐이었던 모양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어쨌든 중요한 건, 오하드는 온건파고 루는 강경파였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데 있어 최대한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던 나는, 루와 같은 강성한 자가 다누 족을 이끄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신중한 준비’에 기대고 있을 수는 없다.
“루 라바다! 다누 족의 정당한 아르드리가 되었음을 리아 팔에 고하노라!”
왕위 계승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리아 팔’이라 불리는 거대한 돌 앞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기까지 이르렀다.
루는 아르드리의 상징인 하얀 망토를 걸치고서 우렁찬 목소리로 돌에 대고 소리쳤다.
관례에 따르면, 대관식에서 저 리아 팔이라는 돌에게 아르드리임을 선언하면 하늘로부터 큰 소리와 함께 예언이 내려온다고 한다.
“…….”
웅성웅성.
그런데 어째선지 지금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일이 전에는 없던 것인지, 대관식을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당황한 얼굴로 웅성대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우리 모두가 아르드리로 인정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이런 일은 처음이군. 설마 아르드리로서 인정하지 않는 건가?”
“어허. 어찌 그런 불경한 소리를.”
이 중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크게 당황한 건 역시 루 라바다 본인이었을 것이다.
“……루 라바다! 다누 족의 정당한 아르드리가 되었음을 리아 팔에 고하노라!”
그는 재차 선언을 반복했지만, 여전히 하늘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정말로, 저 돌이 루를 인정하지 않기라도 한다는 걸까.
그 이후로도 루는 계속해서 외쳤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크흠.”
그러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오그마가 헛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미.
“리아 팔에 뭔가 문제가 있나 보군.”
결국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마나난이 나섰다.
“일단 대관식은 여기서 중지하도록 하고, 날이 괜찮을 때 다시 진행하는 게 어떻겠나?”
존경받는 전사인 그가 그리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루의 문제가 아니라, 리아 팔이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여기도록 하게 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루는 극히 자존심이 상한 것 같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는 인정받지 못한 채 언덕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그렇게 성대하게 치러졌어야 할 대관식이 흐지부지해지려던 찰나.
“으응?”
“누, 누아다 님!”
“이게 어떻게 된……!”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제히 한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누아다 아르게틀람이 서 있었다.
* * *
“팔이!”
“누아다 님의 팔이 회복되셨다!”
그는 은팔이 아닌, 멀쩡한 살갗으로 이루어진 진짜 팔을 가진 채였다.
이윽고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루와 마나난이 있는, 리아 팔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누아다!”
마나난 역시 그 팔을 보고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누 족 모두가 그토록 염원하던 누아다의 회복.
그 역시 그걸 바라마지 않았기에, 표정에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네 팔…… 돌아왔구나!”
그 둘은 함께 전장을 누볐던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우로서,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그래.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모두가 기뻐하는 이 와중에, 유독 표정이 좋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루였다.
“루. 너는 훌륭한 전사다. 그리고 미래엔 다누 족을 이끌 뛰어난 아르드리가 될 것이다.”
누아다는 그런 그를 위로하듯 이야기했다.
물론 그 말이 정말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누아다가 하는 말은, 당장의 권력을 원하는 루에겐 전혀 듣고 싶지 않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너는 좀 더 견문을 넓히고, 경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때까지, 내가 너를 기꺼이 보살펴 주겠다.”
누아다는 자신이 신임한 오하드를 실각시켰음에도 루를 전혀 원망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루를 옆에 두고 자신의 사람으로 쓰겠다고 말했다.
“…….”
“누아다 아르게틀람. 오하드 브레스의 뒤를 이어, 정당한 아르드리가 되었음을 리아 팔에 선언하노라.”
그러고는 오늘 대관식을 완전히 망쳐버린 루 대신, 자신이 아르드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구태여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평소처럼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안에 담긴 지엄함이 온 하늘을 뒤덮어 세상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쿠구궁.
“오오오……!”
곧이어 하늘에 먹구름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우레 폭풍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쩌렁! 콰르릉!
굵은 장대비와 위협적인 천둥 번개.
누아다의 선언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하늘은 굶주리는 다누 족에게 우렁찬 선물을 내렸다.
번개는 지력을 다한 토양에 양분을 내려주고.
비는 메마른 땅이 수분을 머금게 해 작물의 성장을 돕는다.
풍요의 가마솥이 사라진 후 말라 죽어가는 다누 족의 땅에, 조금이나마 생기가 불어 넣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다! 비가 온다!”
그렇게 모두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축복에 기뻐하고 있을 때.
콰콰쾅!
바로 눈앞에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번개가 내리쳤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리아 팔에 뇌격이 떨어진 것이다.
파아아앗.
이윽고 바위 표면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정순한 마나의 기운이 바위에서 흘러나온다.
다음 순간, 내 눈앞에 익숙한 글자들이 나타났다.
{거인은 사그라지고}
그건 시스템 메시지였다.
“예언이 나타난다! 리아 팔이 누아다 님을 아르드리로 인정했다!”
‘시스템 메시지가……. 예언?’
나 혼자만 보이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
아무튼 듣던 대로, 리아 팔은 누아다를 왕으로 인정하고 예언을 내리기 시작했다.
{두 창이 부딪힌다}
물론 이런 ‘예언’이라는 것들이 으레 다 그렇듯이, 모호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문장들뿐이었다.
마지막 하나만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리하여 왕좌를 차지한 이방인이 이 땅을 정화하노라}
그건 누가 봐도 나를 대놓고 저격하는 예언이었다.
* * *
“리아 팔이 그런 예언을 했다는 게 사실이에요?”
“이방인이 왕좌를 차지한다니, 설마 외부인이 아르드리가 된단 말인가?”
“그런 해괴망측한 일이!”
“하지만 예언이 그렇다는데 어쩌겠어? 게다가 이 땅을 정화한다잖아.”
“그 정화가 우리까지 쓸어버린다는 뜻 아닐까?”
“설마!”
그 사건 이후로 다누 족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묘하게 변했다.
예전엔 그저 ‘누아다를 구해준 착한 이방인’ 정도로 인식했다면, 이젠 뭔가 위험한 인물이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소문은 그야말로 온 동네에 파다하게 퍼져 나를 알아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물론 어차피 여기에 평생 살 것도 아니고, 시나리오만 클리어한 다음 나갈 작정이라 남들이 어떻게 보건 상관은 없지만…….’
문제는 일반적인 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여러 가지 일들을 파헤치며 가까워진 루 라바다.
그가 나를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봐, 루. 잠깐만…….”
“…….”
그는 이제 나를 보고도 인사는커녕 싸늘한 표정으로 외면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이 얻으려던 왕위를 눈앞에서 누아다에게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 과정에서 나온 예언이 ‘다음 왕은 이방인임’이라고 하고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이거 낭패인데.’
이제 겨우 온건파 오하드를 몰아내고 포보르 족과 제대로 싸워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나 했더니, 또다시 내부에 불안요소가 생기고 말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순 없어. 누아다를 설득해서 본격적인 전쟁 준비를 해야만 해.’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돌고 돌아 누아다 아르게틀람을 직접 움직이게 하는 것.
그래도 오하드를 존중한다며 계속해서 수동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던 이전과는 달리.
이젠 자기 자신이 정책을 결정해야 할 자리에 올랐으니 분명 뭔가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도 이렇게나 대단히 존경받는 리더인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 * *
“지금은 기다린다.”
안타깝게도 내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누아다는 그야말로 오하드와 판박이 같은 대답을 했다.
“지금 당장 움직여 봤자, 우리의 전력으로는 포보르 족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 현상을 유지한 채로 힘을 길러야만 한다.”
누아다가 그 어이없는 정책에도 가만히 있었던 건, 단순히 후대 아르드리를 존중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의 의지였던 것이다.
“이봐, 누아다!”
난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힘을 기른다?
무슨 중국마냥 도광양회하며 30년이고 40년이고 기다리면서 후대가 번영하길 기원한다?
지금 내겐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현실이니까.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내가 급한 걸 떠나서, 누아다의 그 정책은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소리였다.
“미래를 기약하며 힘을 기른다는 것도, 이 다누 족에게 폭발적인 잠재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소리야. 하지만 지금 상황을 봐.”
미래를 내다보고 힘을 키우려면 뭔가 그럴 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다누 족에게는 그런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최악이다.
“풍요의 가마솥은 아직도 어디 있는지 소재조차 파악이 되지 않고 있고, 식량난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관식 날 내린 뇌우는 일시적인 효과였을 뿐,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 준 것도 아니었지.”
“…….”
“이렇게 계속 식량난에 시달리는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너희는 끊임없이 약해지기만 할 뿐이야. 앞으로 반격의 기회가 오기는커녕, 굶주리다가 저항할 힘조차 남지 않아서 일족 전체가 포보르 족의 노예가 될 거라고.”
앞으로 다누 족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세가 약화될 것이다.
먹을 것도 없어서 고통받는데, 무슨 기약할 미래가 있단 말인가?
누아다와 오하드의 정책은 처음부터 틀린 얘기였다.
뭔가 대단한 비밀 병기라도 숨겨둔 게 아닌 한은 말이다.
“……그래, 이젠 밝혀도 괜찮겠지. 예언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런데, 한참 동안 잠자코 내 말을 듣고만 있던 누아다가 혼잣말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네 차례다.”
“그게 무슨……?”
{서브 시나리오 발동}
그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더니,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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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시나리오>
‘리아 팔’의 작동 권한을 넘겨받으십시오.
조건: 리아 팔 작동 권한 획득
보상: 액티브 스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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