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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84화 (84/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84화

범인의 지목과 그 증명은 모든 ‘리’들과 수많은 참관자들 앞에서 진행되었다.

“브리이드 님의 살해한 범인은 바로 현 아르드리인 오하드 브레스입니다!”

루가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좌중이 수군거렸다.

오하드를 지지하던 리들은 그의 폭탄 발언에 대노하며 반박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대체 왜 아르드리가 자신의 아내를 죽인단 말이오?”

“루 라바다. 그런 대범한 소리를 지껄인 데에는 명백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 당사자인 오하드는 더더욱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선 루가 무슨 말을 할지 들으려는 모양.

“동기와 증거. 전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둘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흥, 어디 한번 지껄여 보시지.”

지난번 대회의에서 그에게 가장 심하게 면박을 줬던 투이렌이라는 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루가 한껏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대답했다.

“우선 동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다누 족을 무너뜨리는 것. 그게 바로 저자의 목표입니다. 처음부터 아르드리가 된 것도 바로 그걸 위함이었습니다.”

“오하드는 누아다에게 인정받은 아르드리다. 너는 지금 누아다가 사람을 잘못 봤다고 말을 하려는 거냐?”

“아무리 누아다 님이라도 저런 사람의 속내를 파악하는 건 어렵겠죠. 지난번 회의 때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좌중을 압도하는 분노를 보여줬다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

루는 모두에게 그때 당시의 상황을 상기시켰다.

“그게 만약 거짓이었다면 저자는 우리 모두가 섬뜩할 정도의 분노를 연기한 셈이 되는 거고, 진실이라면 그 정도의 분노를 가지고 있음에도 금세 감정을 숨겼다는 것이 됩니다. 어느 쪽이건 오하드가 누군가를 속이는 데에 매우 능숙한 인물이라는 뜻이 되겠죠.”

그의 그럴듯한 논리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하드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냉철한 인물이라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누아다 님은 오하드를 그렇게나 신뢰했는데, 정작 자신은 누아다 님을 의심했습니다.”

“뭘 의심했다는 거지?”

“풍요의 가마솥을 도난한 범인으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

루가 마나난을 쳐다봤다.

마나난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는 저 이방인 또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나에게도 돌아왔다.

좌중의 시선이 내게 쏠렸고, 나 역시 조용히 그 말에 수긍했다.

“오하드는 풍요의 가마솥을 지키는 경계병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전대 아르드리인 누아다 님을 용의자로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대로라면, 누구보다도 경계병 배치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현 아르드리야말로 가장 유력한 범인 아닙니까?”

지난번에 나에게 했던 이야기.

분위기가 여기까지 이르자,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오하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가 했던 말은…….”

“뭐라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전 그저 가능성을 제기했을 뿐…….”

“저도 역시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당신은 아무런 근거가 없고, 저는 근거가 있다는 차이가 있죠.”

그 말을 듣던 투이렌이라는 자가 기가 차다는 투로 반박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풍요의 가마솥이 사라진 게 현 아르드리인 오하드의 자작극이고, 또한 브리이드가 죽은 것 역시 그녀의 남편인 오하드의 자작극이다? 포보르 족의 지령을 받아 우리를 몰락시키기 위해? 비약이 지나치군.”

“과연 제가 그저 이 이야기를 비약하는 것일까요?”

“그래, 좋다. 그럼 네가 말하는 그 ‘근거’가 뭔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알겠습니다. 카할.”

루가 이름을 불렀다.

내가 데리고 온 브리이드 살해 사건의 목격자.

그가 쭈뼛거리며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티르 나 노그의 영들에게 맹세하고 네가 본 것을 증언하라.”

“예.”

카할은 손을 벌벌 떨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그것도 유력자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의 입술에 쏠려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하는 의식을 치른 다음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저는…… 분명히 봤습니다. 오하드 님이 투창으로 무장한 병력들을 이끌고 움직이는 모습을요. 전 그게 그냥 군사작전 같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그 근처에서 브리이드 님이 투창에 당해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건 일개 개인의 목격담에 불과할 뿐이다.

마음먹고 조작한다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이 사람을 데려온 것도 루의 의견에 동조하는 나였다.

그러니 당연히 그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자의 말을 어떻게 믿지?”

“서두르지 마시죠. 드루이드!”

이제 루는 그 증언이 진실임을 확실하게 밝힐 것이다.

“……드루이드?”

“쉬운 이야기입니다. 드루이드가 브리이드 님의 영을 불러낼 것입니다. 살해를 당한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겁니다.”

“뭐, 뭐라고?”

살인 사건에서 피해자의 다잉 메시지는 매우 중요한 증거로 여겨진다.

범인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당사자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건, 죽은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

현실에선 그런 것이 불가능하지만, 여기선 가능하다.

이곳의 ‘드루이드’라는 자들은 죽은 다누 족의 영혼을 불러오는 마법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티르 나 노그에 가 있는 영웅을 불러올 셈인가!”

“이건 위대한 전사인 브리이드에 대한 모욕이오!”

물론 그걸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루의 제안에 나이 많은 리들이 격한 반대 반응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건 다누 족을 좀먹는 벌레를 찾아낼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로써 억울하게 돌아가신 브리이드 님의 원한을 달래고, 다누 족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거야말로 브리이드 님이 바라시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대로다.

이건 단순히 범인을 밝혀내는 것을 넘어서, 다누 족 전체의 위협을 제거하려면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오하드 본인이 이에 동의했다.

그는 자신이 지목되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는 건지, 아니면 이미 자포자기를 한 건지 덤덤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은 아니었다.

“당신이 데려온 저 드루이드는 술수를 부릴 수 있으니, 모두가 인정할 만한 중립적인 자가 제 아내를 불러냈으면 합니다.”

공정성을 위해 다른 자가 의식을 치르길 바란 것.

그리고 그렇게 오하드가 내세운 자는 바로.

“옹구스.”

다른 늙은 드루이드들에 비해 월등히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제사장이라면 충분히 신뢰할 수 있겠죠. 더군다나 그는 브리이드의 친오빠입니다. 누구보다도 진실을 밝히길 원하는 자일 겁니다.”

‘제사장? 거기에 친오빠라…….’

그 말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걸 보니, 꽤나 사람들에게 신임받는 인물인 것 같다.

실제로 그 옹구스라는 인물에게서는 매우 비범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그야말로 신성하기 그지없는 에너지를 끊임없이 방출하는 현자 같은 인물.

저런 사람이라면 실력으로나, 인격으로나, 누구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러면 의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루는 군말 없이 그 제안에 동의했다.

이제 여기서, 브리이드의 영을 불러내 자신을 죽인 진범을 밝힐 것이다.

* * *

옹구스는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지팡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서 정신을 집중했다.

따로 주문 같은 게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내 그 지팡이를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마나가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거칠고 웅장한 힘이 그 위에 깃들고 있었다.

우우웅.

이윽고 모여든 마나 덩어리의 색이 선명해지면서 공명음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곧 끈적한 액체처럼 변화해 땅 위에 떨어졌다.

그렇게 액체는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 커다란 인간의 형상으로 우화했다.

마나 액체로 이루어진, 삼지창을 든 여성.

화르륵.

그것이 완전한 형태를 갖췄을 때, 형상 전체에서는 새빨간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옹구스가 자못 근엄한 어투로 선언했다.

“영웅의 정령이 현신했다.”

“오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을 내뱉었다.

사실 난 이미 이전에 다른 드루이드가 불러낸 브리이드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범인으로 오하드를 지목했다.

그래서 나 역시 루의 말이 옳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다만 그때 그 드루이드가 불러냈던 건 상당히 불완전한, 거의 불덩어리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런데 이 옹구스라는 자는 그 자보다 훨씬 더 경지가 높은 것인지 거의 완전한 인간 형상의 영혼을 불러냈다.

“브리이드. 내게 알려다오. 너를 살해한 자가 누구지?”

옹구스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범인이 누군지 물었다.

정령으로 소환된 브리이드는 말을 할 수 없었고 옹구스에 의해 제어되는 소환물로서만 움직이지만, 그건 나름대로 감동적인 친남매의 상봉 장면이었다.

화르륵.

브리이드의 정령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소환의 주체가 옹구스로 바뀐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브리이드를 죽인 진범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남편.

오하드임이,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밝혀졌다.

“브리이드……! 네가 왜……!”

그는 정말로 소환의 주체를 옹구스로 바꾸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벌어질 걸 생각했던 모양이다.

분명 이 제안을 들었을 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던 오하드가, 순식간에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럴 리가 없어! 이건……. 이건 모함이야!”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까지도 지극히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그가 여기서 무너졌다.

오하드는 참으로 추하기 짝이 없는 행태로 현실을 부정했다.

그런 그의 편에 서는 리는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수많은 증언들, 정황, 그리고 확실한 증거까지. 더 이상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저 포보르 족 혼혈 앞잡이는 지금껏 교묘한 속임수로 우리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그자를 그렇게나 열성적으로 보호하던 오그마, 투이렌 같은 사람들도 등을 돌렸다.

“오하드……. 우린 당신을 믿고 있었는데.”

“너를 믿고 맡긴 누아다를 이런 식으로 배신한 것이냐? 허어……. 어떻게 이런 통탄할 일이.”

“아, 아닙니다! 전 정말……! 정말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그가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지만, 더 이상 그 말을 믿는 자는 없었다.

오하드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끌려 나갔다.

그는 곧 처형당할 것이다.

* * *

“그럼……. 이제 아르드리 자리가 공석이 되는데, 누가 신임 아르드리가 되지?”

오하드가 끌려 나가자마자, 사람들은 차기 아르드리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왕을 쫓아내자마자 그 자리부터 채울 생각을 하다니.’

물론 다누 족에게 있어 아르드리는 아주 중요한 위치이기 때문에 영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엉망진창이 된 왕국을 하루빨리 추스르고 미래를 내다볼 필요가 있기도 하고.

누구든 통솔력이 뛰어난 자가 빨리 아르드리에 등극한다면 나야말로 환영이다.

“역시……. 누아다 님만큼 존경받는 자는 없는 건가.”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가만히 있는 누아다에게 모였다.

“하지만 누아다 님은 팔 때문에…….”

신체 어느 한 군데라도 완벽하지 않다면 아르드리가 될 수 없다는 규칙.

그 때문에 아무리 누아다 본인이 대단한 통치자였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바로 그때, 계획을 성공시켜 기분 좋게 웃고 있던 루 라바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내민, 젊은 전사의 자신감 넘치는 출사표.

“저에게 아르드리의 자리를 맡겨주신다면, 지금의 모든 혼란을 종식시키고 다누 족에 예전과 같은 번영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난 그에게서 왜인지 아주 익숙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큭큭큭. 내 눈엔 네놈과 판박이로 보이는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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