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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83화 (83/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83화

다누 족 전체는 충격에 빠졌다.

아르드리인 오하드의 아내이자 다누 족 최강의 여전사인 브리이드가 포보르 족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로 인해 보름 뒤로 예정되었던 대회의가 급하게 앞당겨지고, 다누 족 영토 전역의 투아하(마을)에서 대표자들이 모였다.

“이건 절대 모른 체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아르드리의 아내가 죽었습니다. 당연히 이 회의는 포보르 족에 대해 어떻게 보복을 가할까를 논의하는 회의가 되어야 하고요.”

루 라바다가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오그마'라는 노년의 남자가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이건 그렇게 섣불리 움직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야.”

“섣부르다뇨? 우리가 언제까지 참아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흥분을 좀 가라앉히게, 젊은 친구. 우선 브리이드를 살해한 자들이 포보르 족인지 아닌지 아직도 확실한 게 아니지 않은가?”

루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 그럼 누가 브리이드 님을 죽인단 말입니까? 포보르 족이 아니면 다누 족이란 말씀입니까?”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중을 훑으며 말했다.

그러자 일순간 회의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루의 말은 이 중에 범인이 있을 거란 말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브리이드 님 같은 실력자가 길 가던 나그네와 시비 붙어 싸워 돌아가셨을 리는 없고. 게다가 시신의 상태도 다수의 투창에 꿰뚫린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그만한 무기와 병력 동원이 가능한 사람들 중에 포보르 족을 뺀다면……. 여기 있는 여러분밖에 남지 않는 거 아닙니까?”

루가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각 마을 대표자들을 쳐다보자, 한 중년인이 그를 크게 나무랐다.

“이 무슨 무례한! 감히 여기에 모인 ‘리(촌장)’들을 의심하는 것이냐! 게다가 방금 내 아버지에 대한 그 오만한 태도는 뭐고!”

“투이렌, 그건 루의 말이 맞다.”

이번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마나난이 끼어들었다.

“이게 정말로 포보르 족의 짓이 아니라면 그 말대로 다누 족, 그중에서도 이곳에 모인 우리 ‘리’ 중 하나의 범행이 될 수밖에 없다.”

“루, 마나난, 너희는 지금 우리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도록 부추기려는 거냐?”

“그러니까 이 일은 포보르 족의 소행이라 볼 수밖에 없다는 거다! 당연히 우리 중에 브리이드를 죽일 만한 사람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니까!”

그 네 사람의 언쟁을 기점으로, 대회의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브리이드와 원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부터 시작해서, 치정으로 인한 사건은 아닌지 등 온갖 더럽고 지저분한 뜬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오갔다.

바로 그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아르드리, 본 사건 피해자의 남편이 입을 열었다.

“브리이드는 결국 포보르 족의 약탈에 의해 죽었습니다.”

그의 담담한 발언에 루는 갑갑하다는 듯이 몰아붙였다.

“아르드리께서는 그것이 분하지도 않습니까?”

그러자 지금껏 평정심을 유지하던 오하드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그의 눈빛에선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가 그런 분위기를 내비친 건 정말 오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연히 분합니다. 그 포보르 놈들을 찾아내 찢어 죽여도 시원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당장 그들의 왕인 발로르를 찾아가…… 제가 죽더라도 제 아내의 원한을 풀고 싶습니다.”

그건 진심이었다.

평소 샌님 같던 그가 이렇게까지 분노를 드러낼 정도이니, 그저 적당히 연기하는 것이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오하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 역시 분노를 표출할 줄 알지만, 그럼에도 그 분노에 휩쓸려 자신의 신념과 어긋난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아르드리라는 신분임을 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포보르 족의 약탈 행위로 인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뭐라고?”

“우리는 저들과 조약을 맺었습니다. 전면전은 벌이지 않는 대신, 일정 수준의 약탈은 허용하겠노라고. 단지 이번엔 제 아내가 그 희생자가 되었을 뿐. 그걸로 다누 족의 다른 무고한 일원들의 희생을 대신할 수 있었다면, 제 아내 브리이드는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티르 나 노그(이상향, 낙원)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오하드의 사실상 묵인 선언에 대회의장은 한바탕 뒤집혔다.

브리이드는 이 안에서도 존경받는 전사.

그런 사람의 죽음을 그저 평소의 약탈 희생과 동격으로 취급한 것이다.

당연히 그에게 동조하는 인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 훨씬 많았다.

“누아다 님!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누아다 님께서 뭐라도 말씀을 해 주십시오!”

그러자 루는 전대 아르드리인 누아다 아르게틀람에게 의견을 물었다.

긍지 높은 다누의 전사였던 그가 자신에게 동조하길 바라면서.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루에게는 전혀 영양가 없는 것이었다.

“아르드리는 오하드다. 나는 아르드리의 의견을 존중할 뿐이다.”

“누아다 님!”

결국 대세는 완전히 기울어졌다.

“물론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 일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하고, 만약 포보르 족이 우리가 맺은 조약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정황이 발견된다면, 그에 대해서는 반드시 항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하드가 나름의 절충안을 첨언했지만, 사실상 온건파 신중론자들이 원하는 대로 이뤄진 거나 다름없었다.

* * *

대회의를 지켜보던 난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기 아내가 죽었는데도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아무리 오하드가 이성적이라지만 저건 도가 지나쳤다.

게다가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

하다못해 모든 개개인의 평등함이 당연시되는 현대 사회에서도, 일반인이 죽는 것과 국가원수의 영부인이 죽는 것은 다르게 여겨진다.

이건 감정의 영역을 완전히 배제하고 봐도 외교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신우.”

그렇게 생각한 것은 물론 나뿐만이 아니었다.

회의 내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던 루 라바다.

그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너는 이미 사정을 다 알고 있겠지? 내 아버지와 함께 오하드를 만났다는 것도 들었다.”

“그래. 나도 아까 거기에 있었으니까.”

대회의장에는 초대받은 참석자인 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관하고 있었다.

다누 족은 그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일반 부족원들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나름대로 민주적인 정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

덕분에 이방인인 나 역시 그 내용을 모두 보고 듣는 게 가능했다.

“그럼 이야기가 더 빠르겠군. 넌 어떻게 생각하나? 아르드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나?”

“아니. 절대.”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적으로도 말이 안 되긴 했지만 내 개인적인 입장으로도 그를 따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여기서의 시나리오를 끝내고 돌아가야 하는 난, 오하드와 누아다처럼 느긋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바깥세상은 정규 레이드 시즌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레이드 기간이 끝난 후 11월이 되면, 패치노트에서 예고한 대로 전 세계의 던전 포탈이 양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니 그 이전에 복귀해서 세상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그게 정상이지. 하아. 저 늙은 리들은 이방인인 너보다도 못한 자들이군.”

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더니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내게 말했다.

“솔직히, 너무 수상하지 않나?”

“어떤 부분이?”

“어떻게 자신의 아내가 죽었는데도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게다가 풍요의 가마솥.”

오늘 회의에선 풍요의 가마솥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브리이드의 죽음이라는, 너무 중한 사건 때문에 다른 주제는 모두 묻히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마나난의 아들인 터라, 어제 나와 함께 오하드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듣자 하니, 가마솥 도난은 경계병들에게 직접 손댈 수 있는 자만 가능하다면서 누아다 님을 용의자로 의심했다던데.”

“그랬었지.”

“그게 너무 우습지 않나?”

루는 한껏 실소를 흘리면서 말했다.

“정작 지금 경계병에 가장 직접적으로 손댈 수 있는 자기 자신은 왜 제외하는 거야?”

사실 그 생각은 나도 하고 있었다.

전대 아르드리가 범행을 할 수 있다면, 현 아르드리인 오하드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오하드를 의심하기엔 동기가 성립하기 어려워서 범인 선상에서 제외하고 있었다.

“물론 네 말도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굳이 자기 자신의 평판까지 깎아 먹어가면서 그런 짓을 저지를 이유가 있나?”

뭐가 어찌 됐든 풍요의 가마솥 도난은 현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는 본인의 실책이 될 뿐.

그걸로 왕의 자격을 의심받을 수도 있고, 심하면 쫓겨날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루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당연히 이유가 있지. 왜냐면 그놈은 포보르 놈이니까.”

포보르 족과의 혼혈이라던 오하드.

루는 이젠 아예 그를 자신과 동족으로 취급하지도 않고 있었다.

“우리의 힘을 계속 약화시켜서 저들에게 종속시키려는 계획이야. 놈이 펼치는 정책을 보라고. 아예 대놓고 우리를 포보르 족에게 가져다 바치는 중이란 게 느껴지지 않아?”

“네 말은……. 오하드가 다누 족을 무너뜨리려는 흉계를 꾸미고 있다?”

“그렇지. 그리 생각하면 아내가 죽었는데도 그렇게 태연한 게 납득이 가. 브리이드 님은 다누 족이니까.”

루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오하드의 행동들이 모두 말이 된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음모라고 하기엔 다 너무 대놓고 꾸미는 게 보이는 데다가.

또한 이 시나리오의 주인공인 누아다가 전폭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있는 터라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넌 어쩌고 싶은 거야?”

“밝혀내야지. 브리이드 님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풍요의 가마솥을 훔쳐간 자가 누구인지.”

앞에서 했던 루의 의심이 맞는지 아닌지를 떠나, 저 말은 확실히 옳은 말이었다.

지금은 다누 족 내부의 교통정리가 필요한 때.

이대로 뒀다가는 포보르 족과 싸워보기는커녕 내부 분열로 끝장나고 말 것이다.

그전에 어떻게든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그렇군. 좋아. 나도 널 돕도록 하지.”

“고맙다, 친구여.”

루와 나는 손을 맞잡았다.

* * *

“마스터.”

검은 정장 소매 아래로, 아델의 번쩍이는 오른손이 보인다.

그녀는 누아다와 같은 은색 팔을 얻은 상태였다.

“찾았습니다.”

“어디 있지?”

“지금 막시모가 데려오고 있습니다.”

그녀가 ‘찾아낸 것’은 바로, 어떤 사람이었다.

꽤나 먼 길을 달려 도착한 어느 작은 마을, 이 장대한 신화 속 세계의 시나리오와는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남자.

그는 바로, 브리이드 살해 사건의 목격자였다.

“당신이 카할인가?”

“그, 그렇습니다.”

공포에 질린 얼굴.

이 마을 사람들은 새까만 옷을 입은 이방인인 우리 일행을 무척이나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입은 벨그레이브 유니폼 정장은 현대인이 보기에도 꽤나 위압감이 드는 의상이었으니, 이런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누아다, 마나난, 루 같은 강자들에게는 오히려 그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듯하지만.

“괜찮아. 너는 그냥 네가 본 것을 그대로 말하기만 하면 돼.”

“혹시나 제 증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럴 일은 없어.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까.”

나와 루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목격자가 해줄 말은 그저 그 ‘확실한 증거’를 뒷받침해 줄 보강 증언에 불과할 뿐.

“다시 묻겠다. 네가 본 건 확실하겠지?”

“예. 분명히 아르드리께서 병사를 이끌고 움직이셨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어.”

그리고 그를 통해서 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오하드는 다누 족을 위해.

시나리오의 무사 클리어를 위해 제거되어야 할 암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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