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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82화 (82/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82화

나는 마나난과 함께 오하드의 저택을 방문했다.

루에게는 나쁜 군주로, 마나난에게는 좋은 군주로 평가받은 다누 족의 현 아르드리는.

“잘 오셨습니다!”

엄청난 미남이었다.

정말로, 비현실적일 정도로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자였다.

오죽하면 그의 이름 ‘오하드 브레스’가 이곳 언어로 ‘아름다운 오하드’라는 뜻이라고 할까.

“신우 씨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누아다가 위험에 빠졌을 때 기적처럼 나타나 도움을 주셨다지요?”

그는 한껏 호들갑을 떨며 나를 환대했다.

‘그다지 믿음 가는 타입은 아닌데.’

겉만 번지르르하고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정치인 같은 부류.

오하드에 대한 첫인상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오오! 마나난 씨도 곤란해하던 그 마물을 신우 씨가 처치하셨단 말입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 온갖 인사치레가 이어졌다.

나와 누아다의 만남부터, 마나난과의 대면, 그리고 오하드 본인과 마나난 사이의 일들까지.

아무래도 전화나 메시지 같은 게 없는 시대이다 보니, 이렇게 한 번 만났을 때 모아뒀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푸는 모양이다.

덕분에 내가 오하드를 만나러 온 목적, 풍요의 가마솥에 대한 본론으로 들어가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나저나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슨 일? ……아아.”

답지 않게 수다를 떨던 마나난은 본론을 떠올리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제부터는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풍요의 가마솥에 대한 문제인데.”

“……아, 그것 때문이시군요.”

마나난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오하드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가 돌아왔다.

그는 이 문제를 마주하고서도 의연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이에 대해 자신이 먼저 할 말이 있다는 듯 선수를 쳤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대회의를 소집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각 투아하의 대표자들에게 전령을 보냈습니다만……. 혹시 소식을 전달받지 못하셨습니까?”

“아니, 못 받았어.”

마나난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

그러자 오하드가 탄식을 내뱉었다.

“……하아. 또 포보르 녀석들의 짓인 모양이군요. 그놈들, 요즘들어 부쩍 약탈이 늘어난 것 같더니, 이젠 전령마저…….”

난 그 말에 이곳에 오면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포보르 족이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게 비일비재한 모양.

그럼에도 이 오하드라는 왕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끼어들었다.

“오하드.”

“아, 신우 씨. 말씀하십시오.”

“포보르 족이 그런 짓을 저지르는데, 아르드리인 당신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는 건가?”

“신우.”

내 직설적인 물음에, 마나난이 나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오하드는 반대로 “괜찮습니다”라며 마나난을 만류했다.

“겉으로 보기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마냥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고는 외부인인 나를 배척하기는커녕 자신의 방법론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저는 포보르 족의 아르드리인 발로르와 약속을 했습니다.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대신, 최소한의 약탈을 허용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럼 저들이 다누 족을 계속 약탈하도록 허용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난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왕이라는 자가 이렇게까지 대놓고 이적행위를 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오하드가 그렇게 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 약탈로 인해 수많은 다누 족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약탈을 하게 두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포보르 족은 약탈 그 자체를 자신들의 신성한 업으로 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켜준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약탈 행위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전면전을 벌여서 전부 쓸어버리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전쟁이 아닌, 나름대로 온건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 바로 약탈을 허용하는 것.

현대인인 내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만, 이곳에서는 그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만약, 경비를 강화해 적극적으로 약탈을 차단한다면 저들의 약탈 행위는 더욱더 강도가 높아질 겁니다. 5명으로 막혔으니, 다음엔 10명을 보내고, 그게 막히면 20명으로. 그렇게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피해는 더더욱 커지고 전화는 들불처럼 번져나가겠지요. 결국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합리적인 것은 현 상황의 유지라는 겁니다.”

“그 말인즉,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겠다는 거군.”

내 지적에도 오하드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예.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생명은 경중을 따질 수 없고 숫자로 셈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이 아닙니다. 저는 다누 족의 통치자입니다. 통치자는 사람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그 경중을 따지고 숫자로 셈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또한 그 신념을 뒷받침해 줄 대안도 가지고 있었다.

“저는 이것을 포보르 족에 대한 굴복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낮은 자세로 웅크린 채 힘을 기르다가, 때가 왔을 때 그 힘을 발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누아다 씨와 함께 그때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장기전을 내다본다는 건가.”

“예. 모름지기 국정은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법. 당장의 치기 어린 증오심으로 더 많은 생명들을 잃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많이 괴롭지만,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게 될 겁니다.”

외모와 말만 번지르르할 거라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상당히 심지가 굳고 강단 있는 인물이다.

난 그에게 느꼈던 첫인상을 수정해야만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나 정성스레 해주는 거지? 만약에라도 내가 포보르 족의 첩자이면 어쩌려고.”

“하하,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누아다 씨와 마나난 씨가 사람을 잘못 보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주변인들에 대한 전적인 신뢰까지.

아마도 누아다와 마나난은 오하드의 저런 모습을 보고 감화되었겠지.

심지어 그 둘을 통해서 연결된 나까지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이 남자, 보통이 아니야.’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은 흔하다.

그러나 사람을 끌어들이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잠깐.”

그런데 그때, 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와 당초에 여기에 온 목적을 떠올렸다.

“그래서, 풍요의 항아리는?”

“예?”

“네 그 대단한 통치 이론이 뭔지는 알겠는데. 풍요의 가마솥은 어떻게 된 거야?”

깜빡하고 속아 넘어갈 뻔 했다.

그는 아르드리로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를 실패한 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기꾼과 정치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더니.’

난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를 재차 추궁했다.

“그건…….”

“어물쩍 넘어갈 생각은 하지 마. 결국 네가 말하는 ‘미래를 위한 준비’도 그게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 아냐?”

나라가 궁핍한데 미래를 위해 힘을 기른다는 소리가 성립할 리가 없다.

포보르 족에게 약탈당하는 건 둘째 치고, 먹을 것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환경에서 무슨 힘을 키운단 말인가.

풍요의 가마솥이 없는 한, 오하드가 한 말은 모두 허풍에 불과하다.

“신우, 그건 대회의를 소집해서 이야기한다잖아.”

거기서 마나난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난 그 의문을 당장 해결해야만 했다.

“이유 정도는 지금 말할 수 있잖아?”

나중에 다누 족의 유력자들을 잔뜩 모아 놓은 대회의 때는, 내게 발언 기회가 절대 주어지지 않을 터.

그럼 회의가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난 서브 시나리오를 클리어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기회가 있을 때 단서를 얻어내야 한다.

그리고 솔직히, 오하드의 방법론도 이상적이긴 하나 나에겐 절대 달가운 소리가 아니다.

내가 이쪽 세상에서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아무튼 이유가 뭐가 됐든 난 이 일을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건……. 알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하드는 체념한 듯 가마솥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실토했다.

“풍요의 가마솥은 본래 엄중한 경비 속에서 보호됩니다. 그것도 일부의 실책으로 인한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5중의 보호장치를 해두고서 말입니다.”

“그렇게 견고하게 보호되던 게, 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거지?”

“그 5중의 보호장치를 구성하던 경비들이 모두 한꺼번에 가마솥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어떻게 그런 일이?”

그 말에 놀란 건 나뿐만 아니라 마나난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마법적 현상이 벌어진 것도, 도둑의 신묘한 기술로 인해 도난당한 것도 아닌.

지키고 있던 경비원들 전부가 가담한 절도 사건.

“그래서 저도 의문이었습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런 일이 가능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 명이라니, 누구?”

“제단 경비 체계를 제 허락 없이 손댈 수 있는 유일한 인물.”

“설마?”

마나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대 아르드리입니다.”

“누아다가?”

그의 입에서 나온 용의자의 정체에, 순간 나와 마나난 둘 다 얼어붙었다.

그런데 충격적인 소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덜컥.

“오하드 님!”

급하게 문을 열어젖힌 전령이 숨을 헐떡거리며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오하드는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물었다.

“브리이드 님이…….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브리이드가 오하드의 부인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 * *

이틀 전.

브리이드는 마수 사냥을 위해 어린 여전사 둘을 데리고 동굴을 떠났다.

“마수는 고기가 질겨 먹기에는 부적합하지만, 뼈나 가죽으로 무기와 옷 등을 보강하는 재료로 쓰기에 좋아.”

“아하!”

“에이페, 네가 입고 있는 그 생가죽 갑옷도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거란다.”

“어쩐지 단순한 가죽 같지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이런 걸 만들려면 주기적으로 마수 사냥을 해야 되겠네요!”

“그렇지.”

이 외출은 어린 전사들을 키우기 위한 교육의 목적이었으므로, 굳이 병사들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다누 족 최강의 여전사인 브리이드가 보호자이니, 감히 포보르 족 약탈자들이 습격한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게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약탈자’나 ‘마물’ 수준의 위협에게만 통하는 힘.

그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홀로 군대에 맞설 수는 없었다.

쉬이이익! 카아앙!

“누구냐!”

갑자기 날아온 돌팔매에 브리이드는 급히 삼지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데리고 온 소녀 전사들을 뒤로 물리며 적의 방향을 가늠했다.

하지만 돌팔매가 날아온 방향엔 아무도 없었다.

“모습을 드러내라!”

그녀가 윽박을 질러보지만 적은 당연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대신, 전방위에서 날려 보내는 투창으로 화답했다.

쐐애애액!

그러자 브리이드는 머리 위에서 삼지창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화르륵!

창끝에선 강렬한 불꽃이 흩뿌려졌고, 이내 소용돌이치는 불꽃은 수많은 투창들을 대부분 막아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아아악!”

“에이페!”

그녀가 데리고 있던 어린 여전사의 가슴을 투창 하나가 꿰뚫었다.

뒤늦게 브리이드가 그 아이를 지키려 손을 뻗었지만, 이미 손 쓸 도리가 없는 상태.

곧이어 집중력을 잃은 그녀에게 연달아 돌팔매가 날아들었다.

큐웅!

이번엔 아까 전과는 달리 심상치 않은 마력을 담은 공격.

퍼억!

“컥!”

바람을 찢고 파동을 흩뿌리며 날아온 그것은 브리이드의 배를 꿰뚫었고.

“쿨럭! 쿨럭!”

퍼퍼퍼퍽!

피를 토하며 제자리에 주저앉은 그녀의 등으로 순식간에 수십 개의 투창이 재차 날아와 꽂혔다.

브리이드는 그 와중에도 소녀들을 감싸며 지켰지만.

“…….”

자신의 등을 관통하고 지나간 투창들이 품속의 아이들까지 해치고 말았다.

더 이상 미숙함 섞인 비명과 공포심은 없었다.

“대체…… 누구냐…….”

브리이드는 증오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공격한 적을 올려다보았다.

수십의 중무장한 전사들과 함께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러 오는 살인자들.

그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똑똑히 확인했다.

“여보……?”

오하드 브레스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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