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75화
등골 서늘한 적막이 흘렀다.
브랜든의 사무실 안.
이 안에 나와 하비, 브랜든이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이 사무실 자체는 상당히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둘에겐 매우 좁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의 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하비.”
브랜든이 먼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오해한 게 있다면 미안하다.”
그 말을 들은 하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기 형이 먼저 사과하는 모습을 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브랜든이 아닌 나를 쳐다봤다.
그는 눈빛으로 ‘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냐’고 묻는 것 같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내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어.”
브랜든이 팔을 벌려 하비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하비는 순간 경계심이 발동해 뒷걸음질 쳤다.
난 그런 그에게 ‘괜찮다’는 눈빛을 보냈다.
“……형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터억.
형제간 우애의 포옹.
하지만 그건 동상이몽이었다.
“그래. 앞으로는 내가 좀 더 네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하마.”
‘언젠가 영원한 감옥에 갇혀서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될 거다.’
“나도 미안해. 이제 이런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게, 형.”
‘넌 조만간이야, 브랜든.’
내가 그들의 속내를 직접 읽을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눈빛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마음을 비추고 있었기에, 굳이 생각을 읽는 능력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 이렇게 화해하니까 보기가 아주 좋네.”
찌릿.
브랜든이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말했다.
“그러게 처음부터 둘이 좋게 해결했으면 나쁠 게 없었잖아?”
그건 진심이었다.
애초에 이들이 조금이라도 자기 형제의 마음을 이해하려 들었으면 내 손아귀에서 놀아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뭐, 사실 이 관계에서 하비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을 뿐이긴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하비가 그렇게나 오만방자하게 굴었던 것 역시 그런 브랜든의 언행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형제의 우애가 안 좋은 쪽으로 시너지를 일으켜 버린 사례.
“거참,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내가 왜 이 사이에 껴야 하는 건지.”
그러면서 브랜든의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그 위엔 데스크탑 본체와 모니터가 올려져 있었다.
난 그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너 뭐 하는 거야? 이리 나와. 그거 건드리지 마.”
“아,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브랜든은 거기에 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 하비 앞에서 역겨운 연기를 하느라 기분이 나빠진 상태에서, 나까지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니 저렇게 예민할 수밖에.
“아무튼 이제 둘은 화해했으니 내 역할은 끝났어. 아, 그리고 난 브랜든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하비 너는 먼저 가도 좋아.”
“그래. 알았어.”
어느새 하비는 내 말을 철저히 따르는 꼭두각시가 되었다.
남들이 이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상급자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덜컥.
아무튼 그는 이 방을 떠났다.
그와 동시에 브랜든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 자식……. 나한테 이딴 엿 같은 일을 시켜?”
그가 하비에게 사과를 한 건 전적으로 나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이다.
“왜, 둘이 보기 좋더만.”
“닥쳐. 지금 그딴 소리가 나와?”
“큭큭. 농담이고, 이게 다 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니까 조금만 협조해 달라고.”
“이딴 짓거리가 무슨…….”
“아까 하비 그 녀석, 눈이 휘둥그레져가지고는 ‘어떻게 이 인간이 이런 말을 하게 만들었지?’라는 표정, 못 봤어?”
브랜든이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지만 입을 다물게 하기엔 충분했다.
“걘 이제 내 말이면 껌뻑 죽는 상태가 됐다고. 적의 적은 아군이다. 너에 대한 증오심이 역으로 나에 대한 신뢰감으로 바뀐 거지.”
그 또한 사실이었다.
지금 나는 마음만 먹으면 하비의 생각과 감정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한테 줄 돈도 준비해 놓고.”
“……정말 1억 달러면 되는 거지?”
“당연하지. 난 그것만 받고 평생 놀고먹으면서 살 거야.”
그리고 그건 브랜든도 마찬가지다.
그는 내가 돈 때문에 이런 짓을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 * *
브랜든을 만나기 전, 유신우가 하비에게 이야기했다.
-네 부활 능력, 그건 정말 엄청난 능력이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횟수에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제약도 없이 무한히 소생할 수 있는 능력이니 말이다.
게다가 ‘10개의 부활 지점’이라는 요소 덕에 그를 억지로 힘으로 가둬 놓지도 못한다.
염왕이라는 엄청난 인간이 그에게 손 쓸 도리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엄청난 성능의 만능 이동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야.
그런데 유신우는 그 능력을 조금 다르게 보고 있었다.
-만능 이동수단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하비. 내일, 네 형이 너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들일 거야.
-뭐? 그 인간이? 내가 거기에 순순히 갈 줄…….
-순순히 가.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그리고 거기서 브랜든의 말을 적당히 받아주는 척해. 단, 도중에 네가 할 일이 있어.
-할 일?
-그 장소를 네 부활 지점으로 지정하는 것.
들어갈 수 없는 장소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텔레포트 능력.
유신우는 하비를 브랜든의 사무실에 침투시키는 용도로 부활 능력을 사용하게 한 것이다.
‘젠장. 여기 들어오려고 자살을 해야 한다니.’
물론 그 방법이 꽤나 과격하긴 했지만, 덕분에 한밤중에 엄중한 보안이 유지되는 기밀구역에 손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이걸 저기에 꽂으라고 했지.’
하비는 주머니에서 작은 USB 하나를 꺼냈다.
유신우는 그걸 브랜든 책상 위의 데스크탑에 끼우라고 했다.
낮에 그가 손을 댔다가 브랜든에게 험한 소리를 들은, 바로 그 데스크탑 말이다.
‘USB니까……. 부팅을 하고 껴야 하는 건가?’
하비는 컴퓨터를 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상식적으로 USB는 부팅을 해야지만 작동을 하는 물건이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했다간, 바깥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보안 팀에게 발각될 수도 있다.
‘젠장, 그냥 무작정 끼라고만 하면 어떡하란 거야? 이런 부분도 설명을 해줬어야지.’
그는 속으로 불평을 하며 일단 꺼져 있는 컴퓨터에 USB를 꽂았다.
그러자.
번쩍.
모니터가 켜졌다.
컴퓨터가 저절로 작동된 것이다.
다만 팬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화면도 새카만 도스 화면이라 밖에선 기척을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아무튼 거기에 무수한 글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쥐새끼 ver.0.998 설치 완료.]
그러고는 이상한 완료 메시지와 함께 컴퓨터는 다시 꺼졌다.
USB가 할 일을 다 끝낸 걸로 보인다.
‘된 건가. 후우. ……이거 완전 하이 테크놀로지구만.’
하비는 감탄했다.
대체 유신우는 어디서 이런 걸 구해온 걸까.
그리고 유신우는 어떻게 브랜든을 그렇게 구워삶을 수 있었던 걸까.
알면 알수록 놀라운 인물이다.
예전에 자신이 그에게 당했던 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적일 때는 최악이었는데, 아군일 때는 최고잖아?’
하비는 그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브랜든으로부터 모든 걸 빼앗고 나면, 유신우를 평생 자신의 옆에 두고 참모로 쓰겠다고 생각했다.
역사 속 유명한 군주들이 유능한 참모를 옆에 뒀던 것처럼 말이다.
* * *
사흘 후.
“형님, 오랜만입니다.”
“그래, 진윤아. 정말 반갑다.”
이진윤이 멕시코에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멕시코 코홀리테 요새로 왔다.
그는 현재 알포드 클랜의 클랜 마스터.
한 클랜의 수장이 타 클랜이 점유하고 있는 영지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한밤중에.
“준비는 다 됐겠지?”
“물론입니다. 완벽하게 해놨습니다.”
“그래. 잘했어.”
그가 이 시간에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클랜을 나에게 되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럼 형님, 받아주십쇼.”
{<알포드 클랜>으로부터 가입 요청이 왔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난 그 메시지를 수락했다.
{<이진윤> 님께서 클랜 마스터 자리를 당신에게 양도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알포드 클랜의 클랜 마스터로 돌아왔다.
“고맙다. 약속 지켜줘서.”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인데요, 뭘. 전 그리고 형님을 전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만큼 저도 형님께 믿음을 드리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래, 믿음. 나도 그 믿음 깨지지 않게 해줄게.”
“넵!”
그리고 난 그와 함께 비밀 수로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지난번 3억 다이아를 소모해 업그레이드시켰던, 막시모를 비롯한 47명의 수비병들이었다.
“관리자님!”
“난 이제 더 이상 관리자가 아니다.”
“네? 그게 무슨……?”
“지금부터 난 너희들을 새로운 성으로 데려갈 것이다.”
난 그들을 알포드 클랜에 영입시킬 작정이었다.
벨그레이브 수뇌부인 염왕에 대한 반감이 있으면서, 나에 대한 호의는 강하고, 이 요새 내에 연고도 없다.
떠나기에는 충분한 조건을 갖춘 자들인 것이다.
“다시 묻겠다. 그때 맹세했듯이, 너희는 끝까지 나를 따라올 수 있겠나? 설령 저 먼 이국의 땅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예!”
그들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단 한 명도 거리낌을 표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알포드 클랜으로 들어와라.”
난 그들 모두에게 클랜 가입 요청을 보냈다.
{<막시모> 님이 <알포드 클랜>에 가입했습니다.}
{<후안> 님이 <알포드 클랜>에 가입했습니다.}
{<벨포트> 님이 <알포드 클랜>에 가입했습니다.}
…….
곧이어 클랜원 리스트에 47명의 신규 가입자가 나타났다.
“가자.”
“예! 마스터!”
이제 그들은 클랜장인 나의 허가를 받아 포탈 너머 현실 세계를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
영지 내의 NPC들을 바깥에서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건 마스터의 고유한 권한.
이 권한을 사용함으로써, 난 그들을 멕시코의 코홀리테 요새에서 영국의 알포드 성으로 데려가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조용히 움직여라.”
난 곧바로 그들을 포탈 밖의 도로로 이동시켰다.
그곳에는 화물차 세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 차량의 화물칸에 수비병들을 탑승시켰고.
물품을 실은 것으로 위장한 차량들은 한밤중의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항구에 도착했다.
그곳엔 이진윤이 준비해놓은 밀항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 있어라. 지긋지긋한 벨그레이브 놈들아.’
이 시간부로 유신우는 이 세상에서 종적을 감춘 실종자가 된다.
적어도 벨그레이브에게는 그렇게 인식될 것이다.
현재의 세상에서 벨그레이브에게 실종자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곧 전 세계에서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난 이 배를 타고 몰래 영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형님.”
“왜?”
“근데 굳이 이렇게까지 은밀하게 움직이는 이유가 뭡니까? 저 NPC들이야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면 곤란해지니 그렇다 치더라도, 형님까지 굳이…….”
“속여야 되는 사람들이 있거든.”
“에? 그게 누군데요?”
“있어. 두 명.”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난 휴대폰으로 미리 준비해 두었던 두 통의 메시지를 전송했다.
하나는 하비에게 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브랜든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브랜든에게: 하비가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의심하는 듯. 너에 대해서도 뭔가를 알아낸 것 같은데, 지금 바로 찾아갈 테니 기다려.]
[하비에게: 브랜든이 날 의심하는 것 같다. 혹시나 내가 실종된다면, 첨부한 파일을 세상에 뿌려서 그놈에게 복수해 주길 바란다.]
하비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특별한 파일들을 넣었다.
그건 하비를 이용해 브랜든의 사무실 컴퓨터에 심어뒀던-
다리우스의 랜섬웨어로 얻어낸 자료들이었다.
그 랜섬웨어는 브랜든이 접근한 기록이 있는 모든 네트워크를 타고 전염되는 악성 프로그램이었고.
그것은 곧 브랜든에 관련된 수많은 가치 있는 기록들을 빼냈다.
브랜든의 비위 사실, 벨그레이브 수뇌부들에 대한 뒷조사, 만일을 대비해 검제와 마존, 성황의 약점을 잡으려고 수작을 부렸던 정황증거 등.
드러난 순간 벨그레이브 자체가 파탄 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것들이었다.
그걸 하비에게 줬고, 나는 실종되었으니, 이제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그 자료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브랜든은 밤중에 찾아오겠다던 내 소식이 끊어진 후 하비의 공격이 시작되면 자신이 하비에게 완전히 당했다고 생각할 테고.
바야흐로 형제간의 대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잘 있어라. 등신들아.’
그동안 난 내가 얻은 것을 통해 1급 각성자 4인방을 따라잡을 것이다.
[2028년 패치노트]
[2029년 패치노트]
[2030년 패치노트]
[2031년 패치노트]
[2032년 패치노트]
브랜든에게서 훔쳐낸 초창기 5년의 패치노트들.
벨그레이브가 독점하고 있는 각종 퀘스트 보상들을-
흠결 없는 완전한 상태로 얻는 작업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