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72화
“으…….”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남자가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이름은 대런이었다.
“너한테 개인적인 원한은 없어. 그냥 엿 같은 주인을 만나서 죽는 거라고 생각해.”
하비는 브랜든의 최측근인 대런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던전에 끌고 왔다.
그를 아무도 모르게 죽여 버리기 위해서였다.
대런은 비각성자였지만, 그래서 의지에 상관없이 강제로 포탈에 데리고 들어오는 게 가능했다.
입장하겠냐는 시스템 메시지에 자의로 동의해야만 던전 입장이 가능한 각성자와는 달리, 비각성자는 일반 오브젝트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즉, 대런은 하비의 ‘소유물’로서 포탈을 넘어온 것.
“살려……주세요…….”
“그건 안 돼. 대신 아프지 않게는 해줄게.”
“안…….”
투콱.
하비는 나름대로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마물들에게 산채로 잡아먹히는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단칼에 목을 베어 숨을 끊었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떨어져 조용히 시신을 지켜봤다.
키릭. 키리릭.
이내 쥐 마물들이 피 냄새를 맡고 침을 흘리며 모여들었다.
그러고는 망설이지 않고 시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하비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작은 뼛조각 하나까지 갉아 먹히는 대런의 모습에 자기 형을 투영시켰다.
‘두고 봐. 마지막 승리자는 내가 될 거니까.’
처음에는 그저 자신과의 약속을 깬 브랜든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형은 항상 우월했고, 자신은 그 아래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으니, 큰 걸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유신우를 만나고 나서, 어쩌면 모든 걸 빼앗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가만히 있으면 난 형이 죽고 나서도 영원히 그 그늘 아래에 갇혀 있겠지.’
그 자신감은 그저 욕망의 발로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쟁취하지 않으면 정당한 권리마저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불멸이라는 축복이 오히려 영원한 패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욱 그를 몰아붙인 것이다.
‘이제 염왕의 자리는 내 거야.’
준비는 완벽하다.
환경도 자신의 편이다.
하비는 그렇게 믿으며, 던전을 벗어나 근처의 소도시에 있는 숙소로 돌아갔다.
* * *
“휴우.”
하비는 샤워를 마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했다.
똑똑.
그런데 누군가 객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이곳은 인적이 드문 미국의 시골 지역.
게다가 자신이 여기에 온다고 누구에게 말한 적도 없다.
이 동네에서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설마…….’
쿵쿵쿵!
“경찰입니다. 수사 협조 부탁드립니다.”
경찰이다.
아마 잔뜩 겁먹은 채 끌려다니는 대런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신고를 한 모양이다.
‘……다행이군.’
물론 이 정도 상황은 다 예상하고 있었다.
대런은 이미 DNA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사라졌다.
던전 바닥에는 피 한 방울, 뼈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마수들은 그만큼 먹성 좋은 생물이기 때문이다.
증거는 없을 테니, 걸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덜컥.
“무슨 일이시…….”
하비는 선뜻 문을 열어 경찰을 마주했다.
“……죠?”
그런데, 문밖에는 거의 열 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절대 수사를 하러 온 경찰은 아니다.
“잡아!”
우당탕! 콰당!
밖에 있던 그 많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좁은 객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하비는 단숨에 여러 명의 장정들에게 깔아뭉개지며 제압당했고, 다른 인원들은 문을 닫은 후 틈새에 덕 테이프를 발라 방을 철저히 외부와 차단시켰다.
파직!
“끄으윽!”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들 중 하나가 하비에게 마비 마법을 걸더니.
차칵. 차칵.
급기야는 아예 움직이지 못하도록 양팔과 양다리를 뒤로해서 수갑을 채웠다.
수갑은 각성자들의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과 같은 금속을 사용해서 만든 것이었다.
“하비 님.”
방 안에 들이닥친 괴한 중 한 명이 그의 이름을 말했다.
괴한들은 이미 그가 누군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 뭐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이자들은 브랜든의 똘마니들이다.
보나 마나 대런을 납치해 온 하비를 뒤늦게 추적해서 온 것일 터였다.
“하비 님이야말로 뭡니까?”
“내가 뭘?”
“브랜든 님의 대리인.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는 모른 척했다.
굳이 자신의 범죄를 시인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다 알고 왔습니다. 발뺌하지 마시고 숨겨놓은 장소를 말씀하시죠.”
“모른다니까?”
“……하. 브랜든 님이 무섭지도 않습니까?”
“내가 왜 형을 무서워해야 하지?”
괴한이 한숨을 푹 쉬더니, 엎드린 채 포박되어 있는 하비의 귓불을 잡아당겼다.
“하비 님.”
그러고는 그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브랜든 님은…… 당신의 형이 아니라, ‘염왕’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너 따위가 형제랍시고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니다.
격 자체가 다른 사람이니 착각하지 마라.
하비의 귀에는 그 말이 그렇게 들렸다.
“큭큭……. 병X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노발대발 핏대를 세워가며 언쟁을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하비는 달랐다.
자기는 절대 지지 않을 거란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뭐?”
“왜, 형한테 빌붙어서 힘 좀 쓸 수 있게 되니까 세상이 다 쉬워 보여?”
“……하아. 하비 님.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셨나 본데…….”
“너야말로 상황 파악이 안 된 거 아닌가?”
그가 한껏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괴함을 느끼게 하는 얼굴이었다.
“네가 진짜 날 붙잡은 것 같아?”
그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입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어? ……야, 야! 얘 상태 이상하다!”
“뭐라고? 안 돼! 죽으면 안 돼!”
하비는 이런 때를 대비해 미리 배워 두었던, 자살 마법을 사용했다.
정확히는 자살 용도가 아니었지만, 자신의 몸 안에서 작은 폭발을 일으켜 신체 기관을 파괴할 수 있는, 기초 수준의 혈마법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머리에 쓴 것이다.
“어떻게든 살려내! 빨리!”
“이런 미친…….”
허둥대는 괴한들의 모습을 보며, 하비는 그 기괴한 웃음을 지은 채 그대로 사망했다.
{부활 지점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영체가 된 그의 눈앞에는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4번.’
{4번 부활 지점에서 부활합니다.}
총 10개의 번호 중 하나를 고르자, 잠시 시야가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파아앗.
방금 전의 객실과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눈을 떴다.
푸른 하늘. 거기에 대비되도록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진 더러운 거리.
툭툭.
“이봐, 일어나.”
정신을 차리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발로 하비를 툭툭 찼다.
그 사람은 누런 제복을 입은, 콧수염을 기른 경찰이었다.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야? 영어 할 수 있어? 여권 좀 보여줄 수 있나?”
보자마자 독특한 억양으로 빠르게 질문을 쏟아내는 남자.
[인도 경찰청]
하비가 깨어난 곳은 인도 어느 도시의 후미진 골목 한가운데였다.
* * *
“유신우!”
퍼억!
또다시 전과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브랜든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 목을 움켜쥐고 벽으로 밀쳤다.
다만 그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 난 이 자가 왜 이러는지 알 것 같다는 것이다.
“네놈…….”
염왕은 전보다 훨씬 더 살기등등해졌다.
그때가 조금 짜증이 난 수준이라면, 이번엔 정말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걸 건드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비 이 자식, 사람을 죽여 버릴 줄이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하비에게서 직접 연락을 받았다.
신경 쓰일 정도의 일을 벌이라고 했더니, 브랜든의 최측근을 처리해 버린 것.
‘……기특한 놈이잖아?’
생각보다 훨씬 대담한 짓을 했다는 얘길 듣고, 나는 꽤나 감탄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아무튼 그 사안이 사안인지라, 브랜든은 당장에라도 날 죽일 듯이 추궁했다.
“네가 나한테 무슨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네 어쩌네, 그딴 소리를 지껄이자마자 하비가 일을 저질렀어.”
“하비가? 놀랍군.”
“놀랍군? 이 개자식!”
쾅!
내 멱살을 잡고 다시 한번 나를 벽으로 밀쳤다.
콰르르!
벽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화를 돋우면, 아예 건물 전체를 부숴버릴 기세.
“이런 식으로 일이 생기면, 내가 너한테 도움을 달라고 애원할 줄 알았나?”
브랜든이 위협적인 손가락질을 하며 물었다.
놈의 힘이라면 저 손가락 하나만으로 내 목숨을 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착각하지 마. 넌 아무것도 아니야. 나한테 뭐라도 뜯어낼 생각이라면 당장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다름 아닌 그의 완고함이었다.
브랜든은 하비처럼 적당한 거짓말로 구슬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논리를 펼쳐서 진정으로 그를 설득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뭐, 역시 너한텐 안 통할 줄 알았어.”
“입 닥쳐. 이제 와서 내 뒤를 핥아봤자 너한텐 아무것도 안 떨어진다. 떨어지는 건 네놈의 목이겠지. 곧 본부에 네놈의 징계 사항이 밝혀지고 클랜원 자격이 박탈당하는 순간 검제의 보호는 더 이상…….”
“그래. 이건 내 함정이야.”
그래서 나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뭐? 지금…….”
“하비가 일을 저지르도록 부추긴 것도 나지. 너희가 상속재산 때문에 분쟁이 있다는 걸 알고서 일부러 그 부분을 건드린 거야.”
“하! 본모습을 드러내는군. 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넌 죽고, 내게서 아무것도 못 받아낸다. 그뿐이야.”
“과연 그럴까?”
난 자신이 있었다.
내가 이리도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날 죽이면, 네 동생은 어떻게 처리할 건데?”
“상관하지 마시지. 내 동생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하비는 이제 너한테 완전히 등을 돌렸어. 걘 너한테서 모든 걸 빼앗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하비는 평생 형에게 짓눌려 억압된 삶을 살아왔다.
겉으로는 우애 좋은 형제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철저한 상하 관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하비는 브랜든에게 모든 걸 양보하면서 자신이 필요한 최소한의 대우만을 바랐지만.
그 최소한의 대우조차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으니, 신뢰 관계가 완전히 깨질 수밖에.
만약 브랜든이 그런 그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깟 약골 녀석이? 뺏을 수 있으면 어디 뺏으라고 해봐. 감히 이 염왕에게 덤빈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거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기 동생을 힘으로 짓누를 생각만 하는 인간이었다.
정작 그 힘으로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허세 그만 부려. 난 다 알고 있어. 하비가 부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거. 넌 그 녀석을 절대 죽일 수 없어. 그리고 그 녀석은 또다시 지금과 같은 일을 저지르겠지.”
“죽이지 못하면 잡아서 가두면 된다. 아무것도 못 하도록 만들면 돼.”
“잡아서 가둬? 그럼 자살하겠지. 그리고 다른 곳에서 부활할 테고.”
“그 지점에 사람을 대기시켜놓으면…….”
“총 10개의 부활 지점을 어떻게 다 찾아낼 건데?”
난 하비의 능력을 알고 있다.
전날 밤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피지기란 명목으로 부활 능력에 대한 것도 캐냈기 때문이다.
“하비는 총 10개의 부활 지점을 언제 어디서든, 전 세계 아무 곳에서나 바꾸고 지정할 수 있어. 지정 조건에는 해당 장소에 직접 가야 한다는 것 외엔 아무런 제약도 없고, 또한 그 위치도 자기 자신만 알 수 있지.”
요컨대, 하비는 사실상 부활이라는 이름의 무한 장소지정 텔레포트 능력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한 군데를 알아내 거기서 대기한다 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그만이고, 그 한군데마저도 곧바로 다른 장소로 바꾸면 끝.
그러니까, 죽지도 않고 잡아서 가둬 놓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비 본인만 아는 전 세계 10 군데의 지점을 한 번에 다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닌 한은 말이다.
“큭…….”
브랜든이 말문이 막힌 채 분한 듯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부들거렸다.
더 이상 숨길 수는 없었다.
그 어마어마한 힘과 권세를 가지고도, 하비만큼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라고.”
난 그렇게 부들거리는 브랜든에게 마지막 떡밥을 던져줬다.
“날 죽이면 그 열 군데의 부활 지점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영원히 없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