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69화
하비는 조심스러운 추적으로 지하 통로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혹시라도 쫓아가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먼 거리를 유지하며 미세하게 남겨진 흔적을 따라왔다.
아예 놓치는 것까지 각오를 하고서 극도의 조심성을 발휘한 것이다.
“이런 곳이 있다니…….”
그 덕에 나 역시 잔뜩 감각을 세우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비의 추적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감각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내 인지능력 밖에서 여기까지 추격해 왔다는 건, 그야말로 행운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난 저 녀석이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막아야 한다.
혹시라도 숨겨진 보상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더욱 낭패가 되기 때문이다.
“이봐.”
난 그 녀석의 뒤에서 불쑥 말을 걸었다.
“읏!”
스릉!
하비는 뒤를 돌면서 검을 뽑아 나에게 겨눴다.
그의 동작은 전과는 다르게 상당히 날쌔졌다.
일단은 ‘검투사 황제 콤모두스’라는 이름의 역사 수호령을 얻어낸 상태이기도 했고, 에테르 조작 스킬로 힘을 끌어올리는 것도 꽤나 익숙해졌기 때문일 터다.
오히려 아서 왕 수호령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더 반응이 빨라진 것 같았다.
그래봐야 나보다는 한 수 아래지만.
“여기서 뭐 하는 거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너야말로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난 그냥 산책이 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에겐 적당히 둘러댔다.
지금은 뭐가 됐든 통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게 최선.
혹여 내 말을 무시하고 억지로 들어가려 한다면 죽이는 것도 선택지로 고려하고 있다.
이 녀석은 어차피 다시 부활할 테니, 뒷감당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산책? 이 수로에 뭔가 볼일이 있어서 찾아온 건 아니고?”
그런데 예상외로 하비 이 녀석은 상당히 깊게 내 정곡을 찔렀다.
그저 무모하고 멍청하기만 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마치 뭔가 아는 듯이 말했다.
‘혹시 패치노트에 관한 걸 알고 있는 건가?’
확실히 놈은 벨그레이브의 수뇌부인 염왕의 친동생이니 그 부분에 대해 들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건 매우 위험한 상황.
이 녀석은 죽여도 부활하고, 그 부활 방식 때문에 입막음을 할 수도 없다.
염왕의 귀에 이 일이 들어간다면 상당히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지……?’
꽈악.
인벤토리에서 꺼낸 큐브를 강하게 움켜쥔다.
뭔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밀어닥쳐오려던 찰나.
“형이 너한테 지분을 준다고 했나?”
‘……응?’
갑자기 그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했다.
“내 팔다리를 잘라놓는 대가로 뭘 받기로 한 거지?”
‘이 녀석…….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비는 내가 자신의 형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믿는 모양이다.
‘팔다리를 잘라놓는’이라는 표현을 보아, 그에게서 전설 수호령을 빼앗은 게 어떤 계략 같은 거라고 생각한 듯한데…….
‘염왕과 가까운 사이가 아닌 건가?’
생각해 보니 아까도 어째서인지 이 녀석이 자신의 형을 보는 눈이 별로 곱지 않았다.
그렇다면 염왕이 우리의 발을 묶어놓으려 했던 것도, 동생에 대한 과보호 조치가 아니라 무언가 적대적인 이유 때문에 그랬다고 볼 수 있고.
하지만.
‘그럼 며칠 전에 이 녀석을 죽인 것에 대해 염왕이 그렇게나 화를 내면서 책임을 물었던 건 뭐지?’
두 사람의 상반된 반응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일단은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대답을 골라야 한다.
“글쎄. 난 네가 무슨 얘길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난 일부러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실제로 염왕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 것이다.
그러자 하비는 더욱 많은 단서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웃기지 마. 다 알고 있어. 형은 네놈이 날 공격했다는 걸 알면서도 널 살려뒀어. 그렇게 대놓고 수상한 일이 벌어졌는데 내가 모를 것 같아?”
‘아하, 그런 거군.’
실제로 난 레아 덕분에 산 거지만, 이 녀석이 그런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그것 때문에 뭔가 오해를 했던 모양이다.
“거기다 넌 항상 내가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움직였지. 그 갈림길에서도, 개미굴에서도, 심지어 지금 여기서도.”
하비가 손가락으로 수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조차도 들어본 적 없는 정보를 안다는 건, 네놈이 수뇌부와 긴밀한 관계라는 증거야.”
요약하자면, 이 녀석은 지금껏 자기가 나에게 당했던 모든 일들이 염왕이라는 거물이 꾸민 함정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그 모든 추측들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그러나 그럴 법도 한 게, 각각의 상황들은 모두 ‘벨그레이브가 패치노트로 미래를 봤다’라는 전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하비 역시 염왕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듯하고.
‘게다가 이 형제는 어떤 이유 때문에 사이가 틀어진 상태. 그렇다면…….’
여기서 난 승부수를 던졌다.
“그래, 네 말이 다 사실이라고 치자.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난…….”
“그냥 솔직하게 말해. 애초에 나한테 이런 소릴 늘어놓은 건 목적이 있기 때문인 거 아냐?”
“…….”
“네 형의 뒤통수를 칠 거면 확실하게 하라고. 그렇게 우물쭈물해서는 그 작자를 절대 못 이기니까.”
내 말을 들은 하비는 씩 웃었다.
* * *
{숨겨진 보상을 발견했습니다.}
{강화 영약을 획득했습니다.}
미로 같은 지하수로에서 길을 찾아 보상이 숨겨져 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안에는 마신 사람의 주 스탯을 증가시켜주는 영약이 들어 있었다.
코르크 마개로 밀봉된 유리병.
난 그것을 얻자마자 곧바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건 뭐지?”
“스탯 증가 물약.”
나는 내 뒤를 따라온 하비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딱히 내용물 자체를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브랜든이 가져오라고 시킨 거야.”
뭐가 됐든 염왕이 시킨 걸로 둘러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 놓고 나 혼자 있을 때 먹으면 된다.
“하, 그렇게나 강하면서 이런 것 하나까지 찾아내서 챙긴다고?”
“그래. 그러니까 이제 돌아가지.”
“뭐? 벌써?”
“아까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했잖아. 얼른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해야지.”
“저 성안으로는 안 들어가는 거냐?”
“그건 내일.”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이 점령지 공략은 절대 하루 안에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 바깥에 있는 각성자들은 요새의 보호막조차 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하수로는 그걸 제거하기 위해 이용해야 하는 공략 루트지만, 아직은 클랜원들 중 이 장소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답을 찾아내든지, 피해를 축적시켜서 저 보호막을 깨부수든지, 어느 쪽이 되었든 시간은 꽤 오래 걸릴 것이다.
“신우 씨!”
시작지점으로 돌아오자, 최윤아와 안드레스가 우리를 맞이했다.
어느새 날은 저물었고, 전투는 점점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다행히 아직 염왕이 돌아오진 않은 것 같았다.
“어이.”
하비는 돌아오자마자 나를 툭 건드렸다.
“나랑 얘기 좀 해.”
난 자연스럽게 그걸 받아들였다.
실은 나야말로 바라던바.
이 녀석에게서 염왕과의 관계에 대해 더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너…….”
그는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간 후 멈춰 섰다.
그러곤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꿍꿍이가 뭐지?”
“나?”
“그래. 왜 날 도와주는 거냐?”
하비는 그 부분에 대해서 의심이 들었던 모양이다.
염왕의 편에 섰던 내가, 별다른 설득도 듣기 전에 선뜻 먼저 손을 내밀었으니 말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야…… 나한테 득이 될 것 같아서 그러지.”
“형 같은 권력자보다 나한테 붙는 게?”
“너도 알잖아. 그 인간 성격 지랄 맞은 거.”
사실 난 염왕을 얼마 전에 처음 봤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것처럼 말했다.
뭐, 굳이 오래 만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비는 잠시 멈칫하고선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내가 그 사람 라인을 타고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역시 그게 아닐 것 같더라고.”
“토사구팽을 걱정하는 거야?”
“그렇지. 보통 더러운 일을 해낸 사냥개는 증거 인멸을 위해 함께 버려지게 마련이잖아. 나도 그 꼴 당하지 말란 법 없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염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뭔가가 있지도 않아. 그런데 때마침 네가 내 앞에 나타나 준 거지.”
“하, 그래서 그 살길로 선택한 게 나다……?”
“맞아. 너무 압도적인 염왕보다는, 무력적으로는 내 아래인 널 돕는 게 내 입장에선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나은 거니까.”
하비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염왕에게 견제를 받아야 할 위치에 있다.
그 말인즉, 그만큼 강력한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뜻.
하지만 동시에 무력은 나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
이를 삼각 구도로 생각해 보자면, 압도적으로 강한 세력을 상대적으로 약한 두 세력이 힘을 합쳐 상대하자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은 합리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막상 실제론 내가 그 내막을 전혀 모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큭큭큭……. 집안싸움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자가 끼게 될 줄이야…….”
하비는 허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이 형제간 대립의 실체를 저 스스로 술술 불었다.
“그래, 좋아. 그럼 이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걸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고.”
“내가 원하는 것?”
“그래. 돈? 아니면 내가 얻게 될 회사의 지분? 네 도움으로 상속권만 인정받으면 원하는 만큼 해줄 수 있어.”
난 이제 이들이 부모의 재산 상속을 놓고 갈등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 *
한 번 말이 통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숨길 것은 없었다.
하비는 나에게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해 줬다.
형제 중 형인 염왕, 그러니까 브랜든은 어렸을 때부터 모든 면에서 우수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형제끼리 비교당하는 설움도 겪어야만 했고.
심지어 시스템이 생겼을 때에도 브랜든은 동생보다 먼저 각성자가 되어 염왕이라는 최강자의 위치까지 순식간에 올라갔다고 한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해 돈을 버는 부모님 회사가, 각성자 관련 사업에 투자해서 떼돈을 번 것도 이 무렵.
그렇다 보니 이미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형과-
이제 겨우 각성자가 되어 걸음마를 떼고 있는 동생 사이엔 굉장한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집안에서는 거물이 되어버린 염왕이 회사를 관리하는 게 맞다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어졌었다고 한다.
때마침 회사도 단순 투자에서 그치지 않고 실물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중이었고.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아주 큰 변수가 발생해 버렸다.
바로 불사 능력.
각성자로서의 힘의 격차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엄청난 이능력이, 하비에게서 발현된 것이다.
하지만 하비는 오히려 그로 인해 재산 상속에 대한 욕심은 일찌감치 버렸다고 했다.
어차피 자신은 영원히 살 테고, 형은 유한한 삶을 살 테니, 돈은 나중에 가져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단지 그가 바란 것은 형만큼 강해질 수 있는 힘.
자신은 그 힘만 가지면, 나머지는 브랜든이 다 가져가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로 인해 진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염왕이 자신을 기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하비는 형이 먼저 약속을 깼으니 자신도 약속을 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재산 상속 분쟁의 불씨가 피워졌다.
“브랜든.”
이 이야기를 들은 난, 이제 뭘 해야 할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곧장 전투를 끝내고 돌아온 염왕을 찾아갔다.
“뭐야?”
그는 평지에 펼쳐진 군용 텐트에서 쉬고 있었다.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네 멋대로 찾아와?”
날 보자마자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하지만 난 아랑곳 않고 내가 할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시비부터 걸 생각만 하지 말고 대화할 자세를 가지려고 해보는 게 어떨까?”
“뭐?”
“말조심해!”
주변의 다른 고위 각성자들이 내게 경고했다.
염왕은 그들을 제지했다. 그리고 대신 자신이 앞으로 나섰다.
“대화? 하, 그래. 나한테 무슨 용건이 있나 보지?”
“있지.”
“어디 한번 말해봐. 되도 않는 이야기면 넌 여기서…….”
“내가 지금 너한테 있어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