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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67화 (67/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67화

하루 전.

“예. 로마노프 사의 기술자들 전부 우리 쪽으로 데려오세요.”

늑대 가면과 염왕이라는 칭호로 유명한 짧은 금발의 영국인, 브랜든은 클랜의 디트로이트 지부에 와 있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친동생 하비를 보기 위해서였다.

“뭐 그게 원래 우리가 해오던 일 아닙니까. 미래의 유망한 업종에 돈을 투자하는 것. 단지 주식이 현물로 바뀌었을 뿐이죠.”

그는 휴대폰으로 회사 관계자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업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경제가 좀 다르게 흘러갈 겁니다. 힘과 무기를 가진 자가 곧 부와 권력을 차지하는 방향으로요. 근본으로의 회귀랄까. 네, 맞아요. 예전 왕과 귀족들이 살던 시대로 돌아가는 셈이죠.”

브랜든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아버님 허락이요? 베에. 걱정하지 마세요. 그 돈이 곧 제 돈이니까. 애초에 저한테 회사의 전권을 위임하시기도 했고. ……하비는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그러다 잠시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했으나.

“걘 어차피 회사나 재산 같은 건 모르는 단순한 녀석이거든요. ……네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네.”

다시 환하게 웃으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똑똑.

그 직후,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나야, 형.”

하비의 목소리.

브랜든은 곧바로 문을 열고 자신의 동생을 맞이했다.

“아아, 내 동생. 오랜만이다!”

그가 하비를 껴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만난 하나밖에 없는 형제에게 반가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막상 하비는 자신의 형을 보고서도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브랜든은 그런 그를 보면서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일단 안부를 묻는 게 우선.

“그래, 그동안 잘 지냈고? 무슨 일은 없었지?”

“……응.”

“육성 프로그램은 어때? 어려운 건 없어?”

“…….”

하지만 그럼에도 동생의 반응은 계속 시큰둥했다.

적당히 모른 척하고 넘어가려야 넘어갈 수 없는 상황.

“……무슨 일 있구나? 그렇지?”

브랜든은 그와 앉아서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팔을 끌어당겨 의자 쪽으로 데려가려 했다.

그런데.

툭.

“형.”

하비가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얼굴엔 적개심이 드러나 있었다.

“……하비?”

“왜 얘기 안 했어?”

“뭘?”

“기껏 형에게 모든 걸 믿고 맡겼더니, 나한테 돌아오는 게 이거야?”

“하비, 대체 난 네가 무슨 소릴 하는 건지…….”

“히든 퀘스트들의 공략법. 원래 형이 얻었던 것보다 더 성능 낮은 걸 얻게 만들었잖아.”

하비는 지부로 복귀한 후, 유신우가 했던 말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잘 생각해 봐. ‘이 퀘스트의 초창기에 들어온 각성자’들이 얻어 간 보상보다, 지금 클랜이 우리에게 얻도록 유도한 보상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게, 너한테 무슨 의미인지.

-과연 네가 말한 그 ‘귀족’들이 진짜 널 같은 귀족으로 여기고 있기는 한지.

그 비온데타라는 인간 거미 형태의 악마도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유신우는 그 악마의 말을 듣고 공략법을 어기는 클리어 루트를 찾아냈고.

그 결과, 원래 얻기로 되어 있던 ‘에테르 조작’에 ‘증폭’ 기능이 추가된 더 좋은 스킬을 얻었다.

저 말대로라면, 형인 브랜든은 예전에 그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 좋은 스킬을 얻었으면서, 자신에게는 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스킬을 얻게 한 것이다.

다른 일반 클랜원들이야 약하게 성장시키는 게 당연하지만, 수뇌부의 친족인 자신마저 거기에 끼워 넣었다.

말하자면 귀족인 자신을 천한 아랫것들과 같은 취급을 한 것이다.

“그걸 네가 어떻게…….”

저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니 숨길 것도 없었다.

브랜든은 곧바로 하비의 주장이 옳음을 시인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왜 나까지 그따위 취급을 한 거냐고!”

“하비, 그건…….”

“그건 뭐?”

“…….”

그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하비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잔뜩 상기된 얼굴로 그를 몰아붙였다.

“내가 제일 화나는 게 뭔지 알아? 형이 날 속였다는 사실을, 내게 있어서 제일 최악의 적한테 들었다는 거야. 그것도 날 죽인 놈에게!”

“……뭐라고?”

“안 그래도 요즘 자꾸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서 짜증 나는데, 내가 저런 천민들과 똑같은 취급까지 받아야 돼? 거기다 퀘스트 보상 스킬은 다시 얻지도 못해!”

브랜든은 그런 그의 호소를 듣고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해 보이더니-

“……널 죽였다는 그놈. 이름이 뭐지?”

하비가 그 사실을 알게 한 원흉이 누구인지 물었다.

* * *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

염왕이 내 멱살을 붙잡고 매섭게 밀어붙였다.

난 거기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동생을 건드렸다니,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난 오늘 당신을 처음 봤는데, 동생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아나? 애초에 당신이 누군지도 말을 안 했잖아.”

이미 놈이 염왕이라는 것과 동생이 하비라는 것까지 다 눈치챘지만, 난 계속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비. 그놈이 내 동생이다.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겠나?”

“아아, 하비. 나랑 같은 팀원이었지. 그래서?”

“모른 척할 셈이냐?”

하비 녀석, 내가 자신을 죽였다는 말을 한 것 같다.

날 엿 먹이고 싶으면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라고 했더니 정말로 그렇게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정말 내가 곤란해질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좀 더 알아듣게 얘기해 봐. 내가 하비를 건드렸다니? 그놈이 나랑 사이가 안 좋은 건 맞지만, 직접 건드린 적은 없어.”

“난 그 녀석의 형이다. 그놈이 내게 직접 말했어. 발뺌할 생각은 마시지.”

“대체 뭘 말했다는 건지…….”

“넌 내 동생을 죽였어.”

염왕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보였다.

이 집안 형제는 우애가 그렇게나 좋은 모양이다.

물론 형제가 살해당했는데 저렇게 화내지 않을 사람이 세상이 어디 있겠냐마는.

중요한 건, 그걸 정말 ‘살해’라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하하,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내가 한국인이라서 영어를 못 알아듣는 건가? 요즘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죽인다’는 말이 다른 뜻으로 쓰이나 보지?”

“난 영국인이다. 그리고…… 넌 확실히 하비를 죽였어. 클랜의 규칙에 따라, 아니, 이곳 미시간주 법률에 따라 넌 특수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해.”

각성자가 이능력을 사용해 살인을 저지르면 극형에 처한다.

그건 아마, 지금 시대에서 세계 어딜 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만큼 그 힘을 견제받아야 한다는 논리로 말이다.

그런 강력한 처벌이 실제로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사람들을 안심시키기엔 충분했다.

어쨌든 지금, 염왕은 그 법을 나에게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하아. 당신, 자꾸 나더러 하비를 죽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말이야.”

그런 그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해줬다.

“……애초에 하비는 지금 살아 있다고. 그게 아니면 내가 본 건 유령이라도 되는 건가?”

“그런 식으로 넘어갈 생각하지 마라. 난 하비가 불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본인이 너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 본인이.”

“푸흡.”

이 상황이 너무도 우스워서, 난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환상적이군. ‘살인 사건의 피해자 증언’이라! 이런 아이러니한 단어 조합이 또 있을까?”

“증거가 없다면서 오리발을 내미는 거냐? 네놈이 움직인 동선은 CCTV로 전부…….”

“아니, 증거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는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난 그걸 깨우쳐 주었다.

“네 말이 다 사실이라고 치자. 하비가 진짜 그 ‘불사의 능력’이란 걸 가지고 있고, 내가 그 녀석을 죽였다고 치자. 그럼 그게 살인인가? 내가 목을 베었든, 사지를 분해했든, 뭔 짓을 했든 피해자가 멀쩡히 살아서 활보하고 있다. 그럼 그게 살인인가?”

“……뭐?”

“이건 뭐, 시신 없는 살인 사건도 아니고, 피해자가 살아 있는 살인 사건이네? 살인 미수나 폭력이라고도 못 해. 왜냐면 하비의 몸에는 그 어떤 흉터도 남아 있지 않거든.”

“이 자식…….”

내게 논리로 완전히 짓밟힌 염왕은 눈에서 불을 뿜었다.

화륵.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큭.”

그 작은 불씨가 튀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익혀버릴 것만 같은 고온의 기류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난 널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네가 계속 그따위로 건방지게 말한다면.”

이 인간,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사고방식이 하비와 똑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급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듯한 뉘앙스.

다만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하비는 그런 사고방식에 비해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가 한참 못 미치는 데 비해-

염왕은 그런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지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지껄여봐.”

놈은 진심으로 날 죽일 생각인 모양이다.

방 안의 온도가 계속해서 상승한다.

이대로 가다간 건물 전체가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별로 무섭지 않았다.

난 전혀 기죽지 않고 받아쳤다.

“나한테 이러지 않는 게 좋을걸. 큭큭큭.”

“……미쳤군. 지금 당장 널…….”

염왕이 나를 죽이기 위해 손을 내밀려던 순간.

덜컥!

“브랜든 님!”

급하게 문이 열리고 잭슨이 뛰어 들어왔다.

“멈추십시오!”

“이것들이 단체로……. 네놈까지 나한테 대드는 거냐?”

염왕은 살기등등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잭슨은 그 강한 위협에 침을 꿀꺽 삼켰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할 말은 해야만 했다.

그가 염왕에게 가까이 다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신화 사냥꾼의 본능 특성을 가지고 있는 나에겐, 집중하면 아주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소리였다.

“브랜든 님, 이 사람은…….”

하비가 그렇게 날뛸 수 있었던 건, 배후에 염왕이라는 강력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하비를 대놓고 던전에 데려가서 죽이고-

클랜원들이 스킬을 얻지 못하는 술수를 쓰고-

그러고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배후가 있을 터.

“검제가 선택한 각성자입니다.”

난 애초부터 레아, 그러니까 검제가 직접 스카우트한 클랜원이었다.

* * *

우린 며칠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지부에서 계속 에테르 조작 스킬 사용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했다.

나를 탐탁잖게 여기는 염왕이 어디 가지도 않고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게 상당히 거슬렸지만-

그래도 지난번에 있었던 일 이후로 딱히 날 건드리거나 하진 않았다.

역시, 제아무리 염왕이라도 검제의 의사를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무렵.

“……알겠습니다. 어차피 실전 감각도 익힐 필요가 있으니, 나쁠 건 없겠죠.”

클랜원들이 에테르 조작 감각 강화 훈련을 하고 있는 장소에, 잭슨이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으면서 들어왔다.

그는 곧장 같이 들어온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더니, 우리에게 전달사항이 있다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새로운 변칙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지난번 제가 설명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포탈이 발견되었습니다.”

“포탈?”

“그래서 클랜 차원에서 그곳에 무력을 투입할 작정인데, 아직 훈련생인 여러분에게 거기에 참여할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훈련생이었나.’

저런 말을 들으니 뭔가 군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말의 맥락으로 보아, 지금까지와는 달리 벨그레이브의 강자들이 투입되는 상당한 고난이도의 던전에 가는 것 같았다.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단순히 경험을 쌓는 목적이기 때문에, 육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가고자 하는 분만 지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많이 위험하나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너 나 할 것 없이 호기롭게 달려들 것 같던 각성자들이, 그 한마디에 조용해졌다.

‘잭슨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장난이 아닌 모양이군.’

솔직히 나도 같은 생각이다.

굳이 별 이득도 없을 것 같은 곳에 목숨을 거는 무모한 짓을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지금 말하는 던전이 어떤 곳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런데 그 새로운 변칙 현상이란 게 뭡니까? 게이트도 아니고, 포탈도 아니라는 건가요?”

누군가가 물었다.

그리고 잭슨이 답했다.

“아직은 정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지만, 클랜 간의 전쟁으로 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는 던전……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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