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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65화 (65/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65화

사실 퀘스트 등장인물들의 배경 설정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클리어를 하고 스킬만 얻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필요 없는 정보들은 몰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저 마수 거미가 무슨 말을 하건, 인격을 가지고 있든지 말든지 우린 문답무용으로 죽여 버리면 된다.

“우리가 왜 네 말을 믿어줘야 하지?”

“그건…….”

놀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르웬을 보호하는 것까지는 평판을 위해서라고 치더라도, 보스 몬스터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어줄 이유는 없다.

패치노트를 가진 벨그레이브의 공략에는, 여기서 저 보스를 죽이고 ‘에테르 조작’ 스킬을 얻는 것 외에 더 나은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비정해져야 할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우린 같은 인간이잖아! 그러니까……!”

“거짓말. 넌 인간이 아니라 악마야.”

{중급 악마, 비온데타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보스전이 시작됩니다.}

저것이 무슨 말을 하건, 그건 악마의 달콤한 거짓말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저 녀석은 그저 악마다.

저 녀석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봐야 일이 더 귀찮아지기만 할 뿐인 것이다.

“이……!”

파티원들이 놀랐던 건, 저것이 지금까지 만났던 악마들과는 달리 인간처럼 목소리를 사용해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파티원들도 이런저런 퀘스트를 진행하며 악마를 만나봤을 텐데, 그것들은 모두 다 각성자의 뇌에 직접 음성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말을 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저게 악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뭐가 어찌 됐든, 우리 눈앞엔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이 천명했다.

저건 누가 뭐라 해도 ‘악마 비온데타’일 뿐이라고.

그러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꽈아악.

난 다시 페일노트의 시위를 당겼다.

누런 마비독이 발라진 화살촉이 빛난다.

“아빠! 안 돼! 그러지 마요!”

아르웬이 뒤에서 절규하지만, 난 아랑곳 않고 활을 쏜다.

피잉!

“이이이익!”

날아드는 화살을 보고, 비온데타는 긴 거미 다리를 이용해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화살이 그 아래로 쉭 하고 지나간다.

“난 당신들과 싸울 생각이……! 커헉!”

퍽.

하지만 페일노트(Fail-Not)는 그 이름 그대로 절대 명중에 실패하지 않는 활.

화살은 그대로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바꿔 허공에 떠오른 비온데타의 몸통에 명중했다.

‘약점은 화염.’

특수한 약물을 써야만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만 충족하면, 그 뒤는 아주 쉽다.

화염 속성의 공격을 있는 힘을 다해 쏟아붓기만 하면 된다.

‘업화의 구.’

그리고 난 업화의 구라는 권능을 통해 모든 공격에 화염 속성을 부여할 수 있다.

‘폭류인 앵거바딜.’

때마침 페일노트 사격으로 인해 포격파동이 축적되었고, 난 그걸 활용해 앵거바딜의 발동 기술을 사용했다.

콰아아아!

물 속성의 앵거바딜이 검은 화염을 머금어, 칼날에서 마치 화염방사기처럼 불꽃을 분사했다.

“끄아아아아악!”

마비독에 의해 한순간 움직임을 봉쇄당한 비온데타는 허공에서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무방비 상태로 내 공격을 얻어맞아야만 했다.

“화염이 약점이야! 화염 속성으로 공격해!”

그리고 다른 파티원들도 그 적에게 자신들이 행할 수 있는 화염 공격을 퍼부었다.

“아빠!”

아르웬이 더욱 크게 울부짖었지만, 여기선 매정해져야 한다.

“으아아아!”

파앙!

‘역시.’

아니나 다를까,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던 비온데타는 함성과 함께 마나 파장을 뿜어 우리의 공격을 떨쳐냈다.

그러고는 거미줄을 쏘아 올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놓치지 않는다.’

난 다시 페일노트를 소환해 화살을 쐈다.

도망가는 적에게는 원거리 공격으로 응수.

불타는 화살은 뱀처럼 구불거리는 궤적을 그리며 비온데타를 정확하게 추격했다.

화르륵!

“큭!”

다시금 검은 불꽃에 당한 악마는 불을 떨쳐내는 대신, 거미줄을 뿜어 자기 자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앵거바딜을 소환해 고치처럼 변한 그놈을 향해 화염 폭류를 쏟아냈으나.

우웅. 우웅.

고치 표면을 코팅하듯 감싼 은은한 빛이 내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촤악!

그 빛은 고치를 찢고 다시금 튀어나온 비온데타의 몸에도 남아 있었다.

‘마비독에 당하기 전으로 돌아간 건가.’

저런 식으로 방어력을 재생시키며 끊임없이 자신을 무적 상태로 되돌리는 모양이다.

‘그래도 아직 마비독이 4병이나 남아 있다.’

하지만 내겐 공격 기회가 4번 더 남아 있고, 지금 비온데타는 방금 전의 공격으로 인해 거의 빈사 상태다.

다리 몇 개는 재가 되어 뒤뚱거리며 걸어야 했으며, 몸통 위에 붙은 인간의 상반신은 화상을 입어 그을음과 피가 엉겨 붙어 있다.

“하아…… 하아…….”

무엇보다 녀석의 상태 자체가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이다음 공격으로 끝낸다.’

난 다시 페일 노트를 꺼내, 화살촉에 마비독을 발랐다.

이걸 맞추지 못할 일은 없으니, 다시 한번 아까와 같은 일방적 공격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공략 방법이 파훼된 이상, 이 보스전의 승리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꽈아악.

시위를 당긴다.

비온데타의 거대한 몸통을 노린다.

“잠깐…… 기다려…….”

더 이상 들을 필요 없는…….

“앙그라 마이뉴. 듣고 있다면…….”

……비굴한 호소라고 생각했으나, 그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난 멈칫했다.

“내 말을 들어줘.”

놈은 내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

* * *

“그래. 맞아……. 난 악마야.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악마. 그리고 이 어두운 개미굴에서 계속 살면서 몇 번이고 퀘스트를 반복하며 각성자들에게 맞서는…… 악마.”

비온데타는 갑자기 이곳 퀘스트 차원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파티원들이 술렁거렸다.

“저 녀석…….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퀘스트라니. 마물이 그런 것에 대해 스스로 인지를 하고 있다고?”

물론 난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 처음으로 악마와 마주쳤던 그때.

염소 인간 모습을 한 바포메트의 미니언도 저런 식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치 피에 굶주린 것처럼, 몇 번이고 찾아오는 각성자들을 상대하며 즐기는 검투사 같은 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난 알고 있어. 앙그라 마이뉴……. 너에게 당하면 이 반복이 끝난다는 걸.”

그러나 이 녀석은 그런 류의 악마가 아닌 것 같았다.

“제발 그것만은…… 그것만은 안 돼…….”

진심으로 살고 싶어 하는 눈치.

물론 나에게 당한 악마들은 모두 내 안의 아흐리만에게 잡아먹혀 시스템을 교란하는 버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노예가 되길 바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마는.

지금 저 녀석은 그 이상으로, 생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해 보인다.

아니, 집착으로 보일 정도였다.

“날 살려준다면, 너희가 원하는 모든 걸 하겠어! 제발 부탁이야! 그러니까…….”

다만 그것이 그의 운명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뿐.

“미안하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가장 원하는 건 너의 죽음이야.”

벨그레이브는 패치노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패치노트에서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공략법을 알아냈다.

그 공략법에 따라, 지금 이 퀘스트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보상은 비온데타를 죽이고 스킬을 얻는 것.

우린 그걸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설령 나 때문에 저 녀석이 영구적인 소멸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일개 악마의 구질구질한 뒷사정 때문에 내가 스킬을 포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과연 그게 최선일까?

‘뭐?’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아흐리만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날렸다.

그와 동시에 비온데타가 다시금 나에게 사정했다.

“자, 잠깐만! 이 퀘스트는…… 날 죽이지 않고도 클리어할 수 있어!”

그건 여전히 내게는 별로 와 닿지 않는 말이었으나.

그다음으로 내뱉은 이야기가 합쳐지자, 그의 목숨 구걸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예전 이곳이 처음 생겨났을 때, 여기 들어온 사람들은 다 그 방식으로 클리어했어!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초창기에 들어온 각성자들이?’

벨그레이브는 패치노트를 통해 이 던전이 형성되기 전부터 이곳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럼 당연히 이곳 개미굴 퀘스트가 등장한 초창기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벨그레이브의 수뇌부들이라는 뜻.

‘그런 그들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퀘스트를 클리어했다고?’

-큭큭. 너, 저 악마 녀석에게 감사해야겠다.

난 그제야 아흐리만이 던진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벨그레이브.

그들은 클랜원들에게 각 던전과 퀘스트에서 최선의 클리어 루트를 가르쳐주고 있는 게 아니었다.

검제를 포함해 이 퀘스트를 선행했던 강자들보다 조금씩, 한 단계씩 수준 낮은 보상을 얻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함으로써.

만에 하나라도 자신들이 제공한 정보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미래에 자신들을 추월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한 단계씩 떨어지는 존재’로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 * *

비온데타의 발언으로 밝혀졌다.

퀘스트에서 최고의 보상을 얻기 위한 최선의 시나리오는, 그를 처치하는 게 아니라 동굴 엘프들의 진실을 밝혀내고 범인들을 단죄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배신한 건 내가 아니라 동굴 엘프들이야. 그놈들은 나와 에린을 질투했어. 동족의 여자가 인간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이려 든 거지.”

실상은 이러했다.

동굴 엘프와 잘 지내던 인간 학자가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자기 가족까지 배신하고 뒤통수를 친 게 아니라.

종족우월주의적인 사고방식에 갇힌 엘프들이 비온데타를 시기해서 죽이려고 한 것이다.

마수들에게 공격받아 안쪽 공동을 식인식물들에게 빼앗긴 것 또한 엘프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

마수들을 제어하기 위한 약물을 만들기 위해 실험을 하겠답시고 무모한 짓을 하다 무리를 불러들이는 사고를 친 것이다.

결국, 악마인 비온데타는 전적으로 비열한 동굴 엘프들에 의한 피해자였다.

“넌 악마였는데, 왜 그냥 당하고만 있었던 거지? 지금처럼 각성자들에게 맞설 정도의 힘이라면 그 귀쟁이들을 몰살시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물론 갓 태어났을 때의 힘이라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난 인간의 모습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버려서 본래의 힘을 잃고 말았어. 지금 가진 힘은 오직 마수 우두머리에게 강제로 결합당한 결과고.”

그가 거미와 합쳐진 자신의 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그런 그에게 반문했다.

“그렇게 당하는 일을 매 퀘스트가 진행될 때마다 반복한다고? 넌 그걸 인식하고 있으면서?”

이 세상이 각성자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다면 모를까,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회차가 반복되었을 때는 당연히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다른 행동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에린을 사랑하니까.”

“뭐?”

“그렇게 해야만 에린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런 수모를 또다시 겪는다 하더라도, 난 이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하겠지. 영원히 똑같은 선택을 반복할 거야. 그래도 후회는 없어.”

‘단단히 미쳤군.’

악마 주제에 사랑이라니.

뜻밖의 동기에 난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가 있음에도 이 안의 세상은 정해진 운명대로 흘러가는 건가.’

그 실소는 다시, 시스템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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