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58화
벨그레이브는 이전 5년간 다이아 경매의 낙찰품인 패치노트를 독점한 그룹이었다.
즉, 초창기에 등장한 수많은 요소들의 정보 대다수를 이들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최상급 무기 스킬, 최상급 마법 스킬, 최상급 속성 친화력 강화, 이동 스킬, 에테르 조작 스킬……. 이게 다 이놈들이 감추고 있던 정보라니.’
난 그 방대한 양과 높은 질에 질려버렸다.
하긴, 지금 내가 얻은 패치노트에만 해도 상당한 수준의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현재의 내가 얻기에는 모두 다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부분이 아쉬울 뿐.
바꿔 말하면, 지금 내가 가진 패치노트의 정보를 이용할 수준이 되기까지는 벨그레이브가 독점한 초창기 정보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클랜원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벨그레이브의 클랜원이 되겠다고 한 게 신의 한 수였어.’
원래 목적은 미래의 가장 큰 적이 될 이들을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위협의 징후를 감시하며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어 갈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신우 씨!”
아무튼 일을 마치고 돌아온 벨그레이브의 디트로이트 지부에는 다른 팀에 배속되었던 최윤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오늘 어떠셨어요?”
그러더니 별 의미도 없는 물음을 던졌다.
“뭐, 그냥 그랬습니다.”
“아, 그래요? 전 별로……. 아니, 저도 그냥 그랬어요. 하하.”
난 처음엔 그게 뭐가 어떻냐는 뜻인 줄 몰랐으나, 표정을 보고는 금세 알아차렸다.
지금 그녀는 굉장히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걸 피하기 위해 나에게 억지로 말을 건 것.
그리고 그 난처한 상황을 만든 원인은, 그녀 뒤로 따라오는 어떤 사람이었다.
“윤아, 네 친구야?”
아직 쌀쌀한 4월의 디트로이트 날씨가 무색하게, 반바지에 반팔 셔츠를 입은 키 크고 마른 백인 남자.
그가 이쪽으로 다가오면서 능글맞은 미소를 짓더니 최윤아의 어깨에 팔을 얹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재빨리 내게 팔짱을 끼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죄송해요. 잠시만.”
갈 곳 잃은 남자의 손이 무안한 듯 잠시 멈췄다가, 자기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는 나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런 건가.’
나는 단박에 상황을 파악했다.
저 자신감 넘치는 태도의 남자가, 최윤아에게 다짜고짜 손부터 들이밀었던 모양이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그게 별로 달갑지 않았던 듯하고.
“남자친구?”
그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난 일단 상황을 지켜봤다.
최윤아가 어떻게 나올지.
“……네! 맞아요.”
그녀가 내게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못내 그런 대답을 내뱉었다.
결국 이렇게 되었다.
난 왠지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반갑다. 난 하비.”
자신을 하비라 소개한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의 표정은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다.
“신우.”
꽈악.
아니나 다를까, 악수에 응하자마자 손을 과할 정도로 강하게 부여잡는다.
물론 힘이라면 나도 밀리지 않기에, 지지 않고 맞대응했다.
‘뭐야, 꽤 세잖아?’
그런데 의외의 악력에 조금 놀랐다.
적당히 받아주기만 하는 정도를 생각했으나, 나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왔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는지, 이를 악무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놈의 머리 위에 범상치 않은 수호령 이름이 눈에 띄었다.
{수호령: 기사왕 아서 펜드래건(전설)}
지금까진 별생각이 없었는데 그걸 보니 퍼뜩 정신이 든다.
‘저건…… 그 엑스칼리버의 아서 왕?’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생각은 취소.
갑자기 상황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패치노트에서 봤던 내용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건: 열쇠검 엑스칼리버…….}
어쩌면 엄청난 보상을 얻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를 수호령.
그걸 저 녀석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난 한껏 놈의 도발에 응했다.
시비를 건 것은 내가 아니라 저쪽이다.
여기서 무슨 일이 터져도 이건 내 잘못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꽈아아악.
그렇게 분위기가 점점 더 과열되어가던 도중.
“저기.”
최윤아가 끼어들어 이 힘겨루기를 멈췄다.
그녀가 손으로 우리 둘 사이를 떼어 놓으며 애써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 내일을 위해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래? 난 좀 더 너에 대해 알고 싶은데 말이야.”
하비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받아쳤다.
난 그런 그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윤아는 나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건 다음으로 미루는 게 어때?”
“마, 맞아요.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그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다음에 봐.”
아무리 막무가내라도 당사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는 일.
하비는 곧장 뒤돌아 우릴 떠났다.
그의 뒷모습에서 분함이 느껴졌다.
* * *
“죄송해요.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최윤아는 나와 단둘이 있게 되자마자 곧바로 방금 일에 대해 사과했다.
“오늘 저랑 같은 팀으로 움직였던 사람인데, 자꾸 부담스럽게 행동해서……. 신우 씨한테 폐를 끼쳤네요. 죄송해요.”
그녀는 나를 휘말리게 한 데에 관해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물론 난 이번 일에 대해 딱히 화가 나진 않았다.
‘기사왕 아서 펜드래건.’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까.
-큭큭큭. 네놈, 발칙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아흐리만은 내 속마음을 읽은 것 같다.
상당히 귀중한 수호령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기대감.
그리고 그걸 이용해 패치노트의 ‘그 내용’을 실현시키려는 내 계획.
‘오해하지 말라고. 난 어디까지나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을 뿐이야.’
-싸움을 걸어오게 만들려는 건 아니고?
‘조금 부추길 수는 있겠지.’
-사악한 놈. 큭큭큭.
악마에게서 사악하다는 평을 들었으니 이건 칭찬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최윤아는 그런 내 속내도 모르고 계속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도움이 필요하면 저한테 언제든지 말하세요.”
그래서 난 그녀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했다.
하비 그놈이 이걸 보고 어떤 얼굴을 할지 눈에 선하다.
“고, 고마워요.”
갑작스레 전향적으로 변한 내 태도에 최윤아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럼, 내일 또 보죠.”
난 그녀에게 적당히 인사하고 숙소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붙잡았다.
“저기…….”
“네?”
“혹시 제가 그 사람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무 일이 커지지 않도록 제가 노력할게요. 아니, 그러니까…… 음. 그게, 저한테 마음 크게 쓰시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에요.”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내 속내를 파악하기라도 한 걸까.
그녀는 이리저리 빙 돌려 말하긴 했지만, 결국 ‘직접적인 충돌은 일으키지 말아달라’는 의미의 부탁을 했다.
물론 최윤아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놈이 덤벼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저렇게 말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건 저도 장담은 못 하겠는데요.”
“신우 씨…….”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난 그걸 직접적으로 물었다.
혹시 약점이라도 잡힌 게 아닐까.
“실은 그 사람…… 추종자들이 엄청 많아요. 벨그레이브 내부에도 연줄이 있는 것 같고.”
“엥?”
“얼마 전에 클랜에서 지원을 받아 엄청난 수호령을 재소환해 냈다…… 뭐 그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 수호령이 바로 아서 왕이겠지.
한데 근력으로 보아 그는 절대 최근에 각성자가 된 사람은 아니고, 이미 이전부터 상당한 성장을 해놓았던 인물이라는 뜻인데.
그런 그가 벨그레이브의 지원을 받아 아서 왕을 재소환해 냈다?
그 말은, 원래 이미 전설 수호령을 가지고 있던 자가 ‘더 나은 전설 수호령’인 아서 왕을 뽑기 위해 재소환을 돌렸다는 것이다.
0.05%의 확률을 뚫고 나오는 전설 수호령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서 말이다.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야만 얻을 수 있는 양의 다이아……. 그걸 그놈 한 사람에게 몰아줬다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꽤나 거물을 건드린 것 같다.
뒷배가 대단하거나, 아니면 그만의 특별한 뭔가가 있거나.
어느 쪽이 됐든, 시비가 붙으면 상당히 골치 아플 법한 상대에게 눈도장을 찍고 만 것이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윤아 씨.”
“아니에요. 저 때문에 괜히 이런 일을 겪게 만든 것 같아서 죄송해요. 다음에 하비 보면 제가 잘 얘기할게요.”
난 최윤아와 인사를 나눈 후 숙소로 돌아갔다.
도중에 아흐리만이 말을 걸어왔다.
-이봐.
‘왜?’
-그래도, 그놈을 가만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
‘문제 일으키지 않게 조심해야지. 난 안 그래도 벨그레이브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패치노트의 소유자니까.’
-어엉? 그럼 엑스칼리버를 포기하겠다고? 네놈, 너무 쫄보가 된 거 아닌…….
‘누가 포기하겠다고 했나? 조심하겠다고 했지.’
-응?
‘문제 일으키지 않는 거랑 사람 하나 쓱싹 하는 건 다른 거야. 알겠어?’
-너…….
‘뭐? 왜?’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크하하하하하!
* * *
초급 속성 친화력 강화 스킬을 얻은 후, 육성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약 이틀간 지부에서 해당 스킬을 중급 단계로 높이기 위한 ‘수련’을 행했다.
그 수련이란, 다양한 속성의 공격 유형을 번갈아 가며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쉽게 말해, ‘여러 가지 무기로 맞아보기’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숙련도를 높이는 방법이라나.
아무튼 그렇게 속성 친화력 강화 스킬이 중급에 도달한 순간, 나에겐 전투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
<중급 속성 친화력 강화>
-(패시브 스킬) 다른 속성에 대한 거부 반응이 사라집니다.
-습득한 스킬과 권능들의 잠재 속성이 50%까지 활성화됩니다.
───
각성자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수호령과 적합한 속성이 정해져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당연히 암흑이 주속성이고.
그 외에 화염 속성도 상태창에 표기는 되어 있지 않지만 적합 속성에 포함된다.
덕분에 업화의 구와 갈라틴, 루인 등의 화염, 암흑 속성 기술들은 기능이 제대로 발현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기술들은 모두 아무 속성이 부여되지 않고 사용되었다.
분명 그 원주인인 수호령들에게도 제각기 주어진 속성이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게 바로 ‘잠재 속성’이다.
자기 적합 속성과 맞지 않으면 스킬이나 권능을 사용해도 발현되지 않는 속성.
그걸 이번에 중급 친화력 강화 스킬의 획득으로 50%까지 개방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난 엄청나게 많은 선택지를 얻었다.
그리고 그만큼 강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걸 실전에서 사용해 보기 전까지는.
‘필중의 활 페일노트.’
손에 쥔 장궁에서 마법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피잉!
페일노트의 잠재 속성은 금속.
거기에 업화의 구 효과로 검은 화염이 덧씌워져 암흑과 화염 속성이 더해졌다.
총 3종류의 속성을 하나의 권능으로 쏟아붓는 셈이다.
화륵!
목표물인 늪지의 망령이 그 화살을 얻어맞고 집채만 한 반투명 몸뚱이를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막상 뚜렷한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영체인 망령은 금속에 면역.
동시에 원한을 가진 귀신이니 암흑은 오히려 이로운 역할을 하고.
또한 물기가 가득한 늪지대의 마물이라 화염 피해 또한 무의미하다.
“젠장! 아무것도 안 통하잖아!”
파티원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내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최윤아도.
전위에서 엑스칼리버를 쥐고 망령에 맞서는 하비도.
그리고 21명의 나머지 파티원들도.
그 어떤 공격을 행해도 먹히지 않는 적 앞에서,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지금껏 각성자로 활동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마주쳐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강적.
벨그레이브는 육성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생애 최초 실전 속성 전투를 이런 난해한 적과 맞서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