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57화
육성 프로그램 일정이 시작된 건 그 바로 다음 날부터였다.
첫 일정은 다름 아닌 각자의 수호령 속성에 맞는 ‘속성 친화력 강화 패시브 스킬’ 얻기.
그걸 위해, 그 자리에 모였던 각성자들은 잭슨의 지시에 따라 퀘스트를 클리어하러 왔다.
‘양방향 포탈…….’
그런데 이곳에서 난, 다른 생각을 하느라 퀘스트 진행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11월 1일. 지금이 4월이니 남은 시간은 채 8개월이 되지 않는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게 된 패치노트의 내용 때문이었다.
{현존하는 모든 포탈에 <양방통행> 속성이 추가됩니다.}
처음엔 ‘포탈은 원래 들어갔다 나올 수 있으니 당연히 양방통행인데, 저게 무슨 소리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잭슨의 설명을 듣고 나서 이해하게 되었다.
저것이 인류에게 거대한 재앙을 가져다줄 문장이라는 걸.
‘앞으로 8개월 후면 전 세계의 모든 던전 포탈로부터 마물들이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비각성자들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진다.
제아무리 대단한 각성자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하더라도, 전 세계 모든 곳에 존재하며 무한히 재생산되는 마물들을 다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아무리 애를 써도 보호가 불가능한 구역이 생길 테고, 인류의 생활 반경은 극히 좁아지는 것이다.
‘하늘, 도로 위, 해상…….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못한 곳이 된다. 물류와 통신이 끊어지고 인프라도 붕괴하면서 문명 수준은 적어도 100년 이상 퇴보하겠지.’
이 흐름을 아예 막을 수는 없다.
시스템이 이미 그렇게 하리라 결정했기 때문에.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면, 미리 대비는 할 수 있다.
-이봐, 넌 지금 그 소중한 정보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생각이냐?
아흐리만이 또다시 시비조로 말했다.
-저건 귀중한 정보라고, 세상이 무너져 내릴 때 너 혼자만 미리 준비해 놓으면 그 이후의 세상에선 네가 왕이 될 수 있잖아, 안 그래?
사실 그 말대로, 이런 정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 난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다.
11월 1일이 되기 전까지, 생존에 필요한 온갖 물품들을 사재기하고 전기와 수도 등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을 나 혼자 갖추는 것이다.
그 시설을 무력으로 빼앗기지 않을 방법이야 어떻게든 찾아내면 되고.
그럼 멸망 이후의 세상에서 난 그야말로 왕이 될 수 있다.
‘정말 그게 최선일까?’
그런데 난 자꾸 무언가 마음에 걸린다.
-하! 웃기는군. 지금껏 네 이익에 따라 잘만 이기적으로 살아와 놓고, 이제 와서 남들을 걱정한다고? 왜, 갑자기 악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상대적으로 착해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도 드는 건가?
‘그런 게 아니야.’
-그게 아니면 뭔데? 남이야 뒈지건 말건, 너만 잘살면 되는 거 아냐?
아흐리만은 핀트를 잘못 잡았다.
이건 무슨 이타심 운운할 문제가 아니다.
패치노트에 쓰여 있던 문구.
그것 때문에 이 일을 그렇게 단순히 치부하고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뭔 문구?
‘모든 포탈에 양방통행 속성이 추가된다는 말. 그 위에 적힌 문구가 마음에 걸려.’
난 다시 패치노트를 펼쳐보았다.
{각성자들의 기적 사용량 증가로, 세계 간의 경계가 조금 더 허물어집니다.}
-이게 뭐 어때서?
‘경계가 ‘조금 더’ 허물어진다잖아.’
별것 아닌 단어이지만, 동시에 그 하나만으로 뉘앙스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저 말은 곧, 세계 간의 경계라는 게 거기서 더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야.’
모든 포탈에서 마물들이 튀어나오는 대재앙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
그 무언가가 내년에 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이봐!”
생각에 깊이 빠져 있던 찰나, 누군가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함께 던전을 돌파하고 있는 각성자들 중 하나가 날 부르는 소리였다.
“거기 있으면……!”
터엉!
그와 동시에 눈앞으로 뭔가가 날아와서 재빨리 주먹으로 쳐냈다.
그건 붉은 늑대의 머리통이었다.
“……위험……할 텐데?”
푸확! 콰쾅!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서 여러 명의 각성자들이 붉은 늑대들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 일단 퀘스트에 집중하자.’
답도 없는 생각에 몰두해 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일단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
혼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나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선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 * *
“어이! 넌 뒤로 빠져! 걸리적거린다고!”
정신을 차리고 본격적인 싸움에 임하려 하자, 동료 파티원 중 한 명이 내게 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 멍청한! 마법사가 앞으로 나오면 어떡해? 저리 가!”
한 명이 아니라, 전위에서 싸우는 각성자들 전부 그랬다.
그 이유는 아마 이들이 나를 마법사계 각성자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촤악! 투콱!
사실 난 지금까지 뒤에서 멍하니 서 있긴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저 앞엔 내가 ‘악의의 전당’으로 소환한 ‘아론다이트’가 아주 잘 싸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걸 내 주력 권능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군.’
그래서 사람들은 저 검을 조종하는 게 내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물론 악의의 전당은 내가 직접 손쓰지 않아도 수호령들의 투영무구를 자유롭게 조종하는 게 가능한, 강력한 기술이다.
거기다 그 자체로는 체내의 마나도 소모하지 않기에 구사하는 데 아무런 부담이 없다.
하지만.
‘저게 다가 아니지.’
이건 단순한 이기어검술 같은 게 아니다.
그저 날아다니면서 무기를 휘두르는 데 그쳤으면 차라리 예전처럼 직접 주먹이나 휘두르는 게 나았을 것이다.
‘아론다이트 회수.’
이것은 아지다하카의 힘과 결합해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권능.
흡수한 모든 수호령들의 투영무구를 내 것처럼 자유롭게 쓰도록 보조해주는, 멀티 웨펀 플랫폼이다.
‘업화의 구, 가시창 게 볼그.’
소환된 채 스스로 싸우던 아론다이트는 내 회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스르륵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업화의 구를 사용해 모든 공격에 검은 화염을 부여했고.
곧이어 내 손엔 어느새 마나로 이루어진 투창, 게 볼그가 쥐어져 있었다.
그 푸른 마나로 이뤄진 작살을 힘껏 내던지는 순간.
쐐애액! 화르륵!
붉은 늑대 무리의 한가운데서 서른 개의 가시를 펼쳐 이 좁은 공간 안에 있는 모든 늑대들을 꿰뚫어버렸다.
키에엑! 키이익!
그 가시엔 검은 불꽃이 서려 있었기에, 늑대들은 꼬챙이처럼 꿰인 채 소리를 지르며 불꽃에 타들어 갔다.
그러나 저것들은 입에서 마력탄을 쏘는 변형 마수 개체들.
저대로 내버려 두면, 작살에 꽂힌 채 발악으로 동귀어진을 하려 들지도 모른다.
‘파산검 칼라드볼그.’
나는 그 늑대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손에 칼라드볼그를 소환했다.
텅. 철퍽. 터텅.
게 볼그가 먼지처럼 흩어 사라지면서 가시창에 꿰여 있던 늑대들이 한꺼번에 바닥에 떨어졌다.
난 그 녀석들이 일어서기 전에 재빨리 칼라드볼그를 내려쳤다.
두근.
가슴 속에 형성되었던 묵직한 강격파동 고리가 폭발적인 힘을 발산한다.
투쾅! 화르륵!
묵직한 검압이 위에서 아래로, 붉은 늑대들을 사정없이 짓뭉갰고.
거기에 검은 화염이 그 폭력적인 에너지와 결합해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넓은 범위에 고온 고압의 열압착 영역이 형성되어 마물들을 용융시킨 것이다.
───
<고통: 업화의 구>
-아지다하카가 전신에서 내뿜는 검은 화염.
-(2단계) 발동 중, 모든 공격에 검은 화염을 부여한다. 마나를 지속적으로 소모한다.
<파동 제어>
-파동을 축적하고 발산하는 것으로 무구의 힘을 방출한다. 무구의 종류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
업그레이드된 업화의 구와 파동 제어.
이 두 가지의 결합으로 파티가 간신히 버티며 상대하고 있던 붉은 늑대 군세를 단숨에 처리했다.
화아악!
“어…… 우왓!”
나를 나무라던 각성자들은 화끈거리는 열감에 뒷걸음질 치며 잿더미가 된 마수들로부터 떨어지려 했다.
“뒤늦게 난입해서 미안하군. 다음부턴 내가 앞장서서 정리하지.”
콰직!
난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늑대 머리 하나를 발로 짓뭉개며 사람들을 앞질러 갔다.
“…….”
날 마법사로 착각하고 무시하던 각성자들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멀뚱히 내 뒷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 * *
포격파동발산기.
폭류인 앵거바딜.
콰아아아!
적을 향해 내뻗은 칼날에서 강렬한 마나 스트림이 직선으로 뿜어져 나온다.
눈앞의 붉은 늑대 우두머리가 그 흐름에 휘말려 벽까지 밀려 나갔다.
그러다 공격이 멈췄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늑대 우두머리는 만신창이가 된 채 그르렁거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르르르…….
아직 숨이 붙어 있다.
마지막 일격이 필요한 상황.
‘아르테미스의 활은…… 쓸 수가 없나.’
난 이번 기회에 저번에 얻었던 ‘아르테미스의 활’을 써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무구는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쓰질 못했다.
───
<아르테미스의 활>
-사냥과 궁술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활을 소환한다.
-위력과 범위를 높인 광역 공격식과 사거리와 정확도를 높인 저격식의 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악의의 전당> 파생 무구
-1극성 소모
───
‘극성’을 소모한다는 조건.
이것도 파동 발산기의 일종인 것 같은데, 지금 내가 가진 무구 중에는 극성이라는 걸 축적할 수 있는 무구가 없다.
결국 지금은 사실상 봉인기라는 의미.
아마도 새로운 무구를 얻거나 파동 제어에 관한 다른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건 그렇고, 지금은 내 앞에 있는 붉은 늑대 우두머리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갈라틴 소환.’
푸학.
내 손안에서 형성된 대검이 저 스스로 날아가 붉은 늑대의 미간에 꽂혔다.
{히든 퀘스트 <붉은 늑대 던전 탐사>의 정보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구구구궁.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앞의 동굴 벽이 갈라졌다.
갈라진 벽 뒤엔 파란빛이 뿜어져 나오는 룬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곳으로부터 강렬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진다.
{당신이 마주한 고대의 유산으로부터 힘이 느껴집니다.}
{원소의 의지가 당신 안에 자리 잡습니다.}
시스템 메시지의 설명 그대로, 빛나는 룬문자는 나에게 에너지를 주입했다.
그 에너지의 정체는, 말할 것도 없이 스킬이었다.
{패시브 스킬 <초급 속성 친화력 강화>를 습득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던전에 들어온 이유가 이걸 얻기 위함이었다.
벨그레이브에선 이 스킬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
-이미 갖고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수준이 오르면 오를수록 ‘속성’의 중요성은 증가합니다.
각자의 수호령이 가지고 있는 속성.
더 강한 적을 상대하게 될수록, 속성은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지다하카를 얻은 후 처음으로 상대한 강적인 바포메트의 미니언 때 그랬듯, 어둠 속성을 가지고 있는 내가 악마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한 게 바로 그 예.
물론 그때는 ‘업화의 구’라는 대악마 최종병기로 난관을 돌파했고.
그 뒤부턴 그냥 말 그대로 속성 상관없이 힘으로 찍어 눌렀기에, 중요성을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성장하면 반드시 속성의 벽에 가로막히는 일이 생기고 말 것이다.
그런 때를 대비해 속성 친화력 강화 스킬을 배워야 한다는 게, 잭슨의 설명이었다.
-속성 친화력이 증가하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주속성이 강화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속성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각 수호령에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는 속성을 강화시킴과 함께 다른 속성의 기술도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
이 스킬 하나로 많은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얻는 셈이다.
{히든 퀘스트 <붉은 늑대 던전 탐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이곳에서의 일은 끝났다.
이다음엔 또 다른 팀과 합류해서 새로운 스킬을 얻으러 가는 일정이 남아 있다.
그때까진 잠시 아까 전에 했던 고민을 미뤄둬야 할 것 같다.
‘세계 간의 경계 붕괴…….’
계속 맴도는 그 생각을 억지로나마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