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55화
미리내 그룹은 범백산가에 속하는 대한민국의 재벌가이지만, 각성자와 관련된 사업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이 무기를 다루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나.
그렇다 보니 집안에서 유일하게 각성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진윤은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고 있다.
나름대로 사업 수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 있는 분야가 그놈의 각성자 관련 사업인 게 문제인 것이다.
그런 그의 입장에선 집안사람에게 인정받는 게 절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
내 입장에선 지금이 그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 절묘한 기회였다.
“우와……. 이런 게 있다니…….”
이진윤은 알포드 성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풍경 자체는 레이드 던전에서도 한 번 본 적이 있지만, 그가 놀란 이유는 그보다도 다른 부분이 컸다.
“이 모든 게 전부…… 형님 소유라고요?”
“그래. 봐봐.”
내가 손짓으로 시스템을 조작하자, 한창 무기를 제조하던 대장장이들이 모두 작업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시스템을 조작해 대장장이들의 작업을 재개시켜 보였다.
“와, 말도 안 돼…….”
이런 건 그 입장에서는 생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광경일 것이다.
아직까지 성 점령에 관한 정보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건 너한테만 보여주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지면 안 돼. 어차피 너한테도 손해일 테니 그렇게 안 하겠지만.”
“……넵!”
내가 그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이게 무기 거래 사업을 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는 것.
이건 지난번 유니크 칼 판매 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업’이었다.
유통업자인 이진윤이 제조 공정 과정을 실사하는 건 당연한 얘기.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지도 않고 대량의 자본을 투자하는 사업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먼저 보여주지 않더라도 그가 요구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게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원래 생각지도 않았던 것인데, 오늘 일로 만들어졌다.
“진윤아.”
“네?”
“이제 이 성의 소유권을 너한테 넘길 거야.”
“네에에?”
그건 바로 성을 그에게 주는 것이었다.
“형님, 그게 무슨…….”
“넌 이제부터 이 성의 소유 클랜인 알포드 클랜의 클랜 마스터가 될 거야.”
레아와의 만남 후, 나는 벨그레이브 클랜에 가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난 내가 창설한 클랜인 ‘알포드 클랜’의 클랜장인 상황.
패트릭이 그랬듯이, 한 클랜에 소속되어 있으면 다른 클랜에 이중가입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내 클랜인 알포드 클랜에서 탈퇴해야만 하는데.
문제는 나를 제외한 이 클랜의 소속원이 모두 NPC라는 것.
NPC는 클랜 마스터가 될 수 없고, 따라서 내가 탈퇴하는 순간 클랜은 해체되고 알포드 성은 소유자가 없는 무주공산이 되는 셈이다.
애써 잘 구축해 놓은 알포드 성의 군사력과 제조역량을 버리는 건 너무 아까운 일.
결국 나 대신 클랜을 유지해 줄 사람으로, 이진윤을 고른 것이다.
“저한테 갑자기 이런 걸 맡기시다니…….”
“원래 하기로 했던 거랑 별로 다를 건 없어. 단지 넌 유통뿐만 아니라 무기의 제조까지 관리하면 되는 거야.”
내 의도대로 이 성을 사용할 능력이 있고, 동시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가진 사람.
지금 내게 있어 그는 클랜을 넘기는 대상으로 가장 적임자였다.
물론 그냥 넘기는 건 아니다.
“대신 무기 거래 회사를 신규 창업하고, 그 회사 지분의 절반을 나한테 넘겨.”
통제 권한을 가짐과 동시에, 앉아서 돈을 벌어들일 작정.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제조 비용 없이 무한정 무기를 뽑아내는 마법의 무기공장을 직접 소유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골드는 내가 공급할 테니, 필요할 때마다 날 찾아와.”
그리고 만약을 대비한 안전장치로, 성안의 골드는 5억 골드만 남겨 놓고 모두 회수했다.
현재 알포드 성은 세율이 0%이면서 내가 수급하는 골드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돌아가는 공동체다.
식량 생산도 중단됐고, 오로지 군사력과 제조에만 역량이 집중된 상황.
이런 상황에서 금고의 골드가 떨어지면 무기 생산은커녕 자급자족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즉, 이진윤은 이 성을 소유하게 되지만, 유지를 하려면 내게서 골드를 주기적으로 받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골드……도 필요한 건가요? 그 레이드에서 얻는 골드?”
“그래. 물론 그건 내가 알아서 수급해 줄 테니까, 넌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만들어지는 무기만 잘 팔면 돼.”
“네. 알겠습니다.”
이로써 나는 알포드 클랜을 온전히 손아귀에 넣은 채로 남에게 넘겼다.
앉아서 계좌에 들어오는 배당금만 챙기면 되니, 오히려 관리가 더 쉬워졌다.
그렇게 모든 이전 작업을 거치는 데에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영웅님…….”
한편, 아델이 성을 떠나려는 나를 배웅했다.
“금방 돌아올 거야.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어.”
물론 이건 일시적인 이벤트일 뿐이다.
난 적당한 때가 되면 벨그레이브에서 탈퇴할 것이고, 내 클랜을 되찾을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아델만큼은 반드시 데리러 올 것이다.
‘……아니, 왜 내가…….’
잠시 머릿속에 그녀와 모나가 겹쳐 보였다.
정작 아흐리만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이제 와서 내 정체성에 혼란이 느껴진다.
‘아니야. 난 유신우다.’
난 머리를 흔들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간다.”
“네. 조심하세요.”
그렇게 나는 알포드 성을 뒤로하고 벨그레이브 클랜으로 갔다.
* * *
레아, 즉 검제와의 예상치 못한 만남은 내게 더욱 큰 확신을 심어줬다.
벨그레이브는 지금, 나와 패치노트에 대한 그 어떤 연결점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확신.
그렇다면 굳이 그들을 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더 가까이에서 이들의 동향을 관찰하며 시야를 넓히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더군다나 검제 본인이 내 힘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이상, 이 안에 있는 것만큼 안전한 일도 없을 테고.’
우우우웅.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명상을 하던 도중, 갑자기 몸 전체를 뒤흔드는 울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
너무 무겁고 끈적해서 조금 출렁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용혈의 기운이.
지금 소용돌이처럼 크게 휘몰아친다.
‘설마…… 이게 그 감각인 건가?’
쿠구구구구.
엄청난 크기의 힘.
이건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내 힘과는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거대하다.
‘저건…… 뭐지?’
콰르릉.
심상 세계 안에서 천둥 번개를 동반한 피의 돌풍이 하나로 뭉쳐진다.
이윽고 뭉쳐진 피바람은 어떤 형상을 만들어냈다.
‘검은 용……. 머리가 세 개 달린…….’
그건 내 수호령 아지다하카였다.
-쿠오오오오!
아지다하카가 포효하며 심상 세계를 제멋대로 휘젓고 다닌다.
마치 바깥으로 뛰쳐나가기라도 하려는 듯 세계의 벽을 허물어버리려 했다.
이대로라면 그 거대한 에너지가 내 몸 밖으로 방출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안 돼. 여기선 안 돼.’
난 그걸 막기 위해 손을 뻗어 아지다하카를 붙잡았다.
놈은 내 팔을 물어뜯었다.
‘큭.’
고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버려 둘 수 없기에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의지로 이루어진 손은 재생되었다.
아지다하카는 다시 그 손을 물어뜯었지만, 그럴 때마다 난 통증을 참고 손을 재생시켜 용을 붙잡았다.
조금씩, 조금씩, 아지다하카의 힘이 빠진다.
쿵.
이윽고 나는 그것의 세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날개를 붙잡아 바닥에 처박았다.
콰릉!
그로써 세 개의 머리가 달린 블랙 드래곤은 완전히 내 통제하에 들어왔다.
-젠장…….
번쩍.
“헉……. 헉…….”
그 순간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눈을 떴다.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손님. 괜찮으십니까?”
내게 승무원이 다가와 걱정스럽게 안색을 살펴봤다.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아뇨. 괜찮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혹시 몸이 안 좋으시면 언제든지 호출해 주셔도 됩니다.”
이곳은 운항 중인 여객기 안이었다.
이 안에서 잠시 시간을 보낼 겸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제멋대로 날뛰는 아지다하카의 힘.
그게 몸 밖으로 분출되려던 걸 겨우 막은 것이다.
막지 못했다면 큰 사고로 이어졌을 게 눈에 선하다.
‘방금 그건…….’
난 다시 심상 세계의 아지다하카를 불러냈다.
그것이 다시 날뛰려고 했지만, 한 번 나에게 제압당했기에 이번엔 어렵지 않게 붙잡을 수 있었다.
‘이거였구나.’
그러자 몸속의 무겁고 끈적한 용혈의 힘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힘의 해답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단순히 마나를 다루듯이 움직인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 관건은 아지다하카와 접촉하고 통제하는 것.’
우우우웅.
심상 세계에서 아지다하카를 붙잡은 채로 그 강력한 기운을 체내에 맴돌게 하자, 이번엔 손쉽게 내 의도대로 움직여 주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기력했던 팔과 다리에 엄청난 힘이 치솟았다.
마치 예전에 처음으로 악룡마공을 발동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고양감.
물론 지금은 증폭의 범위가 그보다 몇십 배는 더 늘어난 수준이었다.
‘스테이터스.’
난 이 힘을 수치로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
<스테이터스>
칭호: 오크 슬레이어(9급)
이름: 유신우
수호령: 악룡 아지다하카(전설)
생명력: 4,785 / 4,785
마나: 8,880 / 8,880
근력: 1,522
활력: 1,595
반사 신경: 1,601
집중력: 1,713
의지력: 1,475 (+ 5)
───
‘미친…….’
내 기억상 마지막으로 달성했던 수치가 올스탯 800대였으니까-
그때와 비교하면 거의 2배에 근접한 수준의 스탯치를 얻은 셈이다.
‘마나량이…… 미쳤군.’
특히나 눈에 띄는 건 마나량.
사실 이전에는 특성의 메커니즘 상 내 마나량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마나량 순환 계산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에, 스탯에 비하면 마나량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순수 의지력이 저만큼이나 증가한 거라서, 온전한 양의 마나를 얻을 수 있었다.
‘강대한 마나’라는 특성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이거라면, 마나를 소모하는 기술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대량의 마나 소모를 요구하는 기술, 혹은 권능.
그쪽도 건드려 볼 여지가 생겼다.
‘드디어 뭔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네.’
내 능력의 제한이 해제되었다는 사실에, 한 시름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그레이브 클랜 사람들을 만나기도 전에 이 문제를 해결했으니, 타이밍도 상당히 좋다.
“휴우.”
그렇게 난 안심하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잠시 후, 눈을 감은 채 그대로 기분 좋게 잠이 들려던 찰나.
-네놈! 감히 날 내쫓고 편안히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나!
없어졌던 골칫거리가 또다시 나타났다.
* * *
미국 디트로이트 웨인 카운티 국제공항.
벨그레이브 클랜에 가입한 나는 레아로부터 이곳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곳에서 내가 할 ‘중요한 할 일’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릴 테니 웬만하면 하고 있는 일을 정리하는 게 좋을 거란 언급도 함께였다.
-이…… 개자식…….
한편, 비행기에서 다시 들리기 시작한 아흐리만의 목소리는.
‘이제 좀 조용히 하는 게 어때? 어차피 넌 날 못 이기니까.’
-으으으으!
지난번과는 달리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내 몸을 빼앗겠다며 악을 쓰면서 달려들었지만, 그저 내 정신이 좀 사나워졌을 뿐.
아마도 용혈의 힘까지 제어할 수 있는 나를 이길 순 없었던 모양이다.
-방심하기만 해봐라! 당장 몸을 빼앗아 줄 테니까!
‘어디 한번 해보시지.’
-그때는 네 주변인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 가족이건 친구건!
‘하, 그게 아들 있다는 놈이 할 소리냐?’
-닥쳐!
난 이 녀석의 기억을 보았기에 알고 있다.
거기선 분명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전형적인 선인이었는데.
아무리 마지막에 모나의 죽음으로 분노했다지만, 대체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나 성격이 개차반이 된 것일까.
‘그래그래. 네 맘대로 해. 할 수 있으면.’
-끄으으!
사실 나도 딱히 인류애가 있다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기에, 이 녀석의 그런 점에 대해 뭐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지금은 벨그레이브 클랜 관계자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
난 연락받은 내용에 따라, 목적지에 가기 위한 교통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저기요.”
그런데 이 인연 하나 없는 먼 땅에서, 누군가가 익숙한 한국어로 말을 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저, 맞죠? 유신우 씨.”
“음? 누구……?”
어깨까지 닿는 새까만 생머리에, 매우 순해 보이는 인상의 한국인 여성.
난 그게 누구인지 못 알아봤지만,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그제야 알아챘다.
“저예요, 저. 최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