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54화 (54/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54화

나는 알포드 성에 있으면서도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소식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왜냐하면 힘을 잃은 상태에서 내 안위를 보장하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작년 말에 추가된 클랜 시스템.

그와 연계되어 올해 나타난 점령 가능한 성 던전.

이것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이목을 끄느냐에 따라, 내 위치가 얼마나 빠르게 발각되느냐가 결정된다.

다행히 공성전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공공연하게 다뤄지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패치노트가 없는 각성자들은, 점령 가능한 던전 포탈의 위치를 발견하는 것부터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고-

또한 그 던전의 점령이 가능하긴 한 건지, 어떻게 점령해야 하는지를 모두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다.

게임이라면 무작정 달려들어서 죽어가며 확인해 보는 유저들에 의해 어떻게든 숨겨진 요소들이 발견되겠지만.

이건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현실에서 목숨은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짓은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죽을 염려가 없는 강자들은 그런 걸 마음 놓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 강자들이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건 바로 얼마 전에 벌어진 벨그레이브와 러시아 사이의 충돌 사건일 것이다.

‘검제가 직접 나타나서 클랜에 가입하라고 했지.’

이 사건은 다른 누구보다 나야말로 가장 먼저 접한 소식이었다.

현장에 맞닿아 있는 사람과 직접 연락하고 있었으니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벨그레이브와 칼리닌스카야의 싸움이 예상보다 훨씬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잠시 연락하기 어려울 듯.]

나는 칼리닌스카야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다리우스와 연락하고 있었다.

그와의 연락이 끊어진 건 모스크바가 파괴된 직후.

백선율의 하얀 날개가 일으킨 공격에 휘말려 죽은 건지, 아니면 그저 잠시 연락만 끊어진 건지, 생사조차 알 수가 없었다.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벨그레이브의 저런 과격한 행동은, 따지고 보면 내가 패치노트를 가로챈 데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칼리닌스카야가 사라졌지만, 패치노트를 얻은 대가로 그보다 더 큰 적을 만들어버린 셈.

당장 내 안위조차도 보장할 수 없는 지금, 나는 영국에서 조용히 몸을 사리며 힘을 되찾는 데에 전념해야만 했던 것이다.

“헤이! 신우! 오랜만이야!”

레아가 내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레아의 머리 위에 나타난 신화 수호령 표시.

그것은 내 머릿속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

‘레아가 신화 수호령…….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우선 신화 수호령이라는 걸 태어나 처음으로 직접 본 것도 놀랍지만, 그게 레아의 머리 위에 나타나 있는 것도 놀라웠다.

뭔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그녀가 보여준 행동을 보면 무력하고는 별 상관이 없을 줄 알았다.

‘강자들이 정체를 숨기는 거야 흔하지만, SNS 인플루언서라…….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걸까.’

이렇게 요란한 위장이, 오히려 그 정체를 더욱 알아채기 힘들도록 만든 것이었다.

“신우! 디엠 보냈는데 왜 안 받았어?”

레아는 내가 자신의 수호령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SNS 인플루언서’ 행세를 계속했다.

“내 디엠 무시한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상처 받았다구. 힝.”

“…….”

레아의 애교 섞인 말에 이진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고, 애초에 내가 SNS를 거의 안 하기 때문에 메시지를 확인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레아가 누군가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

그건 당연히 무슨 추파를 던지려는 게 아니고,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게 분명했다.

“연락이 너무 안 되더라. 한국에도 계속 없고. 무슨 일 있었어?”

그녀의 질문 공세가 계속 쏟아진다.

난 그런 그녀의 말을 잘랐다.

“레아. 난 오늘 너랑 만나러 온 게 아니라 진윤이를 보러 온 거야.”

“아……. 아아! 그렇지! 미안, 내가 너무 불쑥 찾아왔지? 사과할게.”

그런 면박에도 그녀의 표정에는 전혀 동요가 일지 않았다.

힘을 가진 자라면 이런 대우에 한순간이나마 기분 나쁘다는 티가 날 법도 한데.

레아는 정말 진심으로 나에게 미안해하는 얼굴이었다.

연기가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거나, 저런 위치에 있음에도 사과에 거리낌이 없는 겸손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다.

“둘이 먼저 이야기해도 돼! 내 용건은 이따가 말할게.”

그러고는 우리 대화를 정말로 듣지 않겠다는 걸 확인시켜주려는 것인지, 아예 저 멀리 가버렸다.

그렇게 그녀가 떠난 것을 확인한 후, 이진윤이 나에게 와서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가 진지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이 녀석, 각성자로서 싸우는 일을 할 때는 겁쟁이에 판단력도 그리 좋지 못한 녀석이었지만, 돈이 오가는 일에서만큼은 철저한 인물이었다.

오늘같이 사업 얘기를 하러 오는데, 불청객을 데려오는 것은 비즈니스에 있어서 굉장한 실례.

그 부분에 있어서는 프로인 그가 이런 아마추어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의도지.”

“……아.”

“왜 저 사람을 여기에 데려왔지? 애초에 둘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난 이진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런 자리에, 저런 사람이 왔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이유가 아닐 것이다.

“사실은…….”

그가 난처해하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그게 뭔 소리야?”

“솔직히 저도 데려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 사업이니까요. 근데, 선율이 형님이 꼭 저분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백선율?”

백산 그룹의 백선율과 미리내 그룹의 이진윤이 6촌 고종형제 관계였다는 게 다시 떠올랐다.

“예. 평소엔 연락도 잘 안 되던 분인데, 갑자기 저를 찾아오셔서 부탁하더군요. 전 끝까지 거절하려고 했지만 집안 어르신들 때문에…….”

‘아. 그런 거였군.’

그 얘길 듣자마자 머릿속에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의문이 모두 풀렸다.

성황과 관련되어 있는, 신화 수호령의 각성자, 레아.

그녀는 벨그레이브의 1급 각성자 4인방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검제, 염왕, 마존, 성황. 이 중에서 정체가 알려진 성황은 제외하고.’

지난번 사건 이후로 그들의 존재 자체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었다.

물론 백선율 외의 세 명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진짜 정체까지는 추측만이 무성할 뿐이다.

하지만 그중 누가 ‘마나난 막 리르’라는 수호령에 걸맞은 인물인지는 찾아낼 수 있다.

‘바다와 관련된 신. 그럼 염왕도 아니고.’

나는 스마트폰으로 그에 대한 신화를 찾아봤다.

‘마존 아니면 검제인데. ……아.’

그러던 중, 결정적인 힌트를 발견했다.

‘스스로 움직여 적을 베는 검, 프라가라흐.’

핵미사일을 요격한 수단으로 알려진 권능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무기.

수호령이 실제 알려진 신화와 전설을 기반으로 권능을 행사한다는 것을 고려해 봤을 때, 결론은 하나로 도출된다.

‘레아는 검제다.’

벨그레이브의 수장.

세계 최강의 각성자인 검제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레아라는 것.

‘검제가 여자일 줄은.’

세간에는 검제가 장발의 냉철한 꽃미남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실체는 금발의 모델 같은 미녀 SNS 인플루언서.

‘그나저나 검제가 왜 날 찾아온 거지?’

물론 그보다 중요한 건, 그자가 지금 나를 만나겠답시고 백선율과 이진윤을 거쳐 이 먼 영국 땅까지 찾아왔다는 것이다.

‘혹시 다이아 경매에 대해 눈치라도 챈 건가?’

최악의 시나리오는 벨그레이브에서 내가 패치노트를 가로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고-

그런 나를 잡기 위해 검제가 직접 여기까지 왔다는 것일 터다.

흘끗.

내 뒤에는 아델이 서 있다.

지금 그녀는 힘을 잃기 전의 나보다도 더 강력한 실력을 가진 기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제를 상대할 수는 없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지금 저런 존재와 맞붙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나를 지키기는커녕 혼자 살아남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한 가지 희망이라면…….’

다만 내 앞에 꼭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검제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레아로서 나에게 왔다는 건데.’

날 잡으러 온 거라면 굳이 위장한 모습으로 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애써 잘 구축해 놓은 위장 신분을 굳이 여기서 허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저쪽이 적의를 품었다면 어차피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최대한 정황을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말로 해결해야 해.’

난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진윤아.”

“네, 형님.”

“미안한데, 사업 얘기보다 레아랑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아……. 알겠습니다!”

저 멀리 가 있는 그녀를 이쪽으로 불러왔다.

* * *

“벨그레이브, 알고 있지?”

레아는 내 앞에서 생각보다 대놓고 그 이름을 언급했다.

물론 지금 같은 때에 그걸 모른다고 하는 대답이야말로 수상한 일.

난 일단 그녀가 하는 말에 맞장구를 쳤다.

“당연히 알지.”

“그것 때문에 널 찾아온 거야.”

“벨그레이브 때문에? 왜?”

“네가 우리 클랜에 들어왔으면 좋겠어서.”

‘뭐지?’

그녀는 서슴없이 ‘우리’라는 말을 쓰며 나에게 가입 권유를 했다.

나는 짐짓 모른 체하며 되물었다.

“……너도 거기 소속인가 보지?”

“응. 사실 난 스카우터야.”

“스카우터?”

“예전부터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유능한 인재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오는 게 내 일이었어. 각성자들과 친목을 쌓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 이전에 우리 조직이 비밀 결사일 때는 이걸 몰래 해왔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

그 말을 들으니 전에 봤던 레아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레이드 시즌에 던전 앞에 나타나서 사람들과 친목을 쌓던 것.

그건 그저 재벌가 자녀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아래에 들어올 미래의 유망주들을 물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위장 신분은 단순히 정체를 숨기는 용도만은 아니었군.’

화려한 외모와 호감 가는 언행을 앞세워 진짜 정체와는 관계없는 인맥을 쌓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인적자원을 얻는다.

최고 위치에 있는 검제가 직접 움직인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이긴 하지만, 그만큼 보는 안목도 높을 테니 따지고 보면 꽤나 합리적이다.

“사실 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여겨봤거든. 실력이 심상치 않다는 걸. 그래서 꼭 ‘우리 클랜’에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었어.”

그런 안목이 나에게도 작용한 모양이다.

“넌 남들에게는 없는……. 뭔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어. 그렇지?”

레아는 마치 내 힘에 대해 뭔가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물론 나에게 있어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이야기.

그에 대해 난 대답을 회피할 겸 허를 찌르는 말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봤을 때는 클랜이란 게 없었지 않았나?”

“아, 그건…….”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당연히 재작년에 얻은 패치노트에서 알았겠지. 연말에 클랜 시스템이 생긴다는 걸.’

아마도 벨그레이브는 작년부터 밑 작업을 해오고 있었을 것이다.

패치노트를 통해 클랜 시스템이 생긴다는 미리 알고, 세상의 유능한 인재들을 모으겠다는 계획.

“뭐, 상관없나. 어차피 클랜이 아니어도 사람을 모집할 수는 있는 거니까.”

“아, 으응. 맞아. 그거야.”

어쨌든 대화를 나눠보니, 대충 감은 잡았다.

벨그레이브는 지금 내가 패치노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

이들이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높은 성장 가능성을 가진 내 힘. 수호령 아지다하카.

레아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내게 뭔가를 느낀 것처럼 보였다.

“좋아. 이유야 어쨌든 내가 그 벨그레이브 클랜에 가입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응. 맞아.”

여기까지 듣고서, 나는 결정했다.

현시점, 나에게 있어서 가장 위협적인 적.

패치노트를 가로챘다는 게 발각되는 순간 나를 최우선 순위로 제거하려 들 지구상 최강의 클랜을.

“그래. 그렇게 할게.”

내 바로 옆에 두기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