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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53화 (53/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53화

거인과 다섯 마리의 화룡이 격돌한다.

거인은 거대한 곤봉을 휘둘러 불로 이루어진 용을 흩어 없앴고-

용은 거인의 팔다리를 불태워 소멸시켰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양쪽은 몇 번이고 재생하며 다시 맞붙었다.

화르륵!

“아아아악!”

녹아버린 모래는 용암이 되어 사방으로 튀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모스크바 시민들의 몫.

위이이이잉!

“대피하십시오! 이쪽으로!”

공습경보와 호루라기,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뒤섞여 시내는 난장판이 되었다.

사람들은 불타는 도시를 뒤로하고 살기 위해 전장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대규모 네이팜 폭격을 방불케 하는 전투가 러시아 본토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루킨! 네 권능은 이게 다인가?”

염왕이 한껏 여유를 내비치며 눈앞의 근육질 거인을 향해 도발했다.

그는 공중에 뜬 채로 전신에서 방출하는 화염의 용들을 조작해 거인 형상의 루킨을 계속 괴롭혔다.

뻐억!

그러자 거인이 곤봉을 휘둘러 그를 직접 타격했다.

그 속도는 절대 신장 15미터의 거인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날렵하다.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키운 근접 전사형 각성자가, 엄청난 덩치와 질량까지 갖춘 거나 다름없는 상황.

콰앙!

그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염왕이 거대한 곤봉에 얻어맞고 수십 킬로미터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치이이익.

그렇게 전신에서 고열을 내뿜는 그 몸뚱이가 땅에 처박히자, 주변 바닥의 콘크리트 도로가 녹아내려 시커먼 타르 웅덩이로 변해버렸다.

“큭. 힘이랑 스피드 하나는 무식한 수준이구만.”

하지만 염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손에는 타오르는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결국 이것까지 꺼내게 만드는구나.”

그는 방금 전 곤봉이 날아오는 순간, 나이프에 해모수의 무구인 용광검(龍光劍)을 투영해 공격을 막아냈다.

염왕이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은 바로 그 칼끝으로부터 뻗어 나온다.

……라고 하는데, 사실 처음부터 이걸 썼으면 전투를 좀 더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잘 나오고 있겠지?’

그가 눈길을 돌려 저 멀리서 이 싸움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맨을 흘끗 쳐다봤다.

이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드라마틱한 전투 장면을 연출할 필요가 있었다.

염왕은 그렇게 생각했다.

-뭐 하는 겁니까?

그런데 검제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귀에 꽂힌 무선 이어폰에서 검제의 채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왜 이렇게 질질 끄는 거예요?

“이렇게 해야 더 멋있어 보일 거 아냐? 밀리는 줄 알았지만 실은 숨겨진 무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이런 거라고.”

-염왕 씨. 우린 지금 프로레슬링 같은 쇼를 찍는 게 아닙니다.

“뭐? 그런 거 아니었어?”

-하…….

이어폰 너머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우리가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요. 최대한 빠르고 완벽하게 끝내주세요.

“아아, 알겠어. 그렇게 하면 되잖아.”

염왕은 그 얘기를 귀찮은 잔소리쯤으로 치부하며 통신을 끊었다.

“결국 목표는 ‘그거’잖아? 그럼 당연히 멋있어 보이는 게 더 중요하지.”

그는 끝까지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쿵! 쿵!

그사이 수십 킬로미터 거리를 쫓아온 루킨이 땅을 울리며 거대한 형체를 드러냈다.

보통 같으면 그 정도 질량의 물체가 뛰어다니는 것만으로 땅이 내려앉아야 정상이겠지만-

수호령의 속성 자체가 땅 속성인 덕에 흙이 그 거구를 유동적으로 받쳐줬다.

덕분에 달리는 속도가 더 빠른 건 물론이고, 심지어는 하늘 위로 걷는 것도 가능했다.

후우우웅!

쩌렁!

하늘 위로 떠 오른 거인이 음속을 돌파해 굉음과 함께 떨어진다.

염왕은 그 공격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쓱 웃었다.

곧이어 오른손에 쥔 용광검을 치켜들고.

‘한꺼번에 집어삼켜라.’

다섯 마리의 화룡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뉘어 있는 화염의 용들을 하나로 뭉쳐 일순간 인공태양을 만드는 비기, ‘천광지귀(天光之貴)’.

용광검은 그 권능의 시동 열쇠였다.

콰우우우!

‘으음?’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화룡들의 결합 속도가 원래보다 현저하게 느리다.

콰우우우!

대량의 마나가 머리 위에 모여들고, 그와 함께 화룡의 결합으로 형성된 인공태양이 지금 날아오는 거인을 집어삼켜야 하는데.

무언가 이질적인 힘이 그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그 덕분에 천광지귀의 발동이 극심하게 지체되었다.

‘안 돼. 늦었다.’

다그다 모르의 곤봉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다.

염왕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결국 권능의 발동을 멈추고 방어에 전념하는 것뿐.

쩌렁!

천둥소리와 함께 염왕은 거인 아래로 깔려 들어갔다.

* * *

마물 발생 이후, 각국 정부는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각성자들을 상대하기 위한 전력을 갖춰야만 했다.

현존하는 모든 군사 병기에 대해 절대 우위를 가지는 각성자의 존재.

그건 곧, 개인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은 외부의 적과 싸우기 위한 군사력으로서의 각성자보다-

범죄를 억제하기 위한 공권력으로서의 각성자를 양성하는 데에 우선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그러한 투자가 러시아에서 빛을 발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대각성자 기동타격대.

지금 염왕의 권능 시전을 막은 이들의 정체였다.

“디스펠 완료. 코드 제로, 공격 성공.”

-계속 주시하면서 제어 바람.

“라져.”

흑복을 입은 특공대원들이 곳곳에 은·엄폐하고서, 염왕과 루킨이 싸우는 지점을 향해 총구를 조준하고 있다.

그들이 손에 쥔 것은 마나건과 완드가 결합된 특수한 마법병기.

그 무기를 이용해 방금, 권능을 무력화시키는 마법 ‘디스펠’을 사용했다.

“200명이 한꺼번에 디스펠을 사용했는데 무력화는커녕 겨우 지연시키는 데 그치다니…….”

“진짜 괴물인 것 같습니다. 저놈.”

염왕의 천광지귀는 이들로 인해 방해된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나머지는 각하께서 다 처리하실 거다.”

이것이 대각성자부대의 특징이다.

보통의 각성자들은 대량으로 밀려드는 마물들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화력 위주의 능력을 키우길 선호한다.

하지만 대각성자부대는 철저히 대인전, 그것도 각성자를 상대로 하는 데에 집중하는 부대.

제어, 방해, 기만 등 인간인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능력을 주로 갖추고 있다.

이들은 지금 이런 식으로 목표를 무방비상태로 만든 후, 나머지는 다른 공격수단에 맡기는 것이다.

염왕이 다시 일어선다 하더라도, 집중적인 디스펠 세례를 받아 루킨에게 허점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쾅! 쾅! 쾅! 쾅!

거인이 곤봉으로 땅을 연신 내리찍는다.

지축이 진동하고 대량의 흙들이 하늘로 비산한다.

저 아래에 깔려 있는 것은 어지간히 튼튼하지 않고서야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상황은 종료된 것 같군. 그럼-”

리더가 추가 명령을 받기 위해 현 상황을 보고하려 무전기를 든 찰나.

피잇.

새하얀 광선이 가로로 휘둘러져 기동타격대원들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빛이 되어 모두 사라졌다.

“걱정하지 마라. 여긴 내가 마무리하도록 하지.”

그 광선의 발원지는 바로 ‘성황’ 백선율의 손끝.

그가 통신기를 통해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검제에게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하아……. 알겠어요. 근데 너무 심하게는…….

그러더니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의 등 뒤에는 한 쌍의 하얀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쿠구궁. 쿠쿵.

불타는 도시.

끊임없이 들려오는 굉음.

전쟁이 난 것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 광경을, 백선율은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카메라. 피해라.”

그는 그 현장을 찍고 있는 벨그레이브 측 촬영자에게 경고를 보냈다.

그러고는 등 뒤의 날개를 크게 펼쳤다.

한밤중 모스크바 시내 위에 나타난 거대한 하얀 천사 날개.

그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째서인지 성스럽다기보다는 소름이 돋는, 기묘한 느낌이 들게 하는 광경이었다.

파아아앗.

곧이어, 그 거대한 날개로부터 무수한 별빛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신의 징벌.

그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무언가’가 지상을 뒤덮었고.

이윽고 모스크바가 자리해 있던 땅에는 황야만이 남게 되었다.

당연히 거기에 있던 붉은 광장과 크렘린궁도 사라졌다.

그 아래에 위치한 벙커도, 그리고 현 러시아 대통령도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데드맨 스위치가 작동했다.

파멸의 날 기계가 발동되었다.

* * *

“이런 건 원하지 않았는데…….”

북극해상에 토끼 가면을 쓴 흑발의 젊은 귀부인이 공간을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마존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희생시키면, 결국 우리의 대의도 무의미해지는 게 아닌가요?”

마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벨그레이브의 계획을 납득하지 못했다.

‘인류를 위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는 이중성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인류 전체를 지키려면 이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죠.

“하지만……. 좀 더 평화적인 방법을 쓸 수도 있잖아요. 칼리닌스카야 때문에 우리 조직이 외부에 노출되었다곤 해도, 그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고…….”

-마존 씨. 우리가 지금 그것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해요?

“네? 그럼…….”

-지금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패치노트를 빼앗겼어요. 그게 중요한 겁니다. 그 순간부터 우린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구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이아 경매의 낙찰자.

세계의 재벌과 갑부들의 모임인 벨그레이브보다 더 많은 다이아를 모을 수 있을 만큼 재력과 영향력을 가졌지만, 그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은 미스터리한 상대.

지금껏 자신들이 독점해오던 미래 정보를 그런 사람에게 빼앗겼다.

검제는 이런 위기에서 물렁한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

-그러니까 마존 씨도 이제 태도를 바꾸는 게 좋을 겁니다. 봐주면서 뭘 한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알겠어요.”

검제의 설득을 들은 마존이 결심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수평선 너머로 접근하고 있는 러시아 해군 선단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인류를 위해.”

그러고는 제 스스로 걸어놓았던 마나 하트의 제한을 해제했다.

세계의 붕괴와 왜곡을 가속시킨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봉인해 놓았던 힘.

그 힘을 오늘 이곳에서 사용할 작정이었다.

‘절대 영역 <서천꽃밭> 개방.’

권능을 발동하자 그녀의 눈앞에 균열이 발생했다.

그 균열 너머에는 꽃이 가득한 화려한 이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마존이 그 안으로 손을 뻗자, 지금 이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꽃 한 송이가 손에 쥐어졌다.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이건 운명이다.

거스를 수 없는 신운이자, 반드시 성사시켜야만 하는 과업.

휘익.

더 이상 거칠 것은 없었다.

그녀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무조신(巫祖神) 바리공주의 권능을 가감 없이 방출했다.

마존의 손에 쥐어진 수라멸망악심꽃에서 검은 연기가 퍼져 나갔다.

* * *

러시아의 수도는 파괴되었고 대통령을 포함한 수뇌부 다수가 사망했으며, 북방함대가 소멸했다.

또한 유일한 1급 칭호의 각성자인 루킨이 죽은 데다 대각성자 전력이 전멸하면서, 러시아는 벨그레이브에 대한 대항수단을 모두 잃었다.

이제 남은 건 사회를 붕괴시키기 위해 발사된, 수백여 발의 핵미사일들뿐.

물론 그것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벨그레이브는 특정한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많은 기업들의 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복 공격을 하는 게 불가능하고, 표적을 어디라고 추측할 수도 없다.

애초에 보복이 아니라 그냥 전 세계의 공멸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 수백 발의 탄도 미사일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조리 공중분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쉬이익!

콰앙!

핵미사일 하나가 공중에서 폭파했다.

콰앙!

그로부터 4초 후, 2만 킬로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는 또 다른 미사일이 파괴되었다.

콰앙!

그리고 만 킬로미터 거리의 미사일이.

또 5만 킬로미터 거리의 미사일이.

수초 이내의 시간 차를 두고 파괴된다.

의지에 응하는 검, 프라가라흐.

초속 최소 5천 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 검 한 자루가, 지구상에 떠 있는 모든 핵미사일들을 요격해 냈다.

그렇게 마지막 한 발의 미사일마저 무력화됐을 때.

러시아는 벨그레이브에게 사실상의 무장해제를 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가감 없이 라이브로 중계되었고.

사람들은 그 군사 대국을 깔끔하게 무너뜨린, 벨그레이브라는 집단에 대해 경외심과 공포심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그런 인류 앞에, 미스터리하지만 익숙한 인물, 검제가 나타나 선언했다.

-인류는 지금, 예측할 수 없는 미증유의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 위기 앞에서 우리는 단결해야만 합니다.

-국가는 더 이상 여러분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재난에서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오직 저희뿐입니다.

-지금 바로 벨그레이브 클랜에 가입하십시오.

-이것은 권유도, 강요도 아닌 호소입니다.

-마물들은 곧, 각성자 세계에 뛰어든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상을 지키고 싶다면, 각성자건, 비각성자건, 반드시 벨그레이브 클랜에 가입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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