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51화
“뭐?”
몸을 넘기라니.
당연하게도 난 그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결국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힘을 얻으려는 이유가 살기 위해서인데, 힘을 얻으려면 죽어야 한다?
인과관계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군.”
하지만 앙그라 마이뉴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진심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몸을 순순히 넘기면 너에게 자의식만은 남아있게 해 주겠다.
“헛소리하지 마.”
-나는 진심이다. 만약 거부하겠다면 강제로 빼앗는 수밖에.
그러더니 악마로서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강한 적의를 발산했다.
-그렇게 하면 넌 영원히 자의식이 소멸하게 된다. 그래도 괜찮나?
사실상 나를 죽이겠다는 협박.
그러나 난 거기에 굴하지 않았다.
“……할 수 있으면 해봐.”
저 말대로라면 내가 순순히 몸을 넘기면 자의식만은 남아 영원히 놈에게 기생충처럼 달라붙어서 살게 된다는 거다.
그게 결국 죽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그럴 바엔 차라리 의식마저 영원히 사라지는 편이 낫다.
저항조차 하지 않고 지레 겁먹어서 가진 것을 내주는 건 내 성미에도 맞지 않는다.
-그래.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찌잉.
“큭.”
갑작스레 극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마치 내 두개골을 안쪽에서부터 쪼개는 듯한 통증.
그건 단단한 육체로도 어떻게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끄으으윽……. 큭…….”
뇌가 타버릴 것 같다.
그 이질적인 무언가를 떼어내려 손을 머리 쪽으로 가져가 보지만, 뇌 안쪽에서 퍼져나오는 고통을 없애지는 못한다.
-네 몸은 내 거야.
이윽고 앙그라 마이뉴가 내 자아를 짓뭉개 없애려 하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난 그대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절대…… 안 돼.”
그저 인간에 불과한 내가 신조차 죽였던 악마에게 맞선다.
거대한 파도 앞의 나약한 존재.
그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결코 무릎 꿇지 않는 의지로 버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왜……. 저리 비켜! 그렇지 않으면 네놈은 영원히 소멸하고 말 거다!
생각대로 몸을 빼앗지 못하자, 놈이 다급하게 지껄였다.
“큭…….”
난 그 말을 듣자마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깐 지금 당장 소멸시켜 버리겠다면서?”
-이……!
“왜? ……뭐가 잘 안 돼?”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놈은 나를 소멸시킬 수 없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젠……장……!
“저리 꺼져.”
화아아악!
-크아악!
순간, 뇌압이 극한까지 상승하며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로 앙그라 마이뉴를 내 정신 밖으로 내쫓을 수 있었다.
-…….
더 이상 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 몸은…… 내 거야.”
뚝. 뚝.
방금 전의 압력 때문인지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물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난 나를 죽이려던 내면의 악마와 싸워서 승리했으니…….
……까…….
털썩.
* * *
그 일이 있은 후로 한 달이 지났다.
기절에서 깨어난 나에겐 더 이상 앙그라 마이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후우우우.”
깊은숨을 내뱉는다.
마나 호흡을 통해 내 안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힘을 제어한다.
울렁. 울렁.
몸 안에 응축되어 있는 거대한 힘에, 파장이 퍼져 나갔다.
그 힘은 당연히 마나는 아니었다.
지난번 전투에서 마나 하트를 잃으면서 그 안에 모아놓았던 모든 마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되었어도 기본적으로 각성자의 몸에는 조금이나마 마나가 쌓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지금 내 몸은 마나를 단 한 방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이 된 상태였다.
‘느껴진다. 무겁고 끈적한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나 호흡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마나 하트가 생겼을 때 깨우친 제6의 감각으로, 마나가 아닌 또 다른 이질적 힘을 통제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울렁. 울렁.
그 결과, 내가 생각한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용혈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마나를 통제하는 것과 같은 방식을 쓴다는 발상이 옳았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무거워서 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아.’
문제는 그 이상의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느낌이 뭔지는 알겠는데,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이 이상으로 성과를 얻으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앙그라 마이뉴는 이 몸으로 마르코시아스를 죽였다고 했어.’
그때 그 싸움은 내 몸으로 해낸 일이니 분명 나도 어떻게든 이 힘을 활성화할 수 있을 터.
그가 해냈다면, 나 또한 할 수 있다.
나는 앙그라 마이뉴의 도움 없이, 나름대로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똑똑.
“아델이에요.”
호흡에 집중하던 도중, 아델이 내 집무실을 찾아왔다.
“들어와.”
달칵.
난 그녀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그녀는 낡고 허름한 옷 대신 번듯한 귀족용 프록코트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허리춤에 사브르를 차고 있는 것이, 꽤나 그럴듯한 기사처럼 보였다.
“또 명상하고 계셨어요, 성주님?”
그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성주님’으로 바뀌었다.
원래는 나를 ‘전하’라고 불러야 한다는데, 난 그런 건 원치 않아서 그냥 ‘성주님’이라는 애매한 호칭으로 부르라고 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성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지시했다.
“그래.”
“성과는 좀 어떠신가요?”
“항상 똑같지. 느껴지기는 하는데, 움직일 수가 없어.”
“음……. 제가 뭔가 도움 드릴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는데.”
아델의 손에서 푸른 기운이 퍼져 나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그 기운을 나에게 건네주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나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지금 내 몸은 마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이건 마나가 아니니까.”
“아쉽네요.”
그녀는 어느새 마나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기사가 되었다.
성 관리 시스템에서 다이아로 소환한 최상급 검술 교관 NPC를 붙여준 덕에, 그녀의 성장은 매우 빨랐다.
지금은 마나 하트를 잃기 전의 내 능력을 훌쩍 넘어선 수준까지 성장해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내 최측근으로 있으니, 이곳에서 내 안전은 보장된 셈이나 마찬가지.
“그나저나,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지?”
“아, 그게……. 창고에 문제가 생겼거든요.”
“창고에?”
“성주님께서 직접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아요.”
* * *
나는 이곳에서 힘을 되찾음과 동시에 성주로서 성을 관리하는 일도 맡고 있었다.
괜히 그냥 방치해 두는 것보다는 어차피 내 땅이 된 김에 제대로 된 은신처로 만들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내 은행 계좌에 있는 돈 50억 원 중 10억 원을 200억 베트남 동으로 환전한 뒤, 200억 골드를 성의 금고에 집어넣었다.
그 결과 세율은 0%로 설정하면서도 각종 인프라 건설 및 복지정책을 펼치는 게 가능했고.
덕분에 이 성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 눈앞에 일어난 일은 바로 그 과성장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이게 다 뭐야?”
병영의 군수창고에, 나무 상자들이 가득 들어차다 못해 바깥마당까지 길게 늘어서 쌓여 있었다.
병사들은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그 상자들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성주님께서 잉여 자원과 노동력은 군수품 생산에 집중하라고 하셔서…….”
“그래서 이렇게나 많이 만들어 놨다고?”
“죄, 죄송합니다.”
군수 담당자가 쩔쩔매면서 머리를 숙였다.
“……아니, 죄송할 필요 없어.”
“……네?”
“잘했어. 계속 이렇게 하면 돼.”
그의 말대로, 나는 성내의 남는 경제 여력을 군수품 생산에 투입하는 정책을 썼다.
창과 칼, 활 같은 각성자 전용의 기초적인 냉병기들.
그렇게 한 이유는, 이 성에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성 운영으로 발생한 이익은 모두 실물로 전환해서 현실 세계에 팔고, 그 돈을 골드로 전환하면 엄청난 효율로 돈을 벌 수 있지. 주민들 입장에선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고.’
그렇게 전환할 실물 중에서도 가장 비싸게 팔릴 만한 것이 바로 무기.
창과 칼은 기본적으로 소모품이다.
쓰다 보면 낡고 닳아서 버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에테르 웨폰같이 유니크 중에는 자가수복하는 무기들도 있지만.
절대다수의 각성자들에게 그건 꿈같은 얘기고, 대부분은 이런 소모품들을 사용해야 한다.
‘하급 각성자였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 그렇게 유지비가 많이 드는 것도 주기적으로 무기를 사는 것 때문이었지.’
바로 그 소모품인 무기들이, 최하급에 속성 하나만 붙어도 하나당 차 한 대값의 가격까지 뛰었던 것이다.
현대전에서 각성자의 위상도 위상이지만, 군수기업들이 단박에 미사일과 총포 대신 각성자용 무기 제조에 역량을 집중한 걸 생각해 보면, 이윤 하나만큼은 보장되어 있단 소리다.
‘러시아의 로마노프 사가 대표적인 예시.’
그렇다면 나 또한 이걸로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마나건같이 현대적 아이디어가 포함된 무기를 빼면, 냉병기 제조 정도는 이쪽에서도 조건이 현대기업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각성자용 무기의 재료들은 자동화된 공장기계로는 가공이 불가능하고, 각성자인 사람이 직접 때리고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각성자가 특히나 제조와 관련된 권능을 발휘하는 수호령을 보유했다면 더더욱 성능과 품질이 좋아지는 것이고.
각성자가 할 수 있는 일은 NPC도 할 수 있으니, 이곳의 NPC들을 이용해 저가의 무기들을 대량으로 판매할 작정이다.
‘이걸로 올 연말까지 돈을 마련하면 되겠군.’
지금 나는 에테르 메탈 골격 때문에 순수활력 스탯이 과도하게 높아져서 레이드 참가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 때문에 큰돈을 마련할 구멍이 없어져 버렸는데, 이걸로 해결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로써 올 연말은 물론이고 내년, 내후년까지.
매년 있을 다이아 경매의 낙찰자가 될 수 있다.
미래 정보를 나 혼자 독점하려면 끊임없이 돈을 확보해야 한다.
“좋아. 그럼 너는 하던 일 계속하고. 아델!”
“네!”
“너는 나랑 같이 밖으로 나가자. 채비해.”
“알겠습니다!”
나는 쌓여 있는 무기 상자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인벤토리 보관량: 380,356 / 10,000,000}
다이아를 쏟아부어 확장한 덕에, 인벤토리에는 거의 한 컨테이너 분량의 무기 상자들을 집어넣고도 여전히 엄청난 여유 공간이 남아 있었다.
* * *
한편, 마르코시아스를 퇴치함과 동시에 던전에 나타났던 모든 이상 현상들은 사라졌다.
붉은 하늘도 사라지고, 오크 병사들은 물론 그쪽 오크들의 세계로 넘어가는 지하 통로도 막혔다.
그 부분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와…….”
“아델, 너무 두리번거리지 마.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넵!”
나는 아델과 함께 던전 밖으로 나와 런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복장은 진작 현대적인 복장으로 갈아입혔고, 장검 대신 품속에 숨길 수 있는 단검을 쥐여줘서 위장을 시킨 채였으나.
아무래도 현실 세계를 신기해하는 티가 영락없는 이세계 사람 같아 보였다.
‘그래도 아델이 옆에 있으니 안심이야.’
사실 아델이 성 점령 후에도 유용한 NPC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NPC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영역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지만-
작년 말에 생긴 클랜 시스템으로 인해 클랜에 소속된 NPC들은 클랜장과 함께 외부로 나가는 게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아델 같은 NPC를 내 편으로 만드는 건 무력도 엄청나게 뛰어나면서 배신할 걱정은 없고 충성도도 매우 높은, 신뢰성 높은 호위무사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용혈의 힘을 개방하지 못해 몸만 엄청나게 단단한 일반인인 나에게, 그녀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아무튼 그녀와 함께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던 나는.
띠리릭.
때마침 주머니에서 꺼낸 전화기에 벨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형님! 저 지금 도착했습니다!
“어. 나도 거의 다 왔다.”
오늘, 런던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진윤.
‘무기 거래 사업’을 하기 위한 파트너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형님!”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확 튀는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영국 런던 한가운데서 울려 퍼진 한국어에,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이쪽을 쳐다봤다.
“진짜 오랜만입니다!”
“그래, 오랜만…… 음?”
그에 아랑곳 않고 오랜만에 본 이진윤을 반갑게 맞이하려던 찰나.
그의 뒤로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이진윤과 함께 온 일행인 것처럼 보였다.
“넌……?”
“헤이! 신우! 오랜만이야!”
그녀는 레아였다.
{수호령: 마나난 막 리르(신화)}
머리 위에 신화 수호령의 표시를 달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