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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48화 (48/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48화

나는 지키지 못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보호하려 애썼지만, 야드가르를 구하겠다는 마음이 앞서 집 안에 숨어 있는 오크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눈앞에서 보고만 있어야 했다.

하지만 모나는 지켰다.

자신의 가족이 도시 어딘가에서 위협받고 있을 거란 불안감 속에서도, 그날 처음 본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끝까지 오크들과 맞서 싸웠다.

같은 순간.

나는 모나의 가족을 지키지 못했고.

모나는 나의 가족을 지킨 것이다.

‘그래서…….’

연달아 과거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밤늦게까지 야드가르와 함께 있었던 일.

가족을 지켜주겠다고 하니 표정이 어두워졌던 일.

그 모든 게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모나의 그늘이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호통친 거였었나.’

그녀는 그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아무 생각 없이 내 집으로 온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집으로 돌아가면 반갑게 맞이해 줄 가족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고.

텅 빈 집안에 홀로 남겨져 시간을 보내야 했을 나날들.

난 아내 한 사람의 빈자리만으로도 그토록 외롭고 힘들었는데.

다섯이나 되는 가족들을 잃은 모나의 심정은 어땠을까.

난 그녀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말았다.

그때 조금만 더 꼼꼼히 그 집을 수색할걸.

그때 조금만 더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볼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 봐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그날의 광경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전 괜찮아요. 벌써 다 떨쳐냈어요.”

그렇게 말하는 모나의 얼굴에는 여전히 그림자가 져 있었다.

“그런 상황들은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녀의 말이 마치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들렸다.

“모나……. 난…….”

난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려 했다.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해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모나는 내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래,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녀에겐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지금 같이 몸이 힘들 때라면 더더욱.

난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언젠가 시기가 좋아져서 그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땐 정말로 내 모든 걸 걸고 사죄에 힘을 쏟아부을 생각이다.

{사냥의 여신이 그녀와 너의 관계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그런데 그때, 사도가 된 후로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아르테미스로부터 계시가 내려왔다.

{혹시 네가 그녀에게 연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묻는다.}

난데없는 질문.

난 그 계시를 보자마자 즉시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이건 그저…….’

{자신에게도 그랬던 적이 있지, 하고 과거를 술회한다.}

하지만 신은 이미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신은 오리온이라는 인간 사냥꾼과 금단의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금단의 사랑?’

{그 사랑의 결말은 자기 손으로 쏜 화살에 자기 연인을 죽게 만든 비극.}

{너와 네 앞의 여자를 보면 꼭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고 한다.}

아르테미스가 다짜고짜 불길한 이야기를 하자,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

……라는 속마음을, 그대로 신에게 전할 뻔했다.

다행히 난 사도가 된 후에도 본심을 숨길 수 있었고, 공손한 태도를 절대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저는 여신님의 의지를 따를 뿐입니다.’

분명 저런 말을 하는 데엔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괜히 신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

{여신이 너의 복종에 흡족해한다.}

{보상으로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불행을 겪지 않도록 보호해 주겠다고 말한다.}

‘감사합니다.’

농락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 있다면,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 * *

내게 가호를 내린 신은 사냥과 궁술의 여신인 아르테미스.

그 권능 또한 당연히 활을 사용하는 것이다.

큐웅!

초록빛 광선이 내 손에 쥐어진 반투명한 활로부터 전방을 향해 뻗어 나간다.

콰아아아아!

그 광선이 훑고 지나간 경로 주변, 드넓은 범위의 공간이 한순간에 초토화되었다.

숲을 메운 나무들이 통째로 뽑혀나가고, 땅에 쌓여 있던 눈들이 하늘로 치솟아 눈보라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궤적의 끝, 광선이 목표로 한 지점에.

“커어억……!”

수십의 오크 병사들이 영문도 모른 채 휩쓸려 갈기갈기 찢겼다.

아르테미스의 화살.

궁술의 여신이 내려준 이 권능은, 실물이 없어도 무한정 사격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법의 활을 소환하는 정도의 권능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마나를 싣자,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저런 말도 안 되는 위력을 낸 것이다.

{여신이 너의 재주에 놀라워한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자신의 권능을 이토록 높은 수준으로 구사하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난 그저 신의 권능에 내 힘을 더해서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이고 강한 내겠다고 생각했을 뿐.

그래서 지난번에 내가 얻은 깨달음을 이 활에 적용해, 권능 그 자체의 힘을 마나의 정수로 증폭시킨 것이다.

한데 이걸 다른 자들은 이 정도로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저렇게 제멋대로인 아르테미스가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내 무기술도 꽤나 수위에 오른 것 같다.

“대장님, 여기.”

한편, 죽은 오크 무리의 시체를 살피던 모나가 작은 금속 조각 하나를 발견해 내게 내밀었다.

그건 노르드 왕국의 군인임을 증명하는 표식이었다.

“정찰대가 계속 보이고 있습니다. 이 근처에 삼엄한 경계로 지켜야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그런 것 같군.”

오늘로 두 번째다.

이전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적대적 존재는 마물이거나 오크 도적단뿐이었다.

당연히 우린 지금 숲을 가로지르는 비정상적인 경로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존재들만 마주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근방에서는 왜인지 오크족 정규군이 사람이 다니지도 않는 깊은 숲속까지 동초를 서고 있었다.

“어쩌면 거의 도착한 걸지도 모르겠어.”

부스럭.

그 말을 하는 내 눈에 선명한 흔적이 보였다.

그건 발자국이었다.

난 곧바로 그 발자국 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발자국……?”

모나도 내가 발견한 것을 알아본 듯하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게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듯했다.

“그걸 쫓아서 추적하기엔 어렵지 않을까요? 벌써 눈이 지나온 길을 다 덮어버렸는걸요.”

그 말대로,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하얀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는 건 겨우 몇십 발자국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나 내게 보이는 것은 그 이상의 흔적이었다.

“나한텐 보인다. 사람이 지나온 온기가.”

“……네에? 그게 무슨…….”

“사냥의 여신이 내려준 감각. 그걸로 느낄 수 있어.”

아르테미스는 그 별칭에 걸맞게, 단순히 활을 쏘는 것뿐만이 아니라 추적하는 능력도 나에게 부여했다.

덕분에 보통 사람의 능력으론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미세한 흔적까지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이 지나다닌 길 위에 남은 온기, 향, 그리고 꺾인 풀과 나뭇가지로 알 수 있는 정보까지.

지금의 난 도주하는 사냥감을 쫓는 포식자와도 같은 상태였다.

“우리가 찾는 목표가 멀지 않았다. 날 따라와라.”

“저 끝에 뭐가 있는 지까지 보이신단 말씀이세요?”

“그래.”

이 감각으로 추적 대상의 움직임과 행태는 물론이고, 의도까지 희미하게나마 읽을 수 있다.

거의 예지 능력에 가까운 육감을 얻은 것이다.

‘대규모 행렬을 호위하는 병력…… 거기서 갈라져 나온 정찰대.’

지금 이 앞에 쓰러져 있는 자들은, 도시의 사람들을 납치해서 ‘비프로스트’로 이동 중인 오크군이었다.

이제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 * *

덜커덩. 덜커덩.

마차 바퀴가 눈 아래 돌에 부딪혀 덜컹거리는 소리가 계곡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런 마차가 한둘이 아니라, 거의 수백 대에 이를 만큼 많아 고요한 산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거의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행렬.

나무 창살로 둘러싸인 마차 안에는 인간들이 묶인 채 갇혀 있고, 오크들이 그 마차를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가 찾던 납치된 사람들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생각보다 병력이 많아요. 우리 둘이서 저 사람들을 다 구출할 수 있을까요?”

모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저 행렬 안에 무장한 정규군의 숫자만 해도 어림잡아 2천은 넘을 걸로 보인다.

“적의 숫자도 숫자지만……. 고위급들 개개인이 가진 힘도 만만치 않군.”

게다가 저곳엔 상당한 실력자들이 다수 섞여 있다.

하나하나가 지금 내 옆에 있는 모나와 맞먹을 정도.

“저런 적과 정면으로 대결하면, 분명 희생자들이 다수 발생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저들 사이에 붙잡혀 있는 주민들이 걱정이다.

혹여나 전투 도중 서로 간에 투사하는 화력에 휘말린다든지, 아니면 인질을 삼는답시고 사람들의 몸에 손을 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벌어져선 절대 안 된다.

‘야드가르…….’

지금 저곳에 야드가르가 있다.

눈앞에 아들이 보이니 더더욱 그런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쩌죠? 그냥 이대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수도 없고…….”

“몰래 하나씩 제거해야지.”

“저 많은 적들을 다 암습하자고요?”

“아니, 저격으로.”

나는 곧바로 마법 활을 소환해 시위를 당긴 후, 마나를 화살촉 끄트머리에 일점 집중시켰다.

그리고 가장 후위에 서 있는 고위급 오크 전사를 향해 겨눴다.

한 사람만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을 낮춘 아르테미스의 활.

아까 전처럼 광범위한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공격을 했다간 구출해야 할 사람들까지 희생시킬 수 있으므로, 저격으로 하나씩 죽일 작정이었다.

‘저 많은 병사들을 이걸로 모두 죽일 수는 없어. 그러니 강자들부터 없앤다. 최소한 화력전이 될 가능성은 차단해야 해.’

저들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전까지,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상대 전력을 줄여야 한다.

피웅!

마법 활로부터 쏘아져 나간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다.

화살은 곧장 목표물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모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나. 너는 행렬의 전방으로 이동해라. 내가 화살을 하늘로 쏘아 올려 신호하면, 그때 적을 급습해라.”

“……네!”

그녀에겐 구구절절한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내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 이해했다.

내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피웅! 피웅! 피웅!

그러곤 행렬 중간중간에 섞여 있는 강자들을 향해 연달아 사격했다.

신의 가호로 얻은 고도의 감지 능력을 통해, 이 거리에서 어떤 적이 강자인지 색적하는 것도, 그 적들을 쉴 새 없이 빠르게 조준하며 저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사냥의 여신의 권능……. 지금 나에겐, 아니, 우리에겐 가장 필요한 권능이다!’

보통의 인간은 야생의 맹수와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사냥꾼들은 특별한 힘을 갖지 않고도 그 맹수를 거뜬히 잡아낸다.

숨고, 추적하고, 유인하고, 저격하는 것으로 말이다.

지금 오크라는 거대한 맹수와 맞서는 우리 인간에게, 사냥의 여신의 힘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부우우우-!

후위에서부터 오크들이 하나씩 죽어 나가자 혼란이 차츰 전위까지 전파된다.

그러다 마침내 모든 오크들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뿔피리를 불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피웅! 콱!

그러나 그땐 이미 모든 고위급 전사들이 저격당해 죽은 후였다.

쉬이익! 쩌렁!

다음으로 발사한 한 발의 화살은 적이 아닌 하늘을 향했고.

능선 위에서 공중폭파하며 굉음을 일으켰다.

쿠구구구.

‘모나. 지금이다.’

이어서 후위로부터 전염되어 앞으로 퍼져 나간 혼란은 행렬의 경계 방향을 반대로 뒤바꿨다.

이제 모나가 서 있는 곳이 적의 후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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