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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45화 (45/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45화

나와 시구르드는 제자리에 서서 몇 분 동안 서로를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이상한 정적으로만 보이겠지만.

그 사이에서 나는 벌써 몇 번이나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든 직후였다.

주고받는 투기만으로 행하는 공방예측.

그 몇백 수에 달하는 그 예측을 통해 내려진 최종 결론은.

‘이길 수 없다!’

나의 패배였다.

이런 상대는 처음이다.

사실 투기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이 정도의 공방예측이 가능할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이걸 실전에 사용한다면 적의 마음을 읽고 공격을 몇 수 앞에서 예상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되겠지.

그런 예측 능력은 싸움에서 나를 압도적인 우위에 놓이게 해줄 것이다.

지금 저 앞에 서 있는 대검을 든 오크 영웅, 시구르드는 내 능력의 한계를 한 단계 위로 끌어 올려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나를 끌어 당겨준 당사자가 나보다 더 위에 서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 그는 마치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명확히 알겠나? 넌 날 절대 못 이긴다.

그는 내 잠재력을 끌어올리면서 한계를 보여주어, 우열을 확인시켰다.

‘이길 수 없다……. 진다…….’

머릿속에는 비관적인 생각만이 가득했다.

내가 패배한다면 저 녀석은 나를 살려둘 것인가?

결투 끝에 사기가 떨어진 아군의 운명은?

그리고…….

‘야드가르.’

내 아들은?

이 등 뒤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내 칼끝에 달려 있다.

대결에서 패배하면 안 된다.

절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크 놈들이 했던 것처럼, 비열한 방법이라도 서슴지 않을 작정이다.

후웅!

예고 없이 칼을 휘둘러 시구르드에게 강한 검풍을 날렸다.

그는 가볍게 대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그 검풍을 흩어버렸다.

“선공이 어설프군!”

연이어 나를 향해 어깨를 부딪칠 기세로 달려들었다.

난 그 관성을 역이용해 옆으로 움직이며 부드럽게 한손검을 휘둘렀다.

검기로 더 날카롭게 다듬어진 빠른 참격이 놈의 어깨에 닿는다.

보통이라면 단숨에 피부를 찢고 최소한 팔 하나가 잘려나갔을 상황이지만.

카앙!

내 검기는 어깨에 닿자마자 튕겨 나갔다.

그를 감싸고 있는 기이한 돌풍이 내 마나를 완벽하게 상쇄시켜 버린 것이다.

‘저 바람…… 저걸 뚫을 방법이 없어.’

투기를 통한 공방예측에서도 도저히 파훼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힘이 느껴졌었다.

그게 바로 저 돌풍이었다.

‘저것도…… 신의 권능이라는 건가. 젠장.’

시구르드 본인의 힘이 아니다.

저건 완벽하게 성질이 다른 종류의 힘이었다.

이전에 만났던 ‘토르의 가호’로 무장한 녀석도 그것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정작 본신의 힘은 보잘것없는 녀석이었기에, 내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녀석은 실력 자체도 나와 비슷하거나 상회하는 수준인데, 신의 가호를 통해 그 이상의 보호까지 받고 있다.

당연히 나 혼자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 개같이 불공평한 세상!’

새삼 이 세상의 부조리함이 뼈저리게 와닿았다.

우리처럼 약한 자들은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는데, 저런 포악한 오크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신들이 보살펴주고 있다.

물론.

이제 와서 불평한다고 한들 바뀌는 것도 없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발버둥 치는 수밖에.

카카카카캉! 파캉!

짧은 시간 동안, 나와 시구르드는 무수한 참격을 서로 주고받으며 전장을 일직선으로 가로질렀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

상대는 그 압도적인 무게의 대검으로 나를 밀어붙였고, 난 뒷걸음질 치며 한손검으로 겨우 흘리듯이 공격을 막아내는 수준에 그쳤다.

‘조금만…… 더…….’

그 덕분에 이 대결의 장소는 점점 더 아군 쪽으로 옮겨져 갔다.

이렇게 밀리는 데에는 실력의 차이도 있지만, 일부러 이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도 있다.

어쨌든 상대는 내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명예 따위……. 하루하루 생존에 위협을 받는 우리에겐 목숨이 더 중요하다!’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든 순간, 난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모나!”

시구르드는 나를 향하고 있고, 그의 등 뒤에 모나가 서 있다.

그녀는 곧바로 내 외침의 의미를 알아채고 망설임 없이 이 결투에 끼어들었다.

전사의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 * *

목이 마르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타는 듯한 갈증과 극심한 두통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들다.

‘여긴…… 어디지……?’

주변을 둘러봤다.

더러운 벽과 바닥.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아주 작은 창문.

그리고 철창.

이곳은 감옥인 것 같았다.

내 몸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도록 팔과 다리를 뒤로한 채 단단한 사슬로 묶여 있었다.

어째서인지 난 누군가에게 잡힌 상태였다.

‘기억이…… 안 나…….’

어디서부터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도 알고, 아내를 잃고 아들 하나 남았다는 것까지 다 떠오르는 걸 보면 완전한 기억상실은 아니다.

차근차근 기억을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분명 내게 벌어진 마지막 사건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모나를 만났지…… 그리고…… 적이 쳐들어왔고…… 시구르드…… 아.’

한참을 생각한 끝에, 마침내 흩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완전히 맞춰졌다.

‘놈과의 결투 중에 모나를 끌어들였어. 그 순간…….’

시구르드의 눈빛이 달라졌다.

곧장 그를 감싸고 있던 돌풍이, 순식간에 그 전장 전부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하게 불어났다.

내 검기를 흩어버릴 만큼 거세게 몰아치는 그 바람이 말이다.

‘그게 전부…… 그곳에 있던 모두를 찢어버렸다.’

결국 내 판단은 틀렸다.

처음엔 아군 진영으로 끌어들여서 협공으로 시구르드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처음부터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놈이 본격적으로 개방시킨 신의 권능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던 것이다.

그가 그 힘을 진작 쓰지 않은 이유는, 그저 나와 순수한 검의 대결을 펼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권능이라는 게 적장 혼자서 대군을 휩쓸어버릴 수 있을 만큼 강할 줄이야……. 젠장.’

공방예측으로 느꼈던 벽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격차였다.

그건 말 그대로, 실력이 아니라 정말 힘 그 자체의 차이.

개미가 제아무리 잘 싸운다고 한들 인간 앞에선 무력한 것처럼.

진짜 신의 권능 앞에, 난 그저 초라한 미물에 불과했다.

“하아…….”

결국 내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무슨 수를 써도 나는 시구르드를 이길 수 없었고.

결투에 패배한 우리는 비참하게 당해야만 했겠지.

우릴 미워하는, 적의 신이 정해놓은 운명에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신세.

이보다 부조리한 일이 있을까.

‘……잠깐, 야드가르는?’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다시 아들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기억 속 시야에 비쳤던 상황으로 보아, 아군은 무슨 수를 써서도 오크군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시구르드 하나조차 잡을 수가 없는데, 그 뒤에 대기하고 있던 오크군을 상대하는 게 가능할 리가.

그렇게 되면 우리 뒤에 있는 도시는 적에게 무방비로 유린당했다는 뜻이고.

그 안에 있는 내 아들은…….

“안 돼! 야드가르!”

생각이 거기에 닿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

먼지가 목구멍을 가득 메워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야드가르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겠지. 살아는 있겠지.

최전방에서 싸웠던 내가 죽지 않고 이렇게 산 채로 잡혀 있는 걸 보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할 민간인들은 살려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여길 빠져나가서 돌아가면 아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철컹철컹!

전신을 포박한 쇠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깟 사슬쯤은……!’

체내의 마나를 양손에 집중해 힘을 가했다.

그러나 사슬은 전혀 미동도 없었다.

‘큭, 검이 없으니 힘의 집중이 안 된다.’

지금 내 손에 칼 한 자루만 쥐어져 있었다면, 이런 건 두부 썰듯이 단번에 잘라버릴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곳에 그런 건 없다.

‘이런, 젠장…….’

지금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달칵. 끼이이익.

그런데 그때, 내 눈앞의 철창문이 열렸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은 느껴졌지만, 엎드린 채 팔과 다리가 뒤로 묶여 있었기에 고개를 들어 위를 볼 수가 없었다.

난 지금 들어온 자의 발밖에 쳐다보지 못했다.

“…….”

그자는 안으로 들어와 한참 동안 가만히 서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목이 너무 마른데. 물 좀 가져다주지.”

하지만 그자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실망스럽군.”

익숙한 목소리.

그건 시구르드였다.

“내 친우와 싸워 이겼다기에 기대를 했건만…… 실력은커녕 명예조차도 없는 자였구나.”

“명예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너희 같은 놈들이 그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이나 있나?”

난 곧바로 그에게 대들었다.

이건 어떤 생각이나 계산에 의한 행동은 아니었다.

정말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그래. 그렇지. 네 말이 맞아.”

한데 예상외로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이제 더 이상 나도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게 됐지.”

“……뭐?”

“네가 말한 우리 종족이 저지른 그 온갖 더러운 짓들을, 나도 했으니까.”

난 그가 하는 말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알고 있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슨…… 무슨 소리야?”

그런 내 가슴에, 시구르드는 쐐기를 박았다.

“곧 전부 살해당할 거다. 그 도시에 있는 사람들 모두.”

“……뭐라고?”

“그중엔 네 가족과 친구들도 있겠지. 그들은 하나씩 차례대로, 순서를 기다리며 바닷속에서 죽어 나갈 거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부 죽는다고?

철컹철컹!

“이 개X끼! 무슨 개짓거리를 한 거냐!”

난 놈의 얼굴을 쳐다보기 위해 몸부림치며 고개를 들었다.

사슬이 벽에 고정되어 있는 탓에 몸을 뒤집어 누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허리가 끊어져라 억지로 머리를 위로 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겨우 시선을 위로 올려 아주 잠깐 보는 데에 성공한 시구르드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냐. 신께서 그리하라고 말씀하신 거야.”

“닥쳐!”

“오딘께서 사람들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하셨어. 이제 너희는 모두 그분의 곁으로…… 발할라로 가는 거야.”

소름 끼쳤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 퀭한 눈.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서도 웃고 있는 입.

그의 얼굴에는 죄책감과 환희가 공존하는, 기괴한 감정이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건…… 더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깨끗한 일이야!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내는 거니까!”

“개자식! 개자식!”

철컹철컹!

또 그놈의 신.

그 개 같은 존재들은 언제까지 나를 괴롭히려는 걸까.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한 신들도.

실체가 존재하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하는 신들도.

모두 하나같이 미친 것 같다.

* * *

정신을 집중한다.

체내에 흐르는 마나를 가다듬어 팔의 근력을 증폭시키는 과정을 행한다.

“후우우우.”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근육을 최대한 이완시켰다가 한 순간 급격하게 수축시킨다.

그와 동시에 순환하던 마나를 양 팔 근육에 한꺼번에 집중.

“흐읍!”

철그럭.

하지만 실패했다.

사슬은 그저 조금 소리를 내고 말았다.

‘젠장…… 이건 대체 얼마나 단단한 거야?’

평범한 금속이라면 이런 과정 없이 그냥 힘만으로도 진작 끊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강도가 남다르다.

무언가 특수 처리된 금속임이 틀림없다.

‘힘의 총량은 전보다 더 커졌어. 그런데도…….’

이곳에 묶인 채로 며칠 동안 하루 종일 마나 운용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오히려 힘은 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슬이 끊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아냐. 좌절하면 안 돼.’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강한 위력의 힘을 낼 방법을 찾는다.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한 수단을.

‘생각하자. 생각해 내자…….’

마나는 칼에 담았을 때 강하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엔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고, 쥘 수도 없었다.

‘만약 지금 내 손에 그 칼의 역할을 해줄 만한 무기가 있다면…….’

아니, 날붙이가 아니더라도 무기 하나만.

뭐라도 좋으니까 어떤 무기만이라도 쥘 수 있다면…….

철그럭.

바로 그때, 내 손에 뭔가가 쥐어졌다.

그건 다름 아닌 내 손을 결박한 사슬이었다.

‘……그래. 그거야.’

그 순간 이 난관을 헤쳐 나갈 방법이 떠올랐다.

‘사슬 그 자체를 무기로 쓰는 거야.’

지금껏 내겐 검만이 유일한 무기였다.

하지만 굳이 그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었다.

수단의 종류와 특성에 제약되지 않고, 어떤 형태가 되었든 그 순수한 힘의 본질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나는 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이건……?’

그렇게 사고방식이 바뀌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는 투신의 길이었다.

그 길을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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