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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44화 (44/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44화

모나는 나를 보좌하는 직속 부하가 되었다.

의외로 신전에서는 그날 이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사령관이 기지를 발휘해 신관들의 동의를 얻어낸 것도 크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나 조용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심지어 회의 중에 일으킨 내 행동도 문제 삼지 않았고.

‘하긴, 요즘 상황이 워낙 암울하니까. 자기들도 죽긴 싫었나 보지.’

거기엔 아무래도 최근 들어 오크들의 공격이 더더욱 격화된 탓도 있을 것이다.

사람 하나하나가 귀중한 전력인 이 시국에, 경전만 들먹이며 자기들에게도 해가 되는 주장만 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사실 애초에 여군이 존재하는 것 자체도 이미 그들이 한발 물러선 결과였다.

원래는 여자가 무기를 드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으나, 남자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간 탓에 그 자리를 여자로 채워나갈 필요가 있었던 것.

그때도 신전은 반대 의사를 내비쳤으나 오크들의 위협이 워낙 심각해서 결국 법령이 통과되고 말았다.

‘이제 점점 신전과 신관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야.’

실질적인 위험 앞에 저들의 헛소리와 망상은 계속해서 힘을 잃어간다.

애초부터 이렇게 해왔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를 텐데.

이렇게 다 잃고 벼랑 끝까지 몰리고 나서야 개선된다는 것이 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하면 돼. 차근차근 체계를 갖추고 힘을 키워나가서 다신 적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야드가르만큼은 반드시 지키고 말겠어.’

두 번 다시 잃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내의 죽음.

그런 비극은…… 절대로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하하하!”

“우와!”

늦은 밤, 나는 서류 업무를 마치고 뒤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모나의 인사와 관련해서 처리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 혼자 곤히 잠들었을 집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나?’

딱히 적대적인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들뜨고 행복한 감정.

오랜만에 집에서 밝은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 감정의 근원은 내게 낯설지 않은 인물이었다.

“모나?”

모나가 집에 와 있었다.

“아, 대장님!”

“지금 뭐 하는 거냐?”

“야드가르가 혼자 있어서요. 집에서 먹을 것 좀 가져와서 같이 나눠 먹었어요.”

“아빠!”

아들이 밝게 웃으며 내 품에 와 안겼다.

요 근래 본 적 없던 해맑은 표정.

아내가 죽은 후로 줄곧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는데.

오랜만에 아이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아빠! 나 오늘 누나랑 놀았어!”

“야드가르…….”

“책도 읽어주고, 장난감도 만들어줬다? 이거 봐!”

야드가르가 손에 쥐고 있던 나무 인형을 내밀었다.

단순하지만 꽤나 그럴듯하게 조각된 어린아이 모양의 인형이었다.

표면에 마나의 기운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검기를 사용해 깎은 듯했다.

“……그래?”

“응! 그래서 말인데…….”

야드가르가 마치 선물이라도 건네듯 그 인형을 내 손에 쥐여주더니, 해맑게 말했다.

“오늘, 누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

난 아들과 멀뚱히 서 있는 모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이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도 모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도 내게 허락받길 기대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안 돼.”

난 단호하게 그걸 거절했다.

“아빠아~”

야드가르가 한껏 아양을 떨며 나를 졸랐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모습.

마치 아내가 살아 있을 때를 보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모나가 그 빈자리를 채워줬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아니, 그래서.

더더욱 안 된다.

이래서는 절대 안 된다.

“야드가르. 방으로 들어가라. 당장.”

난 잔뜩 화난 표정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이건 적당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아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침실에 돌아갔다.

텅.

그렇게 방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후, 당황한 표정의 모나를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누가 내 아들을 봐달라고 했지?”

“자, 대장님…… 전 그저…….”

“지금 정신이 있는 거냐?”

“……죄송합니다.”

그녀는 내가 화를 내자 금세 머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 사과에 진정성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그걸 제대로 가르쳐 줘야 한다.

“잘 들어. 너는 내 강력한 주장으로 군에서 처음 여자가 고위직이 된 예외 케이스다. 기존의 규칙을 억지로 깨뜨려 가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네가 이렇게 내 집을 들락거리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 것 같나? 그것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죄, 죄송합니다.”

난 그녀의 선의를 이해하고, 또 고맙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잘못되었다.

모나는 이 나라의 변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구태의연한 관습을 타파하고 강대국이 되어 사방을 둘러싼 적대적 이종족들을 물리치려면, 앞으로도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와줘야 할 텐데.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추문에 둘러싸여 이도 저도 아니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나를, 아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일이 있어선 절대 안 된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돌아가는 동안 누구의 눈에도 띄지 마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녀는 내 명령을 듣자마자 조용히 집을 떠났다.

그러고는 신기에 가까운 보법으로 빠르면서도 은밀하게 도시를 가로질렀다.

저걸 보니, 더더욱 그녀의 재능이 낭비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 일이 있은 후로 야드가르는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당장의 행복을 위해 미래를 버릴 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게 되어 있다.

아들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아이의 행복을 희생시켜 지켜낸 그 미래가,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굳게 착각하면서.

“아흐리만 대장님!”

병사 하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내게로 뛰어왔다.

“헉…… 헉…….”

“무슨 일이지?”

“공격입니다! 오크군의 침공입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공격 소식.

이럴 땐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린 지금껏 수많은 경험을 했고, 그에 따라 많은 대비책들을 구비해 놓았다.

당장 도시가 급습당한다고 하더라도 지난번처럼 당하진 않을 것이다.

“침착해라. 어느 쪽으로 공격해 오고 있지? 적의 규모는?”

그런데 이번의 공격은 이전과는 조금 양상이 달랐다.

“정면입니다!”

“정면?”

“예! 그리고…… 적측 지휘부가 대장님의 출전을 요구했습니다.”

“대장? 누구? 나?”

“그렇습니다.”

놈들 입장에선 가장 피하고 싶을 나를 불러내다니.

난 그 길로 곧장 말을 몰아 전장으로 달려갔다.

“아흐리만!”

“호다바흐.”

해당 방면을 수비하고 있는 호다바흐 대장이 나를 맞이했다.

이곳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춘 병력이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 저 멀리에 있는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전황은?”

“보다시피. 전황이랄 것도 없네. 벌써 몇 시간 째 저렇게 진을 치고 가만히 있는 상태야.”

호다바흐가 오크 군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서 나를 불렀다던데.”

“그래. 지난번 전투 기억나나? 그 망치에서 번개를 쏴 대던.”

“아아. 기억나지. 토르의 가호를 받았다고 했나?”

“그래, 그래! 저놈들은 그자를 처치한 전사가 나오길 요구하더군. 바로 자네 말일세.”

“날 불러서 어쩌려고? 일대일 결투라도 하려고?”

난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진심이었다.

“그래. 맞았어. 결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 미치겠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일대일 결투라니.

지금까지 온갖 야만적인 짓거리는 다 저질러 놓고, 갑자기 고귀한 전사 행세라도 하고 싶어진 걸까?

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병사들은 물론이고 지휘관급들도 다들 나를 향해 간절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죽기 싫다.

그런 감정이 강하게 느껴졌다.

다 같이 싸우면 이기더라도 아군이 여럿 죽어야겠지만, 이 대결에 응하면 나만 잘하면 된다.

물론 저 더러운 오크 놈들이 정말 일대일 결투만으로 끝내줄지는 미지수.

‘내가 여기서 엉덩이를 빼려고 하면 사기에 영향을 미치겠지.’

하지만 이걸 거절했다간 내 명예는 둘째 문제고, 아군의 기세가 꺾이게 된다.

그럼 우린 더 참혹하게 패배할지도 모른다.

그럴 바엔 차라리 대결에 응하는 게 낫다.

이참에 내가 나서서 적 대장의 목을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래. 오히려 이건 기회야.’

난 항상 동등은커녕 열세인 상황에서 싸워왔다.

나보다 강한 적을 다수와 마주한 적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자진해서 그 모든 이점을 포기하고 일대일로 맞붙자고 하니, 내게 있어 이건 환영할 일인 셈이다.

“좋아. 내가 나가주지.”

난 모두에게 선언하듯 이야기한 후, 당당하게 아군 진영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내 등을 바라보는 병사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걸음걸이에 조금의 긴장이나 망설임이 비치지 않도록 애썼다.

“대장님.”

도중에 모나가 나를 붙잡았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누군데.”

“혹시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제가 도우러 가겠습니다.”

그녀는 지난밤에 내가 꾸짖었던 건 벌써 잊은 듯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그래. 부탁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에게는 내 뒤를 맡길 수 있다.

모나의 실력은 거의 나와 맞먹는 수준이었으니까.

적이 간교한 술수를 쓴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뒤를 봐 주고 있다면 안심할 수 있다.

‘혹여 내가 죽는다고 해도…….’

잠시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내 흩어버리고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 * *

나를 불러낸 적의 장수와 홀로 대면했다.

그는 내 키보다 더 크고 날 폭도 손 한 뼘은 될 듯한 거대한 대검을 짊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몸매가 다른 오크들에 비해 가는 편이라 검의 거대함이 더 돋보였다.

물론 몸이 가늘다는 건 골격이 같은 오크들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거고, 그 위에 붙은 근육은 여전히 우락부락했다.

“그대인가? 내 친우를 죽인 검사가.”

“그 녀석이 네 친우였구나. 거기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난 일부러 비꼬는 투로 말했다.

호흡을 흩뜨려 놓기 위한 심리전.

그자는 내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대가 유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 전투 중에 싸우다 죽는 건 명예로운 일이니까.”

“명예? ……아아.”

그 어이없는 단어에 난 더욱 비아냥대며 맞받아쳤다.

“그렇지. 아주 명예로운 일이지. 몰래 도시에 침입해서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약자들을 살해하고, 민가에 불을 지르고, 부모의 눈앞에서 어린이를 죽이는 짓들도. 안 그래?”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역시, 명예 운운할 때부터 알아봤다.

놈은 자기 종족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꼭 이런 순진한 놈들이 있다.

뒤에서 어떤 지저분한 공작이 행해지는지 모르고, 그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선이고 정의인 줄로만 아는 부류들.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이냐?”

“누구긴 누구야? 너희 오크 놈들 짓이지.”

“헛소리하지 마라! 우린 그런 더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글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네 주변 지휘관들 중에 뭔가 숨기는 놈들이 있진 않았는지. 뭘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 부대가 있진 않았는지. 병사들을 이상한 약에 취하게 한다거나.”

“…….”

통했다.

놈의 눈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걸로 조금이나마 이 대결의 승률을 높였다.

“……묻겠다. 네 이름은?”

그가 단단히 화난 표정으로 내 이름을 물었다.

“아흐리만.”

“아흐리만. 기억하지. 거짓으로 우리 종족 전체를 모욕한 대가를 단단히 치르게 해주마.”

“퍽이나.”

난 씩 웃었다.

왜냐면 저렇게 말하는 저놈의 표정도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못내 의연한 척, 마음속 불신을 다잡기 위해 비장한 대사를 읊는 게 우스울 뿐이다.

“나는 용살자 시구르드. 주신 오딘의 이름을 걸고, 너에게 단죄를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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