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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43화 (43/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43화

신화시대의 어느 날.

다시, 도시가 불타고 있다.

화르르륵!

“꺄아아악!”

“죽어라! 인간!”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전쟁은, 가면 갈수록 격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적의 수법이 더 악랄해져 갔다.

오크들은 정면에서 쳐들어오는 공격뿐만 아니라, 도시 내에 몰래 침입해서 민간인들을 공격하는 저열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국력을 가졌으면서도, 정면 전쟁으로 쉽사리 함락하지 못하니 이런 더러운 수까지 쓰는 것이다.

저들은 그야말로 종족 전체가 최악의 쓰레기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 안 돼! 여보오오!”

촤악!

저 앞에서 오크 한 마리가 중년의 남자를 잔혹하게 도끼로 살해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갔다.

“안 돼……. 아이들만은!”

중년 부인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오크 침입자는 그녀를 죽이려 도끼를 치켜들었다.

투콱!

하지만 도끼가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내 칼이 그놈의 몸통을 대각선으로 갈랐다.

“괜찮으십니까?”

“크흑…… 여……보…….”

다행히 부인의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남편을 잃은 충격에 그녀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정신이 없어 보였다.

눈동자엔 초점이 없고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상태에서도 본능적으로 아이들을 감싼 것이다.

“부인! 일단 안쪽으로!”

난 우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빈집으로 들여보냈다.

그러고는 창문을 닫고 출입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모두 막았다.

다행히 중년 부인은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이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고, 고마워요…….”

“아닙니다. 남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죽지 않아 다행입니다.”

쾅! 콰쾅!

밖에선 여전히 침입한 오크들이 날뛰고 있다.

난 부인의 앞에서 의연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계속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젠장…… 야드가르…….’

아들에 대한 걱정.

이 구역의 상황이 이 정도까지 악화되었다면 집 근처에도 오크 침입자들이 쳐들어왔을 터.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아들의 안위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부인, 모든 문과 창문을 막은 다음 절대로 나가지 마시고, 이 안에 계십시오.”

“네…….”

그녀는 간신히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몸에 힘이 없어 보였다.

바로 그때, 세 아이들 중 장남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앞으로 나섰다.

“엄마! 내가 엄마를 지켜줄게!”

야드가르보다 좀 더 커 보이는 그 아이가 씩씩하게 말하자, 한참 어린 두 동생은 뭣도 모르고 “나도!”라며 형의 행동을 따라 했다.

난 그 아이에게서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네 이름은?”

“파반드요!”

저 어린 애들이야 죽음이란 게 뭔지도 모를 만큼 조그마한 아이들이었지만, 파반드는 충분히 알 걸 다 알 정도로 큰 소년이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빠진 어머니를 지키겠다고 한 것이다.

정작 자신도 그렁그렁한 눈으로, 공포와 슬픔을 억지로 이겨내고 있으면서.

“그래, 파반드. 네가 엄마와 동생들을 지키거라.”

난 그 모습이 대견해 마치 아들에게 말하듯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넵!”

야드가르.

아직 죽진 않았겠지?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저씨!”

나는 중년 부인과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떠났다.

손을 흔들고,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하며 뒤로 돌았다.

‘야드가르…… 제발 살아 있어라.’

마음속에 불안감이 가득한 채,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꺄아아아악!”

그 집을 떠나고 채 열 걸음을 걸어가기도 전에,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방금 그 집 안에서 난 소리였다.

투콱! 투콱!

“어, 엄……!”

푸확.

중년 여성에 이은 아이들의 비명 소리.

끔찍한 타격음.

난 곧바로 방금 나온 그 집으로 되돌아갔다.

“젠장!”

문과 창문은 모두 닫혀 있다.

밖에서 안으로 통하는 길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쾅!

“크하하하!”

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가자, 광소를 흘리며 시신들을 마구 헤집어놓는 오크 한 마리가 보였다.

‘아뿔싸.’

아들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탓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집 안에 오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상을.

“이…… 개자식들…….”

이건 어떠한 전략적, 전술적 가치도 없는, 그저 악의에 의한 행동.

이런 짓을 할 바엔 차라리 밖에서 다른 공작을 펼치는 게 훨씬 가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민간인을 좀 더 죽이겠다고 집 안에 숨어 있던 것이다.

대체 왜?

대체 왜 오크들은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저 여기서 조용히 살고 있었을 뿐인, 신의 가호조차 받지 못하는 약하디약한 인간이!

“으아아아아!”

투쾅!

제어되지 않는 난폭한 참격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좁은 집안에서 터져 나오는 그 난참은 침입자 오크를 사정없이 찢어버렸다.

* * *

‘야드가르…… 야드가르…….’

적들을 헤치고 만신창이가 된 난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빌면서 온 힘을 다해 내달렸다.

화르르륵.

하지만 내 기도가 무색하게도, 집은 이미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안 돼! 야드가르!”

난 그걸 보고서도 현실을 부정하며 아들이 살아 있길 기도했고, 재빨리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크학!”

“이…… 이년이!”

그런데 집안에서 오크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끄악!”

철퍼덕.

오크 한 마리가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분리되어 내 발 앞에 떨어졌다.

“하압!”

곧이어 어떤 여자의 기합 소리가 들렸다.

철퍼덕.

그러자 다시 한 번 더, 두 동강 난 오크 병사가 나가떨어졌다.

기합의 주인은 처음 보는 얼굴.

큰 키에 큰 눈, 까무잡잡한 피부, 다부진 체격을 가진 땋은 머리의 여전사였다.

그녀는 내 아들, 야드가르를 품에 안은 채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며 오크들과 대적하고 있었다.

“야드가르…….”

“아빠!”

다행히 아들은 살아 있었다.

야드가르는 여자의 품에 폭 안긴 채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흐리만 대장님!”

나를 알아보는 것이나, 복장으로 보아, 그녀는 정규군 병사인 모양이었다.

“기다려라! 내가 구해주마!”

물론 안도감을 느끼기엔 아직 이르다.

나는 집안에 살아 있는 오크들을 빠르게 참살하기 위해 칼자루를 감아쥐었다.

“타아앗!”

“하아압!”

두 사람의 기합이 교차한다.

쉭. 쉬쉬쉭.

두 자루의 검이 교차하며, 네 마리의 오크 병사들이 거의 동시에 조각나며 쓰러졌다.

‘저건……?’

그 여군 병사의 칼날이 한순간 파랗게 번쩍였다.

검기.

신의 권능으로 무장한 이종족들을 쓰러뜨릴, 인간의 기적.

군내에서도 나를 포함한 소수의 최정예 전사들만이 사용하는 기예를, 그녀는 매우 능숙하게 사용한 것이다.

그것도 아들을 껴안은 채로.

“아빠! 흐어엉…….”

적들이 모두 쓰러진 직후, 야드가르가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아들!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어?”

“으응…… 난 괜찮아. 저 누나가 지켜줬어.”

“하아…….”

난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적의 침입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불안감에 휩싸인 채였는데.

야드가르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서 한숨과 함께 가슴을 메우고 있던 답답함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이봐, 너.”

“넵!”

난 내 아들을 지킨 그 여군 병사를 불렀다.

그러곤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을 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아, 아닙니다! 전 그저 어린아이가 혼자 집에 있길래…….”

이 순간만큼은 계급을 떠나 모든 걸 걸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이름이 뭐지?”

“넵! 저는 모나라고 합니다!”

“모나. 알겠다. 기억하고 있겠다.”

“영광입니다!”

난 그녀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하리라 다짐했다.

거기엔 물론 내 아들을 구한 것에 대한 답례를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검기를 나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구사했어.’

방금 전의 싸움에서, 그녀의 천부적인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절대 일개 병졸로 썩게 내버려 둘 인물이 아니라는 것.

모나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건, 그 이유가 가장 컸다.

* * *

“절대 안 됩니다!”

신관들이 막사에서 난동을 부렸다.

이곳은 군의 지휘관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

그런데 자기들 소관도 아닌 군 회의에까지 와서 억지 추태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모나 때문이었다.

나는 모나를 상급 전사로 진급, 아니, 임관시킬 것을 건의했다.

근거는 그녀의 실력.

그 정도면 충분했다.

검기를 쓴다는 건, 남들이 돌도끼를 쓸 때 혼자 강철검을 드는 것과 같은 의미였으니 말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높은 계급이라니요! 신께서 격노하실 일입니다!”

“경전의 말씀을 어길 작정입니까?”

그런데 신관들이 여기에 딴죽을 걸고 나섰다.

여자는 남자보다 위에 있어선 안 된단다.

모나가 상급 전사가 되면 그녀보다 아래 계급의 남자들이 생기므로, 임관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는 왕비조차도 명목상으로는 평민 남성보다 아랫사람이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평민이 왕비를 막 대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신분 체계를 이렇게 개판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신관 놈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병사는 우리 군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인재입니다. 이런 자가 일개 병사로 계속 배치되어 있도록 놔두는 건, 군의 입장에서 큰 손해입니다.”

당연하게도 군인들은 그딴 경전 말씀 따위보다 실리가 더 중요했다.

당장 하루가 멀다 하고 쳐들어오는 오크들에 의해 죽어 나가는 병사가 한둘이 아닌데, 도움도 안 되는 신의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경전을 어겨가면서까지 여자를 상급 전사로 기용하는 건, 결사반대입니다! 이 이상 우리 신관들의 의견을 무시하겠다면, 대신관님과 폐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하아.”

그들의 협박성 엄포에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저놈들이 저렇게까지 뻗댈 수 있는 건 다 왕의 총애를 받기 때문.

이 시대에 신앙은 백성들의 마약이나 다름이 없었고, 신전의 의지는 곧 민심과 같았으며, 동시에 왕권을 의미했다.

군의 입장에서 신전은 군량과 봉급을 마련할 기반과 동일시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다들 저런 어이없는 주장에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지만.

어디에나 각 집단엔 상식에서 벗어난 미친놈이 하나씩 있는 법.

그게 바로 나다.

“……아무짝에 도움도 안 되는 새끼들이 진짜.”

“음? 뭐라고?”

신관들이 두리번거리며 발언자를 찾는다.

난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니들이 진짜 괘씸한 게 뭔지 알아?”

“아, 아흐리만 대장!”

신관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순간 본능적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난 아랑곳 않고 계속 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차라리 다 없었으면 모르겠는데, X발 적들한텐 신이 있고 우리한텐 없다는 거야. 알아?”

“크, 크흠!”

“니들은 뭐 하는데? 왜 니들은 쟤네들처럼 신의 축복을 못 내리는 건데? 이 오크만도 못한 쓰레기들아.”

“이보시오!”

“대장! 거 말이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니오?”

신관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 와중에 나를 제지하는 군내 인사는 없다.

오히려 웃음을 참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 오크 신관들 반만이라도 좀 따라가 봐라. 어떻게 신관이라는 것들이 축복 하나도 못 쓰냐? 솔직히 말해봐. 기도는 안 하고 맨날 밖에 나가서 술이나 마시고 쳐 놀지?”

“크윽!”

“우, 우리도 열심히……!”

“그래?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관들 옆으로 다가섰다.

“우웃……!”

“잠깐, 잠깐!”

신관들이 깜짝 놀라며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떨었다.

이들은 지난번 대신관 병문안 사건 이후로 내가 얼마나 난폭하고 통제가 안 되는 인물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신관들은 나더러 교리에서 말하는 절대악인 ‘앙그라 마이뉴’라고까지 부른다고 한다.

스릉.

“그럼 한번 증명해 보자고.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나같이 불경한 자가 신실한 너희를 벨 수 없겠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그들을 향해 겨누며 말했다.

“히이익!”

“앙그라 마이뉴다! 악마가 우릴 죽이려 한다!”

그들은 이내 패닉에 빠져버렸다.

“아흐리만! 그만하면 됐다!”

그러자 이쯤에서 사령관이 내 행동을 제지했다.

주변의 다른 대장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말리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사령관은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 해당 병사, 모나는 상급 전사가 아닌 신설 직위 ‘살수’에 임명한다. 살수는 기존 계급체계와 별개의 위계를 갖되, 대장보다는 하위에 속한다.”

새로운 직위의 신설.

이건 모나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여군 중에 능력이 있는 자들을 이런 식으로 우회해서 기용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해당 살수는 아흐리만 대장의 직속 부관으로 임명한다. 이 정도면 되겠소?”

그리고 사령관은 그녀를 나에게 맡겼다.

내가 데리고 왔으니 내가 책임지라는 뜻.

물론 그뿐만 아니라 나라는 뒷배를 둬서 상급 전사와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게 하려는 속셈도 있다.

명목상으로는 어떠한 남군보다 위에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상급 전사에 준하게 만들어, 신관들의 입은 다물게 하면서 실리는 다 챙기는 실로 절묘한 제안.

“……크흠, 그렇게 한다면야…… 우리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과연, 방금 전까지 길길이 날뛰던 신관들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절충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칼을 뽑은 채 잔뜩 살기를 내뿜고 있는 내 눈치를 보는 영향도 없잖아 있겠지만.

“그럼, 결론은 난 것 같으니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소.”

사령관은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말이 나오기 전에 회의를 마쳤다.

신관들은 순식간에 끝나버린 회의에 뭔가 사기를 당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되돌릴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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