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42화 (42/348)
  •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42화

    나는 악마다.

    오랜 시간의 잠에서 깨어나, 마침내 육신을 되찾은 악마.

    사람들은 나를 앙그라 마이뉴라 부른다.

    지금부터는 내가 유신우, 이 자의 몸을 다스릴 것이다.

    쿵! 쿵! 쿵! ……쿠웅……!

    마르코시아스가 돌진해 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 장면이 점점 느려지더니.

    후우웅.

    곧이어 세상의 시간이 정지하며 의식은 깊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물질계와 에테르계,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내면의 심상세계로 미끄러져 빠진다.

    ‘……엉망이군.’

    그렇게 도달한 심상세계는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파괴되고 황폐화된 세상.

    이것은 지금, 이 몸의 망가진 상태를 대변하는 이미지였다.

    ───

    생명력: 3 / 3

    마나: 0 / 0

    근력: 1 (+ 0)

    활력: 1 (+ 0)

    반사 신경: 1 (+ 0)

    집중력: 1 (+ 0)

    의지력: 126 (+ 5)(+ 0)

    ───

    실제로 시스템의 영역인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봐도 알 수 있다.

    마나는 모조리 새어나가 0이 되었고, 능력치는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병자나 마찬가지인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쯧. 꽤나 열심히 한 것 같더니만.’

    지금까지 이 녀석이 쌓아온 무력이 한줌 재가 되어 사라졌다.

    아깝지만, 미련을 가진다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닐 테니.

    그래도 모든 걸 다 잃은 건 아니다.

    지금까지 흡수한 많은 숫자의 수호령들과 아지다하카의 힘.

    거기에 심장을 대체한 에테르 웨폰이 있다.

    이 정도면 다시 이 몸뚱이를 되살리기엔 충분한 재료다.

    콰르릉! 쿠쿵!

    그런데 그때, 갑자기 심상세계에 피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황량한 사막의 하늘에서 번개를 동반한 붉은 비바람이 쏟아졌다.

    쿠오오오!

    그와 함께 들려오는 광폭한 괴물의 울음소리.

    이윽고 먹구름 사이에서 그 울음소리의 원인인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콰릉!

    괴물은 세 개의 머리가 달려 있고, 비늘은 심연의 암흑과도 같이 새까맸으며, 등 뒤로 펄럭이는 날개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악룡 아지다하카.

    오직 파괴와 살육만을 위해 존재하는 괴물.

    ‘그래. 오랜만이구나.’

    나의 피조물이 이곳에 강림했다.

    ‘이리로 오거라.’

    난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오오!

    하지만 재회가 너무 오랜만이었던 것일까.

    아지다하카는 제 주인도 못 알아보고 날 향해 소리 지르며 마치 해치기라도 할 것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면 안 되지. 감히.’

    녀석에게 주인의 권위가 무엇인지 다시 기억나게 해줘야 할 것 같다.

    눈을 마주 보고서 악의를 발산했다.

    크오오오!

    그러자 내게 날아오던 아지다하카가 재빨리 비행 방향을 돌려 반대로 날아갔다.

    마치 맹수와 마주친 피식자라도 되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난 그것에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이곳은 이 몸의 심상세계.

    나가려 해도 결국 이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언젠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는 주인인 나에게 제대로 머리를 조아리겠지.

    그르르르.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래, 그렇지. 이렇게 해야지.’

    아지다하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서 그르렁거리며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렸다.

    난 그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것에게 명령했다.

    ‘너의 힘을 내게 다오.’

    쿠웅. 고고고고.

    그와 동시에 천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죽은 몸을 되살리는 개벽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 * *

    폭풍우가 멈추고, 황폐한 심상세계의 대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땅 아래로부터, 붉은 용암.

    아니, 붉은 피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콰아아!

    끈적하고 새빨간 액체는 곧이어 거대한 형상을 이뤘다.

    그건 아지다하카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드래곤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머리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 정도.

    크르릉!

    난 이내 그것의 정체를 간파했다.

    ‘마룡 파프니르인가.’

    지난번 시구르드의 영혼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과거 그가 섭취해 몸속에 자리 잡았던 파프니르의 드래곤 하트가 아지다하카의 특성인 악룡마공과 결합되었다.

    그 덕분에 이 몸은 핏속에 두 용의 힘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용의 힘이 둘이면 두 배로 세질 것 같지만, 실제론 서로 경합하는 성질로 인해 효율이 더 떨어진다.

    ‘파프니르 같은 잡룡의 힘은 필요 없어. 아지다하카의 힘만 남겨놓는다.’

    물론 그저 영적으로만 존재하던 아지다하카의 피를 이 몸에 섞었으니, 파프니르의 드래곤 하트는 제 할 일을 다 한 셈.

    어쨌든 난 체내의 피를 순수한 아지다하카의 것으로 바꾸기 위해, 눈앞에 나타난 파프니르 형상의 핏덩이를 소멸시켰다.

    파앗.

    손가락을 한 번 까딱하는 것으로 충분.

    심상세계의 모든 것은 이 몸의 정신체인 나의 의지대로 구현되거나 소멸한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이 몸에 영향을 끼친다.

    ───

    <악룡혈>

    -너의 몸에 아지다하카의 피가 흐른다. 용혈은 모든 힘의 원천이 된다.

    ───

    그로 인해 특성이 변경되었다.

    이제부터 이 몸의 에너지원은 아지다하카의 힘 그 자체다.

    ‘이제 뼈를 깎아야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저 강대한 힘을 자유롭게 운용하려면, 그만큼 단단한 기반이 필요하다.

    당연히 평범한 인간의 몸으론 불가.

    더욱이 지금의 이 몸처럼 허약해빠진 신체로는 용혈의 힘을 끌어내기는커녕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몸 자체도 완전히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때마침 내겐 그렇게 하기에 딱 알맞은 재료가 있다.

    그건 바로 내 가슴 속에 박혀 있는.

    ‘에테르 메탈.’

    사용자의 영혼에 맞춰 자유롭게 부피와 질량, 형상을 변형시키는 에테르 웨폰.

    그것을 이루고 있는 금속인 에테르 메탈을, 이 몸의 뼈와 장기로 강제 용조시킨다.

    쿠구구궁. 터텅. 쾅.

    황폐화되었던 지각이 뜯겨 나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은색으로 빛나는 단단한 금속들이 채워진다.

    하늘로 치솟던 붉은 피 분수는 그 금속 지각 아래로 흘러 들어갔고.

    곧이어 그 금속의 땅 위로 거대한 해일이 끼얹어졌다.

    메말라 갈라져 가던 심상세계의 토지 위에, 풍부한 마나의 바다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두근. 두근.

    곧,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뻥 뚫려 있던 가슴이 에테르 메탈로 채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연약한 인간의 장기와 골격이 모두 영혼의 금속으로 대체되었다.

    ───

    <에테르 메탈 골격>

    -당신의 뼈와 장기는 살아 숨 쉬는 영혼의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혼이 강해지는 만큼, 신체 또한 강화된다.

    ───

    이제 아지다하카는 자유롭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더 이상 시스템의 제약에 갇혀 맞지 않는 무기로 싸울 필요가 없다.

    {주무기가 <너클>에서 <모든 무기>로 변경된다.}

    {주스탯이 <의지력>에서 <모든 스탯>으로 변경된다.}

    {<중급 격투술>이 <파동 제어>로 변경된다.}

    균형을 벗어난다.

    ‘하나의 무기’, ‘하나의 권능’이라는 구속을 깨어 부순다.

    나의 시스템에 대한 간섭은 더욱 노골적으로 행해졌다.

    {주무기의 변동으로 인해, <에테르 피스트>의 귀속 형상이 <에테르 큐브>로 변형된다.}

    {아지다하카와의 동화율이 상승했다. 20.57%}

    {권능 <고통: 업화의 구>의 성취가 2단계로 상승했다.}

    쿠오오오오!

    이윽고 모든 준비를 마친 아지다하카는 하늘을 보며 울부짖었다.

    난 그것을 보며 나직이 되뇌었다.

    만신무장 본원회귀.

    악의의 전당.

    * * *

    시간의 정지가 끝나고 현실세계로 돌아온 이곳에, 흡수한 수호령들의 투영무구 여덟 자루가 소환되어 있었다.

    “우, 우와앗!”

    나를 안아 들고 있던 패트릭이라는 기사 놈이 갑자기 나타난 무구들에 깜짝 놀라 나자빠졌다.

    물론 난 간단히 착지.

    그리곤 그 기사에게 말했다.

    “저리 꺼져. 뒈지기 싫으면.”

    “……아, 알았어!”

    놈은 잠시 어벙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금세 걸음아 나 살려라 줄행랑을 쳤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으면 답답해서 죽여 버릴 뻔했다.

    -앙그라 마이뉴! 네노오오옴!

    쿵쿵쿵쿵!

    정면에선 마르코시아스가 달려오고 있다.

    난 그 녀석을 바라보며 씨익, 조소를 날려주었다.

    “무식한 개X끼 같으니라고.”

    -닥쳐라!

    후웅, 투쾅!

    놈이 그 더러운 주둥이를 잔뜩 벌리며 나를 향해 내밀었다.

    가히 음속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공격.

    실제로 주변의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허공을 찢는 폭음이 훨씬 더 컸다.

    “쯧쯧.”

    물론 그게 나보다 더 빠르다는 뜻은 아니다.

    난 이미 그놈의 머리를 밟고 서 있었으니까.

    -이…… 이…… 하등한 인간 놈이 감히 내 머리를!

    “제발 그 냄새나는 입 좀 닫고 말하지. 어차피 생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 않나.”

    푸콰콰콰콰콱!

    그 녀석이 고개를 치켜들려던 순간, 여덟 자루의 투영무장이 일제히 놈의 얼굴을 관통했다.

    콰앙!

    그 충격으로 놈은 턱을 그대로 바닥에 찧으며 납작 엎드렸다.

    -끄악!

    “이게 너와 나의 격의 차이다. 지금의 넌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시끄러어어어!

    촤아악!

    마르코시아스의 어깻죽지에 돋아나 있던 날개가 빠르게 쇄도해 왔다.

    당연히 그런 공격을 맞아줄 내가 아니었다.

    뻐어억!

    머리통을 밟고 하늘로 뛰어오르자, 그 자리에 날개 뼈대가 떨어졌다.

    자기 머리를 자기 날개로 내리찍은 것이다.

    “역시 멍청한 개X끼로군. 큭큭큭.”

    난 그놈을 한껏 비웃어주었다.

    -끄으으으……! 네놈……! 아깐 분명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당황한 감정이 있는 그대로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몇 십초 전까지만 해도 이 유신우라는 몸은 허약해빠진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악명 높던 예전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악마 중의 악마 앙그라 마이뉴.

    오히려 깜냥도 되지 않는 것이 시스템에 강제로 간섭까지 해 가며 하계로 내려오느라 힘을 잃어 놓고-

    이제 와 나를 상대하겠다고 설치는 저놈이야말로 간이 부은 것이다.

    -이럴 리가…… 없어……!

    “그만 나불거리고 이제 끝내지. 만약 아직 남겨둔 필살기 같은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꺼내는 게 좋을 거다.”

    난 지상에 착지해 눈앞의 대악마를 끝장낼 최후의 공격을 준비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뛴다.

    에테르 메탈로 이루어진 단단한 혈류 펌프가 전신에 진한 용혈을 순환시킨다.

    마치 혈관 속에 벌레라도 들어간 것처럼, 전신의 모든 핏줄이 징그럽게 꿈틀거린다.

    꾸드드득. 꾸드득.

    곧이어 몸 주변에 미세한 입자가 모여드는가 싶더니, 그것들의 양이 점차 늘어나 내 몸 전체를 집어 삼킬 만큼 많아졌다.

    이윽고 덩어리진 입자 뭉치들은 일정한 형태를 이루기 시작.

    검은 비늘과 날개와 발톱과 이빨.

    웬만한 건물보다도 더 큰, 이 거대한 생물의 형상이 조형되는 데는, 채 1초가 걸리지 않았다.

    콰득. 콰드득.

    그리고 나는 그 형상 안에서 내 의지에 따라 이 거대한 껍데기를 움직이는 코어가 되었다.

    그것은 현실에 실체화된 악룡 아지다하카였다.

    쿠구구궁.

    -큭……. 큭큭…….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을 본 마르코시아스가 날 비웃기 시작했다.

    -네놈도 결국 허풍이었구나. 진짜 모습이랍시고 내놓은 게 그따위라니!

    아까 전의 그 당황하던 기색은 온 데 간 데 없는 태도.

    저놈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이곳에 실체화한 아지다하카가 너무나도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아직 완전한 실체화는 무리인가…….’

    하반신은 없고, 가슴 아래로는 마치 뜯겨 나간 것처럼 갈비뼈와 내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날개도 오른쪽만 돋아나 있으며 세 개의 머리 중 제대로 형성된 것은 중간 하나뿐.

    이래서야 그 파괴와 살육을 일삼던 포악한 삼두용의 위용을 어떻게 내보일 수 있을까.

    -그래, 좋다. 끝장을 보자꾸나!

    아니나 다를까 저 무모한 들개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자신감에 가득 차 땅에 발을 구르며 지껄였다.

    -오늘의 그 추한 낯짝을 영원히 기억해주마!

    하지만.

    “이 모습으로도 충분해. 등신아.”

    콰직!

    난 악룡의 오른쪽 앞발로 그 개의 주둥이를 붙잡았다.

    -커헉!?

    날지도 못하고, 뒷발이 없어서 서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그냥 뼈와 내장이 드러난 상반신을 그대로 바닥에 질질 끌며 다가가 한손으로 잡았을 뿐.

    “잘 가라.”

    어느 새 내 눈앞에 아주 작은 정육면체 금속 하나가 나타났다.

    아까 전 에테르 피스트를 강제로 변형시켜 만들어낸 에테르 큐브.

    그것이 파랗게 빛을 내뿜더니.

    촤르르르륵!

    한 자루 한 자루의 크기가 이 아지다하카의 몸집보다 더 거대한 칼과 창, 활들로 변화했다.

    -아…… 안 돼!

    악의의 전당.

    영웅의 무구들이 한꺼번에 날아들어, 나에게 도전한 비천한 대악마를 갈기갈기 찢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