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40화
성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 나는 우선 금고에 들어 있는 보상부터 확인했다.
{미귀속 에테르 웨폰}
그건 회색의 야구공만 한 금속 구체였다.
겉보기엔 아무런 기능도 없는 쇠 구슬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걸 소유하는 순간 제 모습을 드러낸다.
{에테르 웨폰을 당신의 영에 귀속시키겠습니까?}
“그렇다.”
파앗.
메시지에 대답한 순간, 쇠 구슬에서 빛이 퍼져 나오며 모양이 변형되었다.
그것은 곧 내 손에 꼭 맞는 한 쌍의 검은 장갑이 되었다.
{에테르 피스트}
‘이걸 벌써 얻다니.’
이로써 지금 난 사실상 최강의 무기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내년에도 ‘패치’라는 명목으로 세상이 변화하며 어떤 새로운 물건들이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런 게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에테르 웨폰이 더 우월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건 주인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함께 성장하는, ‘성장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능력치가 일정한 수치로 결정된 다른 무기와 비교하면 한도 끝도 없이 강화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최강 무기라 해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성장 도중에도 그 주인이 착용 가능한 무기와 비교했을 때 월등히 우월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고.’
───
<에테르 피스트>
분류: 너클
속성: 무
물리 타격 B
마법 타격 B
───
지금껏 사용하던 ‘아이나르의 세스터스 레플리카’가 물리타격 트리플 D등급이었는데.
이건 그에 비해 무려 네 단계를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물론 기존 것이 내 성장 속도에 비해 너무 떨어지는 물건이긴 했다.
그래도 저것조차 레이드 던전의 암시장에서 구입한 특수 무기임을 생각하면, 이건 그야말로 어떤 유니크 무기도 부럽지 않은 수준.
‘에테르 웨폰을 쓴다는 건 스탯이 오를 때마다 그 수준에 맞는 가장 강력한 유니크 무기를 쓰는 거나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무튼 이걸로 당초의 제1 목표는 달성됐군.’
이 무기를 손에 쥠으로써, 내가 알포드 성의 성주가 되려는 가장 큰 이유를 벌써 달성해 버렸다.
솔직히 이쯤에서 난 돌아가기만 해도 충분한 수확을 얻은 셈인데, 문제는…….
‘하지만 집에 가려면 그 괴물 놈들을 처치해야겠지.’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난관은 지금부터 시작.
난 집무실에 서 있는 오크 하나를 흘끗 쳐다봤다.
“그락!”
놈은 나를 쳐다보며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복장은 이름 모를 동물의 뼈로 만든 갑옷과 거대 도끼를 차고 있는, 이질적인 모습.
그럼에도 그 태도만큼은 영락없는 인간 군인의 그것이었다.
“하…… 넌 인간 말을 못 하나?”
“아크, 토토후 도록!”
한데 이상하게 점령 후에도 이것들과는 도무지 의사소통이 되질 않았다.
이놈들은 내게 우호적인 행동을 하고는 있지만, 언어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인간 NPC의 말이 각성자의 모국어에 따라 자동 번역되어 들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역시 내가 이곳으로 건너온 것 자체가 예외적인 현상이라 그런 건가.’
지금의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흠…… 제자리에 앉아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저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저들은 내 말을 알아듣는다는 점이다.
“그락!”
오크가 아무런 손짓도 섞여 있지 않은 내 말만을 듣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이건 지금 내가 하는 언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 좋아. 너희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상관없어. 어차피 너희랑 계속 얼굴 맞대고 살 생각은 없거든.”
“카 하쿰?”
“성 내에 있는 모든 전투 병력을 지하 감옥 앞으로 소집시켜. 수비군도 남기지 말고 하급이건 상급이건 계급 상관없이 싸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그락!”
난 인간 세계의 알포드 성을 점령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모든 오크들을 이끌고 갈 생각이었다.
* * *
“으아…….”
아델이 비좁은 지하 감옥 안에 끝도 없이 들어차 있는 오크들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병력은 약 500여 마리.
그중에 인간 기사급으로 보이는 전사들만 해도 거의 4, 50마리에 달한다.
“이 괴물 놈들을 진짜 데리고 오다니…… 너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구나.”
그 야만스러운 오크 족의 대병력을 완벽하게 통솔하는 내 앞에서 압도당한 건 패트릭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르쿠스 전하보다 네 밑으로 들어가는 게 훨씬 낫다고 느껴질 정도다.”
저 능글맞은 기사 녀석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말 다 한 셈이다.
그런데, 저렇게 말하는 것치고 그는 아직까지도 내 클랜원이 되지는 않은 상태다.
마을 주민 NPC들은 그저 아델을 ‘돕는다’는 판단을 한 것만으로 내 클랜원이 되었다.
하지만 패트릭은 그런 수준을 넘어 아델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데도, 클랜원이 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속으로 딴마음을 품고 있는 건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시스템상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막상 행동 자체는 나를 충실히 잘 따라주고 있으니 그게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지만.
확실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일단 넘어갈 수밖에 없겠군.’
우선은 눈앞의 융합체들을 제거하는 게 시급하니, 그런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어쨌든 나는 오크 군대의 맨 앞에 서서 진격할 준비를 했다.
“영웅님!”
“음?”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찰나, 아델이 내게 말을 걸었다.
“오크들을 앞으로 보내고 영웅님이 뒤로 오시는 게…….”
그녀는 최전방에서 뛰어들려는 나를 보고 걱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굳이 맨 앞에 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니. 내가 맨 앞으로 나간다.”
“하지만…….”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알겠습니다.”
아델은 내 명령을 따르긴 하지만, 못내 걱정되는 표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좁은 통로. 마수 융합체와 홀로 부딪혀서 돌파할 수 있는 전력은 나밖에 없어.’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건 영웅 심리가 아니라 지형적인 문제 때문이다.
지금 지상으로 나가는 길목엔 융합체들이 가득히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일 터인데.
개별로는 저것들을 상대하지 못하는 병사들을 좁은 통로로 내보내는 건 손해만 자초하는 일.
그러니 차라리 내가 맨 앞에 나가서 융합체들을 상대하며 시간을 버는 사이, 나머지 병력이 올라오게 만드는 게 훨씬 낫다.
저 많은 병력으로 다수의 이점을 누리려면, 최대한 안전하게 넓은 공간으로 빼낸다는 과제가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간다.”
쾅! 콰르르.
난 입구를 막고 있던 잔해를 치웠다.
에테르 피스트를 장착했기 때문인지, 악룡의 발톱을 사용해 돌들을 치우는 게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가벼웠다.
금세라도 주먹이 날뛸 것처럼 양팔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모두 지상으로 올라간다!”
“그라아아아아악!”
그리고 명령을 내리자, 내 뒤에 서 있던 오크들이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소리 질렀다.
솔직히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당장에라도 뒤로 돌아 저것들을 모두 도륙 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증오심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지금 내 적은 저 마수 융합체들이다.
* * *
타타타탓!
‘화조참 갈라틴.’
화아악!
전력으로 달려 나가며, 길게 뻗어 나온 태양빛 발톱을 일직선으로 내질렀다.
고열의 칼날이 좁은 통로를 가로질러 저 앞에 서 있는 들개 형상의 괴물 몸통의 한가운데에 꽂힌다.
“끼이익!”
마수 들개는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난 그대로 멈추지 않고 달려가 왼손 주먹을 내질러 지상 입구를 막고 있는 그것을 날려버렸다.
콰앙!
‘가볍다. 동시에 묵직하다.’
주먹을 타고 전해져 오는 기분 좋은 감각.
새로 얻은 무기의 우월한 성능이 여실히 느껴진다.
“크르르……. 커헝!”
물론 지금은 그런 감상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바깥으로 올라오자마자, 입구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마수융합체들이 내 주위로 포위진을 펼치며 달려들었다.
‘혈검기 루인.’
난 그것들을 향해 양손을 교차시키며 크게 휘둘렀다.
흩어지지 않고 가슴에 남아 있던 참격파동이 날카로운 혈류로 화하여 거대한 십자 칼날이 되었다.
콰드드득! 콰직!
정갈하게 다듬어진 검이 아니라, 손톱으로 짜낸 투박한 검기.
융합체들은 그 지저분한 검기에 잔혹하게 살갗이 갈려 나갔다.
‘마지막.’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괴물들에게 남은 건, 이 강대한 참격파동 연계기의 최종 시퀀스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것뿐.
‘재귀참격파동발산기.’
‘적룡초환 아론다이트.’
쉬이익!
증폭되어 공명하는 참격파동의 힘을 오른손에 담아, 전방을 향해 강대한 베기를 펼쳐낸다.
그러자, 그 궤적을 따라 붉게 물든 마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콰콰콰콰콰.
마력은 곧이어 정교하게 조각된 거대한 붉은 용의 형상을 이루며 뭉쳤고.
마치 지금 여기서 살아 숨 쉬는 듯 날개를 펄럭이는 그 형상은, 공간 전체를 한 아름에 품듯 눈앞의 모든 것들을 분별없이 휩쓸었다.
콰아아아!
용이 지나간 뒤에 이곳에는.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융합체도.
바닥을 뒤덮은 카펫과 대리석도.
내성을 화려하게 꾸민 모든 장식품도.
모두 소멸하고 시스템으로 보호받는 앙상한 외벽만이 남아 있을 뿐.
“이거 장난 아니잖아?”
에테르 웨폰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이 기술 자체가 이렇게 위력이 강력한 건지.
어느 쪽이든 확실히 원래 내 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강력한 힘을 얻은 건 확실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융합체 겨우 한 기를 잡았던 것과는 달리, 오늘은 광역 공격으로 수십 기를 한꺼번에 휩쓸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라아악!”
그사이 내 뒤의 지하 감옥 입구에서 오크 군대가 몰려 올라왔다.
좁은 통로에서 하나씩, 차례로 올라오던 그들은 어느새 방 안 전체를 가득 메울 만큼 충분한 수가 모였다.
“공격! 사전에 내가 지시한 대로 움직여!”
“그라아악!”
여기서부턴 미리 일러두었던 전략대로 움직인다.
양방향 소통이 되지 않으니, 상황에 따른 유기적인 전술 변경은 힘들지만, 기본적으로 네 개의 구역을 나눠서 일시 타격한다는 기본전략 정도는 실행할 수 있다.
쿠구구구궁.
일제히 움직이는 대규모 오크 병력의 발걸음에 마치 성 전체가 울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델, 패트릭. 너희는 최대한 전투를 피하면서 체력을 아껴.”
“넵!”
“알았다!”
소모품으로 활용하는 건 오크들.
이 공성전에서 인간은 최대한 싸움을 자제한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 * *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던 바로 그 순간부터.
더럽고 찝찝한 무언가가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여름, 불쾌지수가 극에 달한 대낮조차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만큼 더러운 기분이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이 기분 나쁜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 순간마다 새로이 드러나는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했고, 때로는 그 문제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기도 하며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갔다.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서.
어찌 보면,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게 생겼던 걸지도 모르지.
어떻게든 빨리 알포드 성을 점령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 현상이 끝난다는 근거도 없으면서 말이다.
물론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내 판단과 행동은 틀리지 않았다.
오크 군단을 내 것으로 만들고, 에테르 웨폰을 얻고, 인간 세계의 알포드 성을 점령하는 것까지.
이 안에서 내 손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가장 빠르고 이상적인 방법으로 갖춘 셈이다.
다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내가 한 일들 모두가 군더더기 없이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주해야만 하는 운명은 그것조차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릴 만큼 압도적인 절망이라는 것이.
억울할 정도로 불가피한 패착이었다.
-앙그라 마이뉴! 네놈을 기다렸다!
{악의가 대악마 마르코시아스의 부름에 격렬히 반응한다.}
붉은 하늘에서 내려온 늑대 형상의 대악마.
저건 지금까지 내가 잡아먹어 온 미니언 따위와는 격이 다르다.
그 미니언들은 그저 대악마가 다스리는 군단의 수만 마리 잡졸 중 하나였을 뿐.
“아…….”
털썩.
그것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난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마나하트가 소실되었습니다.}
{최대 마나량이 영구적으로 1 감소합니다.}
{최대 마나량이 영구적으로 1 감소합니다.}
{최대 마나량이 영구적으로 1 감소합니다.}
{최대 마나량이 영구적으로 1 감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