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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9화 (39/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9화

다시 통로를 반대로 걸어 나갔더니, 융합체가 가득한 원래의 성이 나타났다.

즉,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온 게 아니며, 이 통로의 양 끝은 전혀 다른 장소라는 게 입증된 셈이다.

“어떻게 된 거야?”

난 패트릭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그가 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게 눈앞에 나타났으니, 의심스러울 만도 했다.

물론 아까 전 그의 반응으로 보나, 벌어진 상황으로 보나 의도적인 함정 같은 거라고 볼 수는 없긴 했다.

“그건 나도 잘…….”

“똑바로 말해. 알면서 모른 척한 거야? 아니면 모르면서 아는 척한 거야?”

“그 둘 다 아니야. 내가 예전에 갔을 때는 그냥 바깥의 강과 연결된 지하수로가 나왔다고!”

“예전에 저길 가 본 적이 있었다고?”

“그래. 그땐 초임 기사들을 밤중에 저 통로로 혼자 보내는 담력시험 같은 게 있었는데…….”

“그딴 되도 안 한 전통 같은 건 관심 없고. 그래서 저번에 갔을 때와 이번이 다르다는 건가?”

“그래! 미리 얘기해 두지만, 길을 잘못 든 것도 아니야!”

‘비밀 통로가 갑자기 바뀌었다…… 그것도 하필 오늘.’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저것도…… 시스템의 이상 현상과 관련이 있는 증상이라는 건가.’

붉은 하늘.

마수 융합체.

거기에 덧붙여 왜곡된 공간까지.

이 모든 이례적 현상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인이야 그렇다 치고. 문제는……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건데.’

[신호 없음]

여기선 전화도,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하다못해 단서가 될 만한 정보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

‘결국, 내 순수한 힘만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건가.’

생각을 정리한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

비좁은 지하 감옥.

아델을 포함한 23명의 NPC클랜원.

패트릭이라는 이름의 기사.

그리고 나.

꼬르르륵.

“하…… 배고파.”

“조용히 해. 여기서 너만 배고픈 거 아니니까.”

“하지만 힘이 안 난다구…….”

한창 생각하던 도중, 클랜원들 사이에서 탄식이 들려왔다.

오늘 하루 종일 싸우고 도망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전투라는 게 30분만 지속해도 체력이 바닥날 정도로 격렬한 운동인데, 그걸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여기서 에너지를 보충해 주지 않으면 뭘 해보기도 전에 모두 퍼져 버릴 것이다.

‘식량을…… 그래.’

그런데 그 순간, 내게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을 다 해결해 줄지도 모를 비책이 말이다.

“먹을 걸 구하러 가자.”

“네? 지금요?”

아델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옆에 있던 패트릭 역시 같은 얼굴이었다.

“밖엔 융합체들이 득실거리고,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

“저쪽으로 건너가는 거야.”

“저쪽이라면……?”

“오크들이 있는 곳. 저놈들도 저기서 거주하려면 식량이 있어야 할 것 아냐.”

“이봐, 지금 오크들이 먹는 걸 빼앗자는 소린가?”

패트릭이 끼어들었다.

“맞아.”

내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강하게 항의했다.

“말도 안 되는…… 인간이 어떻게 마물이 먹는 음식을 먹나!”

“먹기 싫으면 먹지 말든가.”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아델 또한 그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냥 품위 운운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오크들이 먹는 음식을 우리가 먹어도 되는 건지 모르잖아요.”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역시 레이디와 난 죽이 잘 맞는군!”

“저리 가시죠.”

“아하하…….”

확실히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저들이 먹는 음식이 우리에겐 극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걸 함부로 집어 먹었다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다른 방법이 있나?”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다.

“어차피 여기서 가만히 있다고 하더라도 죽는 건 마찬가지야. 이대로 갇힌 채 말라 죽든가, 오크들의 음식을 먹고 죽든가. 적어도 후자에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잖아.”

“음…….”

어쨌든 시도라도 해보는 게 가만히 앉아서 죽는 것보다는 낫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반박을 떠올리지 못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납득했겠지? 그럼 움직일 준비해.”

“네.”

“거 참…….”

사실 음식을 구하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저 너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지금은 그걸 확인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 * *

통로 건너편의 지하 감옥.

생가죽 갑옷을 두른 오크 간수들과, 헐벗은 죄수들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나타나기 전까진.

“그락……!”

푸확.

마지막 간수 한 명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나와 아델, 패트릭의 뒤로 오크 시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 막 죽이면서 지나가도 되는 건가?”

“안 걸리고 지나갈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처음엔 셋만 잠입해 들어가서 인벤토리에 식량만 훔쳐 나오려는 계획이었지만.

지하 감옥 자체가 극히 비좁은 공간이었던 터라, 별수 없이 마주하는 모든 오크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봐, 이렇게 되면 다음 교대자가 현장을 발견하면 난리가 날 거야. 그러니 그전에 빨리 식품 저장고에 가야 한다고.”

패트릭은 아주 자연스럽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했다.

그러면서 오크들의 식품 저장고가 있는 길을 자연스럽게 찾아가려 했다.

이 공간이 매우 익숙한 공간인 것처럼 말이다.

“잠깐, 그런데 내가 왜…… 오크 요새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이제 눈치챘나?”

그 이유는 단 하나뿐.

“설마…….”

아까 전 ‘제자리로 되돌아왔다’고 하던 그의 반응.

지하 감옥 맞은편에 똑같은 구조의 지하 감옥이 나온 정황.

“그래. 여긴 알포드 성이야.”

이곳은 알포드 성을 거울처럼 완벽하게 복제해 놓은 공간이었다.

인간 대신 오크들이 살고 있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

감옥을 벗어나 위층으로 올라오자, 그 사실은 더욱 자명해졌다.

내부 인테리어나 물품 등 자잘한 요소들이 오크 특유의 투박한 양식으로 채워져 있는 것만 제외하면.

전체적인 구조 자체는 완벽히 원본과 동일한 알포드 성이었다.

심지어 저 멀리 보이는 점령 포인트마저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지, 진짜잖아…….”

“쉿. 조용.”

패트릭이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낼 뻔한 걸 막았다.

하마터면 정찰병에게 발각될 뻔했다.

‘식품 저장고는 어디 있지?’

여기서 지체할 시간은 없다.

일단 먹을 것부터 챙겨 돌아가야 한다.

그에게 몸짓으로 빠르게 움직이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 *

“잘 먹겠습니다!”

클랜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릇을 들고 허겁지겁 수프를 마시듯 먹기 시작했다.

식기는 감옥 내의 죄수들이 사용하는 것을 썼고, 요리는 연기를 내보내는 환풍구 밑에서 횃불을 이용해 했다.

“오크들이 먹는 음식이 사람과 똑같은 음식일 줄은…….”

패트릭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오크들의 식량창고에서 가져온 것들은 감자, 양파, 당근, 돼지고기 등 인간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마수 거미의 다리라도 뜯을 줄 알았더니, 그래도 먹는 건 정상적으로 먹는 놈들이었군.”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레이드 던전의 최종 스테이지.

거기서 만났던 각성자 보스도 그렇고, 그 부락민들의 행동 방식 또한 너무나도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동료의 죽음에 슬퍼하며 절규하던…….’

게다가 방금 다녀왔던 ‘또 다른 알포드 성’의 오크 NPC들까지.

이쯤 되니, 오크라는 것들은 단순히 지능이 높은 마물이 아니라, 또 다른 인류의 한 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웅님.”

“음?”

그때, 아델이 내게 다가와 수프를 건넸다.

“이거 드세요.”

“고마워.”

“아니에요. 오히려 고마운 쪽은 저예요. 그리고…… 죄송해요. 괜히 제 일에 휘말렸다가 이런 꼴까지 당하게 만든 것 같아서.”

난 그저 에테르 웨폰을 얻으러 온 것뿐이었지만, 아델 입장에서는 내 행동이 순수한 정의감의 발로로 보인 모양이었다.

뭐, 애초에 그녀에게 그렇게 보이도록 포장한 건 나였지만 말이다.

“그런 말은 나중에 해.”

-아직 그런 말을 하기엔 흘린 피가 모자라거든.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으니까.”

‘뭐지?’

그 말을 하는 순간,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악마의 음성 같은.

그런 존재가 내 귓가에 대고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흠칫.

소름이 돋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아델 또한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히며 나로부터 떨어지려 했다.

“그…… 그렇죠. 하, 하하.”

‘방금, 그 목소리를 들은 건가?’

“죄, 죄송해요.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그러곤 이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말하는 걸 보니, 그 음성을 듣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럼 이제…… 저희는 뭘 하면 되죠?”

“아, 그렇지.”

그녀가 애써 화제를 돌려주었다.

물론 그럼에도 찝찝한 기분은 가시질 않는다.

귓가에 속삭이는 악마.

그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앙그라 마이뉴…….’

점점, 놈이 나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 모든 기이한 일이 벌어진 원흉도 따지고 보면 이 녀석이다.

지금 내가 걸어가는 길 끝에 기다리는 건…….

* * *

촤악! 촤악!

두 손을 교차하며 허공에 X자를 그렸다.

내 양손에서 뻗어 나온 마나는 끈적한 핏물로 변했고.

그것이 거대한 붉은 칼날이 되어 전방의 오크들을 가차 없이 베며 나아갔다.

“크라아악!”

참격파동발산기, 혈검기 루인.

갈라틴에 이은 2격의 연계 권능으로 방 하나를 완전히 비우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남은 적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아델을 향해 소리쳤다.

“전략은 아까와 똑같이!”

“네!”

“패트릭! 넌 반대쪽으로 가!”

“알았다!”

지금 상황은 아까와 거의 다르지 않다.

내성의 외부 점령 포인트는 아델과 패트릭에게 맡기고, 아성의 점령 포인트는 내가 직접 커버하는.

그렇다.

지금 난 다시 한번 공성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크들의 성을 점령하자구요?

-그래. 저쪽 세상은 이쪽의 알포드 성을 그대로 복사해 놓은 것처럼 똑같다. 즉, 점령하는 방법도 똑같을 거란 얘기지.

아까 전의 식량 수급을 겸한 정찰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확인하려던 게 이것이었다.

오크들의 성도 점령이 가능한가.

확인 결과, 단순히 가능한 수준을 넘어 아예 똑같은 구조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점령 포인트의 존재를 육안으로 봤던 것이 그 근거였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왜 의미가 없어? 내가 오크성의 성주가 되면, 그곳에 있는 병력은 우리 클랜 휘하로 들어오게 되는 거잖아.

그렇게 이 성을 점령한 다음, 오크 군대를 이끌고 지하 통로를 통해 인간 세계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곳의 마수 융합체들을 격퇴하고 점령한다.

이게 바로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내 계획이었다.

-클랜 휘하로 들어온다니…… 그놈들이 그렇게 순순히…….

-그 부분은 걱정 마. 넌 내 말만 따르면 돼.

아델은 역시나 시스템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조차 통하지 않는 오크들을 아군으로 만든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설득할 필요는 없다.

시스템이 내 말을 따르도록 만들 테니 말이다.

{모든 점령 포인트가 공성 측에 의해 점거되었습니다!}

{30초 내에 탈환하지 못하면 공성 측의 승리로 공성전이 종료됩니다!}

“쿠오오오옭!”

투콱! 퍼엉!

이 성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점령할 수 있었다.

그저 오크라는 종으로 바뀌었을 뿐, 원래 저쪽 세계의 인간 병사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전투력.

{공성전이 종료되었습니다.}

{<알포드 클랜>이 <알포드 성>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난 금방 이 두 번째 성의 성주가 될 수 있었고.

{본성 최초의 각성자 성주가 되셨습니다. 금고에서 보상을 확인하세요.}

보상도 2배로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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