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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7화 (37/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7화

갇혔다.

현실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포탈이 작동하지 않는다.

“젠장…… 나보고 여기서 죽으라고?”

게다가 시스템은 내게 대놓고 적대적인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

저 불길한 붉은 하늘.

기어이 무슨 일이 터지고야 말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절대 그렇게 놔둘 순 없지. 절대로.”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행동은.

원래 계획대로 성을 점령하는 것.

내가 성주가 되어 지배권을 갖는 순간, 나에게는 이 던전 안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권한이 생긴다.

이해 불가능한 현상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해결에 필요한 다양한 선택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닿은 나는 다시 성안으로 돌아갔다.

입구에는 경비병이 없었다.

그 대신 마을엔 무장한 병사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어제 내 사병들에게 돌을 던진 자들! 그리고 내성에 침투한 자! 모두 이 앞으로 나와 무릎 꿇으라!”

한 기사가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처음엔 아무도 걸어 나오는 자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군. 그렇다면 신께 물어보는 수밖에!”

스릉!

“결백한 자는 이 칼에 찔려도 살아남을 것이고, 죄지은 자는 죽을 것이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이내 사람들이 하나둘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이 진짜 범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찔려서 살면 무죄, 죽으면 유죄’라는, 미친 법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죄를 뒤집어쓰는 선량한 시민들도 있겠지.

하지만 억울한 이들이 나타난다고 해서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저건 어차피 다 예정된 흐름이니까.

‘퀘스트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군.’

다행히 붉은 하늘과는 별개로, 퀘스트는 패치노트에 적힌 대로 잘만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마르쿠스 남작과 기사들을 각개격파하고 내성을 점령한다.’

이건 예고된 기회다.

지금 적의 병력은 내성의 수비군과 범인을 체포하러 온 남작의 기사들로 나뉜 상태.

만약 무작정 공성전을 시작했다면, 상대의 병력이 내성에 모여 있는 상태에서 한꺼번에 맞붙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수비 진영이라는 이점에 더해, 한데 뭉치기까지 한 적을 상대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싸우게 되면, 적은 둘로 나눠진 채 각개격파를 당하는 형세.

공격 측에게 가장 유리한 국면에서 전투가 이뤄지는 셈이다.

‘게다가 리스폰되지 않는 고급병력을 제거할 기회이기도 해.’

특히나 마르쿠스 본인이 행차하면서 성의 기사들을 모조리 데려와 버렸다.

저 기사들이 무한히 리스폰되는 이름 없는 NPC들에게 보호받으며 싸운다면 매우 골치 아픈 적이겠으나.

이렇게 개방된 시가지에서 호위병력 없이 싸운다면 훨씬 쉽게 제거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공성전에 필요한 병력을 확보하는 것뿐이군.’

그 또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내 병사들’이 생길 테니 말이다.

타타타탓!

채앵!

“뭐냐!”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뛰쳐나가 말 위에 타고 있는 마르쿠스에게 검을 휘둘렀다.

아쉽게도 그 일격은 그의 방어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습격자는 그 대신 바로 옆에 서 있던 기사의 목에 칼날을 찔러 넣었다.

“커헉!”

“반역자다!”

그 안에 뛰어든 자는 외팔의 검객, 아델.

그녀는 하나 남은 오른손으로 검을 역수로 잡은 채 동물적인 감각으로 검의 달인인 기사들과 맞섰다.

챙! 채앵! 스릉!

아델은 혼자서 다수의 기사들을 상대로 분투했다.

재빠른 몸놀림으로 날아오는 칼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반격을 가하는 신기에 가까운 전투술.

“저, 저거…… 아델 아니야?”

“저 아이에게 저런 재능이 있었나?”

그런 그녀의 싸움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놀란 듯 수군거렸다.

투학!

“큭!”

“잡았다! 죽어라!”

물론 아델 역시 수적 열세를 극복하는 건 불가능했다.

한 기사의 칼날이 어깨를 스쳤고, 그 상처로 인해 그녀는 잠시 주춤거렸다.

꽈악.

난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서 뛰어들까 고민했다.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나서면 일을 망치게 된다.

퀘스트의 정상적인 진행을 위해, 지금 난 뒤로 빠져서 저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봐야만 한다.

‘아델은 여기서 죽지 않아.’

어젯밤 예상 밖의 요인으로 인해 잘린 팔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능숙하게 싸웠다.

세계의 흐름이 제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절대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나서면 되고.

채앵! 투콱!

“끄악!”

마침내 그녀는 무수히 날아오는 칼들을 모두 막아내고 또 하나의 기사를 베는 데 성공했다.

그 장면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의를 불어넣어주었다.

“우리도 저 여자를 돕자!”

“남작을 죽이자!”

“우오오오오!”

이윽고 주민들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노예에서 혁명군으로 탈바꿈했다.

그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중앙에 있는 기사들을 향해 맨몸으로 달려들었다.

{<데빈>님이 클랜에 가입했습니다.}

{<그랜트>님이 클랜에 가입했습니다.}

{<라미>님이 클랜에 가입했습니다.}

{<마크>님이…….}

그와 동시에 내 눈앞엔 저 많은 NPC들이 클랜에 가입했다는 메시지가 쏟아지듯 떠올랐다.

아델은 내 클랜의 NPC마스터.

저들이 그녀에게 합류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내 클랜에 가입한 것이다.

이로써 병력의 확보는 완료.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개입할 차례다.

* * *

클랜에 가입된 NPC들은 클랜장이 시스템으로 간단하게 관리할 수 있다.

전용무기와 장비를 갖춰주고, 훈련을 시켜 능력치를 강화하는 등.

물론 그래 봐야 권능을 쓸 수 있는 각성자에 비하면 한계는 뚜렷하지만.

전적으로 명령에 복종하는 군대를 얻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이점이 되는 셈이다.

‘퀘스트 장비 자동배분.’

{인벤토리에 보유하고 있는 퀘스트 장비들을 클랜원들에게 배분하시겠습니까?}

‘그래.’

난 그 관리 기능을 이용해 곧장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NPC 클랜원들을 무장시켰다.

내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어젯밤에 훔친 무기고 장비들이 눈앞의 군중에게 입혀졌다.

“이놈들이! ……으응?”

“으랴아아!”

NPC클랜원들은 처음부터 자기 것이라도 되는 양 그 무기들을 휘둘렀고, 그들과 맞선 남작 측의 기사들은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 후줄근한 천 옷이나 입고 맨손으로 달려들던 민간인들이, 갑자기 자기 휘하의 병사들과 같은 장비를 갖춰 입은 것이니.

당연히 당황할 만도 하다.

챙! 푸확! 투콱!

전세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아델 혼자서 고군분투하던 전투 양상은 무장한 주민들의 난입으로 인해 역포위섬멸전이 되었다.

압도적인 숫자의 병사들이 채 몇십 명밖에 되지 않는 남작과 기사들을 둘러싸고 몰아넣었다.

“이 불한당 같은 놈들이……! 오냐, 오늘 전부 죽여주마!”

그러자 마르쿠스 남작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의 칼날에서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저게 그 검기인가.’

놈은 그저 입만 산 귀족이 아닌, 스스로 강력한 무력을 지닌 무투파 귀족이었다.

각성자들은 무구 투영으로 손쉽게 무기에 마나를 불어넣는 게 가능하지만, NPC들은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저 검기.

NPC가 저 기술을 사용한다는 건, 꽤나 수준이 높은 전투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다.

“네년부터 죽여주마!”

그런 마르쿠스가 말머리를 돌려 아델을 향해 돌진했다.

지금 그녀는 저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다.

카앙!

그래서 내가 나섰다.

용발톱으로 마르쿠스의 마나 담긴 칼날을 막아냈다.

“영웅님……?”

“쳇! 네놈은 또 뭐냐!”

돌진 공격이 저지당한 마르쿠스는 말이 달리던 방향 그대로 나를 지나쳐 갔다.

다그닥. 다그닥.

그러곤 다시 방향을 돌려 이쪽으로 달려왔다.

“아델. 넌 내 뒤로 빠져.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내 뒤쪽으로 물리고.”

“……네!”

내 명령을 들은 그녀는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주변의 적 기사들을 쓰러뜨리며, 주민들을 이끌어 내 후방으로 이동했다.

이제 내 앞, 전방의 드넓은 반원형 반경 내에는 아군이 단 한 명도 없다.

화르륵.

오른손이 붉게 빛났다.

그건 업화의 구가 만드는 검은 불꽃이 아니라 순수한 태양의 홍염(紅焰)이었다.

투영무구 태양검 갈라틴의 변형.

참격파동축적기.

화조참(火爪斬) 갈라틴.

권능이 발현된 순간, 내 오른손에서 뻗어 나온 악룡의 앞발에는 기다란 화염 발톱이 자라나 있었다.

거의 십 미터는 되는 엄청난 길이의, 대도(大刀)와도 같은 발톱이 말이다.

“아니? 멈춰! 머, 멈춰!”

나를 향해 정면에서 달려오던 마르쿠스 남작은 그걸 보자마자 황급히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추려 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놈은 내 공격 범위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촤아아악!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마치 검을 휘두르듯 반원을 그리며 오른손을 횡으로 휘둘렀다.

훅도 스윙도 아닌, 슬래시.

이 반원형 참격은 내 앞 전방의 드넓은 범위를 커버하며, 궤적 상에 서 있던 모든 기사들을 단번에 두 동강 내버렸다.

“크아악!”

말을 타고 있던 마르쿠스는 말과 함께 두 다리를 잘려 버렸다.

놈은 맞기 직전에 말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피하려 한 것 같지만, 타이밍이 늦어서 다리를 잘리고 말았다.

“젠장…… 젠장!”

그걸로 상황은 끝났다.

남은 기사들은 사방에서 떼로 몰려오는 무장한 민간인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남작은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다.

“죽어라.”

난 남작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압제자의 최후는 영웅이 아닌 억압당한 시민들의 손에.

“남작이 쓰러졌다! 놈을 죽여!”

“우와아아아!”

이젠 내 클랜원이 된 알포드 성의 주민들이 쓰러진 마르쿠스 남작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 * *

마르쿠스는 그가 행한 폭정에 앙심을 품은 시민들에 의해, 아주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이로써 성의 최종 보스를 격파.

그저 퀘스트를 수행하기만 했을 뿐인데, 아주 손쉽게 최대 난관을 제거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곳에 상주하는 적의 수준 자체가 높지 않은 데다, NPC를 이용한 필승의 공략법까지 존재해서 이 성을 점령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에 비해 주어지는 보상은 에테르 웨폰이라는 막강한 무기.

패치노트의 수많은 정보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 가성비 덕분이었다.

‘좀 더 빨리, 빨리 움직여야 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안심하고 있을 때라는 뜻은 아니다.

하늘은 여전히 섬뜩할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다.

언제 또 이상한 상황이 발생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이전에 재빨리 성을 점령해서 미리 대책을 세워놓아야 한다.

내가 던전 밖으로 탈출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끄아아아!”

“흩어지지 마! 뭉쳐서 놈들을 밀어내!”

“죽어라!”

곧장 클랜원들을 이끌고 내성으로 진격한 나는 잔류 병력을 격파하며 본격적인 점령 작업을 실시했다.

“우린 여기서 흩어진다. 아델, 네가 병력의 절반을 이끌고 외곽의 두 병영을 점거해라. 나는 아성을 처리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내성에는 총 네 개의 점령 포인트가 있는데, 그중 두 개가 병영에 있고, 나머지가 남작의 집무실이 있는 아성에 존재한다.

그 포인트 전부를 동시에 점거하고 있어야 이 성이 내 소유로 넘어오는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그리고 그 순간은 머지않았다.

눈앞의 빈약한 수비군들은 굳이 내가 손쓸 필요도 없이, 클랜 NPC들이 모두 격퇴했다.

그렇게 거침없이 나아가던 끝에.

‘찾았다!’

마침내, 마지막 점령 포인트를 찾았다.

이제 저곳과 아까 전에 발견했던 지점에 병력을 보내 점거하게만 내버려 두면…….

쩌적. 쩌저적.

“응? 뭐야?”

“저놈 저거 왜 저래?”

그 순간, 등 뒤에서 소름 돋는 감각이 느껴졌다.

술렁거리는 클랜 NPC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다가오던 수비군 하나의 몸뚱이가 기괴하게 뒤틀리는 게 보였다.

어제와 같은 마수 융합체.

그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쩌저저저저저저적.

까드드드드드드득.

“이런…… 젠장.”

그 융합체가.

무한히 리스폰되는 모든 수비군의 몸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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