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6화
“아……!”
촤악!
융합체의 머리 부분에서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거미 다리가 순식간에 아델의 팔을 잘랐다.
“큭!”
그것도 그녀가 상당한 반사 신경으로 맞기 직전에 피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팔 대신 목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이리와!”
콰당!
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아델의 목덜미를 잡아당겨 뒤로 내던졌다.
그리고 그 즉시 앞에 있는 마수 융합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아지다하카의 앞발이 살덩이를 짓뭉갰다.
그러나 융합체는 스스로의 몸이 망가지건 말건 아랑곳 않고 반격을 가했다.
슈팡!
재빨리 스텝을 밟으며 옆으로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쉬이익! 파캉!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날아온 길쭉한 가시가 내 복부를 찔렀다.
그 한 방에, 탈리스만 방어장이 깨지며 나는 뒤로 튕겨 나갔다.
“젠장!”
“영웅님…… 괜찮……아요?”
아델은 잘린 팔에서 대량의 출혈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내 안위를 걱정했다.
“입 다물어.”
난 그녀에게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생명력 포션을 건넸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 붉은 액체가 찰랑거리는 게 보인다.
이건 지난번 레이드 던전에서 사 둔 물건이라, 캔이 아니라 유리병에 병입된 방식이었다.
“이거나 마셔.”
생명력 포션으로는 잘린 신체를 복구하는 것도, 출혈을 멈추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떨어진 기운을 회복해서 죽지 않게 만들 수는 있다.
“한꺼번에 다 마시지 말고 조금씩 나눠서. 알겠어?”
“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눈앞의 마수 융합체에게 달려들었다.
저 녀석은 가까운 상대에게 뻗는 공격은 매우 빠르지만 자체의 기동력은 낮은 것 같다.
내가 튕겨 나온 후로 제자리에서 거의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러 생물이 이리저리 뒤섞인 형태 때문에 다리라고 할 수 있는 부위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듯하다.
‘단번에 최대 화력을 퍼부어서 박살 내야겠군.’
사정거리 안에선 막강하지만 이동속도는 느리다.
그렇다면 권능을 쏟아부어 쓰러뜨리면 된다.
‘안전하게 멀리서 포격파동 연계기를 쓸까? 아냐. 그건 너무 요란해.’
원거리 공격기인 포격파동 연계기를 쓸까 생각해봤지만, 이 안에서 쓰기에 그 기술들은 쓸데없이 크고 요란하다.
대신 거리와 범위는 좁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는 강격파동 연계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타악!
결정을 내린 이상 어기적거리지 않는다.
탈리스만 방어장이 깨진 지금, 들어오는 공격은 모두 내 뼈와 살을 파고들 것이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전부 공격으로 맞받아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게 볼그 난격.’
기적의 30연타가 전방에 산탄처럼 쏟아졌다.
슈파파파팡!
마수 융합체가 전신에 달려 있는 온갖 기괴한 신체 부위로 반격했지만.
그보다 내 권능의 공격 횟수가 훨씬 더 많았기에 그중 어느 공격도 나에게 닿지 않았다.
우웅. 우웅.
모든 연타가 적에게 꽂힌 직후, 가슴 속에 강격파동의 무거운 울림이 느껴졌다.
그 울림을 오른손에 담아.
‘파산권 칼라드볼그.’
이번엔 산조차 부술 기세의 강권을 내질렀다.
콰아아!
소용돌이치는 풍압이 융합체를 덮친다.
기괴하게 뭉쳐진 살점이 갈기갈기 찢겨 사방에 검붉은 피와 누런 진물이 흩뿌려졌다.
그 에너지 돌풍은 매우 강렬해서, 무기고 입구의 벽을 부수며 뒤쪽의 벽까지 커다란 구멍이 뚫을 정도였다.
그러나 난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직 한 발 남았다.’
파동연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콰우우우.
가슴속에 강격파동의 잔향이 몸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원래 파동은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흩어진다.
하나 발산기를 사용해 파동을 소모시킬 경우, 그것은 일순간 거대한 파도가 되어 퍼져 나간다.
그 짧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으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권능을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인다. 힘의 흐름이.’
다음 순간, 내 눈에는 융합체의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가 시각화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흐름의 최대 역행 지점.
그 지점을 때린다면, 내 힘에 상대의 관성이 더해져 주먹의 타격력은 곱절로 증폭될 것이다.
지금 융합체의 육신에 걸린 관성은 저 맞은편 벽 쪽을 향하고 있다.
쾅!
내 몸은 어느새 그것의 뒤로 이동해 있었고, 주먹은 놈의 몸통을 정확히 가격했다.
그 충격으로 인해 융합체는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난 그보다 더 멀리 날아간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주변 공간이 길게 늘어지는가 싶더니.
방금 전처럼 눈 깜짝할 사이 융합체가 튕겨 나오는 방향에 마주 서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시각화된 운동 에너지의 흐름 끝, 최대 파괴력을 낼 수 있는 타점에 송곳 같은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는다.
쾅!
그리고 또다시 이와 같은 공격을 내지른다.
쾅! 쾅! 쾅!
세 번, 네 번을 넘어 몇 번이고 계속했다.
이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강격의 아귀지옥.
쾅! 쾅! 쾅! 쾅! 쾅!
재귀강격파동발산기(再歸强擊波動發散技).
능동관성반응(能動慣性反應) 클라렌트.
마법과도 같은 기적에 의해 실현되는 무차별 강제 카운터가, 목표한 적을 피죽으로 만들 때까지 연달아 작렬한다.
마수 융합체는 그 과정에서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져 갔다.
철퍽. 철퍼덕.
기괴하게 뒤섞인 마수의 신체 부분들이 조각조각 나뉘어 온 사방으로 흩어졌다.
꿈틀, 꿈틀.
그런데 그 찢긴 신체들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나를 공격하려 기어왔다.
“젠장, 더럽게 끈질기네!”
결국 주먹으로 하나씩 모든 부위들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버린 후에야 활동을 완전히 정지시킬 수 있었다.
“아델! 괜찮아?”
전투가 끝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아델에게 달려갔다.
“네…… 아직은…… 괜찮아요.”
그녀는 내 말대로 생명력 포션을 조금씩 나눠 마시며 꺼져 가는 기운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조금만 버텨. 정신줄 놓지 말고. 알겠어?”
“네…… 알겠어요…….”
난 아델을 안아 들고 칼라드볼그에 의해 만들어진 벽의 구멍을 통해 성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 마르쿠스 영주는 눈을 뜨자마자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욕실로 이동했다.
높은 천장을 가진 드넓은 욕실에 들어간 순간, 하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으로 코를 막았다.
방 전체에 진동하는 시체 썩는 냄새.
변소 밑바닥 정화조의 냄새도 이보다는 덜할 것이다.
“이 냄새가 더럽나?”
하지만 마르쿠스 남작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였다.
되레 코를 막은 하녀를 향해 불쾌하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네?”
“그렇다면 내게서 나는 냄새도 더럽게 느껴지겠군.”
“아, 아닙니다!”
하녀는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음에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아름다운 미청년의 외모를 가진 마르쿠스 남작.
그 외모와는 반대로, 평소 그에게선 지독한 악취가 풍겨왔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사용하는 진한 향수로 그 냄새를 어느 정도 가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악취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아니야?”
“네, 네! 전하께서는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향기를 갖고 계십니다!”
“하핫!”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마르쿠스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외모에 대한 칭찬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신하들 사이에선 남작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무조건 외모 칭찬을 하라는 조언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다.
물론 그게 항상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럼 너도 나와 같이 목욕을 하면 되겠구나!”
“……네에?”
남자 귀족이 여자 하인을 데리고 함께 목욕을 한다.
겉으로 보기엔 마르쿠스의 음흉한 수작질로 보이겠지만.
차라리 다들 생각하는 그런 거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남작의 목욕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철퍽. 철퍽.
“으, 으아아아…… 우웨엑!”
“하하하하!”
마르쿠스는 아름다움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영지에서 데려온 어린아이들의 피로 몸을 씻었다.
주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하고, 세금을 내지 못하면 그 집의 자식들을 강제로 데려왔다.
그 아이들을 제물로 바쳐 자신의 외모를 가꾸겠다는 미친 짓.
알포드 성의 민심이 그렇게 바닥까지 떨어진 것은 바로, 그의 이러한 엽기적인 행각 때문이었다.
“아아, 개운하군.”
목욕을 마친 후 그는 여느 때처럼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그 옆의 시종은 어느샌가 아까 전과는 다른 인물로 교체되어 있었다.
“전하!”
그런데 복도에서 한 기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냐? 왜 내 앞을 막는 거지?”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보고드릴 말씀이…….”
“그건 식사가 끝난 후에 들어도 될 것 같은데.”
“사안이 시급합니다! 무기고의 무기와 장비들을 모두 도난당했습니다!”
“……뭐?”
시종일관 여유로워 보이던 남작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뿐만 아니라 어제 주민들이 사병에게 돌을 던지는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이건…… 반란입니다!”
주민들에게 미움받고 있다는 건 마르쿠스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분노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표출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
기껏 해봐야 돌팔매질 정도밖에 할 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 무장한 병사들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제 낮에 있었던 일은 숫자가 적어서 밀린 것이고, 본격적으로 싸운다면 당연히 압도적인 학살극이 될 뿐.
게다가 시스템이 만든 경계로 인해 이 성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그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이곳에서 자신의 권력은 무소불위라는 뜻이다.
마르쿠스는 NPC이지만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에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거리낌 없이 잔혹한 행위를 일삼았던 것이다.
“대체 어떤 놈이…….”
그가 밖을 내다보았다.
아침의 청명한 쪽빛은 온데간데없이, 하늘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신의 계시라도 되는 건가. 다 죽여 버리라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정상적인 광경.
저 붉은 하늘이 마치 그것의 전조현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조현상이 아니라 결과에 속하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전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내가 직접 움직이지. 당장 기사들을 소집해.”
“예! 알겠습니다!”
마르쿠스의 명령을 받은 기사는 그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병영으로 뛰어갔다.
“큭큭…… 붉은 하늘이라니. 멋지군.”
남작은 창밖을 바라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마귀의 저주라도 내려진 건가?”
성의 주민들이 새빨갛게 변한 하늘을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새빨갛게 변했다.
누구라도 의아하게 여길 법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의아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뭐지?’
지금 난 다이아 경매로 얻은 패치노트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름은 패치노트지만, 사실상 공략집에 가까운 문서.
이곳, 알포드 성의 성주가 되는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 필요한 조건부터 시작해서 온갖 세세한 퀘스트 상의 디테일까지.
그야말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미래를 선택지별로 다 보여주는 해설서나 마찬가지였다.
‘패치노트엔 이런 얘기가 전혀 없는데…….’
그런데 여기에 지금 나타나는 현상에 관한 언급은 일절 없다.
붉은 하늘.
이 정도 스케일의 세계 변화라면 당연히 말이 나올 법도 한데.
패치노트엔 붉은 하늘은커녕 하늘의 하 자도 나오지 않는 지경이었다.
‘어젯밤의 그 마수 융합체도 그렇고, 뭔가……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어.’
오류인자였나, 오류발생인자였나.
아무튼 그런 메시지가 나타나면서 그 기괴한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어쩌면, 시스템의 법칙과 균형을 깨뜨린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 세상을 왜곡시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결국 이렇게 부작용이 나타나는 건가.’
애써 무시하고 있던 부분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물러날 수밖에.’
여기서 뭔가를 더 하는 건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든 위험요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 이상 진행하는 건 무모한 짓일 뿐.
좀 더 확실한 대책을 쌓은 후에 다시 도전할 것이다.
‘아델. 미안하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군.’
그녀는 다행히 어젯밤의 사투 이후 출혈이 멎고 체력이 회복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난 여길 떠나야 한다.
내가 여기 더 있는 건 이곳 사람들에게도, 아델에게도 불행한 일일 테니 말이다.
저벅.
성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처음 던전에 들어왔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그곳엔 돌로 된 포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난 그 위로 발을 올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응?’
그렇게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광경을 상상하던 내 눈앞에는,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포탈을 타고 이동하는 대신, 경고 메시지가 나타난 것이다.
“뭐야……?”
그건 마치 시스템이 나를 저주하는 듯한, 섬뜩하기 그지없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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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죽}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