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5화
그녀의 이름은 아델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키, 탄탄한 체격을 가진 여인.
내가 말을 걸었을 때, 그녀는 매우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뭐, 뭐죠?”
“아까 봤어. 돌 잘 던지던데.”
“…….”
급격하게 얼어붙는 표정.
금세라도 도망칠 것처럼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자신이 성주의 끄나풀에 의해 발각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 난 남작의 하수인이 아니니까.”
“……그럼 당신은 누구죠?”
난 그녀에게 아까 전 경비병에게 했던 것처럼 탈리스만을 보여줬다.
“이걸 보면 알 수 있을까?”
“당신은…… 영웅?”
다행히 그녀는 아까 그 어리바리한 경비병과는 달리 금세 알아보았다.
“맞아. 그리고 난 널 도와주러 왔어.”
내 말에 순간 아델의 얼굴이 살짝 밝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왜죠? 당신 같은 영웅이 저를 돕는 게 무슨 이득이 된다고…….”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지금 이 던전이 기본적으로는 마을 취급을 받는 곳이기 때문일 터다.
실제로 여기엔 그때의 레이드 던전에서처럼 골드를 사용해 물건을 살 수 있는 상점, 혹은 여관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물론 각성자가 보유할 수 있는 ‘성’이기에 존재하는 기본적 기능.
그래서인지 그녀 입장에선 마을의 기능을 이용하는 이용객일 뿐인 각성자가 자신을 돕는다는 게 의아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영웅이지.”
“……네?”
“나쁜 놈들이랑 붙어먹으면 영웅이겠어? 그렇게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이 말을 하면서도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퀘스트란 게 거의 대부분 난처한 상황에 빠진 사람이거나 약자를 돕는 형식이다.
그 퀘스트를 수행하는 각성자들 중에 진심으로 그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돕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저 그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나 받아먹을 생각뿐.
당연히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알포드 성>의 첫 번째 성주가 되는 각성자는, 에테르 웨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녀를 돕는 건 모두 이 성의 성주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저, 정말…… 정말인가요?”
물론 그저 NPC일 뿐인 아델은 그런 사정을 다 이해할 리가 만무하므로,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확실히, 이 사람들 입장에서 각성자들은 돕겠다고 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거의 아무런 조건도 없이 도움을 주는 존재이니, 저 말이 그럴듯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래. 그러니까 너도 날 도우라고.”
‘내가 이 성의 주인이 되는걸.’
나는 뒷말을 흐렸다.
굳이 그 얘길 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그녀는 그렇게 할 테니 말이다.
“그럼……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좀 그렇고, 장소를 옮기는 게 어떨까요?”
“원하는 대로.”
주변을 둘러보니 성주의 병사들은 모두 물러갔지만, 아직 이곳에는 사람이 많다.
듣는 귀가 많은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왜냐면 지금부터 나에게 그녀가 할 이야기는 매우 민감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 * *
아델은 어린 남동생 하나와 빈민가에 있는 판잣집에서 단둘이 살고 있었다.
부모는 얼마 전 성주의 횡포에 맞서다 살해당했고, 친척들은 그녀와 연을 끊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그녀의 부모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모든 걸 잃고 별수 없이 뒷골목까지 흘러들어 와야만 했다.
이런 낙후된 시대 배경의 세상에서 여자의 몸으로 홀로 그런 일들을 감당해낸 것이다.
‘확실히 평범한 NPC는 아니지.’
실은 그게 바로 그녀가 이 퀘스트의 주요인물인 이유였다.
첫 만남에서부터 알아봤지만, 팔과 다리 위로 드러난 단단한 근육은 전사의 자질을 타고났음을 의미한다.
강인한 정신력.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 능력.
이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개화해 각성자에게 유용한 조력자가 될 것이다.
퀘스트 도중뿐만 아니라 성을 얻고 난 후까지 말이다.
“……이곳으로 들어갈 거예요. 그럼 곧장 마르쿠스 남작을 만날 수 있어요.”
아델이 나에게 종이 한 장을 쥐여주고 장황한 계획을 설명했다.
그 종이는 내성의 구조가 그려져 있는 단면도였다.
지금껏 그녀가 세우고 있던 계획은, 내성에 몰래 침투해서 성주인 마르쿠스 남작을 암살하는 것.
상당히 본격적이고 잘 짜인 계획이었지만, 거기엔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남작을 암살하고 나면, 그다음은?”
“……네? 그야…….”
“남작을 죽이면 또 다른 귀족이 실권을 잡겠지. 그럼 바뀌는 게 없잖아.”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마르쿠스만 사라져도 지금보다는 사는 게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요?”
아델의 말대로 폭정이 횡행하는 건 마르쿠스 개인의 왜곡된 욕망 때문.
그가 죽고 나서 나타나는 또 다른 통치자는 지금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로 끝나면 안 된다.
그저 좀 더 살기 좋아지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너흰 그 후에도 계속 위정자 귀족들의 통치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 그걸로 만족할 거야?”
“통치는 당연히 귀족이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럼 대체 누가…….”
“우리가 해야지.”
왜냐면 내가 성을 먹어야 하니까.
“네에!?”
아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능력이 있다.
시스템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뒤집어엎을 거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성을 장악하는 거야.”
“그, 그게 가능할까요?”
“당연하지. 물론 그러려면 해야 할 일이 있어.”
“해야 할 일이라면…… 혹시, 사람을 모으는 건가요?”
“맞았어.”
‘역시, 예상대로 흘러가는군.’
굳이 내가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목적을 이해시키려 들지 않아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매끄럽게 대화가 이뤄진다.
이 역시 퀘스트를 진행시키기 위한 시스템의 간섭일 것이다.
“지금부터 우린 한 팀이야.”
{클랜 <알포드>를 결성했습니다.}
{<아델>님이 클랜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성주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인, 클랜을 결성했다.
이름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이 성의 이름이자 지역명인 ‘알포드’를 클랜명으로 사용했다.
알포드에서 만들어졌으니 알포드 클랜. 흔하디흔한 작명법이다.
아무튼, 그렇게 기반을 설립한 나와 아델은 쿠데타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 * *
성을 점령하는 방법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점령 포인트를 동시에 점령하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나 혼자서 포인트를 하나씩 차지하면 될 것 같지만, 문제는 NPC들.
공성전에서는 각성자들 외에도 NPC들이 대규모로 동원이 되며, 수비 측에서는 이름 없는 병사들이 무한히 리스폰된다.
이건 각성자와 각성자 간의 전쟁뿐만 아니라, 지금 나처럼 NPC가 소유한 성을 최초 점령하는 경우에도 적용이 되는 룰이다.
그것 때문에 나 혼자서는 절대로 점령이 불가능하고, 여러 점령 포인트를 동시 공략하는 데 도움을 줄 아군이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처음부터 각성자 여럿을 동원해 올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지금 난 혼자서 움직이는 상황이라 그런 병력이 꼭 필요하다.
아델을 데리고 클랜을 결성하고 퀘스트를 수행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음? 누구…….”
푸확.
늦은 밤, 경계를 서던 병사 하나가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나는 손에 쥔 장검의 피를 닦았다.
“이젠 네가 해봐.”
“제, 제가요?”
그러곤 아델에게 넘겼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뭘 망설여? 어차피 저놈들은 우리 적이야. 적 병사 하나도 못 죽이면 남작은 어떻게 암살하려고 했나?”
“……알겠어요.”
하지만 내 말 한마디에 곧바로 칼을 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세가 엉거주춤한 것이, 너무나도 불안정한 모습.
그럼에도 눈에서 흘러나오는 결의만은 날카롭다.
푸욱!
“크헉! 너, 넌 뭐……!”
아델이 또 다른 초병에게 다가가 칼을 내질렀으나, 급소가 아니었던 터라 한 번에 쓰러뜨리지 못했다.
“엇!”
투콱!
그래서 난 그 녀석이 더 큰 소란을 불러일으키기 전에, 즉시 다가가서 용발톱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아…… 죄송해요. 여기가 아니라 여길…… 찔렀어야 하는 건데.”
‘역시.’
아델은 죄책감을 갖거나 패닉에 빠지는 대신, 방금 전 자신의 공격에 대해 반성하고 개선점을 찾아냈다.
적에 대한 무자비함.
영락없는 전사의 마음가짐이다.
이게 안 되면, 제아무리 대단한 힘과 운동신경을 갖고 있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건 이진윤의 사례가 보여주듯, 각성자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
난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가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목적지는 무기고.
대규모 전쟁을 벌이려면 기본적으로 병사가 필요하고, 그들에겐 무장이 필요하다.
이곳, 성안의 무기고를 털 수 있다면, 그 수요를 충족함과 동시에 적의 세력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라는 게 점령 퀘스트의 내용.
“누구냐!”
무기고 앞에는 역시나 또 다른 경계병이 지키고 있었다.
그자가 우릴 발견하고는 손에 쥔 창을 앞으로 내민 순간.
타타탓!
아델이 재빨리 앞으로 뛰쳐나가 검을 휘둘렀다.
여전히 자세는 엉거주춤했지만, 검격의 궤적이 심상치 않았다.
챙!
창날을 옆으로 밀어내면서 대를 타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로 창을 쥐고 있는 상대의 손가락까지 칼날을 들이민다.
“악!”
손에 자상을 입은 경계병이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창을 놓쳤다.
‘끝났군.’
무기를 놓은 순간, 생사는 이미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아델은 소리를 지르려는 경계병에게 달려들었다.
“으읍!”
푸욱!
그러더니 왼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고는,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녀는 투구와 견갑 사이, 맨살이 드러난 목 부분에 그 칼을 꽂아 넣었다.
경계병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시신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 각성자가 되고 마물을 잡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녀는 겨우 한 번의 경험만으로 거의 베테랑 살수처럼 행동하고 있다.
‘패치노트에서 괜히 이 녀석을 언급한 게 아니었군.’
사실 이 성 탈환 퀘스트를 꼭 아델과 같이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녀 말고도 남작의 폭정에 불만을 가진 주민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시스템의 조정에 의해, 그녀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이 계획에 동참했을 것이다.
게다가 난이도 자체가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도 아니기에, 그저 점령 영역을 지키기만 해줄 인원만 확보하면 되었다.
하지만 난 패치노트에서 콕 집은 그녀를 꼭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이 NPC는 성 점령 이후에도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델 그 자체도 패치노트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숨겨진 보상인 셈이다.
“잘했어. 훈련만 조금 하면 금방 성장하겠는데?”
“아, 감사합니다!”
“일이 끝나고 나면 괜찮은 검술 교관을 소개해 주지.”
‘……다이아로 소환한.’
아무튼 난 경계병의 시신에서 열쇠를 찾아, 무기고 문을 강제로 열었다.
안에는 각종 갑옷과 창, 검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난 그것들을 전부 내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
<인벤토리>
-알포드 경비대 강철창(*NPC전용)
-알포드 경비대 강철검(*NPC전용)
……
───
“진짜 그게 다 영웅님의 주머니에 들어간 거예요?”
대답 대신 창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줬다.
손에서 팟, 하고 나타난 창을 보자, 아델은 신기한 마술이라도 본 듯 놀라워했다.
“우와!”
“그럼 이제 나가자.”
“넵!”
장비를 모두 챙긴 나와 그녀는 무기고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오류유발인자 침입 인지!}
{!던전 오염!}
{디버%dfg$^&실5ar23%%#!da45}
{asdf2%[email protected]#$r90c87S887dat*)()_}
“뭐지……?”
“네? 뭐라고요?”
눈앞이 기이한 오류 메시지로 가득 찼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시스템 메시지들이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난 그것들을 모두 치워 없애버렸다.
그런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기괴하게 몸이 뒤틀리는 경계병의 시체.
“이건…… 뭐지……?”
쩌적. 까드득.
들개? 거미? 뱀? 박쥐?
그것은 무어라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는 마수의 융합체였다.
“……당장 거기서 떨어져!”
난 ‘그것’의 바로 앞에 서 있던 아델을 향해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