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4화
예상대로 이전 5년간 다이아 경매의 유일한 낙찰자로 패치노트를 독점해 온 존재는 검제가 맞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칼리닌스카야 쪽으로 끄는 데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건 모두 다리우스와 보그단 덕분이었다.
“난 아직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
정작 본인들은 자기들이 뭘 했는지 잘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네가 말한 그 말도 안 되는 정보들이 진짜 맞아떨어진 것도 이상하고…… 갑자기 벨그레이브니 뭐니 하는 이상한 놈들이 튀어나와서 칼리닌스카야를 난장판으로 만들질 않나. ……넌 이렇게 되리란 걸 다 예상하고 있었던 거야?”
“그럴 리가.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야?”
난 다리우스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나도 일이 이렇게까지 좋게 풀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래 봐야 검제 측과 칼리닌스카야가 이런저런 신경전을 하면서 서로의 발목을 묶는, 그런 수준의 전개가 나오는 정도만 예상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내 행동반경을 넓힐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도 모르고 있던 요소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상승 효과를 일으키더니.
급기야는 칼리닌스카야를 완전히 불구로 만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간 각성자들의 전설 수호령을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꿀꺽해 버린 건 덤.
{의지력: 126 (+ 5)(+ 863)}
덕분에 의지력이 31이나 증가하면서 올스탯이 1천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여기에 3개의 훔친 권능, 그리고 새로운 아지다하카 자체 권능까지 잠금 해제되었다.
물론 그 권능들은 얻고서도 아직 제대로 된 활용법조차 모르고 있다.
워낙 이리저리 돌아다닐 데가 많다 보니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젠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칼리닌스카야를 조질 거야?”
한편, 다리우스가 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새삼스럽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건, 그도 여기서 더 나아가는 게 위험함을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분간은 보류해야지.”
“흠…… 벨그레이브 놈들 때문에?”
“그래.”
그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대단한 가치가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벨그레이브라는 거대 조직이 그걸 노리고 있다는 것도.
이 두 가지 전제를 알고 있으니.
패치노트를 쥐고 있는 자가 나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벨그레이브의 표적이 이쪽으로 돌려진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네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당분간 칼리닌스카야는 허수아비 역할로 살아 있어 줘야 할 것 같다.”
따라서 이 이상 들쑤셔 놓기보다는, 현 상황을 유지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다리우스 또한 그걸 모르는 게 아니었는지, 딱히 반대하진 않았다.
“뭐,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솔직히 이 정도로 빠른 시간 내에 그놈들을 박살 낼 수 있을 거라곤 기대도 안 했고. ……근데.”
물론 그럼에도 의문은 남아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그렇게 그놈들의 발을 묶어놓고 뭘 할 거냐는 거지. 다른 근사한 계획이라도 있어?”
“있지.”
“어떤 계획?”
“그건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또 수수께끼 시작이군.”
다리우스가 양손을 들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 돈은 꼬박꼬박 줄 테니까.”
“이봐, 친구.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럼 뭐가 문젠데?”
“난 그래도 우리가 한배를 탄 패밀리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자꾸 이렇게 숨기기야?”
“가족 사이에도 비밀은 있게 마련이지.”
“얼씨구.”
“존중해 달라고. 의심 없이 믿어주는 것도 가족이잖아?”
“하, ……말은 겁나게 그럴듯하구만.”
그가 내 궤변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좋아. 여기까지 왔으니 난 널 믿겠어.”
“그래. 잘 생각했다.”
“어차피 안 믿는다고 해도 내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잘 아네. 그렇게 자기 주제를 아는 것도 능력이야.”
“하!”
그가 장난스럽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나도 거기에 똑같이 응수해 줬다.
“가다 똥이나 밟아라.”
“너나.”
다리우스의 말을 뒤로한 채, 난 내 갈 길을 떠났다.
* * *
세상은 변화한다.
구태의연한 세상사 이치 같은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어떤 존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시스템’이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까진 없던 새로운 던전이 등장하고, 새로운 유니크 무기가 그 던전의 보상으로 주어진다.
패치노트를 가진 자는 그 모든 새로운 것들을 선점할 권한을 가진다.
‘여태까진 그걸로 세상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이젠 내가 직접 움직일 때가 됐어.’
칼리닌스카야와 벨그레이브, 양쪽이 서로를 견제하느라 발이 묶여 있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건 바로 유니크 무기를 얻는 것이다.
{신규 유니크 무기 -(1) 여섯 번째 에테르 웨폰이 세계에 생성됩니다.}
세상엔 여러 가지 종류의 유니크 무기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최상급은 ‘에테르 웨폰’이라고 불리는 무기들이다.
난 이번 패치노트에서 그것의 획득 경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의외로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도 발견했다.
‘최고 등급 유니크라 나 같은 건 못 얻을 줄 알았는데.’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새로 추가되는 요소들 대부분이 현시점 강자들의 기준에 맞춰져서 그런 건지 수준이 높은 것들이 많았지만.
이건 아주 손쉬운 퀘스트 하나를 클리어하기만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긴가.”
난 패치노트에서 언급된 장소에 도착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알포드’라는 작은 마을 근방, 인적 없는 평야 한가운데.
이곳도 개인이 되었든 국가가 되었든 누군가의 소유지이겠지만, 딱히 못 들어오게 막고 있다거나 하진 않았다.
왜냐면 여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알포드 성>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올해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작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던전이 나타난 것이다.
에테르 웨폰을 얻는 퀘스트는 바로 이곳, ‘알포드 성’에서 진행된다.
‘입장.’
파앗.
순식간에 현실세계에서 이세계로 이동했다.
풍경은 그다지 바뀐 게 없다.
여전히 울창한 나무로 가득한 산속.
다만 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저 앞에 거대한 성 하나가 절벽을 등지고 서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난 곧장 그 성을 향해 걸어갔다.
“멈추시오!”
성문 앞의 경비병이 나를 막아 세웠다.
그는 오크도, 고블린도 아닌, 인간이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복장이로군. 소속과 신분을 밝혀라!”
레이드 던전 내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중세 유럽과 유사한 배경의 판타지 세계였다.
그때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다수의 각성자들 때문에 배경과 맞지 않는 복장을 한 사람도 NPC들이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지금 이곳에 21세기 현대의 복식을 하고 있는 인간은 나 하나뿐이다.
심지어 이 던전이 형성된 이후 최초.
그러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여기.”
난 그 경비병에게 탈리스만을 꺼내 보여주었다.
탈리스만은 각성자임을 표시하는 증거.
왜인지 이세계의 인간형 NPC들은 우리가 각성자란 걸 알아채면 ‘영웅’이라 칭하며 받들어 모셨다.
“그게 뭐지? 그런 걸로는 신분이 증명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경비병은 내 탈리스만을 보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되레 들고 있던 창끝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뭐야? 분명 패치노트에선 이렇게 하면 그냥 통과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아무런 대답 없이 잠시 당황했다.
뭔가 이상 현상 같은 거라도 생긴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의 앙그라 마이뉴 때문에 항상 오류를 몰고 다니는 나라서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네놈! 정말 수상하…… 악!”
“뭐 하는 거야?”
그때, 다른 통행인에 대한 검문을 마친 또 다른 경비병이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왜, 왜 그러십…….”
“이분은 영웅님이시잖아! 보고도 몰라?”
“예에……?”
그럼 그렇지.
방금 그 남자는 그저 초짜일 뿐이었다.
새로 나타난 경비병은 내게 깍듯하게 머리를 숙였다.
“무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남작 각하께 용무가 있으시다면,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나를 이 성의 성주에게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마치 이미 내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아니, 괜찮아.”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처음 들어와 보는 이 던전에서 받는 귀빈급 대우에 넙죽 그 말을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저건 함정이다.
저대로 따라 들어갔다간 이 던전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루트를 진행하게 된다.
……라고 패치노트에 쓰여 있었다.
“난 여기 마법 상점에 볼일이 있어서.”
대신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그냥 마을로 들어간다.
NPC들은 실제 사람과 똑같이 스스로 판단하면서 주변 환경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말 한마디도 잘 생각하고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의심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지나간다.”
“……예.”
하지만 여전히 경비병의 눈빛은 탐탁지 않았다.
내 변명이 그다지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다.
저걸 그대로 두면 나중에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하다.
윗선에 보고라도 하는 순간, 모든 게 엎어질 것이다.
‘어쩔 수 없나.’
이럴 때는 동서고금, 현실과 비현실을 막론하고 무조건 통하는 만병통치약을 쓰는 수밖에.
{1,000골드를 상대방에게 넘기시겠습니까?}
“아, 아니, 갑자기…….”
난 아무 말 없이 경비병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빙긋 웃었다.
그는 “크흠.” 하는 헛기침과 함께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다시 아까처럼 예의 바르게 머리를 숙였다.
* * *
“제, 제발! 딸만은 안 됩니다!”
“가진 게 없으면 몸뚱이로라도 때워야지!”
마을 안에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입구에서 만난 경비병과 똑같은 갑옷의 병사들 여러 명이, 어떤 남자로부터 채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를 강제로 데려가려고 하고 있었다.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제발 딸아이만은…….”
“닥쳐! 안 놓으면 팔을 잘라주마!”
스릉!
급기야는 병사 하나가 허리춤에서 칼까지 뽑았다.
정말 피라도 볼 셈인 것 같았다.
퍽!
“악! 뭐냐?”
그런데 그때, 주먹만 한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그자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주변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군중 사이의 누군가가 던진 것이었다.
“어떤 놈이야? 당장 튀어나와!”
휙! 퍽!
“크악!”
호통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돌이 날아와 병사의 머리를 맞췄다.
이번 것은 아까보다 훨씬 컸다.
그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 이놈들이!”
스릉! 스르릉!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옆에 있던 다른 병사들이 모두 일제히 칼을 뽑았다.
‘저자로군.’
난 그 와중에 방금 돌을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겉보기엔 여느 마을 주민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그자를 유심히 지켜봤다.
“방금 돌을 던진 자가 누구냐? 나오지 않는다면 한 명씩 죽이겠다!”
분위기는 험악해져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민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뿐,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몇몇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그럼 한번…….”
휙! 휙휙! 휙!
퍽! 퍼억!
“으아!”
그리고 다음 순간, 마을 주민들은 일제히 그 병사들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무장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돌팔매질만으로도 매우 위협적이었다.
“이 개놈의 자식들! 그래, 어디 한번 죽여 봐라!”
개중에는 집에 있는 농기구 등 날붙이를 들고 덤벼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 도망쳐!”
결국 머릿수에 압도당한 성주의 사병들은 모두 퇴각하고 말았다.
“다시 오기만 해봐라! 그땐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주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는 성주.
그에 반감을 가진 주민들.
쌓이고 쌓여온 그들의 분노가 직접적인 반항으로 분출된 이때.
패치노트에 언급된, 각성자가 개입할 최적의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다.
“이봐. 당신.”
난 아까 전에 눈여겨봐 두었던, 군중 사이에서 처음으로 돌을 던진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나랑 얘기 좀 하지.”
그러자 곧바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성주가 되다> 퀘스트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올해 추가된 신규 시스템.
공성전 시스템을 개방하기 위한 선행 퀘스트가 발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