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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9화 (29/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9화

신화시대의 기억 속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장에 뛰어드는 삶을 살았다.

끊임없이 침공해 오는 이종족들.

그중에서도 특히나 오크들은 인간들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인지, 치가 떨릴 정도로 집요하게 싸움을 걸어댔다.

그런 전란 속에서도 우린 어떻게든 싸워 이겨냈으나, 때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밀릴 때도 있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장군님!”

한 병사가 다급하게 내게로 달려왔다.

난 어느샌가 일개 병사가 아닌 장군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습니다! 이건 그냥 개죽음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때문이었다.

꽈릉! 꽈릉!

바로 눈앞에서 연속적으로 떨어지는 벼락에 무수한 병사들이 잿더미로 변해 사라졌다.

마른하늘에 내리치는 번개.

그것도 심지어, 모두 우리 쪽 병사들만 노리고 집중적으로 날아든다.

그것은 ‘신의 기적’이라는 말 외의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현상이었다.

“뇌신 토르께서 우리를 굽어살피신다! 모두 겁먹지 말고 전진하라!”

“크라아악!”

적진 가운데 기묘한 문양이 양각된 양손망치를 든 오크 워로드가 외쳤다.

그러자 모든 오크들이 기세등등하게 걸어왔다.

‘저놈이 신의 가호를 받은 놈인가.’

지금 떨어지고 있는 벼락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저 양손망치를 든 워로드.

그가 ‘천둥의 신 토르’의 힘을 빌려와 아군을 휩쓸고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고삐를 잡아당기며 박차를 가했다.

“자, 장군님! 뭐 하시는 겁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놈의 목을 베고 오겠다. 이랴!”

“장군니이임!”

보좌관의 절규를 무시하고, 난 칼 한 자루만 들고서 말을 몰아 오크 워로드를 향해 내달렸다.

꽈릉! 꽈릉!

내리치는 번개 폭풍을 돌파하며 홀로 전장을 횡단.

“크라락!”

수많은 오크 잡졸들이 덤벼들었지만 나를 저지할 순 없다.

앞길을 가로막는 것들은 마상에서 휘두르는 내 검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갔다.

나에겐 권능의 힘은 없으나, 인간으로서 쌓은 무의 업(業)이 있다.

찌릿.

순간 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난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달리던 말에서 재빨리 뛰어내렸다.

꽈릉!

번개가 그대로 말에게 떨어졌다.

말은 감전되어 죽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뛰어들었다.

목표는 토르의 가호를 받은 워로드.

쉬이익! 카앙!

“칫!”

아쉽게도 내 검은 놈에게 닿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 방벽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감히 뇌신께서 가호를 내리신 이 몸을 베려는 것이냐!”

워로드는 그 상태에서 들고 있던 양손망치를 내게 힘껏 휘둘렀다.

겉보기엔 매우 둔탁해 움직임도 느려 보였으나.

‘빠르다!’

워로드는 그 크고 묵직한 망치를 엄청난 속도로 휘둘렀다.

짧은 칼 한 자루를 들고 있는 나조차도 아슬아슬하게 따라잡힐 것 같은 속도였다.

콰앙!

“큭!”

그 공격은 간신히 검으로 막아내긴 했지만, 망치는 베는 것이 아니라 때리는 무기.

칼날과 갑주를 넘어 고스란히 전해진 충격이 내 몸을 두드렸다.

“쿨럭!”

몇 바퀴나 바닥을 구른 후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선 나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단 한 방에 이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신의 힘을 빌려 쓰는 오크 워로드…… 단순히 벼락을 내리는 것만이 아니란 건가.’

격의 차이가 느껴졌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압도적 힘의 차이.

물론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

꽈릉!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난 그걸 옆으로 굴러서 피한 후, 다시 일어나 워로드를 향해 돌진했다.

꽈아악.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른다.

지금껏 쌓아온 무의 업이, 농밀한 기운으로 뭉쳐져 칼날 위에 덧씌워진다.

“으아아아아!”

기합과 함께 휘두른 검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콰창!

그 검격에 마법 방벽이 깨어지고, 잇달아 치고 들어가는 후속타를 내질렀다.

“아, 아니?”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황한 워로드가 뒷걸음질 치며 회피했다.

두 번째 타격은 거기에 닿기엔 칼날이 너무 짧아 보였으나.

츄학!

칼끝이 접촉하지 않았음에도, 흘러나온 날카로운 예기가 워로드의 몸통을 베어냈다.

“크락!”

좌측 어깨에서 우측 허리까지, 깊게 파고든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놈은 괴로워하며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다.

“크라악! 감히 인간 주제에!”

쩌렁!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발광했다.

다시 한번, 놈이 한 손에 쥐고 있던 망치에서 직선으로 전격을 퍼부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에,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

파지지직!

“으극!”

찌릿찌릿한 번개가 전신을 헤집어놓는다.

몸의 장기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난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 칼자루를 양손으로 쥐고 워로드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

“저, 저리 가……!”

서걱!

무미건조한 일참이 두꺼운 워로드의 목을 파고들었고.

다음 순간, 머리는 땅 위로 뒹굴었다.

그렇게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고 나서야, 전장을 휩쓸던 토르의 번개가 멈췄다.

“허억…… 허억…….”

다리가 후들거린다.

지팡이처럼 땅을 짚고 선 검에 의지해야만 겨우 서는 게 가능할 정도로 힘이 빠졌다.

“그…… 그락…….”

주변에 둘러싼 오크 병사들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쳐 있는 나를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

“내가 아무리…… 만신창이여도…… 너희 따위가 넘볼 수 있을 정도는 아냐…….”

난 땅을 짚고 있던 검을 다시 들어 전투태세를 취했다.

아무리 체력이 떨어졌어도, 날카로운 살기는 예리함을 잃지 않는다.

‘오크 놈들을 죽이겠다’는 의지만큼은 여전히 그대로니까.

“도, 도망쳐!”

그런 내게서 공포심을 느낀 걸까.

아니면 지휘관이 죽어 사기가 바닥난 걸까.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던 오크군은 갑자기 태세를 바꿔 퇴각하기 시작했다.

“장군니이임!”

난 저 뒤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부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억지로 붙잡고 있던 의지의 가닥을 놓을 수 있었다.

* * *

그대로 치료소로 실려 가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몸에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게다가 오크군이 퇴각하면서 전투도 우리의 승리로 끝난 것 같았다.

“장군님이 없었다면 저흰 절대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우리가 물러나면 전부 끝이니까. 어떻게든 버텨야지.”

아내가 죽은 이후, 사람들을 지키는 것에 더 강한 집착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인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버텨야만 했다.

아들마저 잃는 일만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되니까.

웅성웅성.

“응?”

내가 보좌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갑자기 치료소 안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뭔가를 챙기고 정리하는 분위기.

“밖에 무슨 일이 있나?”

내가 일어나려 하자, 보좌관이 말렸다.

“장군님은 여기 계십쇼. 제가 확인해 보고 오겠…….”

덜컥.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 ‘분주함의 원인’이 다름 아닌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신관님!”

왕국의 주신을 섬긴다는 대신관.

화려한 장식으로 몸을 치장하고 있는 늙은 남자가, 수십 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흥, 누군가 했더니.”

난 그자를 한번 쳐다보고는 누운 자리에서 고개를 홱 돌렸다.

일개 장군이 무려 대신관 앞에서 할 만한 행동은 아니지만, 난 어차피 저 치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어허! 뭐 하는 짓인가!”

“장군은 대신관님께 적법한 예를 갖추라!”

“…….”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뻗댔다.

“네 이놈!”

수행원 중 하나가 호통을 쳤다.

하지만 대신관이 그를 제지했다.

“나는 괜찮네. 그는 환자이지 않은가. 내버려 두게나.”

“하지만…….”

“으흠.”

“……아, 알겠습니다.”

그는 짐짓 점잖은 체하며 헛기침을 했다.

나를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던 수행원들은 금세 잠잠해졌다.

그러자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여긴 뭐 하러 오셨습니까?”

조금이라도 편안히 쉬고 싶은 난 어떻게든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먼저 용건을 물었다.

그 물음 자체도 굉장히 무례한 어조였지만, 대신관은 내가 뭘 하든 용서해 주겠다고 생각했는지 인자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저 더러운 이종족들로부터 왕국을 지켜낸 영웅의 얼굴을 보러 온 걸세.”

“그렇습니까? 지금 보셨으니까 목적은 달성하셨군요. 이제 가십시오.”

“저, 저……!”

“크흠.”

다시 그가 헛기침을 하자, 주변의 수행원들이 잠잠해졌다.

한껏 험악한 표정을 짓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주먹을 부들거리는 그들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래서 말일세. 나는 자네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무용담을 들려줬으면 하네.”

“응?”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무용담을 늘어놓으라니, 이게 대체 왜 대신관의 입에서 나올 부탁인가 싶었지만.

“그래. 어려울 건 없네. 연설 내용은 우리가 준비해 줄 테니, 자네는 그걸 읽기만 하면 된다네.”

난 이내 이 자가 뭘 원하는 건지 눈치챘다.

‘간증하라는 거구나.’

전투에서 있었던 무용담에, ‘신’이라는 뻥을 섞어서 사람들을 향해 말하게 시키려는 것이다.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일 테지.

물론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하나뿐이다.

“싫습니다.”

“……흠. 왜지?”

“내가 왜 내 무용담에 당신들 뻥을 섞어야 됩니까?”

“그건 자네의 오해일세. 우린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진실? ‘절대신 아후라 마즈다’니 나발이니 하는 거짓말이나 떠드는 게 진실입니까?”

내가 그 이름을 입에 올리자, 방 안의 분위기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다른 신관들뿐만 아니라, 인자함으로 일관하던 대신관마저 표정이 굳었다.

“네…… 네놈……!”

“그 무슨 망발을……!”

이 반발만큼은 대신관도 막지 못했다.

오히려 그도 한마디를 더 얹었다.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담다니…… 신께서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걸세.”

“하지만 보시다시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네요.”

난 어깨를 으쓱하며 조롱하듯 대답했다.

그런데 이번엔 역으로 대신관의 대답이 나를 분노케 했다.

“이보게, 장군. 자네가 그렇게 싸울 수 있는 것도 신께서 내린 축복 덕일세. 그런 불경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뭐?”

콰당!

“으앗!”

침대 옆에 놓여 있던 탁상을 발로 차 넘어뜨렸다.

“신의 축복? 개소리하고 있네.”

신의 축복. 권능. 가호.

그건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단어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게 전장에 나타날 때마다,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건 다름 아닌 우리였으니까.

“저 이종족들에겐 있고 우리에게 없는 게 뭔지 알아? 그게 바로 신이야. 우리한텐 축복이란 게 내려진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

‘절대신 아후라 마즈다’라는 건 그저 망상에 불과한 존재일 뿐.

우린 항상 우리의 힘만으로 싸워야만 했다.

적들이 신의 가호를 받아 전장에 기적을 일으킬 때, 우린 우리의 노력으로 일궈낸 힘과 무기만으로 그 기적에 맞서야 했다.

반면 신관이라는 작자들은 회복마법 하나도 쓸 줄 모르는 무능한 놈들인 주제에, 가짜 신을 명목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갈취하고 권력을 누렸다.

전장에서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동안, 이놈들은 편히 놀고먹으면서 망상 놀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뭐? 신의 축복?”

“이…… 이 무슨…….”

“그딴 개소리나 할 거면 당장 꺼져!”

와장창!

난 손에 집히는 물건을 마구잡이로 집어 던졌다.

“으, 으아! 나갑시다!”

결국 겁먹은 대신관 일행은 내 방에서 쫓겨나듯 밖으로 도망쳤다.

“자, 장군님…….”

그 잘난 신이란 게 있었으면 우리가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겠지.

그럼 이렇게 자주 침공당하지도 않았을 테고.

내 아내도 살아있었겠지.

그런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 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후…….”

* * *

그 일이 있고서 몇 시간 후, 내게 대장군이 찾아왔다.

“대신관에게 폭언에 물건까지 던졌다면서?”

“죄송합니다.”

“쯧. 적당히 했어야지.”

방문 명목은 나에게 처벌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는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인물이었기에, 그리 심각한 처벌을 내리진 않았다.

“한 달간 자네를 자네 집에 구금조치 하라고 지시해 뒀네.”

사실상 집에서 쉬라는 소리.

군에서 가장 강한 전력 중 하나인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자네도 좀, 너무 뻣뻣하게 굴지 말고.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으면 적당히 참고 넘어갈 줄도 알아야지, 응?”

“죄송합니다.”

“……뭐, 솔직히 나도 네 얘기 듣고 나서 속이 좀 시원하긴 했다만.”

물론 그 역시 전장의 사정을 모르는 이가 아니므로, 신관들의 헛소리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당분간은 몸 사리게. 알겠나? 아흐리만 장군.”

“알겠습니다.”

* * *

……여기까지가, 내가 들여다본 신화시대의 기억.

여기서 얻은 가장 중요한 정보는, 마지막에 들은 이름이었다.

‘아흐리만.’

그건 악신(惡神) ‘앙그라 마이뉴’의 이명이었다.

내 수호령인 아지다하카가 그의 화신(化身), 다른 말로 아바타(Avatar)로 현신한 존재이고.

지금까지 내가 보고 있었던 기억은 바로 그 신의 기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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