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7화
다리우스의 어머니가 죽었다.
나와 그를 위해 대접했던 홍차 안에 들어 있던 독극물을 마신 것이다.
소리를 듣고 주방에 갔을 때는, 이미 컵 안에서 죽은 날벌레와 똑같은 모습이 된 채였다.
“내가 반드시…… 엄마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다 없애버릴 거야. ……크흑.”
일반적인 생물은 섭취 즉시 사지가 분해되며 죽는 극독.
해독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을 만큼 반응이 빠르고 즉각적이다.
이런 건 나도 들어본 적조차 없다.
‘알고 있었다면 직접 썼겠지.’
보통 하급 각성자들은 마물 사냥을 나갈 때 부족한 화력을 보충하기 위해 무기에 독을 바르곤 하는데.
내가 하급 각성자일 때도 이런 종류의 독은 전혀 접해보지 못했다.
물론 그 이유는 당연히 이렇게 강력한 만큼 얻거나 정제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물건이기 때문일 터.
즉, 어지간히 규모가 큰 집단이 아닌 이상에야, 이 독극물은 입수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기서는 칼리닌스카야의 소행으로 봐야겠지.’
문제는 이 독으로 나를 노렸을 리가 없다는 건데.
‘내가 이 집에서 홍차를 대접받는 상황이 언제 올지는 저들이 절대 알 수 없어. 다리우스가 매수된 게 아닌 한.’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면, 그가 매수된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한마디로 이건 날 노린 게 아니라 다리우스를 노린 테러란 뜻이다.
그것도 필요 이상으로 비싸고 강력한 독극물을 써서 말이다.
‘……경고하려는 거군.’
이건 니콜라이 패밀리 전체에 대한 경고다.
조직 내부의 정보를 캐낼 수 있는 니콜라이 패밀리와 그 정보를 활용해 자신들을 농락하는 나 사이의 관계.
그걸 어떻게든 끊어내려는 것이다.
이런 희귀한 독을 사용함으로써 거대한 집단이 연루되었다는 정황을 대놓고 드러내고.
이 사건을 알게 된 니콜라이 패밀리의 다른 일원들로 하여금 나와의 거래를 꺼리게 만들려는 속셈.
직접적인 무력을 활용하는 것보다, 이런 무지막지한 독극물로 죽이는 게 훨씬 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좋다.
‘나한텐 이런 수작이 안 먹힐 게 뻔하니, 정보 원천의 씨를 마르게 하겠다?’
눈과 귀가 가려진 나는 덫에 걸린 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칼리닌스카야의 요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겠지.
이 모든 게 놈들의 의도대로만 흘러갔다면 말이다.
‘하지만 너흰 너무 부주의했어.’
결국 죽은 건 다리우스가 아니라 다리우스의 어머니다.
가족을 건드리면, 증오와 반발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법.
그리고 때마침 이 옆에 있는 난, 그걸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리우스.”
“크흑.”
“하나만 묻자.”
그는 모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느라 제대로 대답할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난 아랑곳 않고 계속 말했다.
“너는 칼리닌스카야 놈들과 한패인가?”
“……뭐?”
그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내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이 개자식! 아직도 그딴 소리가 나와? 넌 이 모든 걸 바로 눈앞에서 봤으면서도 날 의심하는 거야? ……X발…….”
“그래. 아니라는 거군.”
“젠장.”
“그렇다면 내가 널 위해 놈들에게 복수를 해주겠다.”
“……복수?”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내게 놈들의 정보를 줘. 그럼 난 그걸로 그들을 무너뜨릴 거다.”
잔인하지만, 난 그의 감정을 철저하게 이용할 생각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다리우스 본인도 원하는 일일 터다.
“……네가 아무리 강하다지만, 그놈들은…….”
“할 수 있어.”
내가 강하게 밀어붙이자, 다리우스는 내 눈을 한참 쳐다봤다.
그러더니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진짜 자신 있어?”
“어차피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잖아. 처음부터 난 그놈들을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으로 너한테 의뢰한 거다.”
“……그래, 알겠어. 해보자.”
이걸로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을 조력자를 얻었다.
이전처럼 금전으로 연결된 관계는 이익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는, 불완전한 관계였다.
그러나 감정으로 연결된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 법.
이렇게 되면 훨씬 더 내밀한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걸로 내 발목을 잡으려 했겠지만…… 틀렸어. 너흰 오히려 나한테 날개를 달아준 거나 마찬가지야.’
지금부턴 전보다 훨씬 더 과감하게 놈들의 품속으로 파고들 작정이다.
* * *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독극물 홍차의 입수 경로를 밝혀내는 것이다.
“네 어머니에게 홍차를 자연스럽게 선물할 만한 인물이 근처에 있나?”
“그거야…… 한두 사람으로 좁혀 말할 수는 없지. 이 동네에만 해도 알고 지내는 이웃이 얼마나 많은데.”
“음.”
“그게 지금 당장 중요해?”
“당연히 중요하지. 칼리닌스카야 놈들의 독극물이 네 집안까지 들어올 수 있는 경로가 존재한다는 거니까.”
“경로……?”
“그들이 너의 존재와 내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 그리고 네 집의 위치까지 전부 알고 있다는 뜻이야. 네 주변의 누군가를 통해서 말이야.”
그 말은 곧, 내 안전조차도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난 그로부터 빼낸 정보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실제로 그와 접선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 여자가 나타난 걸 보면, 다리우스 주변에서 정보가 새고 있다는 게 확실하다.
“그럼…… 나와 가까운 사람 중에 배신자가 있단 말이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면? 네 어머니를 죽게 만든 배신자를 가만히 내버려 둘 거야?”
그 말을 하자마자, 괴로워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분노에 치를 떠는 모습이 되었다.
“아니, 찾아내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자식이야말로 제일 개X끼니까.”
그는 주먹을 세게 틀어쥐었다.
이때부터 나와 다리우스는 판자촌 내부를 돌아다니며 니콜라이 패밀리의 조직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허름한 동네 곳곳에, 누군가의 평범한 아들딸로 위장해 살고 있는 마피아 조직원들.
겉보기엔 동네 양아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의외로 굉장한 능력자들이 이곳에 숨어 있다.
지하와 지상을 넘나들며 보통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정보를 수집하는 눈과 귀들이 말이다.
“브로.”
“오랜만이야!”
다리우스가 키가 멀대같이 큰 흑인 남자와 포옹하며 서로 등을 세게 두드렸다.
그러더니 나에게 그를 소개시켜 줬다.
“이 친구는 보그단.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내 불알친구야. 인사해.”
“반갑다, 브로.”
툭.
서로 주먹을 툭, 한번 부딪혔다.
그의 손은 의외로 무거웠다.
‘뭐야, 꽤 세잖아?’
희귀 수호령을 가진 각성자.
그것도 내가 주먹이 무겁다고 느낄 정도의 높은 힘을 가진 각성자였다.
수호령 등급과는 관계없이 순수 스탯 자체가 꽤 높은 것 같다.
그와는 별개로 팔과 다리 소매 아래로 빼곡하게 드러난 타투를 보니, 각성자가 되기 전에도 꽤나 날리던 녀석인 것 같다.
“저녁 먹을 시간 다 돼 가는데. 웬일이냐, 브로?”
“그게…….”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는 게 어때? 꽤 긴 얘기가 될 것 같은데.”
다리우스가 우물쭈물대자,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다른 이유보다도 주변의 누군가가 우리 대화를 들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아, 그, 그래. 그러자.”
보그단의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린 방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리우스는 자기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다.
“쉣.”
이야기가 끝나자, 시종일관 낮은 텐션으로 일관하던 보그단이 처음으로 큰 표정 변화를 일으키며 주먹을 쥐었다.
“어떤 새끼냐, 브로? 나한테 걸리면 죽인다, 맨!”
그는 러시아인 특유의 억양으로 미국 흑인 영어를 어설프게 따라 하며 분개했다.
“칼리닌스카야 놈들…… 젠장.”
“당장 쳐부수러 가자, 브로!”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난 그에게 손을 들어 진정하라는 표시를 하곤, 앉으라고 말했다.
“아직은 아냐.”
“넌 끼지 마라, 맨! 이건 브로와 내 일이다!”
“네 형제의 어머니를 죽인 게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인물이라면?”
“왓?”
그리고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우린 지금 그 배신자 놈을 찾으러 다니고 있거든.”
“하! 그 눈은 뭐냐, 맨?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냐?”
“이봐. 이 친구는 내 형제나 마찬가지야. 우리 엄마는 얘한테도 엄마라고.”
내 태도에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몰아붙였다.
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너무 흥분하지 마. 그냥 쳐다본 것뿐이니까.”
“헹!”
보그단이 콧방귀를 끼었다.
그는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뭔가 생각하더니, 갑자기 나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네가 우리 사이에 있는 배신자를 색출해 내려고 하는 거냐, 맨? 넌 그냥 어차피 돈이나 주고 정보나 얻어가면 되지 않나?”
근본적인 질문.
거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그 배신자가 나한테도 직접적인 해가 되니까 문제지.”
칼리닌스카야를 잡아먹으려면 니콜라이 패밀리의 정보력이 꼭 필요하고.
이들의 정보력을 활용하려면 그 ‘배신자’를 제거해야 한다.
다른 집단과 거래를 하기엔 모스크바에 더 이상 제대로 된 마피아 조직이 존재하질 않고.
이제 와서 칼리닌스카야 사냥을 멈출 수도 없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도 다리우스의 어머니를 독살한 배신자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잠깐만, 다샤가 올 때가 됐는데.”
그런데 갑자기 다리우스가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다샤? 다샤가 온다고?”
“응.”
“쉣.”
보그단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
“누군데?”
난 다리우스에게 그게 누군지 물었다.
“내 여자친구.”
덜컥.
말을 꺼내자마자, 집 문이 열리며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탈색한 단발머리를 밝은 분홍색으로 염색한, 아담한 체구의 백인 여성.
코 피어싱과 몸 이곳저곳에 새긴 문신으로 보아, 영락없는 마피아 패밀리의 일원이었다.
“다샤!”
“다샤!”
그들은 서로를 다샤라 부르며 포옹했다.
그러곤 다리우스가 말했다.
“내 여자친구, 다샤…… 아니, 다리아야. 나랑 이름이 똑같지? 남매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안녕?”
다리우스. 다리아. 둘 다 애칭이 다샤인 이름이다.
그녀가 한 손으론 자기 남자친구의 허리를 감싸 안고, 다른 한 손으론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난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아야! 아파! 아으…….”
그런데 갑자기 손을 빼고선 얼굴을 찌푸리고 아파했다.
“어어, 친구! 내 여자친구는 비각성자야. 세게 잡으면 안 된다고. 괜찮아, 다샤?”
“아으…… 으응. 괜찮아. 친구한테 뭐라고 하지 마. 실수니까.”
“…….”
잠시 후 어느 정도 통증이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자, 다리우스는 나에게 그녀에 대한 소개를 계속했다.
“다샤는 비각성자지만 컴퓨터를 잘 다루는 아이야. 지금 우리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그래……?”
“그나저나, 다리우스. 난 갑자기 왜 여기로 부른 거야?”
“그게…….”
그는 다시 보그단에게 했던 얘기를 반복했다.
이번엔 다리아가 펑펑 울었다.
“흑흑흑…… 흐아앙…….”
“난 괜찮아, 다샤. 정말로.”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아무튼 그래서.”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보그단이 화제를 전환했다.
“이제부턴 어떡할 거냐, 브로?”
다리우스는 여기 올 때부터 머릿속으로 준비해 뒀던 말을 두 사람에게 했다.
“내가 너희를 부른 건, 지금 남아있는 니콜라이 패밀리 중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두 사람이기 때문이야. 우리 넷이서 배신자를 찾아내고, 그다음엔 칼리닌스카야를 박살 내러 갈 생각인데, 너흰 어때?”
“흑흑…… 으응…….”
“당연하지, 브로! 난 브로가 하자는 건 뭐든지 할 거다!”
그러곤 동의를 얻은 그 둘과 각각 손을 잡고 어깨를 부딪치는 제스처를 취했다.
내게도 마찬가지.
그건 나를 자기 패밀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 * *
그날 밤.
나와 니콜라이 패밀리의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느라 보그단의 집에서 자기로 했다.
다들 금세 곯아떨어졌지만, 난 잠들지 않았다.
신경 쓰이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아.”
“으앗!”
탁!
밤중에 거실에서 노트북을 두들기던 그녀가 허겁지겁 화면을 닫았다.
“누, 누구야? 보그단이야?”
“아니.”
“신우? 아, 깜짝 놀랐잖아.”
난 곧바로 의자에 앉아 있는 다리아의 옆으로 다가가 바짝 붙었다.
당장에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그녀는 한껏 몸을 뒤로 젖혀 내게서 떨어지려 했다.
“왜, 왜 그래? 이, 이러지 마. 여긴…… 다리우스도 있고…….”
아까 처음 봤을 때부터, 줄곧 머릿속에 떠오른 의심.
그걸 확인하기 위해 그녀를 추궁하듯 말을 던졌다.
“다 알고 있어. 너. 칼리닌스카야의 첩자잖아.”
“무, 뭐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딱히 증거는 없다.
이건 그저 진짜인지 아닌지 말로 떠보는 것뿐.
그러니 그녀가 진짜 배신자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잡아떼면 나도 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난 거기에 아주 그럴듯한, 아니 빼도 박도 못할 팩트를 덧붙여 그녀를 압박했다.
“난 네 수호령이 전설 수호령 ‘핀 막 쿨’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
아까 전부터 이상했다.
그녀가 전설 수호령의 각성자인 게 뻔히 보이는데, 비각성자인 척하고 있는 게 말이다.
게다가 악수를 할 때도 힘을 크게 들이지도 않았다.
비각성자라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아파할 일은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가 힘 조절을 잘못했나?’라며 자기 자신을 의심하겠지만.
내 눈엔 전설 수호령의 각성자가 일부러 연기를 하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아, 젠장.”
아니나 다를까, 그 팩트에 기반한 떠보기는 아주 정확하게 먹혀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