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6화
탓!
내가 공격을 피한 걸 확인한 그녀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와 다시 한번 공격했다.
난 거기에 더 물러나지 않고 맞섰다.
쩌엉!
서로 부딪히는 농밀한 마나의 결정체.
악룡의 앞발과 사신의 주먹이 그녀와 나 사이에서 구현되어 힘을 겨뤘다.
그로 인해 발산된 충격파가 나와 그녀를 양쪽으로 밀어냈다.
‘강자다!’
그 한 번의 공격을 주고받음으로써 나는 알아챘다.
이 여자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NL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칫!”
뒤로 튕겨 나간 그녀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예의 시체 각성자들을 힐끗 바라봤다.
“카하악!”
그러자 그것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각기 다른 투영무구를 휘두르며 사방에서 쇄도해 온다.
일부는 근접무기를, 일부는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이것도 저자가 조종하는 거였나.’
물론 저건 모두 내 발을 붙잡기 위한 미끼 공격.
진짜는 그녀가 직접 행하는 권능이다.
콰직!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바닥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러자 내 쪽으로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림없지!’
난 뒤로 빠지면서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다가오는 시체 각성자들에게 페일노트 마탄을 쏘아 보냈다.
팡! 팡! 팡!
연달아 발사된 세 발의 마력탄.
마력탄은 관통하는 성질이 담겨 있어, 궤도 상에 있는 적들을 한꺼번에 꿰뚫었다.
단번에 시체 각성자 다섯 명이 나가떨어졌다.
콰앙!
그리고 뒤늦게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바닥으로부터 폭발이 일었다.
파랗게 빛나는 기운이 콘크리트 조각들과 함께 하늘로 비산했다.
‘게 볼그 난격.’
난 오히려 그 폭흔에 다시 뛰어들어 공격을 날렸다.
그 폭발에 몸을 숨기고 추격타를 치러 올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
그리고 그 예측은 적중했다.
내 연속 타격이 그녀의 강권(强拳)으로 일어난 충격파와 부딪힌 것이다.
파바바바방!
터엉!
모든 공격이 거기에 상쇄됐지만, 난 이게 끝이 아니다.
‘업화의 구. 파산권 칼라드볼그.’
게 볼그에서 이어지는 연계기.
거기에 불꽃을 더했다.
필살의 정권은 새까맣게 불타오르는 화염폭풍을 내뱉는다.
화르륵!
‘막을 수 있으면 막아봐.’
이 강력한 공격은 막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막는다 하더라도 옮겨붙은 불꽃에 큰 데미지를 입을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강자라고 하더라도 이 복합적인 공격은…….
쉬이익!
그런데.
타타타타탕!
이번엔 저 여자 쪽에서 고속 연타를 내던졌다.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의 굉음.
기관총 소리가 났다.
저 주먹 하나하나가, 음속을 뛰어넘어 음파를 찢은 것이다.
백 번.
총 백 개에 달하는 주먹이 검은 불꽃의 돌풍과 부딪힌다.
삼십연격에서 이어지는 파산권.
강권에서 이어지는 백연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순서로 이어지는 연계 공격이 여기서 교차한다.
콰아아아!
막대한 힘이 충돌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일대에 에너지 폭풍이 몰아쳐 주변의 구조물들을 허물었다.
나를 잡기 위해 근처에 접근하던 시체 각성자들은 전부 휩쓸려 나갔고, 다리우스는 멀찍이 떨어져 방어막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유령 주택가였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벌써 몇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카가가각!
“후우.”
“칫.”
여자와 난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직감했다.
여기선 절대 승부가 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위이잉!
그때, 사이렌 소리가 다가오는 게 들렸다.
경찰이 출동한 것 같다.
이곳은 다리우스의 화승총 소리에도 경찰은커녕 사람 하나 나타나지 않을 만큼 치안이 나쁜 슬럼가였지만.
방금 전의 그 에너지 폭풍은 경찰 당국에서도 위험하다고 본 모양이었다.
세계 어디서든 길거리에서 각성자들이 힘을 쓰는 걸 반기는 나라는 없으니, 만에 하나 붙잡히기라도 하면 굉장히 귀찮아진다.
‘그녀도 여기선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
아무리 정부와 결탁한 NL이라고 해도 이 이상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난 이 틈을 타 도망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영어 알아듣지?”
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 눈빛을 보고 알아챘다.
“너 다음에 봐.”
다짜고짜 죽일 듯이 공격해놓고 갑자기 다음에 보자니.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닥쳐. 그때까지 나 말고 다른 놈들한테 잡히면 죽을 줄 알아.”
“……뭐?”
그러더니 훌쩍 떠나버렸다.
“무슨 개소리야?”
다른 놈들한테 잡히지 말라니.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말만 남기고 떠났다.
“이봐! 괜찮아?”
뒤늦게 다리우스가 다가와 내 상태를 살폈다.
그러더니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일단 이쪽으로 와! 내가 도주로를 알아!”
그는 이 동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현지 마피아.
우선 경찰로부터 벗어날 때까지는 그를 따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겠다.”
* * *
“젠장…….”
나나는 도망치면서 자신이 실수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 상황에서 경찰이 올 때까지 놈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면 자신과 유신우는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을 것이다.
아마 대각성자 기동타격대가 출동했을 테니, 저항도 불가능.
거기서 정부가 뒤를 봐 주는 NL의 조직원인 그녀는 쉽게 풀려날 테고, 유신우는 어떤 방식으로든 처분되겠지.
사냥개로서 목표를 달성할 거라면 그렇게 지저분한 수를 써서라도 잡았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난 왜…… 그런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거지?’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유신우라는 적을 그런 식으로 끝장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장. 이 거지 같은 싸움꾼 근성.’
나나는 잠시 동안 잊고 있었던 예전 모습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각성자가 된 직후, 주먹으로 뒷골목을 평정하고 다니던 그때의 자기 모습이.
그녀는 마물이 아니라 인간과 싸우는 것을 즐기는 전투광이었다.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싸움을 즐기는, 그런 부류의 인간.
강자와 싸우면 더 많은 스탯의 증가를 누릴 수 있다.
그 욕망을 자극하는 보상이, 타고난 호승심과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수많은 대인전 경험을 갖고 있었고, 덕분에 칼리닌스카야의 사냥개가 될 수 있었지만.
막상 사냥개가 된 후에 그녀에게 주어진 일들은 전부 자기보다 한참 약한 표적들을 일방적으로 살해하는 것뿐.
‘하지만 그자는…… 달랐어.’
조직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정말 오랜만에 호적수를 만났다.
그 흥분. 고양감.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전신을 휘감는 아드레날린에 쾌감마저 느껴졌다.
심지어 전투 방식조차 서로 닮았다.
화끈하게 주먹을 섞으며 싸운다는, 그녀의 판타지가 오늘 바로 그곳에서 실현된 것이다.
“하…….”
물론 이건 상부에서 유신우의 강함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표면적으로 그는 겨우 9급 칭호의 각성자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7급 칭호의 각성자인 나나와 동일한 수준의 전투 능력을 가진, 비정상 개체.
원래대로라면 그녀보다 더 강한 사냥개를 유신우의 상대로 배치했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다시 만나고 싶어.’
나나는 한 번 더 유신우와 싸우길 원했다.
실력이 비슷한 상대와 겨룬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
자기 손으로 그를 죽이면 한 번에 얼마나 많은 성장을 이룰까라는 기대감.
그 두 감정이 합쳐져, 그와의 재대결에 대한 갈망은 계속해서 커졌다.
* * *
다리우스를 따라 들어간 ‘도주로’는 한 폐건물의 지하실에서 이어지는 하수도였다.
뿔뿔이 흩어져서 음지로 숨어들어 간 조직의 일원답게, 말 그대로 ‘지하통로’를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
신체 능력이 뒤떨어지는 그는 안에서 군마를 소환해 내달렸고, 난 그 뒤를 쫓았다.
그렇게 미로 같은 하수도를 이리저리 오가며 경찰의 추적을 따돌린 후에 도착한 곳은,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판자촌이었다.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예전 서울의 달동네와 비슷한 분위기다.
다리우스는 그렇게 늘어서 있는 허름한 집들 중 한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형씨! 여기가 우리 집이야!”
물론 굳이 거기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다.
경찰의 추적만 따돌리면 되므로.
난 나지막이 그의 권유를 거절했다.
“난 여기까지. 다음에 보도록 하지.”
“잠깐 쉬었다 가지 그래? 도시에는 경찰들이 두 눈 부릅뜨고 돌아다니고 있을 텐데. 여긴 안전해. ……아, 엄마!”
하지만 다리우스는 끝까지 나를 붙잡았다.
심지어 그의 모친까지 문밖으로 나오더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치 아들의 친구를 대하는 듯한 태도.
“우리 엄마도 들어와서 차 한잔하라는데? 그러지 말고 들어오라고! 핫핫핫!”
‘어차피 이 녀석 말대로 몸을 숨길 곳이 필요하긴 한데…….’
각성자가 도심에서 함부로 힘을 쓰는 것에 민감하지 않을 국가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여긴 다른 곳도 아니고 러시아의 수도.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아마 도시엔 경찰들이 쫙 깔려 있겠지.
당분간은 죄가 없다고 하더라도 일단 각성자라면 무조건 조사하고 보는 풍경이 펼쳐질 테고.
만에 하나 잘못 걸리면 내 위치를 칼리닌스카야에게 드러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걸 면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다만 문제는 정작 이 ‘다리우스’라는 자가 나에게 위협이 되진 않을까 하는 것인데.
‘……통제 가능.’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과, 이 자는 내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변수다.
놈의 주변 상황, 직접 전투 능력.
이 모든 걸 생각해 보면, 나에게 해를 입힐 수 없다.
설령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은 전부 이용한다.’
그 판단에 따라, 난 호의를 받아들였다.
“좋아. 그럼 신세 좀 지도록 하지.”
“잘 생각했다, 친구!”
‘……친구?’
다리우스는 집안으로 들어온 나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그러곤 그의 모친이 러시아 전통 양식의 찻잔을 내놓았다.
대접받은 것은 홍차였다.
물론 난 전혀 손도 대지 않았다.
이런 외지에선 남이 주는 음식을 함부로 입에 가져가지 않는 게 기본이다.
“아깐 진짜 대단했어!”
다리우스는 곧바로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한 각성자들끼리 싸우는 걸 바로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야! TV에서나 봤던 건데 말이지.”
“…….”
“거기다 다른 무기도 아니고 주먹과 주먹의 대결! 솔직히 진짜 나 혼자만 보기엔 아까울 정도였다니까?”
그는 나에 대해 대놓고 낯 뜨거운 찬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기는 끼어들 틈조차 없을 만큼 완벽했다느니, 영화보다 더 멋있었다느니.
난 조용히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봐. 보아하니 돈도 많고, 실력도 좋은 것 같은데 말이야. 나랑 같이…….”
‘……음?’
찻잔 안에, 날벌레 하나가 들어가 죽었다.
이런 지저분한 환경에서 물컵에 벌레가 빠져 죽는 일이야 흔하다.
하지만 그렇게 빠져버린 날벌레의 사지와 날개가 저절로 해체된다면?
그건 절대로 흔한 일이 아니다.
달그락.
“으, 응?”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 홍차를 식탁 위에 놓인 화분에 부어버렸다.
“……이봐? 이게 무슨 짓이야?”
내 돌발행동에 다리우스가 조금 화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왜 버려!”
하지만 난 대답하지 않고 화분의 상태를 지켜봤다. 그러자.
후두둑.
“응?”
몇 초 지나지 않아, 화분의 식물은 이파리가 다 떨어져 나가며 순식간에 시들어버렸다.
독극물은 확실하다.
다만 내가 알기로 이런 즉각적이면서도 과격한 효과를 발휘하는 독극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마물 혹은 던전 속의 이세계 식생을 재료로 만든 것.
즉, 명백히 각성자를 노린 물건이란 뜻이다.
현실의 물질로는 각성자에게 해를 입힐 수 없으니, 이런 걸 쓰는 것이다.
“……흥.”
쾅!
“아악!”
난 그 자리에서 다리우스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팽개쳤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이따위 조잡한 수로 나를 해치려고 했다면 오산이야.”
집까지 데려와서 독극물을 탄 홍차를 대접한다.
당사자인 그 외에 누굴 의심할 수 있을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다리우스는 변명해 봤지만, 내겐 전혀 통하지 않는 얘기였다.
“이건 진짜 오해야!”
문답무용으로 그에게 주먹을 내지르려던 찰나.
콰당.
주방 쪽에서 무언가 커다란 물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