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4화
“가족이나 동료 관계는? 알아낸 거 있으면 전부 말해봐.”
유신우의 소재지를 파악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나는 대뜸 그의 주변인에 관해 물었다.
그건 사냥개로서의 본능.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약점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약점은 대개 사람이인 법이다.
하지만 유신우만은 거기서 예외였다.
-어…… 그게, 없습니다.
“없다고?”
-가족도, 연인도, 친구라 할 만한 자도 전혀 없습니다.
“뭐?”
그 말을 들은 나나가 곰곰이 생각하다 되물었다.
“흠…… 갓난아기가 자기 혼자 기어 다니면서 분유 타 먹었을 리는 없고. 가족은 아니어도 그 녀석을 키워준 사람이 있을 거 아냐? 출신 고아원이라든가. 그런 정보는 없어?”
-있습니다.
“그럼 그걸 가르쳐 주면 되잖아. 이 바닥 하루 이틀이야?”
그녀는 진짜 가족이 아니어도 가족처럼 지낸 사람을 찾아내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낳아준 정은 몰라도 키워준 정은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출신 고아원이 있는데…… 거기서도 유신우는 별로 가까운 존재로 여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좀 꺼린다고 할까.
“하, 미치겠네. 뭐, 문제아였대?”
-차라리 문제아였으면 어른이 된 후에 미화된 추억으로라도 남았겠죠. 그런데 그자는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답니다.
“그럼 왜 꺼린다는 건데?”
-그냥…… 정이 없었답니다.
“엥?”
-어릴 때부터 모든 인간관계를 이해득실에 따라 맺고 유지했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잘라내는,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 말입니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닌데, 그게 사람들에겐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 냉혹하기 짝이 없던 나나도 유신우의 삶에 대해 말을 듣곤 몸서리쳤다.
“참나. 진짜 지독한 놈이네. 이런 놈은 처음 본다. 그럼 주변인 중에 약점이 될 만한 인물이 하나도 없는 거야?”
-그렇습니다. 물론, 최근에 꽤나 가깝게 지내는 인물이 하나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그게 누군데?”
-근데…… 그자는 안 건드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건 또 왜?”
-그자는 한국의 하이 랭커인 성황의 친척입니다.
“뭐야, 그럼 유신우 그놈이 성황을 빽으로 두고 있다는 건가?”
-조사한 바로는 성황을 직접적인 뒷배로 둘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중요한 건 그 자를 건드리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란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차라리 유신우 본인을 직접 처리하시는 게…….
“아, 씨.”
그녀가 자기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화를 냈다.
“진짜 귀찮은 놈이네. 무슨 살면서 약점 하나 안 만들고 사는 놈이 다 있어?”
사냥개로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냥감을 만났다.
그냥 단순한 ‘잃을 것이 없는 자’라면 어렵지 않다.
왜냐면 그런 사람들은 대개 이미 가진 걸 다 잃어서 악에 받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갖는 경우가 많고, 추적하는 역할을 맡은 입장에선 오히려 어렵지 않은 상대.
그러나 유신우는 애초에 가진 게 없는 자다.
연고도 없고, 미련도 없는.
마음먹고 도망 다닌다면, 아무리 러시아 정부의 비호를 받는 이들이라도 잡기가 쉽지 않은 상대란 뜻이다.
“쯧…… 이런 놈한테는 두 번 기회를 주면 안 돼.”
나나는 지금까지 타깃에게 한 번 기회를 줬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보자마자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 * *
알렉스는 볼코프가 살해당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레이드 던전을 빠져나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슬픔의 기사 트리스탄’.
전설 수호령을 가진 자신이 이렇게도 꼴사납게 도주하는 일을 겪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 개자식…….”
그는 NL의 지부에 있는 자료실에서 CCTV를 확인하며, 유신우에 대한 증오심을 더더욱 키웠다.
그 CCTV 화면 속의 유신우는 세 명의 러시아 남자들을 기절시킨 후, 컨테이너 지붕에 거꾸로 매달아 묶어놓고 있었다.
그 카메라가 비추는 장소는 마나의 성소 입구였다.
“우리랑은 애초부터 악연이 될 놈이었어.”
볼코프 건이 아니었어도 꼭 한 번은 응징해 줬어야 할 인간.
알렉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우리 형제들이 놈을 쫓고 있으니, 그놈은 끝이야.”
그런데 같이 CCTV를 확인하던 담당자는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을 긁는 소리를 했다.
“제가 듣기로, 이 녀석 잡는 데 꽤나 애먹고 있다던데요?”
“무슨 소리야?”
“사냥개가 이놈 잡으려고 한국까지 갔는데, 결국 못 찾았답니다.”
나나는 추적에 실패했다.
아니나 다를까, 파악된 소재지에 갔더니 이미 집을 비우고 없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가 움직일 법한 행동반경 전체를 샅샅이 뒤져 보았는데도, 그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주변에 그자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답니다. 이건 무슨, 유령인간도 아니고.”
“흥.”
알렉스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말했다.
“그래 봐야 곧이야. 아무리 신출귀몰하게 숨어다녀도, 전 세계 오지 산간지역에 있는 배신자까지 다 찾아내는 게 우리 조직의 사냥개들이니까.”
그는 이번의 추적 실패도 그저 처음이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 이제 그놈은 곧…….”
쾅!
그런데 그때,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응?”
타탕! 막아! 으악!
총소리와 비명.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는 직원들.
심상치 않은 일들이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다려. 나가지 마.”
“예?”
그 순간, 알렉스는 책상에 올려두었던 활을 집어 들고 자신의 수호령 무구인 ‘페일노트’를 투영했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
문밖에 적이 서 있다.
위협을 감지한 그는, 주저 없이 시위를 잡아당겼다.
쉬익!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이 날아갔다.
목표는 문 뒤에 서 있는 자의 머리.
푸욱!
화살이 문을 꿰뚫었다.
하지만 끝내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진 못했다.
쾅!
곧이어 거칠게 문이 뜯겨나갔고, 문 앞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알렉스가 쏘아낸 마나 화살을 맨손으로 잡고 있었다.
“너, 너는……!”
“오랜만이다.”
그자는 유신우였다.
“어떻게 여길…… 아니.”
알렉스는 그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도대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그 이전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길 온 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너…… 혹시 머리가 모자란 거냐? 아니면 겁대가리를 상실한 거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온 거야?”
“물론 알고 있지. NL…… 아니, 칼리닌스카야 브라트바의 조직원들이 회합하는 장소.”
“……그걸 어떻게?”
“파면 다 나와.”
사냥개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
그런 주제에 오히려 이쪽에 대한 정보를 파헤치고 찾아오기까지 했다.
정말,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담력이다.
“그래, 좋아. 네가 대단한 놈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알렉스는 그런 그의 속셈을 간파했다.
“네가 이런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어.”
자신을 ‘건드리면 귀찮은 인간’으로 인식하게 해, 추적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의도.
그러나 그건, 러시아 마피아가 어떤 조직인지, 얼마나 집요하고 악랄한 조직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판단이다.
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 와서 깽판 좀 부린다고 우리가 널 포기할 것 같아? 틀렸어. 넌 평생 쫓기는 신세로 살게 될 거라고. 죽을 때까지.”
그는 자못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대로 유신우는 칼리닌스카야 브라트바의 적으로 낙인찍혀서 평생 도망 다니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유신우는 거기에 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면서 되물었다.
“왜 내가 너희들을 피해서 도망 다닐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뭐라고?”
일개 각성자가 거대 조직에게 적대 당한다면 도망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
사실은, 그 가정부터가 잘못되었다.
“세상에 사슴 떼 앞에서 도망치는 사자가 어디 있나?”
상대의 수호령을 흡수하는 악의의 오른쪽 눈.
그 상식 밖의 특성을 가진 그는 자신의 힘을 위해, 얼마든지 남의 목숨을 빼앗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남이 자신을 노리는 적이라면 더더욱 환영이다.
이 조직에는 유신우와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진 각성자부터, ‘거신병’이라는 1급 호칭을 가진 보스까지 있다.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하나씩 차근차근 잡아먹으면서 힘을 키워 올라가기엔 너무 좋은.
칼리닌스카야 브라트바는 그에게 있어 한 마디로 잘 차려진 진수성찬인 셈이었다.
“누가 사슴이고 누가 사자란 말이냐?”
“내가 사자, 너희가 사슴. 쫓기는 건 내가 아니고 네놈들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알렉스는 그게 그저 억지로만 들렸다.
겨우 초급을 벗어난 수준의 각성자가, 랭커들이 포진한 마피아그룹을 쫓는다니.
이건 마치 ‘1명이 30명을 따돌린다’ 같은, 어불성설인 이야기.
그러나 유신우는 거기에 진심이었다.
“억지? 아닐걸? 난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놈들을 골라잡으면 되거든.”
NL은 거대한 집단이다.
힘의 유지를 위해 서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는 그들은 아무리 보안을 지키려 한다고 해도 반드시 어딘가에 새는 정보가 생긴다.
반면 유신우는 혼자다.
얽매일 것이 없는 그를 쫓는 건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
지금껏 인간의 정과 같은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함으로써 NL이 착취해 온 ‘보통의 약자’들과는 본질적으로 결이 다른 인간인 것이다.
그런 그에겐 ‘내가 싸우고 싶을 때만 싸울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 여기 제대로 된 각성자가 너밖에 없을 때를 알고 찾아온 것처럼 말이야.”
“……뭐?”
유신우가 알렉스를 보며 웃었다.
알렉스는 소름이 돋았다.
그의 얼굴에서 악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타탓!
눈 깜짝할 사이, 유신우의 모습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익!”
알렉스의 옆에 있던 NL의 직원이 그 앞을 막아섰다.
그는 숏소드를 사용하는 근접전 특화 각성자였다.
“알렉스 씨! 제가 이놈을 막을 테니……!”
그의 의도는 자신이 앞을 막은 사이 뒤에서 지원 사격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번 유신우와 부딪혀 본 적이 있는 알렉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식의 물렁한 싸움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쉬쉬쉬쉭!
그가 다시 페일노트의 시위를 당기자, 다량의 화살이 한꺼번에 뿜어져 나왔다.
퍼퍼퍽!
“커억!”
그 사선에 서 있던 NL의 직원은 그대로 전신이 관통되어 사망.
그의 시신은 유신우의 눈을 가리는 가림막이 되었고, 화살은 진행 방향 그대로 쇄도했다.
아군을 희생시킨 필사의 공격.
피할 공간은 없다.
몸으로 맞고 버티든가, 아니면 그 많은 화살을 모두 받아치는 수밖에.
‘게 볼그 난격.’
그래서 유신우는 후자를 선택했다.
파파파파팡!
30번의 권격이 일시에 존재하는 기적이 권능에 의해 구현된다.
산탄총처럼 날아들던 화살들은, 그 무수한 동시타격의 향연에 하나하나 격추되었다.
‘또 그 기술……!’
볼코프를 죽게 만든 공격.
그걸 또다시 눈앞에서 보게 된 알렉스는 분노의 힘을 담아, 다시 다중사격을 시전했다.
‘몇 번이고 쏴주마, 전부 쳐내봐라!’
좁은 건물 안, 물러날 구멍 따윈 없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저항했다.
마나가 바닥날 때까지 모든 공격을 쏟아붓겠다고.
먼저 공격을 멈추는 쪽이 진다는 걸 알기에, 불굴의 투지로 악착같이 시위를 당겼다.
쉬쉬쉬쉭!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생각은 틀렸다.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고 해서 지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후웅!
강격파동발산기 <파산권(破山拳) 칼라드볼그>.
알렉스의 친우였던 볼코프가 휘두르던 검이.
이젠 유신우의 주먹이 되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투쾅!
폭음과 함께 직선으로 뻗은 스트레이트 펀치에서 흉흉한 권압이 뿜어져 나왔다.
“끄……아악……!”
방을 가득 메우던 화살들은 부질없이 소멸되었고.
알렉스는 권압의 돌풍에 휘말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잘게 찢겨 사라졌다.
충격파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뒤의 건물 벽까지 통째로 뜯어내 내부가 훤히 드러나게 되었다.
강격파동축적기, 게 볼그 난격은 그저 이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연계의 시작이었을 뿐.
“후우.”
유신우가 마나호흡을 사용해 소모된 마나를 다시 채운다.
그 사이, 다시금 그의 오른쪽 눈은 ‘어떤 남자의 기억’을 들여다보았고.
그 환영이 모두 끝났을 때, 여느 때와 똑같이 새로운 힘을 얻었다.
{트리스탄의 영혼을 흡수했다.}
{권능 <필중의 활 페일노트>를 훔쳤다.}
{의지력이 4 증가했습니다.}
{아지다하카와의 동화율이 상승했습니다. 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