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3화
레이드는 종료되었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때 볼코프를 죽이고 얻은 것은 4의 의지력과 ‘파산검(破山劍) 칼라드볼그’라는 권능.
‘산을 부수는 검.’
꽤나 거창한 이름을 가진 무구였으나, 그놈은 그걸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대신 내가 요긴하게 써주지.’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놈의 무구 투영 권능은, 역시나 게 볼그 때처럼 발동형 권능으로 변화했다.
───
파산권 칼라드볼그(파동발산기)
-강격파동을 소모해 폭발적인 일권을 내지른다. 악룡의 발톱 발동 중에만 사용이 가능하다.
───
물론 이 기술을 얻었을 때에도 역시 또 그 중동 남자의 기억을 보았다.
이 세 번째 기억에선 별다른 내용은 없었고 무참히 오크들을 학살하는 게 전부.
다만 이전에 자신의 아내를 잃은 분노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더 악에 받친 모습이었다.
‘대체 그 남자는 뭘까?’
이렇게 내용이 이어지는 환영을 계속 겪다 보니, 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환영 속 세상은 어떤 세계인가.
단순히 옷차림이나 배경으로 보아 고대 중동이라고 추측하긴 했지만, 그건 절대 현실 세계는 아니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것은 5년 전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거에 오크와 인간 간의 전쟁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역시나 이세계 속 존재라는 거겠지.’
그런 세상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건 둘째 치고.
다음으로 드는 의문은 내 수호령과는 무슨 관계냐는 것.
‘아지다하카는 용…… 그자는 인간인데.’
확실히 공통점은 존재한다.
내가 이 수호령을 얻은 후 처음으로 ‘악의’라는 존재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때가 바로, 오크들을 죽였을 때였다.
그런데 환영 속 남자의 기억에서도 그가 오크에 대한 강한 증오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나온다.
‘오크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기억…… 그리고 오크를 죽였을 때 기뻐하던 수호령.’
이로 미루어보아, 그 둘은 확실하게 연관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같은 인격을 공유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건 좀 더 많은 기억을 들여다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테고.
레이드 후에 내가 얻은 것은 권능이 끝이 아니다.
{칭호: 오크 슬레이어(9급)}
드디어 나에게도 칭호가 생겼다.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오크 종족에게 입히는 모든 피해량 +5%.
사실 그 효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저 뒤에 붙은 ‘9급’이라는 표시.
왜냐하면 칭호는 곧 그 각성자의 성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강한가.
내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걸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표면적인 척도가 바로 칭호다.
개개인이 가진 수호령과 스탯, 스킬 등은 타인의 앞에서 직접 시연하지 않는 한 보여줄 수 없고.
스스로의 입으로 떠벌려 봤자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칭호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타인에게 보여줄 수가 있다.
높은 등급의 칭호를 가지고 있다면, 그 수준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긴말할 필요 없이, 돈 걱정하며 살 필요가 전혀 없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이 9급 칭호를 얻는 순간부터, 초급 각성자라는 타이틀은 사라진다.’
띠리링. 띠링.
바로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는 이진윤이었다.
* * *
“그래, 진윤아.”
-네 형님!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물론이지.”
-아, 네. 다름이 아니라, 그때 저한테 맡기셨던 물건 있잖습니까?
“응.”
-그거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말하는 물건은 바로 레이드 최종 보상으로 얻은 유니크 무기, 복수자의 식칼.
난 그것의 판매를 이 녀석에게 맡겼다.
유니크 무기 거래 같은 규모가 큰 거래는 나 혼자 할 수는 없고, 당연히 중간에 기업이 낄 수밖에 없는데.
그런 용도로 이용해 먹기에 가장 좋은 사람이 바로 이진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그저 내가 ‘이용해 먹기로 한 대상’으로 여기기엔, 의외로 굉장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래? 300억에?”
-아뇨. 딱 깔끔하게 500억에 하기로 협상 봤습니다.
돈에 관한 부분에선, 전투 능력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뭐? 500?”
내 목표는 올 연말에 있을 다이아 경매에서 낙찰자가 되기 위한 115억을 버는 것이었다.
물론 딱 그만큼의 돈을 버는 것으로는 안 되고, 다른 변수나 세금 등을 생각하면 나한테 떨어지는 돈이 넉넉잡아 300억은 되어야 할 터.
그래서 내가 이 녀석에게 맡길 때도 최소한 그 정도는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전에 총 스탯 75 미만 레이드에서 나온 다른 유니크 무기들보다는 조금 더 비싼 가격.
한데 이진윤은 그보다 훨씬 큰 금액인 500억을 받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저한테 주기로 하신 거래 수수료 10% 제외해도 450억이거든요. 당초에 형님께서 원하셨던 가격인 300억보다 1.5배 많은 수준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녀석이 내 물건을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비싸게 팔아준 건 물론 이유가 있었다.
300억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데 성공하면, 자기가 수수료로 10%를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던 것이다.
어차피 목표 금액인 300억은 보장되어 있는 셈이니, 난 그걸 흔쾌히 허락했고.
그 결과, 이 녀석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돈을 나에게 안겨줬다.
“나쁠 거 없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할게요.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쓸 만한데, 이 자식?”
솔직히 처음엔 그냥 돈 많은 호구로만 생각했었다.
각성자로서는 완전히 빵점인.
하지만 그 선천적으로 타고난 겁쟁이 기질도 나름대로 극복하려는 열의를 가지고 있었고.
마지막 레이드 보스전에서는 꽤나 과감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게다가 무기 거래에 관한 능숙함까지.
“이러면 내가 굳이 돈 때문에 남한테 머리 숙일 필요가 없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으로, 큰돈을 벌어들이려면 돈이 많은 다른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내가 가진 것을 원하는 자들에게 위협당할 테니까.
그때 볼코프가 말했던 것처럼, 나 같은 사람은 결국 어딘가에 소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나 이진윤이라는 사람의 존재 덕분에 굳이 그런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세상 어느 누구도 미리내 그룹 같은 재벌가에서 비싼 물건을 판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테니.
그 녀석을 통하면 지금처럼 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젠 NL이 문제군.”
일단 돈은 생겼고, 다이아 경매가 시작되는 시기인 12월 중순까지는 아직 2달의 시간이 남은 상황.
그리고 지금 난 러시아의 대기업인 NL의 적대적 대상이 되었다.
‘대기업인지, 마피아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활을 쏘는 전설 수호령의 각성자가 살아서 도망쳤으니, 나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 본사에도 전달이 되었을 터.
레이드 던전 안에서야 나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없었지만, 밖은 다르다.
여기에 ‘총 스탯 75 미만’ 같은 제한은 없으니까.
게다가 나에게 퀘스트 계약을 걸었을 때.
그때 그들의 보스로 추정되는 계약 대상이 ‘거신병’이라는 1급 칭호를 가진 자였다.
‘1급 칭호를 가졌을 정도면 검제나 성황과 동급이란 뜻인데…….’
주 스탯이 10,000을 넘는 괴물이 그들의 보스란 소리다.
물론 보스가 그 정도면 그 밑엔 2급, 3급 등의 부하들도 있을 터.
그런 부하 중 하나만 날 찾아와도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자기들 밑에 있는 전설 각성자가 살해당했으니, 분명히 복수하러 올 거야.’
먼저 시비를 건 것은 그쪽이지만, 선후가 어찌 됐든 내가 위험하단 건 마찬가지.
그놈들을 상대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그럼 어쩔 수 없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 * *
리투아니아의 어느 산골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
텅텅텅.
누군가 한 허름한 나무집의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그 집안에는 한 여자와 그녀의 열 살쯤 된 어린 딸 둘만이 살고 있었다.
“엄마…… 누구야?”
“아, 으응. 엄마 친구가 왔나 봐.”
“친구?”
“소피, 잠깐 방에 들어가 있을래?”
“응, 알겠어.”
“친구랑 얘기 다 하면 찾아낼 테니까 꼭꼭 숨어 있어야 해. 알겠지?”
“응.”
그녀는 딸을 방안에 들여보냈다.
물론 그건 문밖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자식을 숨기려는 것이다.
소피 역시 어린 나이임에도 숨바꼭질이 그저 명분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방 안에 들어갔다.
이들 모녀가 이런 오지 마을까지 오게 된 이유부터가, 지금 문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 때문이니까.
꿀꺽.
그녀가 침을 한번 삼키고는 조심스레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쾅!
하지만 현관문에 당도하기도 전에 문이 부서졌다.
그 부서진 문 앞에는 검은 단발머리의 동양인 여성이 서 있었다.
“아이쿠. 힘 조절을 실패해 버렸네.”
그녀의 이름은 나나 리.
7급 칭호를 보유한 NL의, 아니 칼리닌스카야 브라트바의 ‘사냥개’였다.
“…….”
“오랜만이야, 나탈리아. 우리가 두 번째 만남이지?”
나나가 가죽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나탈리아는 그런 그녀를 보고 몸이 얼어붙어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나나는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고 말했다.
“사람 무안하게 만드네.”
“……밖에서 얘기해요.”
“응?”
“밖에서 얘기하자구요.”
“추운데 꼭 그래야겠어?”
“…….”
“정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뭐.”
나탈리아는 본능적으로 그녀와 딸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집 밖으로 나가자고 한 것이다.
“그래. 잘 지내고 있었어?”
“……제발.”
울컥.
갑작스레 눈물이 쏟아졌다.
나탈리아는 나나의 옷소매를 붙잡고 간곡하게 빌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 여기서 이렇게 평생 조용히 살게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그냥 이렇게 조용히 살고 있을게요.”
그녀는 역사 수호령의 각성자였다.
한때는 유망주로 여겨지며 가파르게 주가를 올리던, 나름의 실력자.
그런 그녀의 인생은 NL의 인물들과 접촉하는 순간부터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퀘스트 보상 이전 계약에 묶인 채 다른 전설 각성자들의 뒷바라지나 하며, 위험한 일에 소모품으로 동원되는, 그런 신세가 된 것이다.
보수가 넉넉지 않은 것도 괜찮았다.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어린 딸을 집에 두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지에 뛰어드는 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모든 각성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이런 오지에 숨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NL은 기어이 그녀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제가 회사에 있으면서 보고 들은 건…… 어느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흑흑.”
나탈리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나나는 자신의 소매를 붙잡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날 두 번 만나면 무조건 죽는다고.”
“흐으…… 네?”
투웅!
찰나의 순간, 나나의 주먹이 바닥에 꽂힌다.
“히이익!”
나탈리아는 잔뜩 겁을 먹고 두 손으로 가드를 올린 채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나 그 공격이 노린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쩌저적.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바닥이 일직선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직선의 종착점은 다름 아닌 나무집.
소피아가 숨죽인 채 숨어 있을, 작고 허름한 그 집이었다.
“아…… 안 돼애애애애!”
콰앙!
땅으로부터 강력한 에너지가 방출되며 하늘로 치솟았다.
나무집은 통째로 산산 조각나다 못해 거의 소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안에 있던 소피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선명했다.
“나 너 죽이러 온 거야. 변명 들으러 온 게 아니고.”
“아…… 아…….”
나탈리아에겐 상실의 절망감을 느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쉬이익.
곧장 저승사자의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집행은 주먹으로.
퍼엉!
그것이 사냥개 나나의 방식이었다.
“후우.”
툭툭.
그녀가 어깨 위에 떨어진 뼛조각을 털어냈다.
그러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거기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여보세요?”
-바실리입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소재지를 파악했습니다.
“소재지? 누구? 내가 뭐 조사하라고 시킨 거 있었나?”
-레이드 던전에서 우리 직원을 살해한 그놈입니다.
“아아! 신우 유. 아니, 한국식으로 유신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