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1화
업화의 구가 적중했다.
물론 오드바르는 악마가 아니기 때문에 그 공격 한 번만으로 무력화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입혀지는 불꽃 피해가 전투 내내 그를 괴롭힐 것이다.
‘지난번 워로드 때처럼, 공격에 허점도 많아지겠지.’
유신우는 그렇게 생각하곤 추격타를 먹이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크라아아아아!”
쿵!
오드바르가 발을 구르며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투사체를 저지시켰던 그 충격파가 다시 뿜어져 나오며, 몸에 붙은 불꽃을 꺼버렸다.
‘말도 안 돼.’
오드바르의 기합에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상태이상을 제거하는 ‘디스펠’ 효과가 부여되어 있었다.
‘업화의 구는 안 먹힌다는 건가?’
확실히 지금까지 만났던 적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신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파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오드바르가 그에게로 뛰어들었다.
그 속도는 반사 신경 스탯이 170에 육박하는 유신우조차도 반응하기 힘들 정도였다.
쾅!
내리찍은 대검이 바닥과 부딪히며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나를 실은 것도 아니고, 그저 검을 강하게 휘둘렀을 뿐이다.
그런데도 공간을 짓누를 정도의 풍압이 칼날에 실려 있는 것이다.
유신우는 몸을 날리는 것으로 공격을 피해냈지만, 그 막강한 위력에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저 칼엔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이다.’
그래서 그런 판단을 내리고서는 발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위빙이나 더킹 같은 상체 움직임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한 다음 카운터를 먹일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
오직 스텝을 통한 거리 조절, 그리고 검격과 검격 사이의 빈틈에 끼워 넣는 빠른 타격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탓! 촤아아악!
그는 상대의 오른쪽으로 크게 도는 스텝을 밟으면서 왼손 훅을 날렸다.
시야 범위 밖의 사각에서 날아온 공격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피한다 하더라도 허점을 드러낼 것이다.
스릉!
그런데 오드바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옆을 돌아보지도 않고서.
그저 대검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손쉽게 공격을 흘려냈다.
마치 관자놀이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말이다.
‘아니?’
뿐만 아니라 흘려내는 동작 자체도 매우 간결했다.
단순히 힘과 스피드로 밀어붙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검을 다루는 기술 자체도 수준급인 것이다.
그러고는 검을 비스듬하게 쥔 자세 그대로 유신우를 향해 돌진했다.
퍽!
“큭!”
오드바르는 몸통 박치기로 그를 밀쳐냈다.
용발톱으로 막긴 했지만, 그 압도적인 힘에 의해 그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날아드는 빠른 횡 가르기.
콰아아!
‘젠장! 이건 피할 수가…….’
유신우는 그 자세에서 쇄도해 오는 대검을 스텝으로 피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중심을 잃은 상태에서 상체를 더욱 뒤로 젖혀 거의 눕다시피 하는 자세로 검의 궤적을 간신히 빗겨냈다.
터엉! 파캉!
“끄악!”
다행히 직격은 피했으나, 참격이 만들어낸 풍압에 의해 몸이 튕겨 나갔다.
그 타격은 그의 탈리스만 방어장을 깨뜨리고 신체에 직접 충격을 가할 정도였다.
“쿨럭!”
입에서 피를 토했다.
내장에 손상을 입은 것 같다.
“괘, 괜찮아? 내가 치료해 줄게!”
때마침 그 주변에는 회복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각성자가 있었다.
파아앗.
그의 지팡이에서 퍼져 나온 빛이 유신우의 몸을 기분 좋게 감쌌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재차 마법을 시전해 탈리스만 방어장까지 새로 충전해 줬다.
“고마워.”
유신우는 그 자에게 간결한 감사 인사를 건네고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드바르는 그런 그를 집요하게 추격해 와 공격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맞수라고 생각한 인간을 최대한 빠르게 처치하기 위해서였다.
‘와라.’
대검을 들고 돌진해 오는 그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선 유신우.
저 검에 직격당하는 순간 죽는다.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았다.
지금 적의 이동 방향을 틀어버리면 조준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타앙!
퍽!
오드바르의 옆구리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 한 발은 백업 저격수인 최윤아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결실이었다.
* * *
-윤아 씨. 백업해 주세요. 지금 당장!
유신우는 오드바르가 다른 각성자들과 대치하고 있던 사이, 숲속에서 그녀를 찾아 뒤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오드바르와 싸우기 시작.
다른 각성자들은 그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능력도 믿을 수 없지만, 최윤아만큼은 달랐다.
그녀의 장거리 저격 화력은 이 완전무결한 오크 검사의 검술 사이에 작은 균열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믿었던 것이다.
“욱!”
그리고 마침내 그 균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무섭게 달려들던 오드바르가 옆구리에 총을 맞고 휘청거렸다.
‘지금이다!’
유신우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무릎은 피스톤처럼 들썩이고.
허리는 크랭크처럼 회전한다.
폭발하는 전신의 힘이 어깨를 타고 오른 주먹에 다다른다.
그리고 마침내, 그 파괴력은 용의 앞발을 통해 오드바르의 얼굴에 메다 꽂혔다.
쩌어어어엉!
접근해 오던 적의 관성을 역이용한 카운터.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타점.
레이드 보스 오드바르는 처음으로 인간 각성자의 공격을 받고 땅을 나뒹굴었다.
탓! 탓! 탓!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신우는 날아가는 그를 쫓아, 그가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추격타를 날렸다.
촤아악!
용의 발톱이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다.
오드바르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고, 유신우는 이번 기회에 완전히 끝내겠단 작정으로 연속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촤악! 촤악! 촤악!
“크아아아!”
물론 그것만으로 레이드 보스의 기백을 꺾지는 못했다.
그는 발톱 공격을 맞으면서도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바닥에 검을 꽂아 전방위 마나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상대가 도저히 피할 수 없도록, 넓은 범위를 뒤덮는 거대한 폭발.
그러나.
우웅. 우웅.
유신우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채 멀쩡하게 서 있었다.
이진윤이 전개한 보호막 속에서 말이다.
“괘, 괘, 괘, 괜찮, 괜찮으세요?”
“괜찮아. 아주 잘했어.”
정작 본인은 다리를 후들거릴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번의 대처는 백 점으로도 모자란 수준의 활약이었다.
유신우는 이진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곤 다시 보호막 밖으로 뛰쳐나가 오드바르를 상대하기 시작.
탕!
최윤아가 멀리서 그를 지원 사격했고.
“으아압!”
이진윤은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방어막을 펼치고 달려들어 오드바르의 움직임을 번번이 방해했다.
이길 수 있을 것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던 레이드 보스를, 그 세 사람이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 이봐……. 우리도 도와야 되는 거 아냐?”
그들이 분투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각성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최종 보상이고 뭐고, 일단 살기 위해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들의 눈앞에, 한 줄기 희망이 나타난 것이다.
“뭐 하고 있어? 왜 다들 그냥 구경만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사이 다른 구역에 있던 또 다른 각성자들도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도 같이 싸우자고!”
분위기가 이렇게 되자, 이곳에서 서로 치고받던 각성자들은 보스 토벌이라는 일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이 장소는 제대로 된 레이드 보스전의 모습이라 할 만한 곳이 되었다.
“저쪽으로 가지 못하게 발을 묶어! 위험하면 뒤로 빠져서 치료받고!”
이진윤과 유신우를 중심으로 한 근접전 중심의 각성자들이 오드바르의 발을 묶었다.
“표적의 덩치가 작습니다! 오인사격 하지 않도록 조심해 주세요!”
원거리 공격이 주특기인 각성자들은 최윤아의 저격을 거들었다.
“부상자는 이쪽으로!”
그리고 서포터형 각성자들은 이들이 멈추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서로 반목하던 이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힘을 합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인류애에서 나오는 어떤 긍정적인 마음 같은 것 때문은 아니다.
‘힘을 합치지 않으면 최종 보상은 아무도 못 얻는다.’
이곳에서 마주한 강대한 적을 이기려면 어쩔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만약 누군가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몰래 뒤통수를 치려고 한다면?
이곳에 모여 있는 모든 각성자들의 공공의 적이 되고 말 거다.
레이드 보스보다 먼저 죽고 싶지 않다면,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아아아아!”
만신창이가 된 오드바르가 포효하며 다시 땅에 칼을 꽂았다.
아까 전과 같은 전방위 마나 폭발을 일으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적들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콰앙!
수많은 각성자들이 한꺼번에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중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 전이었으면 거의 대부분이 흔적도 남지 않고 죽었겠지만.
이미 기력이 쇠한 그의 공격은 전과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쉬이이익!
그 공격을 막아내고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온 유신우가 정면에서 왼손을 내질렀다.
“크라악!”
빠르게 쇄도해 오는 주먹에, 오드바르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검을 휘둘렀으나.
캉! 파파파파파팡!
눈에 보이지도 않는 15번의 에너지 타격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오드바르가 막아낸 건 그중 겨우 하나.
곧이어 다시, 유신우의 오른쪽 주먹이 똑바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이제 오드바르는 막기 위해 검을 들 힘도 없었다.
파파파파파팡!
또 다른 15번의 타격이 고스란히 그의 전신에 적중했다.
퍼퍽! 퍽!
레이드 보스의 몸은 더 이상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겨 사방으로 육편을 튀겼다.
게 볼그 난격.
오크 영웅 시구르드는, 인간 영웅 쿠 훌린의 힘에 의해 사그라졌다.
* * *
{너의 눈이 육신 잃은 수호령에 반응한다.}
{신화시대의 기억을 떠올린다.}
오른쪽 눈이 뜨겁다.
다시금 지난번과 같은 그 현상이 나에게 벌어졌다.
‘그래, 보자. 이번엔 뭐가 나오나.’
이미 한 번 경험해 봤던 일.
난 의연하게 그 ‘기억’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빠!
-여보!
젊은 여자와 어린 남자아이가 나를 반겼다.
이들은 내 아내와 아들인 것 같다.
배경은 여전히 고대 중동 지역 어딘가에 있을 법한 곳.
나를 포함한 세 사람 모두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외양과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얼른 앉아요. 지금 바로 저녁 먹을 거니까.
-응, 알았어.
-아빠! 이거 봐봐! 내가 만들었어!
-응?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솜씨가 대단한데? 나중에 목수 해도 되겠어, 아들!
-목수? 목수가 뭐야?
-음…… 이런 거 만드는 사람?
-이런 거 만드는 게 뭔데?
-음…… 그러니까.
-둘 다 빨리 와서 앉아요!
나는 군인이었고, 형편이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기에 충분한 삶을 살았다.
게다가 일전의 전투에서 나름대로 공을 세워 포상도 받았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날들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을 거란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나라를 둘러싼 수많은 적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침공해 왔고, 그럴 때마다 난 적과 싸우러 나가야 했다.
전쟁터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
그게 나라는 사람의 삶이었다.
뿌우우우우.
-적습이다!
-여보!
뿔피리 소리를 듣자마자 칼을 집어 든 나를 아내가 붙잡았다.
-조심해요.
-걱정하지 마. 위험하면 탈영이라도 하지 뭐.
아내는 빙긋 웃으며 나를 안았다.
그리고 적과 싸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공격!
침공해 온 적은 오크군이었다.
지난번 전투에서 패퇴한 후 심기일전하고서 다시 싸우러 온 것 같았다.
챙! 서걱! 푸확!
난 그때와 마찬가지로 무수히 많은 오크들을 베어 넘겼다.
칼날을 타고 손잡이로 전해지는 감각이 선명하다.
적의 공격은 모두 눈에 보였고, 나의 검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나는 전장에서 맹활약을 펼쳐 적을 격퇴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싸움이 끝난 후, 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흑흑…….
-아아…… 안 돼…….
승전을 안고 돌아온 도시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무너진 건물들. 사방에 나뒹구는 시체들. 그들을 부여잡고 눈물 흘리는 시민들.
밖에서의 공격은 미끼였다.
우리가 밖에서 싸우고 있는 사이, 오크군 후방 부대가 몰래 침입해 민간인들을 죽이고 약탈한 것이다.
-으아아아앙!
내 가족 또한 그 화를 피할 수 없었다.
아내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아들은 피투성이가 된 집안에서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개자식……들.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슬픔과 분노, 증오심이 하나 되어 소용돌이쳤다.
당장에라도 그 원수를 찾아내 죽이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오크 놈들……. 전부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 기억은 거기서 끝난다.
화아아악!
주변의 풍경은 어느새 현실.
거대한 마나 덩어리가 내 눈으로 빨려 들어왔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시구르드의 영혼을 흡수했다.}
{특성 <드래곤 하트>를 훔쳤다.}
{의지력이 9 증가했습니다.}
{아지다하카와의 동화율이 상승했습니다. 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