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6화
화살탑은 접근하는 적에게 스스로 매직 미사일을 쏘아대는 자동 방어탑이 되어 있었다.
마을 주변에는 돌로 된 높은 성벽이 둘렸고.
마을회관은 중앙에 우뚝 솟은 탑을 짊어진 성채로 변했다.
마을 주민들 중 남자들은 각자 인챈팅이 완료된 마법 갑옷과 무기로 무장했다.
오크들에게 위협받던 작고 허름한 마을이, 순식간에 거대한 요새로 변해버린 것이다.
‘전부 업그레이드하는 데 약 300만 골드. 그리고 즉시 완료 비용으로 24,500다이아.’
난 거기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이건 여기까지 온 사람들에겐 굉장히 부담스러운 지출일 것이다.
애초에 이 시점에 300만 골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테고.
즉시 완료를 쓰는 사람은 더더욱 없겠지.
저것만 해도 가격으로 환산하면 12억2천5백만 원이다.
방어시설 건축이야 이 안에서만 쓰는 돈인 골드를 쓰니, 암시장에서 살 만한 물건이 없는 사람들은 충분히 쓸 수 있겠지만.
즉시 완료는 그야말로 가격에 비해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선택인 것이다.
시간만 기다리면 완성이 되는데, 뭐 하러 그 비싼 다이아를, 그것도 일회성으로 쓰겠는가?
게다가 다이아를 쓰지 않아도 클리어는 충분히 가능한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서 다이아를 쓴 이유는 레이드 포인트 때문이다.
[아무리 빠르게 골드를 투자한다 해도, 건설 시간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오크들이 새어 들어오는 구간이 어느 순간엔 생길 수밖에 없다.]
[고로, 각성자들은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 마을 주민들을 한 곳에 몰아놓을지, 아니면 분산시켜 둘지. 또는 어느 방면을 우선적으로 방어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손실을 최소화하는 선택을 하라.]
정보 노트에 쓰여 있는 설명.
이 설명대로라면,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번 스테이지를 깨려고 하면 레이드 포인트의 손실은 무조건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이아를 이용한 비정상적인 플레이를 하면 레이드 포인트를 완벽하게 챙길 수 있다.
아무리 부자라도 스테이지 하나 깨는 데에 12억을 들인다는 발상을 할 사람은 없겠지만.
나한테 저 다이아는 12만 원일 뿐이므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걸로 남들보다 레이드 포인트를 1점이라도 더 얻을 수 있다면,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
쾅! 쾅!
방어탑의 꼭대기에서 발사된 매직미사일이 몰려오는 오크들을 한꺼번에 쓸어 담았다.
“준비! 발사!”
성벽 위를 지키고 있는 무장한 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자, 화살들은 알아서 적을 추적해 날아가 맞췄다.
이 마법 장비 덕분에 전투 경험이 일천한 평범한 마을 주민들도 베테랑 군인처럼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낮 동안 습격해오는 오크들은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전부 막아냈다.
나와 최윤아, 이진윤은 날이 저무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우린 그냥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되는 건가요?”
최윤아가 물었다.
“오늘 저녁까지는요.”
물론 이렇게 그냥 앉아서 날로 먹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다.
잠시 후면 이런 편안한 시간은 끝난다.
왜냐면 곧 보스전이 시작될 거기 때문이다.
수비요소들이 잡졸들을 막아내는 사이, 각성자들은 그 보스 공략에만 집중해야 한다.
* * *
한밤중.
방어탑은 여전히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오크들을 향해 불을 뿜고 있다.
쾅!
매직미사일이 일으킨 폭발.
그 폭발이 내뿜은 불빛이 일순간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그러자 어떤 특이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오크가 아니었다.
누더기 같은 옷을 두른 영혼의 집합체.
리치였다.
우우웅.
그것은 곧바로 마법을 시전했고, 손에서 뻗어 나온 마나 줄기가 성벽 위 하늘에 먹구름을 형성했다.
이윽고 먹구름 안에서 번쩍거리는 빛이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꽈릉!
두꺼운 번개 줄기가 땅을 향해 뻗어 나왔다.
“으앗!”
번개는 성벽 위에 있던 주민들을 노렸다.
파지직.
“어…… 여, 영웅님?”
하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신우가 하늘로 손을 뻗어 용발톱을 피뢰침으로 만들었고, 그걸로 주민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괘, 괜찮으신……?”
타앗.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마법을 시전한 리치를 향해 전력 질주.
“그락! 그라락!”
그 앞을 몰려오는 다른 오크들이 막아섰으나.
츄칵! 츄가가각!
용발톱을 휘둘러 순식간에 길을 뚫었다.
방해하는 오크들은 가차 없이 찢어 발겨졌다.
우우웅.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유신우를 향해, 리치는 마법을 시전했다.
화르륵!
가까이 있는 적을 맞추기 위해 급하게 쏘아낸 화염 화살.
물론 그런 수준 낮은 공격에 당할 유신우가 아니다.
그는 몸을 옆으로 비틀어 화염 화살을 간단하게 회피한 후, 전력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투쾅!
리치는 그대로 온몸이 산산 조각나며 주변으로 흩어졌다.
애초에 육신이 불안정한 존재라 내구력이 그리 높지 않았다.
덕분에 오히려 잡병 오크들보다 처치하는 게 더 손쉬웠다.
“고, 공격! 오크들을 막아라!”
번개폭풍은 멈추고 성벽 위의 주민들과 마법포탑이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구구구궁.
그런데, 이번엔 유신우가 있는 쪽의 반대편인, 남쪽 성벽 위에서 다시 그 번개구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또한 리치의 마법.
사실 리치는 육신에 종속되지 않는 존재인 터라, 얼마든지 다른 육신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방금 죽은 것처럼 보였던 리치가, 다른 방향에서 쳐들어오는 오크의 육신에 빙의해 다시 마법을 시전한 것이다.
때문에 제3 스테이지의 보스인 리치는 말 그대로 동서남북을 누비며 각성자들을 교란하는 존재였다.
아무튼, 지금 유신우가 남쪽에 다시 나타난 그 리치를 잡으러 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도착했을 땐 이미 성벽이 뚫리고 말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저 마술에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건 아니다.
‘최윤아.’
그걸 대비해 저격수를 데려왔으니 말이다.
* * *
탕!
총소리가 들리고, 리치가 빙의된 오크의 머리통이 산산 조각났다.
그 총탄은 중앙에 우뚝 솟은 마을회관 탑으로부터 발사된 것이었다.
모신나강을 든 최윤아.
그녀가 탑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밤중에 보스가 나타날 겁니다. 강력한 공격 마법을 쓰는 녀석인데, 다른 오크들의 육신을 옮겨 다니면서 계속 살아납니다. 윤아 씨는 탑 위에 자리를 잡고 그놈을 저격하는 데 집중해 주세요.
그가 이번 스테이지에 진입하면서 최윤아를 데리고 오고 싶어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 같은 리치를, 장거리에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저격수.
즉, 이번 제3 스테이지는 최윤아의 능력을 발휘하기에 가장 적합한 스테이지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있는 거지……?’
유신우가 어떻게 정보 노트를 얻었는지, 어떻게 그걸 구할 골드를 얻었는지 모르는 최윤아 입장에선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암시장에서 정보 노트를 구할 수 있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지만.
그걸 얻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골드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도가 빠른 와중에 그만한 골드를 벌어들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
결국 지금 유신우가 보여주는 행동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었다.
‘……일단 저격에 집중하자.’
그녀는 우선 이번 스테이지부터 돌파하고 나서, 그 비밀에 관해 파헤치든 어쩌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쿠구구구궁.
그런데 그 순간, 마을의 서쪽 방벽 위에서 또다시 번개 구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세 번째 리치의 등장이다.
‘젠장. 안 보여……!’
문제는 그쪽에 너무 많은 오크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나무와 바위 등 엄폐물로 작용하는 요소들도 많았다.
그 때문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어디 있지?’
지금 유신우가 북쪽에서 서쪽 방면으로 뛰어가고 있지만, 속도는 역부족.
곧 번개구름이 형성을 끝내고, 지상을 향해 빛줄기를 내뿜었다.
꽈릉!
다행히 희생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 전의 공격을 보고 나서 마을 주민들도 인지한 것인지, 천장이 가려진 방어탑 안으로 숨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바위 뒤에 엄폐하고 있던 리치가 밖으로 몸을 드러냈다.
화르륵!
그리고 곧바로 손에서 거대한 불덩어리를 내뿜었다.
‘저기다!’
최윤아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권능 <사냥꾼의 본능> 발동}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모신나강의 총구가 리치의 머리를 향했다.
맞추기로 마음먹은 곳을 무조건 조준하는 권능.
탕!
마나의 탄환이 총구를 벗어나 리치의 미간을 꿰뚫었고, 리치는 그 자리에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대로 번개 구름은 소멸.
그러나 그것이 죽기 직전에 쏘아 보낸 거대한 불덩어리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날아갔다.
목표 지점은 다름 아닌 방어탑.
콰쾅!
“으아아악!”
방어탑에 직격한 불덩어리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고.
그 폭발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면서 안에 들어가 있던 주민들이 깔리고 말았다.
“이런!”
그 순간, 최윤아의 뇌리엔 유신우의 당부가 떠올랐다.
-마을 주민은 최대한 죽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가 그런 말을 한 걸 보면, 주민들의 생사가 스테이지의 클리어 목표와 관련된 것일 터.
물론 꼭 그게 아니더라도, 최윤아는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세계의 인간들을 엔피씨라 부르며 별 것 아니라 여기는 것과는 달리.
그녀의 눈에는 이들 역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마물에 의해 죽어 나가는 건 원치 않는 일이었다.
“젠장!”
퍽!
최윤아는 주먹으로 난간을 내려쳤다.
조금만 더 빨리 방아쇠를 당겼더라면.
리치가 불덩어리를 쏘기 전에 먼저 저격했더라면.
그런 후회가 밀려왔다.
“하…….”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여기서 심리가 흔들려 버리면 다음 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녀가 가진 일발필중의 권능도 ‘맞추고자 하는 마음’이 확고할 때에만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잡념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남은 사람들이라도 지키자.’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방어가 무너져버린 서쪽 방면을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들었다.
츄하악!
때마침 그곳에 도착한 유신우가, 몰려오는 오크들을 혼자서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쪽을 향해 손짓했다.
“여기 말고…… 다른 쪽을?”
그건 서쪽 방면 방어는 자신에게 맡기고 다른 방향에 나타나는 리치 저격에 계속 집중하라는 의미였다.
“아, 오케이.”
그녀는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양팔을 들어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이런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침착하구나…… 저 사람은.’
초장부터 생각해 뒀던 계획이 틀어졌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분배하고 있다.
최윤아는 유신우의 빠른 판단과 실행능력을 보고, 자신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의 말대로 다시 리치를 저격하기 위해 총구를 돌리려던 찰나.
파아앗.
“응?”
갑자기 무너진 방어탑 잔해 사이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오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뭐지?”
잔해들은 그 빛에 가로막혀 아래로 떨어지지 못하고 옆으로 흘러내렸고.
그렇게 잔해들이 걷혀나가자, 그 빛 안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었다.
방금 잔해에 깔렸을 그들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다.
“설마……!”
그들을 감싸고 있는 빛의 정체는 서로 공명하며 보호막을 형성하는 수백 개의 마나 알갱이들.
“이진윤?”
그 보호막을 전개한 주체는 다름 아닌 이진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