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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4화 (14/348)
  •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4화

    주점은 피와 널브러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중에 숨이 붙어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여포 수호령의 각성자, 박성훈이라는 자도 송형주의 가시창 공격에 봉변을 당해 죽어 있었다.

    “멍청한 놈들.”

    결국 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건 박성훈과 송형주. 그 둘이었다.

    서로 죽고 죽인 게 전부였고, 유일하게 송형주 본인만이 내 손에 죽은 것이다.

    “쯧.”

    난 바보같이 자기 목숨을 내다 버린 이 녀석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렇게 이 참혹한 광경을 뒤로하고 주점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너의 눈이 육신 잃은 수호령에 반응한다.}

    {신화시대의 기억을 떠올린다.}

    “응?”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내 오른쪽 눈에 타는 듯한 뜨거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끄윽……!”

    그 통증에 나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앞이 계속 보였다.

    내 눈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건, 내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누군가의 기억이었다.

    -그라아아악!

    초록 피부.

    대규모 군세를 이룬 오크들이 지평선을 까마득하게 뒤덮고 있다.

    그것들은 무시무시한 포효를 내지르며 이쪽을 향해 몰려왔다.

    내 옆엔 이국적인 형태의 갑옷을 입은 인간 병사들이 열을 맞춰 서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고대 중동 어디쯤에 있을 법한 국가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복식이었다.

    -와아아아아!

    곧이어 인간들 역시 몰려오는 오크들에 맞서 전투의 함성을 내질렀다.

    화르륵! 쾅!

    전열의 뒤로부터 오크들을 향해 불덩어리가 날아들고.

    적측에선 아군을 향해 화살비를 쏟아부었다.

    한차례 마법과 화살을 서로 주고받은 후.

    연이어 거대한 두 군세가 격돌했다.

    챙! 챙! 콰콱!

    수많은 인간과 오크들이 죽어 나간다.

    그 격렬한 전장의 가운데에서, 칼을 빼 든 나는 거침없이 오크들을 베었다.

    그저 일개 병사일 뿐이었지만,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타고난 감각이 있는 것인지, 용케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끝까지 싸웠다.

    -하아…… 하아…….

    그렇게 죽이고 죽이다 보니 어느새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늘이 빨갛게 변한 것만큼, 전장 또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인간과 오크의 사체들이 여기저기 뒤엉켜 비릿한 피 냄새를 풍겼다.

    그 가운데.

    나는 승리자가 되어 서 있었다.

    * * *

    화아아악!

    “끄아아아!”

    허공에 떠 있던 거대한 마나 덩어리가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건 어떤 거대한 존재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 안으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허억…… 허억…….”

    현실로 되돌아온 내 눈앞에,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쿠 훌린의 영혼을 흡수했다.}

    {권능 <가시창 게 볼그>를 훔쳤다.}

    {의지력이 3 증가했습니다.}

    {아지다하카와의 동화율이 상승했습니다. 2.12%}

    “……뭐?”

    그런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

    의지력이 단숨에 3이나 증가했다는 것과.

    기존에 1%대였던 내 동화율이 갑자기 2배로 뛴 건 둘째 치고.

    더 중요한 건 다른 수호령이 가지고 있는 권능을 훔쳤다는 메시지.

    난 곧바로 그걸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

    <권능 목록>

    1. 고통: 업화의 구

    2. 악룡의 발톱

    3. 가시창 게 볼그(!)

    -스카사하로부터 물려받은 투창. 주인의 손에 스스로 돌아오며, 30개의 가시를 뻗어 다수의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오류! 주 무기가 투영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

    권능 목록에 방금 얻은 권능이 표시되어 있었다.

    메시지에서 나온 내용 그대로였다.

    정말로, 송형주가 사용하던 권능을 가져와 버린 것이다.

    ‘다른 수호령의 능력을 훔친다니…….’

    이건 시스템이 정해놓은 룰을 완전히 깨뜨리는 일이다.

    나에겐 맞지도 않는 기술이 생겼다는 게 그 증거다.

    저 ‘게 볼그’라는 권능은 창에 사용하는 무구 투영 권능이라, 너클이 주 무기인 나는 사용할 수 없다.

    그 바로 아래 표시되어 있는 오류 메시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난 이쯤에서 다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다 뭐지?’

    자꾸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어떤 존재가 계속 시스템의 법칙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게다가 이상한 환영까지 내 앞에 보이고.

    악의?

    정말 나에게 무슨 악마라도 씐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와중에, 다시금 익숙한 메시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류 발생!}

    {수호령의 스테이터스에 미승인 데이터가 발견되었습니다. 즉시 디버그를 실행합니다.}

    {디버그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난번, ‘악의의 오른쪽 눈’ 특성을 얻었을 때와 같은 메시지.

    그런데 이번엔 그때처럼 다른 존재가 끼어드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훔친 권능’이 목록에서 사라졌다.

    ───

    <권능 목록>

    ……

    3. null

    ───

    이 현상에 대해 설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 고압적 말투의 메시지가 다시 나타났다.

    {시스템을 교란할 악마가 부족하다.}

    {악의는 네가 더 많은 악마를 거둬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시스템을 교란할…… 악마?”

    그걸 보고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번엔 ‘바포메트의 미니언’이 시스템에 침투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었다.

    그 이후에 새로 얻은 특성이 내 상태창 안에 완전히 정착했고.

    그때의 기억과 저 메시지 내용을 종합하면 한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기존 시스템에 위배되는 능력을 얻기 위해, 바포메트의 미니언과 같은 악마형 마물을 더 잡아들여야 한다는 것.

    {악의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 내 생각에 대답한 거야? 지금?”

    이제 이 존재는 메시지를 통해 나와 직접적인 의사소통까지 하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걸 알자마자 난, 그것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이 모든 현상에 대한 본질적인 의구심을 해소하길 원해서였다.

    “이봐!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건 대답을 안 해준다는 거야? 그럼, 아까 봤던 기억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려줄 수 있나? 아, 아니. 너도 시스템의 일부인 건가?”

    다른 것을 물어도 마찬가지.

    “……뭐라도 말 좀 해봐!”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나와 더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인지.

    아니면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는 모종의 이유가 따로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은 내 상태창에 남긴 흔적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

    악의의 오른쪽 눈

    -(2단계) 육신 잃은 수호령을 흡수하고, 과거의 힘과 기억을 되찾는다.

    ───

    힘을 얻고 싶다면.

    진실을 알고 싶다면.

    더 많은 각성자들의 죽음을 목도하라.

    이 악마는 나로 하여금 세상에 악을 퍼뜨리길 요구하고 있다.

    * * *

    “이 범죄자들을 물리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오전 중으로 저희 도시 수비대로 오시면 포상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점에서 있었던 일은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뒤늦게 들이닥친 경비병들이 시체 위에 서 있는 나를 체포하려 했지만.

    밖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목격자들이 증언을 해준 덕에 난 오히려 영웅이 되었다.

    “저 사람 장난 아니야.”

    “봤어? 마지막에 주먹으로만 싸우던 거?”

    “봤지! 진짜 손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더라니까.”

    “전설 수호령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저 정도면 그렇지 않겠어?”

    그리고 단숨에 이번 레이드 참가자 중 가장 이목을 끄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달갑지 않은 일이다.

    유명해진다는 건, 그만큼 경쟁자들에게 견제받기 쉬운 위치에 오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렇게 순위 경쟁을 해야 하는 레이드에선 더욱 그렇다.

    말할 것도 없이 벌써부터 곳곳에서 경계하는 시선이 등 뒤에 꽂히는 게 느껴지고 있다.

    ‘귀찮게 됐네.’

    물론 이게 무조건 나쁜 거라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또 나를 호의적으로 대하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므로.

    “혀, 형님!”

    이진윤.

    여태껏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이 녀석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소란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주점 밖으로 도망쳤던 모양이다.

    “괜찮으세요? 어디 다친 데는…….”

    “야! 이진윤!”

    그와 함께 최윤아도 나타났다.

    “윤아야! ……악!”

    그녀는 오자마자 이진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매우 화가 난 듯한 얼굴이었다.

    “엄살 부리지 마. 방어장 때문에 안 아픈 거 다 알고 있거든?”

    “어…… 응.”

    “넌 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싸움에 휘말렸는데 그렇게 혼자 도망을 치냐?”

    “미, 미안.”

    “새로 얻은 권능은 뒀다 뭐해? 전…… 으휴.”

    최윤아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전설 수호령’ 얘기를 꺼내려다 그만둔 것일 터다.

    괜히 이진윤이 전설 수호령을 가지고 있다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미안해…….”

    이진윤은 그녀의 닦달에 한껏 움츠러들었다.

    ‘그럼 그렇지.’

    난 그런 그를 보고서, 첫 스테이지를 통과했다는 데에서 일말의 희망을 내다봤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저 구제 불능의 겁쟁이는 도저히 싸움에는 써먹을 수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런 반면에 최윤아는 이진윤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

    난 아까 전에 그녀가 보여준 발군의 전투 능력을 떠올렸다.

    ‘저격 능력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근접전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어.’

    은신과 기관단총을 활용해 그 여포를 상대로 일방적인 싸움을 펼쳤다.

    두 개의 투영무구를 상황에 따라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 말이다.

    수호령 자체의 성능도 동급 중에선 뛰어난 것 같지만, 타고난 전투 센스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나 모욕적인 도발을 당하고서 싸우는 상황이라면 흥분하게 마련인데.’

    게다가 거기서 심리에 휘둘리기는커녕 오히려 상대방을 자기 심리전에 끌어들이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탐나는 인재야.’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나니, 오히려 전설급인 이진윤보다, 역사급인 최윤아에게 더 큰 흥미가 생겼다.

    은신과 저격.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스타일인 내게, 후방 백업에 유용한 그녀의 능력은 굉장한 도움이 될 것이다.

    광범위한 지역을 커버해야 할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더 그렇고.

    난 최윤아를 설득해 다음 스테이지에 데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기…….”

    “저기요.”

    그 순간 그녀와 난 동시에 서로를 불렀다.

    “……먼저 말씀하시죠.”

    먼저 양보한 쪽은 나였다.

    “어…… 음.”

    잠시 그녀가 머뭇거리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놈 친구들 나타났을 때 도움 못 드려서 미안해요. 상황이 어떤지 파악이 안 되고 있었거든요.”

    내가 송형주와 싸우고 있을 때,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미안했나 보다.

    사실 그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괜찮아요. 뭐…… 그쪽이 싸우고 있을 때 보고만 있었던 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내 말을 들은 최윤아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계속 우물쭈물대는 모습.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오늘 처음 만난 우리가 서로를 돕지 않았다고 해서 저렇게까지 미안해할 이유는 없다.

    아까 전까지 날 그렇게 경계하던 그녀라면 더더욱 어색한 일이고.

    그럼 왜 이 사람은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기.”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 레이드…… 저희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본인도 뭔가 나로부터 이득을 취할 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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