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3화
백산그룹과 일을 하기 전, 난 NL이라는 각성자 전문 기업과 일했던 적이 있다.
2년 전이니까 그때 기준으로 각성자가 생겨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다.
급격하게 변해버린 세상에서, 다이아가 돈이 된다는 걸 안 사람들에 의해 관련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는데.
대부분이 부실기업이거나 등급이 낮은 각성자들을 등쳐먹으려는, 조폭 같은 회사였다.
NL이 바로 그 후자에 해당하는 기업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곳과 덜컥 계약해 버린 나는 한참 동안 시달리다 나가려고 했지만.
그 회사는 그만두는 날까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야, 따까리. 다음 주에 2, 3, 4팀 합동 임무 있는 거 몰라? 지금 나간다고 하면 어떡해?
그때 나를 가장 괴롭혔던 인물인, 송형주 팀장.
상급 수호령이라는 그 알량한 힘 하나를 가지고, 하급 각성자들을 노예 부리듯 하던 인간.
던전 안에서는 사람을 죽여도 걸리지 않는다는 걸 몸소 깨닫게 해준 장본인이다.
-그 합동 임무, 어차피 매 주마다 있는 일 아닙니까.
-…….
-제가 그만둔다고 한 지가 벌써 3달 전입니다. 이제 더는 못 미루겠습니다.
-……하급 따까리 주제에 말대답을 하고 앉았네. 싸가지없이.
그는 항상 나에게 자기 ‘뒷배’를 얘기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회사에 충성심을 과시하며, 일개 상급 수호령의 각성자인 주제에 임원들과 친분까지 있었다.
딱히 학연, 지연, 혈연 같은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아부와 접대만으로 그 정도의 입지를 쌓은 것이다.
그야말로 사회생활의 화신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게 윗사람에게 아부를 떨어대는 것과는 정반대로, 자기보다 아랫사람이라고 판단되는 자들에겐 개차반처럼 굴었다.
-야, 너 나갈 거면 2천만 원 뱉어. 지금 당장.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가 우리 팀 위해서 한 상무님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너도 수혜 받았으니까 그만큼 돈 내놔, 인마.
-무슨 말도 안 되는…….
항상 이런 식의 억지 논리로 팀원들을 통제하려 했다.
그가 주장하는 ‘수혜’가 뭔지도 모르겠고, 난 딱히 회사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게다가 정작 그렇게 이득 본 건 다 자기 자신이면서, 나한테 돈을 내놓으라니.
난 더 이상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어차피 다신 볼 일 없을 인간이니, 굳이 쩔쩔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야! 인마!
그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협박을 일삼았다.
-너 다신 이 바닥에 발 못 붙일 줄 알아!
이 악연의 기억은 거기가 마지막.
물론 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그 뒤로 나에게 딱히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봤자 상급 수호령밖에 없는 찌질이에게 그런 대단한 영향력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송형주는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어이, 따까리. 오랜만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 악연을 다시 마주쳤다.
여전히 오만하기 짝이 없는 얼굴.
아니, 그 기분 나쁜 표정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불쾌해졌다.
그리고 지금 난 그 업그레이드 된 오만함이 어디서 솟아나는지 알 것 같았다.
{수호령: 빛의 아들 쿠 훌린(전설)}
* * *
“고개 숙여.”
송형주는 여전히 그때와 같았다.
“숙이라고.”
마치 애완동물에게 명령하는 듯한 저 말투.
“이게 미쳤나? 내 말 안 들…….”
거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X까.”
“……뭐?”
놈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내가 아직도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인 줄 아는 것 같다.
아니, 이젠 전설 수호령까지 가지고 있으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아래로 보이겠지.
“아아. 그래. 옛날보다 많이 컸다 이거지.”
송형주는 자기 머리를 쓸어 올리며 씩 웃었다.
“네가 여기 있다는 건, 첫 번째 스테이지를 혼자 깼다는 거고…… 너도 옛날하고는 달라졌다는 거네. 근데 그거 알아?”
그러고는 뭔가 대단한 것을 가진 것처럼 말했다.
“지금 내 수호령, 전설이야.”
“…….”
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놈이 전설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 자체가 나한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저런 놈의 손에 들어가기엔 너무 과분한 힘이란 것 하나는 확실했다.
‘능력도 없고 인성도 파탄 난 놈이 운까지 좋다……. 세상 참 공평하군.’
놈이 가진 뒷배라 해봤자 겨우 NL.
회사가 갑자기 미쳐서 일개 팀장한테 막대한 자산을 투자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는 별론으로 하고.
애초에 그런 소규모 기업에 조 단위의 돈이 있을 리도 없으니, 재력으로 저걸 얻은 건 절대 아니다.
그럼 결국 송형주가 전설 수호령을 얻게 된 건 순전히 운이라는 뜻.
몇 번의 시행만으로 전설 수호령 재소환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래. 원래 그런 법이지.’
너무나 부조리하게 느껴졌지만, 또 새삼스럽지도 않다.
악인이 득세하는 일은 이것 외에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으니까.
세상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착한 사람에게 행운이 주어지고, 나쁜 놈에게 천벌이 내려지는 일은 없다.
“그러니까 진짜 큰일 나기 전에 나한테 머리 숙이는 게 좋을걸? 나 지금 화가 좀 나려고 하거든. 이 자리에서 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지도 몰라.”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인간.
이치에 맞게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리는 일은 모두 다 인간이 하는 일인 것이다.
만약 놈이 벌을 받는다면, 그건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인간이 내리는 인벌(人罰)이다.
“그럴 수 있으면 그래보든가.”
“……이 새끼가 끝까지.”
자신만만하게 웃던 그의 표정이 다시금 심하게 일그러졌다.
놈은 등 뒤에 메고 있던 창을 꺼내 들어 한 손으로 잡고 나를 겨눴다.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기어이 내가 피를 보게 만드는구나. 넌 오늘 나한테 죽는다.”
눈에는 살의가 가득 차 있다.
제 앞에서 머리를 안 숙인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겠다니, 이건 그야말로 진성 사이코패스임이 틀림없다.
물론 이렇게 나온다면 나 또한 손속에 자비를 두진 않을 거다.
“게 볼그.”
송형주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기술명을 외치며 창에 무구 투영을 사용했다.
창이 마나로 싸여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죽어.”
그리고 그걸 나에게 던졌다.
쉬이익.
당연히 그런 뻔한 공격에 맞을 리가 없다.
난 그 순간 머리를 숙여 창을 피하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와 동시에 풀스윙 라이트 훅으로 응대해 줬다.
“우왁!”
촤아아악!
세스터스에서 뻗어 나온 용발톱이 송형주의 몸을 덮쳤다.
파캉!
그 피할 새도 없이 쇄도하는 공격에 의해, 놈의 방어장은 단숨에 깨져버렸다.
난 그대로 추격타를 날리려고 했지만.
탓!
“이, 이 새끼가!”
나름 전설 수호령을 가졌다는 건지, 그 녀석은 빠른 속도로 몸을 놀려 뒤로 빠졌다.
그리고 그 앞으로 같이 들어온 패거리들이 무기를 뽑으며 길을 막아섰다.
“가, 감히 나한테 주먹질을 해?”
송형주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놀란 듯 계속 말을 더듬었다.
내가 전설 수호령을 가지고 있는 자기보다 한참 아래일 거라 생각했는데, 자기도 반응하기 힘든 빠른 반격을 마주하니 당황한 모양이다.
“비켜. 죽기 싫으면.”
난 그 옆에 있는 패거리까지 공격하고 싶진 않았다.
보나 마나 이 녀석들도 저 인성 개차반인 송형주 아래에서 고생하고 있을 사람들일 테니 말이다.
“뭐해! 그놈 빨리 공격해!”
하지만 굳이 덤벼오겠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 응수할 뿐이다.
“하아아압!”
맨 앞에 서 있던 한 명이 날 향해 양손검을 휘둘렀다.
놈과 일행으로 보이는 각성자들은 모두 희귀 수호령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리 없다.
난 왼손을 뻗어 빠른 잽을 던졌다.
퍼엉!
주먹 형태로 둥글게 말아 쥔 용의 앞발이 일직선으로 날아들어 적을 날려버렸다.
그 뒤에 서 있던 다른 일행들도 날아가는 동료의 몸뚱이에 휩쓸려 한꺼번에 밀려났다.
덕분에 후방에 숨어 있는 송형주에게로 다가가는 길이 단숨에 열렸다.
‘끝낸다.’
타타탓!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해치우고 말겠다는 의지로, 그 사이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라이트 훅.
쉬이이익!
하지만 뒤에서 내 등을 노리고 빠르게 날아온 어떤 물체 때문에 공격을 멈춰야만 했다.
그 대신, 난 그 물체를 손으로 낚아챘다.
탁!
그건 놈이 던진 창이었다.
‘사용자의 손에 스스로 돌아오는 투척무기.’
이런 종류의 무구에는 흔히 있는 기믹이다.
전설 수호령의 것이라면 더더욱.
문제는 이 ‘게 볼그’라는 무구의 기능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멍청한 놈!”
송형주가 되레 잘 됐다는 듯 나를 비웃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챈 나는 즉시 그 창을 손에서 놓았지만.
촤촤촤촥!
이미 창에서 뻗어 나온 무수한 가시들이 내 몸으로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스텝을 밟아 피하려고 했지만, 가시의 길이가 거의 수 미터에 달할 정도로 긴 데다.
뻗어 나오는 속도도 굉장히 빨랐기 때문에 도무지 피할 수가 없었다.
파캉.
덕분에 난 방어장이 단번에 깨질 만큼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하핫!”
놈이 웃으면서, 재차 공격을 하기 위해 자신의 창을 회수했다.
털썩. 털썩털썩.
그러자 사방에서 사람의 몸뚱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전부 송형주와 한 패거리였던 사람들이다.
방금 전 그건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사방으로 가시를 뻗는 광범위 공격.
모두들 그 가시에 꿰뚫려 죽어버린 것이다.
‘미친놈.’
자기편을 제 손으로 죽여 놓고도 저렇게 웃고 있다.
놈의 머릿속엔 오로지 나를 이기겠다는 생각뿐인 것 같다.
“네놈이 어떻게 그런 힘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내 창은 절대 못 피…….”
타앗!
난 놈이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이에 다시 품으로 파고들었다.
거리를 주는 순간 여지없이 저 투창이 날아들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그 피하기 어려운 전 방위 공격을 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거리를 주지 않으면 된다.
창을 던지지도 못할 만큼.
가시를 뻗지도 못할 만큼 가까이에서 싸우면 된다.
“이이익!”
펑! 퍼펑! 펑!
무구 투영을 해제하고, 거의 코가 맞닿을 거리에서 주먹을 휘둘렀다.
용 발톱도 제대로 맞추려면 최소한의 간격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조차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터엉! 텅!
“큭!”
그렇게 여러 번의 주먹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 역시 힘에선 자신이 있었는지, 꽤나 잘 버텼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쾅!
“으헉!”
결국 놈의 명치에 체중을 실은 일격이 적중했다.
바디 샷을 제대로 맞은 송형주는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쿨럭, 쿨럭…….”
극심한 고통에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왜, 왜 내가…… 왜 내가 지는 거지……?”
그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쿠 훌린’이라는 수호령의 특성 덕인지, 지금 이 녀석은 엄청나게 높은 근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엄청나게 높다’는 것도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근력의 증폭도가 아무리 높다고 해 봐야, 반사 신경이 부족하면 공격을 맞출 수 없고, 활력이 부족하면 스태미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신체 스탯이 골고루 최고 수준으로 증가하는 내 앞에선 그 막강한 힘도 무용지물.
게다가 애초에 근력 자체도 나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아니었다.
난 그냥, 이 녀석을 능력치로 찍어 눌러버린 셈이다.
저벅.
쓰러져 있는 송형주의 코앞에 발을 내디뎠다.
“신우야…… 너 설마…… 나 죽이려는 거…… 아니지?”
“…….”
공포에 질려 나를 올려다보는 그를 무미건조하게 쳐다봤다.
그는 겁먹은 얼굴로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 그래…… 그럼 안 되지. 그래도 옛정이 있는데…….”
난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 뒤돌아섰다.
“그래! 그래야지! 네가 날 죽일 리가…….”
푸욱.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창을 주워, 놈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커헉…….”
창은 심장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난 그대로 죽어가는 송형주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남을 죽이려고 하면 너도 죽는다는 걸 알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