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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2화 (12/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2화

“뭐야, 누구야?”

“응? 아, 내가 아는 형님이야! 신우 형님이라고.”

이진윤의 옆에는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한국인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한 번 본 것 같은 얼굴.

지난번 공항에서 탑승시간이 되었다며 그를 재촉하던 그 여자였다.

“이 친구는 윤아예요! 최윤아.”

“안녕하세요.”

그녀는 나를 본체만체하며 대충 고개만 숙였다.

별로 달갑지 않다는 듯한 표정.

얼굴은 이진윤과 같이 갓 20살이 된 듯 앳된 모습이었지만, 상당히 자존심이 세 보이는 인상이었다.

뒷머리를 바짝 묶어 올린 포니테일이 그 분위기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이쪽도 만만치 않긴 하네.’

그녀는 역사 수호령을 가지고 있었다.

{수호령: ‘백사병’ 시모 해위해(역사)}

그녀 역시 잘나가는 재벌가의 자제일 텐데, 보통은 이게 정상이다.

아무리 재벌이라 해도 무려 전설씩이나 되는 수호령을 가진 이진윤이 특별한 것이다.

당장 이 주점에 있는 각성자들도 대부분이 희귀 수호령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걸 보면, 전설급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실감이 난다.

“형님, 아무튼 정말 반갑습니다! 여기서 형님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진윤은 나를 한껏 반겼다.

약간 오른 취기 때문에 높아진 텐션이 그의 제스쳐는 더욱 과장되어 있었다.

“여긴 다들 말 안 통하는 외국인들밖에 없어서 솔직히 많이 외로웠는데,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님을 만나다니!”

익숙지 않은 타지 생활 중에 만난 한국인.

저 기분이 뭔지는 나도 안다.

각성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 말이 나오자마자, 최윤아가 미리 선을 그었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해두는데, 저희 아무 사이 아니에요. 레이드 때문에 같이 온 것뿐이에요.”

난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쓸데없는 말은 넣어두었다.

‘전설 수호령이라…….’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가 가진 수호령을 눈으로 확인한 나는 머릿속이 조금 혼란해졌다.

다음 스테이지에 참여할 동료를 찾겠다는 목표가 여기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엔 수호령만 보고 그를 데려갈까 생각해봤지만, 이내 그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아무리 그래도 파일럿이 별로면 의미가 없지.’

아기장수…… 라는 건 둘째 치고, 이진윤은 천성이 전투와는 전혀 맞지 않은 사람이다.

처음 이 녀석과 만났을 때를 다시 떠올려 보면, 그런 생각이 더더욱 확실해진다.

아무리 강한 무기를 들고 있다 한들, 제대로 한 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자기보다 한참 약한 사람에게 린치를 당한다면 그 무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기일 수밖에 없다.

결국 저 전설 수호령이란 건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일 뿐인 것이다.

한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자, 문득 내 머릿속엔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잠깐. 근데 이 녀석이 여기에 있다는 건, 첫 번째 스테이지를 혼자 통과했다는 건데?’

그사이에 무슨 정신적 성장이라도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며 그에 대한 평가가 바뀌려던 찰나.

쾅!

“왜, 왜 이러십니까!”

주점 한가운데서, 한바탕 큰 소란이 일었다.

* * *

“NPC 새x가 어딜 감히 플레이어한테 대들어?”

그건 수많은 언어가 교차하는 이 주점 안에서, 유일하게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였다.

“여긴 그런 곳이 아닙니다! 저 아이는 그냥 종업원일 뿐이고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사람도 아닌 주제에 정절 같은 거라도 지키는 거냐?”

“그게 무슨……. 저희도 당신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 상황을 살펴보니, 대강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 한국어를 하고 있는 각성자가 한 여자 종업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모양.

이 도시에 있는 각성자 외의 인간들이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서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웃기고 있네.”

푹.

“크헉!”

그리고 그자는 망설임 없이 품에서 단도를 꺼내 술집 주인을 찔렀다.

“너넨 어차피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할 뿐이잖아.”

“끄어…… 억.”

털썩.

칼을 맞은 술집 주인은 그대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데이터 쪼가리’라는 표현과는 달리, 그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모습으로 숨을 거뒀다.

“헤이! 뭐 하는 짓이야?”

그 주변에 있던 한 외국인 각성자가 패악질을 부리는 남자를 제지하려 했다.

“읏……!”

하지만 어느샌가 남자의 등 뒤에 메고 있던 창날이 그 각성자의 코앞까지 다가와 멈춰 섰다.

범상치 않은 스피드.

“넌 뭐야? 저리 꺼져.”

말리려던 자는 거기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그것만으로 둘 사이 힘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스걱!

“꺄아악!”

그러곤 그 상태에서 보란 듯이 창을 휘둘러 옆에 있는 NPC를 죽였다.

아까 말한 그 여종업원이다.

“그만둬!”

“왜 그러는 거야?”

그러자 이제는 주변에 있는 다른 외국인들이 전부 나서서 그에게 한마디씩 던졌다.

남자는 거기에 짧은 영어로 대답했다.

“뭐 어때? 이것들은 진짜도 아니잖아.”

그는 이 던전 세계를 일종의 가상현실 게임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인간과 똑같이 피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지만, 어차피 현실의 존재가 아니니 얼마든지 죽여도 된다는 태도.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NPC들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푸확! 투콱!

“꺄아악!”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하는 술집.

다들 도망치려고 하지만, 폭발적인 근력에서 나오는 남자의 날랜 움직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진짜 인간’인 각성자에게까지 손을 대진 않았기에 일이 더 커지진 않았지만.

고된 스테이지 클리어를 마치고 즐겁게 술을 마시던 분위기는, 그로 인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고 있음에도 각성자들 중 어느 하나 그를 막을 만한 능력을 가진 자가 나타나지 않는 건.

{수호령: 비장 여포(역사)}

그의 수호령이 흔치 않은 역사급, 그리고 그중에서도 무력으로 유명한 여포였기 때문이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그와 맞수를 펼칠 수 있는 각성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내가 막아야 하나.’

솔직히 다른 각성자가 무슨 트롤링을 하던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결국 그 손해는 고스란히 자신이 다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스테이지 내부가 아닌, 모든 각성자들이 공용으로 이용하는 정비 공간.

그리고 도시민들은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주위 상황을 받아들이고 매번 다르게 행동한다.

즉, 저자의 저런 행동이, 이번 레이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저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간, 어떻게 내 앞길을 가로막는 문제로 비화할지 모른다.

결국, 여기선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드륵.

의자를 밀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던 찰나.

“야! 너!”

옆에서 최윤아가 선수를 쳤다.

* * *

“너 한국인이지?”

“어라? 여기 한국인도 있었네?”

“쪽팔리게 뭔 짓이야? 그따위로 행동할 거면 한국말이라도 쓰지 말든가.”

그녀는 대담하게도 여포 수호령의 남자에게 대들었다.

물론 그녀 역시 역사급 수호령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시모 해위해면, 저격수 아닌가?’

내가 알고 있기로 그녀의 수호령은 저격수로 유명한 인물.

실제로 알려진 대상의 속성이 거의 그대로 구현되는 수호령 시스템의 특성상, 둘 사이의 상성은 최악인 셈이다.

그럼에도 최윤아는 전혀 기세가 죽지 않고 그에게 대들었다.

그가 창을 휘두르는 단병접전 중심의 각성자라는 걸 직접 두 눈으로 봤으면서도 말이다.

“호오! 너 좀 귀엽다?”

“뭐?”

창을 든 남자는 그런 최윤아를 매우 얕잡아보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불쾌해할 수밖에 없는 폭언을 서슴없이 내던졌다.

“네가 쟤 대신 나랑 놀아주면 되겠네.”

방금 자신이 베어 죽인 여종업원 NPC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그가 그 여종업원에게 뭘 요구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최악의 말을 뱉었다고 볼 수 있다.

“미친…… 개X끼.”

최윤아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홀스터에서 권총형 마나건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남자를 향해 겨눴다.

“하하! 그깟 권총으로 날 이기려는 거냐?”

“이게 권총으로 보여?”

그녀가 말한 순간, 권총은 어느새 푸른 에너지로 이루어진, 드럼탄창이 장착된 기관단총으로 변해 있었다.

그게 그녀의 무구 투영 권능인 것 같았다.

“음?”

타타타타타타탕!

투영된 기관단총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마나로 이루어진 무수한 탄환이 분당 수백 발의 연사속도로 순식간에 흩뿌려졌다.

심상치 않은 공격임을 감지한 여포 수호령의 남자는, 재빨리 발을 놀려 회피 동작을 취했으나.

“칫!”

퍼퍼퍼퍼퍼퍼퍽!

그 회피 동작은 무의미했다.

연사로 쏴 갈긴 총탄 중 빗나간 탄환이 단 한 발도 없었기 때문이다.

타깃이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데도, 적중률은 백 퍼센트였다.

파캉!

“이런 젠장!”

남자의 몸을 감싸고 있던 방어장은 순식간에 깨어지고 말았다.

이다음부터 적중하는 탄환은 고스란히 그의 맨살에 직접 박히게 될 것이다.

“이 개년이!”

최윤아가 보통의 실력자가 아님을 깨달은 그는, 피하는 대신 앞으로 달려들어 그녀에게 창을 내질렀다.

스르륵.

하지만 최윤아는 이미 사라진 후.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귀신처럼 투명하게 변하며 사라졌다.

“뭐, 뭐야?”

목표를 놓친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최윤아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려 했다.

타타타탕!

“크윽!”

어느샌가 주점의 구석으로부터 총탄이 날아들었고, 그의 몸에 사정없이 틀어박혔다.

근접전 특화 수호령답게 맨몸으로도 어느 정도 버텨냈지만, 피를 흘리기 시작한 이상 전투력이 깎여나가는 건 시간문제.

다치면 다칠수록 힘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세계를 한낱 게임처럼 여겼으나, 상처는 게임이 아니라 진짜다.

“이…… 이 쥐새끼 같은 년!”

부웅! 부웅!

당황한 남자는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총을 쏴 대는 최윤아를 찾기 위해 아무렇게나 창을 휘둘렀다.

푸른빛의 방천화극이 반달 모양의 풍압을 내뿜어 사방의 기물들을 부쉈다.

그러나 그건 모두 허사였다.

“어디 있냐고!”

최윤아는 이미, 이 주점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저기까지?’

이 자리에서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반대편 건물의 옥상 위.

거기서, 기다란 모신나강 라이플을 투영하고서 이쪽을 조준한 최윤아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타앙! 퍽!

“끄아아악!”

심플한 총성.

강렬한 위력.

남자는 비명과 함께 몸을 휘청거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무릎이 절단된 것이다.

그걸로 상황은 완전히 끝났다.

“아으으윽! 끄아아아…….”

자신이 죽인 NPC 시체들 옆에서, 그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나뒹굴고 있을 뿐.

‘뭐야, 엄청 잘 싸우잖아?’

내가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최윤아 혼자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절로 감탄사가 나올 지경의 실력이다.

그런데 그때, 이 자리에 또 다른 불청객이 나타났다.

“박성훈! 뭐야?”

바깥에 있던 한 무리의 남자들이 주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한국인이었고, 쓰러져 있는 남자와 한 패거리인 것 같았다.

“누구야? 누가 이런…….”

문제는, 저 무리의 리더 얼굴이 나에겐 아주 익숙하다는 것.

“응……? 너, 유신우 맞지?”

그리고.

“어이, 따까리. 오랜만이다?”

그놈이 방금 그 여포보다 더한 쓰레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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