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5화
35만 다이아는 실제 가격으로 따지면 175억 원.
난 그걸 약 175만 원이 안 되는 금액을 주고 산 셈이다.
“그래.”
{히든 퀘스트 ‘타락한 고블린 주술사’가 시작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름과 함께, 나는 곧장 새로운 세계로 이동했다.
팟.
그곳은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의 장소였다.
다만 저 멀리 보이는 언덕 위에, 목책으로 둘러싸인 불타는 요새 하나가 보인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시작해 볼까.”
그 자리에서 발을 떼자마자, 고블린 하나가 내게 뛰어왔다.
저 녀석은 죽이면 안 된다.
그러면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도와! 도와!”
그것은 어눌한 발음으로 인간의 말을 했다.
아니, 한국말을 했다.
시스템이 퀘스트 참여자의 모국어에 맞추기라도 하는 건지, 아무튼 그 고블린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했다.
“저기! 우리 집! 악마! 다 죽는다!”
“그래, 그래. 알고 있어.”
굳이 긴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퀘스트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요약하자면, 저 불타는 고블린 요새에 있던 주술사가 악마를 소환했고, 그 안의 고블린들을 다 죽인다는 얘기.
이 고블린은 거기서 탈출한 녀석들 중 하나다.
“너희 캠프 어딨어? 빨리 그쪽으로 가기나 해.”
“아, 알았다!”
그 고블린을 따라 조금 걸어가자, 요새에서 쫓겨난 생존자들이 모인 캠프가 나타났다.
각성자는 이 녀석들을 도와서 같이 싸울 수도 있고, 아니면 다 죽이고 전리품을 얻은 다음 혼자 가서 일을 처리해도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혼자 가는 것보다 고블린을 돕는 게 낫다.
왜냐하면 할 일이 하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키엑! 키익!”
“꿰엑!”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대충 저놈은 뭐냐, 우리를 도와줄 거다, 인간을 어떻게 믿냐.
뭐 그런 대화가 오가는 것 같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해석 못 하지만.
“얘기 다 했으면 빨리 가자. 니들 집 찾아야지.”
“인간! 진짜? 우리 도와?”
“그래. 진짜니까 빨리 움직여.”
내 말을 알아들은 아까 그 고블린이 친구들에게 다시 몇 마디 말을 하더니, 이윽고.
“끼에에에에!”
다 같이 분기탱천하며 무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캠프에 모여 있던 수십 마리의 초록 피부 난쟁이들이 언덕 위를 향해 달려갔다.
나도 그 뒤를 쫓았다.
* * *
크르릉!
불타는 요새의 초입부터, 고블린과 유사한 형상의 마물들이 나를 맞이했다.
악마 고블린.
머리에는 뿔이 달려 있고, 피부색은 붉은색이다.
인간이 소환한 악마가 인간을 닮았듯이, 고블린이 소환한 악마는 고블린을 닮은 모양이다.
화륵!
그것은 창칼을 쓰는 대신 손에서 불덩어리를 던졌다.
물론 내게는 코웃음이 날 정도의 공격.
‘악룡마공.’
퍼엉!
전진하면서 더킹으로 가볍게 피한 후, 스트레이트 펀치로 머리통을 박살 낸다.
제아무리 악마로 소환되었다고 한들, 그래 봐야 고블린이다.
전보다 10배 이상 강해진 나에게는 한참 아래 수준의 미물에 불과한 놈들일 뿐.
“비켜라.”
퍼엉! 퍼퍽!
무수히 많은 악마 고블린들이 내 앞길을 막았지만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이 녀석들은 오히려 일전에 사냥하던 지네보다도 약한 개체들.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숫자가 매우 많다는 것 말고는 위협이 될 만한 점이 전혀 없다.
심지어 지성조차 일반 고블린보다 떨어져, 전술도 없이 덤비는 탓에 다수라는 이점마저 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대략 백 마리쯤 잡았을까.
{아지다하카와의 동화율이 상승했습니다. 0.02%}
{<하급 격투술>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3/100}
동화율과 스킬 숙련도가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동시에 나타났다.
‘격투술 숙련도는 꽤나 금방 오르는 것 같은데, 동화율은 왜 이래?’
확실히 전설 수호령이라 그런가, 동화율의 상승 속도가 더럽게 느리다.
‘이렇게 잡아댔는데도 겨우 0.01%씩이라니…….’
물론 상대가 워낙 격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느리다.
동화율은 권능을 강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수치.
수호령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그걸 높여야 한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그러려면 마나 소모에 취약한 내 약점부터 보완해야 한다.
그것 때문에라도 이 퀘스트는 반드시 클리어해야 한다.
“후우.”
한참 적들을 쓰러뜨리며 전진하던 나는, 이 퀘스트의 최종보스가 등장하는 방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악룡마공을 켜놓고 싸우느라 소진된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딸깍. 꿀꺽. 꿀꺽.
그리고 난 가방에서 마나포션을 꺼내 마셨다.
마나포션은 이온 음료 맛이 나는 500밀리 대용량의 캔 음료였다.
“후아. 이거 진짜…….”
가격은 하나당 만 원. 비싸긴 해도 아예 못 살 만한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이걸로 마나를 관리하는 건 한계가 아주 명확하다.
부피를 많이 차지해서 다량으로 들고 다니지 못한다는 점과.
“……너무 배부르군.”
포만감으로 인해 많이 마실 수가 없다는 점 때문에.
결국 포션은 긴급조치에 불과할 뿐, 제대로 된 회복 수단이 아니다.
“이제 가볼까.”
어쨌든 나는 마나를 회복한 후, 보스가 등장하는 구역으로 들어갔다.
-불쾌한 냄새가 나는군.
곧이어 괴기스러운 음성이 들려오며, 마지막 적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일의 원흉인 고블린 주술사가 소환해 낸 악마.
전신은 검은 털로 덮여 있고, 발굽 달린 발과 비대한 근육을 가진, 키 3미터의 거대한 덩치.
그리고 둥글게 말린 뿔이 달린 염소 머리.
그건 지금껏 죽여 왔던 고블린의 모습과는 심히 이질적인, 두 다리로 선 염소 인간의 형상이었다.
{바포메트의 미니언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 난 침을 꿀꺽 삼키며 주먹을 단단하게 말아 쥘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턴 지금까지와 확연히 다른 난이도이기 때문이다.
‘퀘스트 발동 조건이 빡센 데는 다 이유가 있지.’
한낱 고블린 던전에서 발동하는 히든 퀘스트.
그러나 그 실상은 일정 수준 이상 성장을 이룬 사람들만이 발동하고 클리어할 수 있는 고난이도의 퀘스트다.
‘조심하자.’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전설 수호령을 가졌다 하더라도 지금 난 굉장히 이르게 온 편.
하지만 단시간 내에 돈을 벌기 위해선 이 퀘스트의 클리어가 꼭 필요하다.
꼭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약점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해야 한다.
-혼자인가. 전에 온 놈들보다 약해 보이는데.
“……응?”
그런데, 악마의 반응이 조금 특이하다.
-흥이 안 나는군. 오랜만에 나를 죽이러 온 인간이 이래서야.
마치 이 상황을 몇 번이고 겪어보았다는 듯 말하고 있다.
‘퀘스트라는 게 짜인 각본 같은 게 아닌 건가?’
이 퀘스트는 오늘 내가 이곳에 올 때까지 몇천, 몇만 번이나 반복해서 실행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고블린들은 이번이 처음인 것처럼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게임에서 여러 플레이어가 똑같은 미션을 몇 번이나 깨도 그 안의 NPC는 항상 똑같은 반응을 내비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시스템하에서도 그런 게 일종의 불문율이었는데.
저 악마는 그런 속박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마치 현실의 시간선을 그대로 인지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어디 한번, 최대한 나를 즐겁게 만들어봐라.
쿵! 쿵!
바포메트의 미니언이 손에서 거대한 양손도끼를 소환하더니, 나를 향해 뛰어왔다.
그 움직임은 전혀 느려 보이지 않았다.
악룡마공을 발동해 인지 능력이 발달한 나에게마저.
붕!
“흡!”
그 녀석은 그걸로 내 머리를 노리며 도끼를 가로로 휘둘렀다.
난 그 자리에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공격을 피했다.
그러곤 도끼가 지나가자마자 악마의 다리 사이로 튀어 나갔다.
‘허벅지가 많이 아플 거다!’
퍽! 퍽! 퍽! 퍽!
그와 동시에 왼다리 허벅지 안쪽에 4연타 펀치를 날렸다.
악마는 인간처럼 고간의 급소는 없지만, 이걸로 다리의 힘을 뺄 수는 있다.
-호오! 생각보다는 재빠르구나!
녀석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반응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빠지면 모든 공격이…….
-그런데 말이다. 이 몸을 상대하러 왔으면서, 악의 힘을 빌려오는 건 대체 무슨 자신감인 게냐?
“뭐?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이런 식으로 작용할 줄은.
* * *
모든 마물들은 기본적으로 암흑 속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진한 암흑 속성을 가진 적은 당연히 악마와 언데드 계통의 마물.
그런데 지금 내 수호령인 ‘아지다하카’도 암흑 속성이다.
이것의 특성인 악룡마공을 발동하고 있으니, 내 주먹 공격에도 암흑 속성이 부여된 모양이다.
타격으로 잠깐이나마 절뚝거리던 악마의 허벅지가, 순식간에 회복되어 원상태로 돌아왔다.
‘기본 공격에 암흑 속성이 걸릴 줄이야.’
보통 스탯 강화형 특성은 해당 수호령의 속성과는 관련이 없는 게 일반적이다.
힘이면 힘. 집중력이면 집중력. 딱 명확하게 강화시켜 주는, 그런 특성들 말이다.
하지만 악룡마공은 단순한 스탯 강화가 아니라 마나를 사용하는, 일종의 발동 스킬.
그래서인지 조금 다르게 작동한 것 같다.
특성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불찰이다.
전설 수호령에 관한 정보가 워낙 없다 보니, 이런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공략할 방법이 없어져 버리는 건데.’
쾅!
-크하하하하!
악마는 신난 듯이 도끼를 휘둘러대며 주변 기물들을 다 박살 내고 있다.
난 계속 도망 다니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냥 포기하고 다시 와야 하나.’
신성 속성 무기를 따로 구한 다음 리트라이를 해야 하는 건가.
리트라이 자체가 별로 큰 부담은 아니다.
남들이야 이 퀘스트를 시작하는 게 엄청나게 힘든 일이지만, 내겐 175만 원짜리 입장권만 사면 될 뿐이니까.
‘퀘스트 포기…….’
{퀘스트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수락을 하면, 난 곧바로 바깥으로 튕겨 나가게 된다.
‘그깟 돈이야 얼마든지 쉽게 벌 수 있다.’
부웅! 쉬익!
다시 한번 나에게 도끼가 날아들고, 난 그걸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동시에 격투술 스킬로 인해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하며 복부에 카운터 펀치를 먹였다.
퍼엉!
-흥! 네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공격해 봐야 상처는 금방 회복될 뿐!
‘……잠깐.’
그런데 이 대목에서, 불현듯 어떤 발상이 떠올랐다.
‘아예 안 먹히는 게 아니라, 금방 상처가 회복된다?’
주먹 공격으로 인한 물리 대미지.
거기에 부가된 암흑 속성으로 인한 회복.
즉, 두 종류의 피해를 입히면 회복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긴 해도 일단 상처 자체는 입는다는 뜻.
───
<고통: 업화(業火)의 구(構)>
아지다하카의 전신에서 뿜어 나오는 시커먼 지옥의 불꽃.
(1단계) 너클에 검은 불꽃이 얽힙니다. 적에게 닿으면 옮겨붙어 화염과 암흑 지속 피해를 입힙니다.
소모 마나량: 100
───
그리고 두 가지 종류의 피해를 가하는 건 이 권능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건 한 번 공격하고 마는 게 아니라 지속 피해를 입히는 기술.
문제는 마나 소모량인데.
‘혹시…… 그게 될까?’
이 순간, 내 머릿속엔 그걸 활용할 방법이 떠올랐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한번 걸어볼 가치는 있다.
안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퀘스트를 포기해 버리면 되니까.
이건 본전이 보장된 도박과 같다.
‘고통, 업화의 구.’
화륵.
곧바로 오른손 너클에 권능을 시전했다.
그러자 새까만 불꽃이 그 위에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하! 또 무슨 술수를 쓰려는 건가? 어디 한번 맞춰보거라!
때마침 악마가 공격을 멈춘 채 가슴을 열고 쏴보라는 듯 도발했다.
-그 불꽃에서 강한 악의가 느껴지는군! 그런 마술이라면 내게는 오히려 환영이다!
물론 저건 나를 자기 품으로 끌어들이려는 유인책일 가능성이 높다.
공격하기 위해 섣불리 접근한 순간, 모든 스탯이 10단위로 떨어진 지금의 난 순식간에 참살당하겠지.
그래서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 대신, 난 오른손의 너클을 벗었다.
그리고 그걸 힘껏 집어 던졌다.
“……하압!”
휙!
검은 불덩어리가 악마의 가슴팍으로 날아갔다.
파이어 너클볼.
굳이 기술명을 붙이자면 그런 이름이 되지 않을까.
-으음? 이게 뭐 하는…….
너클은 악마의 가슴에 부딪히더니 통,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거기에 붙어 있던 불꽃은 떨어지지 않고 놈의 몸에 들러붙었다.
-흥! 이깟 불꽃 따위…….
화르륵!
꺼지지 않는 끈적한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건?
그러자 악마는 방금 전의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한껏 당황한 모습을 내보였다.
-네, 네놈! 어떻게……!
‘먹혔나 보군.’
화염과 암흑의 이중 지속 피해.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계속해서 불태우는 불꽃.
그리고 무기를 던져서 그 불꽃을 붙인다는 발상.
내 생각이 전부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자의 불꽃을……!
“응?”
그건 단순히 화염 피해 때문만이 아니었다.
-끄아아아아!
검은 불꽃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강렬하게 놈을 불태웠다.
암흑 피해에 의한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이 더욱 악마를 잡아먹고 있는 걸로 보였다.
더 격이 높은 존재가, 하위 격의 존재를 위엄으로 집어삼키는.
그런 광경이었다.
“뭐, 뭐야……?”
그렇게 모든 것을 불태우고 난 그 자리엔.
커다란 구슬, 악마의 코어만이 남았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원래는 지속 피해로 가슴에 상처를 만들어서 코어를 밖으로 드러내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그리고 그걸 이 타이밍에 등장할 물건으로 찌르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인간! 이것! 가져왔…….”
처음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고블린이 단검 하나를 손에 쥐고 헐레벌떡 달려왔지만.
상황은 이미 종료된 후였다.
덩그러니 남은 코어 앞에서, 나와 고블린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하위 악마, 바포메트의 미니언을 삼켰다.}
{오류 발생!}
{히든 퀘스트 <타락한 고블린 주술사>에 치명적 결함이 발생했습니다.}
{오류 수정이 있을 때까지 해당 퀘스트의 신규 발동이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