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당의 종이 칠 때 -->
밤이 깊었기에, 우리는 재빨리 잘 준비를 했다. 제롬은 하녀들을 부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제가 내 목욕시중을 들겠다며 서툴게 나를 조심스레, 씻겼다.
그의 손짓이 서툴고 조심스럽다. 하지만 나는 좋았다. 이 세상에 우리 둘만 남았다는 특이한 감상에 젖어들고야 마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키스하려 했지만 그가 고개를 빗겼다.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 내일 식을 올릴 겁니다.”
“제롬…….”
“이 저주 같은 성을 벗어나야겠습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의 손길에 나를 맡겼다.
침대에 누워서 우리는 죽은 듯 늘어져 서로를 마주보았다. 서로를 새기려 하는 거였는지, 서로를 바라보는 것 외에 불필요한 일은 모두 세상에서 지워버리려 하는 것이었는지.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뒤따른다.
“세실리아.”
나는 눈을 깜박인다. 그리고 그의 볼을 쓰다듬는다.
“제롬.”
그가 내 손길을 느끼듯 눈을 감는다.
“어떤 이유서라도 나를 떠나면 안 됩니다.”
“그럴 일 없어요.”
“이 세상의 구원은 물의 언어술사라 해도, 제 구원은 당신입니다.”
“마찬가지에요.”
미소를 교환한다. 그가 다정하게 미소짓는다.
“주무십시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러고 보니 피곤하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어, 고개를 들어 보니 제롬이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제롬은 안 자요?”
“예. 세실리아, 바로 누우십시오.”
“왜요?”
“어서.”
제롬의 종용에, 나는 몸을 일으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베개를 베고 누웠다. 내가 제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의 눈이 휘어졌다.
“왜 안자요, 제롬?”
“생각할 게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내가 그 이유를 깨달은 것은 새벽이었다.
비명소리. 그것도 내 것. 아주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린다.
새벽, 그것도 알싸한 공기라면 깊은 새벽. 제롬은 칼을 들고 침실에 잠입한 괴한들과 싸우고 있었다. 나는 이불 뒤에 숨어 몸을 떨었다. 눈물이 떨어진다. 숨이 막힌다.
느리게, 너무 느리게 세상이 움직이는 것 같다. 괴한들이 하나 둘 다 나가떨어져 바닥에 뒹군다. 그리고 마지막 괴한의 배를 제롬이 그었을 때, 쨍그랑. 칼이 제롬의 손에서 떨어졌다. 제롬은 제 얼굴을 손으로 훔치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제롬이 천천히 뒤돌아 나를 본다. 내 턱이 떨리고 있었다. 레이디 화이트가 한 말이 떠오른다. 뭐였지? 아, 레이디 화이트의 자리는 매혹적인 저주라고.
데자뷰가 느껴진다. 잭이 죽은 날도 이런 깊은 어둠이 깔린 야심한 새벽이었다.
“제롬, 그 사람들 분명 칼에 독 발라놨을 거에요. 죽이려고 온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내 말은 맞았다. 바닥에 뒹구는 괴한의 칼 여럿이 카펫을 녹이고 있었으니까.
“베이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어요!”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롬은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황홀하게 미소짓는다.
“제 걱정 해주는 겁니까?”
“그래요! 당신 잘못하면 죽을 뻔 했어요!”
“감사합니다.”
그가 침대에 걸터앉는다.
“걱정을 해 준 사람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받아보니 정말 나쁘지 않군요.”
나는 숨이 막힌다.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온다.
“당신 죽을 뻔 했다고요…….”
제롬이 내 옆으로 와,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찮습니다, 이젠.”
“불을 쓰시지 그랬어요!”
내가 그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 앞에서 불을 쓰지 않았다. 마르사의 궁이 불탔을 때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했고, 지금은 죽음을 감수하고라도 쓰지 않는다.
그는 불을 통제할 수 있으니 불이 저택을 집어삼키지 않게끔 하는 방법도 알 것이었다. 그러니까 저택 핑계를 대면 나는 바로 반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면 세계사 책에 나온 여러 다른 화이트들처럼, 제롬은 그냥 그 괴한들의 체온을 빼앗아 그들을 저체온으로 죽게 할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마르사는 당신이 그녀의 궁을 무너트리려 할 때조차, 불을 쓰지 않았다고 했어요.”
“세실리아.”
“왜? 그게 저를 놀라게 할 까봐. 당신이 그걸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그녀가 그렇게 말해줬어요. 제 말이 틀린가요?”
“세실리아.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롬.”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나는 괜찮아요. 나는 당신이 두렵지 않아요. 사랑해요.”
그는 한참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서는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로 말했다.
“쉽게 말하지 마십시오.”
“제롬.”
나는 그와 시선을 맞추려 노력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제 어머니도, 형도, 제 병사들도. 제 힘을 보기 전까지는 당신과 같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똑같은 인간이었으니 말입니다.”
나는 말하지 못했다. 그가 가진 상처가 너무나도 커서, 내가 감히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주무십시오, 세실리아. 동이 트려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내 결혼식은, 다이애나의 것처럼, 아니면 여느 소설 속의 것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그저 성의 정원에 있을 만한 작은 규모의 성당에서 우리는 마주보고 있었다. 제롬과, 나.
동이 틀 때였다. 느긋한 햇살이 성당의 창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정적이 장내에 맴돈다. 종소리가 울린다. 나는 화이트 가문의 빛깔, 성스러운 흰색 드레스를 입고 그의 앞에 서있다.
부케가 빠질 수 없다. 모은 손에 들린 꽃들은 오늘 정원에서 제롬이 직접 따 준 붉은 장미 꽃다발이었다. 여행길을 같이 한 추기경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피로해보였다.
그것은 제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밤을 샌 모양이었는지 낯빛이 어두워 보였다.
“로드, 신부께 신성한 서약을 하십시오.”
그는 성서에 왼손을, 그리고 오른손을 들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 제롬 니콜라스 화이트는 화이트 가문의 가주이자, 발리타로크와 웨스트 체셔 두 대영지의 정당한 군주로서 더 좋은 조건에서나, 더 나쁜 조건에서나. 부유하던, 또는 그렇지 않던. 건강하던, 또는 그렇지 않던. 세실리아 로즈를 아내로 맞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또는 그 이후로도 그녀를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겠습니다.”
추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롬이 그의 손을 내려놓자, 추기경이 성서를 가지고, 내 옆으로 가까이 왔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성서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가죽의 꺼끌한 느낌. 나는 제롬의 구두코를 본다. 꽃다발을 든 내 다른 손에 힘을 준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 까지.”
천천히 고개를 올려 제롬의 얼굴을 바라본다. 추기경이 성서를 거두어 간다.
“공작께서는 레이디 세실리아를, 아내로 맞으시겠습니까.”
“예. 그러겠습니다.”
“레이디 세실리아는, 그러면. 공작 전하를 남편으로 맞으시겠습니까.”
“네.”
피아노도, 성녀들의 합창도, 사람도, 축하도, 찬사도 없다. 그저 이곳에는 우리의 신실한 관계를 증명해줄 추기경과. 나와. 그.
“이제 신부에게 키스해도 좋습니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꿈꿔왔던 순간인가. 제롬이 내 면사포를 들어올린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치고, 그가 내 입술에 입을 맞추어 왔다.
“이제 두 분은 아내와 남편이 되셨습니다. 앞으로 행운이 따르길.”
식이 끝난 뒤에는 나와 제롬은 그저 성으로 돌아와 쉬었다. 나는 그와 오늘 결혼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그저 내가 세실리아 로즈에서 세실리아 화이트가 된 것 뿐이었다.
이미 마음은 오래 전에 묶여 있었지만, 제도로 우리의 사이를 더욱 굳건히 한 것 뿐. 하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손에 고운 천을 들고 있었는데, 우리 침대를 장식할 것이었다.
물론 내가 묵고 있는 방의 침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대한 침실의 침대를 장식할 것들이었다. 내 손이 떨렸다. 제롬은 내 등을 쓸었다.
“가신들이 우리 초야를 그러니까, 다 지켜본다는 게 아직도 조금 걱정이 돼요.”
“반투명한 캐노피가 침대를 감싸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보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실루엣일 겁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결혼의 마지막 절차, 초야였다. 귀족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서로의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 초야를 가신들에게 보여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 나는 그 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서워요.”
“다 잘 될 겁니다.”
그가 나를 안심시켰다.
레이디 화이트-제롬의 어머니-는 식사 시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침실에서 식사를 하겠다는 안내가 이어졌다. 나는 음식을 바라보았다. 긴장이 되어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제롬은 평소대로 행동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게 의지가 많이 되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어제 레이디 화이트가 보낸 자객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제롬을 노리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노리고 있었다.
레이디 화이트의 방식대로 불만을 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옆에 있을 건 내가 아니라고. 그녀는 내게 도망갈 것을 권고했고, 뜻대로 되지 않으니 자객을 보내 나를 제거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제 아들을 죽일 수 없다고 했으니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어제의 충격이 떠오른다. 눈을 떴을 때,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침대 옆 끈을 미친 듯이 당겼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탄식처럼 읊조렸다.
“레이디 화이트.”
손이 떨려 나는 그만 나이프를 놓치고 말았다. 눈치를 보던 하인이 나이프를 들고 사라졌다. 곧 그가 새 나이프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것을 떨며 받았다.
짤그랑. 나는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제롬이 부러 소리를 내어 식기를 내려놓은 것이었다.
“사용인들의 행동거지가 굼뜨군.”
제롬이 냉소를 지었다. 하인은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로드.”
“어머니가 사람 보는 안목이 많이 녹슨 모양이야?”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소리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우리 모두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몸을 정갈히 하고는 초야가 있었다. 나는 하녀들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하고 나와 그들이 내 머리를 빗는 것을 바라보았다. 향유가 끼얹어지고 내 머리에 스민다.
“다 되었습니다.”
그들이 거울 뒤로 그림자처럼 말한다. 삭막하다. 아니면 웨스트 체셔에 있는 저택도 다를 바가 없는데 그쪽이 조금 더 안전하니 그렇게 느껴지는 거일 수밖에 없었다.
“나가 봐.”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문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레이디, 저예요.”
제롬의 하녀, 브리젯이었다. 여태껏 그녀가 제롬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보고하는 것을 보아왔을 때, 그녀는 제롬의 신임 받는 하녀인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그녀의 행보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기에, 브리젯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익숙한 얼굴이 보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있었다.
“로드께서 이걸 레이디께 전하라 했어요.”
나는 말없이 작은 병을 받아든다. 투명한 초록빛 병에는 짙은 빛의 진득한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피. 한 두방울이면 될 것을 이렇게 많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브리젯은 예를 차리고는 곧 방을 나섰다.
나는 내 주먹 속에 그것을 숨긴다. 곧 초야였다. 창 밖에는 달이 빛나고 있었다.
그림자 같은 시녀의 뒤를 쫓아, 내가 도착한 곳에는 가신들이 모여 있었다. 그 늙은이들 앞에서 제롬과 ‘사랑의 결실을’ 증명해 보아야 하는 것이 치가 떨리게 싫었다.
어두운 방 안, 그리고 침대 주위에 있는 몇 개의 촛불이 빛을 발한다.
수많은 눈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침을 삼킨다. 차가운 병을 쥔 손에 힘을 준다. 나는 천천히 걸어 침대로 향한다. 침대의 불투명한 캐노피에 사내의 실루엣이 비친다.
장막을 걷고 들어가보니, 제롬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라로. 그는 나를 본다. 나는 그를 본다. 초야가 아닌데도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괜찮습니다.”
그가 몸을 일으켜 나를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당신이 준비되기 전까지, 손도 대지 않겠습니다.”
나는 울음을 터트리려다 웃는다. 이러니까 정말 초야 같아서.
“준비됐어요.”
“그렇습니까?”
“네.”
나는 눈을 감는다. 그가 조심스레 내게 입을 맞춰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