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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밤의 고백-81화 (81/108)

<-- 당신이 사랑할 사람을 죽일 권리 -->

아침이 밝았다. 나는 기지개를 하고 일어나 밖을 바라본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정말 일찍. 너무 일찍 일어나서 내 옆에서 아직 제롬이 자고 있을 정도였다.

어제 하루 종일 샬롯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무도회 하루 전날이었다. 그러니, 내가 초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제롬이 샬롯을 만나게 해줄지 과연 의문이었다. 제롬이 집을 비우면 나갔다 와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으음.”

제롬이 천천히 눈을 뜬다. 그가 나를 뒤에서 껴안는다. 그와 함께 아침을 맞아 본 적이 얼마만인지. 나는 등 뒤로 느껴지는 그의 체온에 눈을 감는다. 그의 단단한 팔이 내 어깨를 감았다. 내 어깨에 그의 턱이 느껴진다. 그의 기분좋은 체향도.

“……일어나셨습니까, 나의 세실리.”

“네에.”

내가 몸을 조금 틀자 그가 나를 놓아준다. 나는 다시 침대에 몸을 누인다. 그 또한 베개에 다시 머리를 대고는 천장을 바라본다.

“제롬.”

그가 나를 바라본다.

“오늘은 샬롯을 만나러 가고 싶어요.”

“흐음.”

그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이다.

“오늘은 무도회 하루 전 날입니다. 샬롯 왕세자비도 꽤나 바쁠 거라고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만나야 할 일이 있어요.”

내 목소리는 꽤나 큰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다른 말은 듣고 싶지 않아 가운을 입으러 일어난다. 나는 차가운 공기에 맨 다리를 드러내고, 침대에서 내려와 가운을 집어들었다.

“더 주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나른한 제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야릇하다.

“아뇨. 바쁘니까요.”

“…….”

“제롬은 안 그렇나요?”

내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언가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세실리아와 무도회 준비에 전념하려고 했습니다만.”

“그런데요?”

“세실리아가 저를 홀로 내버려 둔다니, 슬프군요.”

“안돼요.”

나는 팔짱을 끼고는 손아래 느껴지는 가운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안 당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세실리아.”

그는 내가 나가려고만 하면 미인계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 연기를 하며 나를 잡아두려고 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세상에, 나는 이번에는 절대로 안 당할 것이었다.

“어쨌든 아뇨. 저는 샬롯을 만나러 갈 거예요.”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어어, 허락이 조금 쉬운데.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를 보았다.

“그리고 또 제롬이 왕궁에 마중 오는 일 없다고 약속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약속해 주세요.”

“약속하겠습니다.”

기분이 좋아졌다. 일이 잘 풀리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 메뉴는 뭘까요?”

“메뉴라는 게 있겠습니까. 세실리아가 먹고 싶은 것이 곧 메뉴입니다.”

“고마워요.”

나는 그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뒤돌았다. 침대 옆에 있는 줄을 당기고 침대 위에 앉아, 하녀들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일이 무도회였다.

세상에. 내가 물의 언어술사를 죽이려 하고 있다니. 정말 그 사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그 가루를 술에 타 그 여자한테 건네면 그 여자가 죽게 되는 걸까? 내가 그래도 될까? 샬롯이 준 가루가 가짜라면 나는, 그러면 최후의 방법을 써 그 여자를 찔러 죽여야 한다는 말인데……. 나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아니, 틀리다.

나는 눈을 번쩍 뜬다. 그러고 보니 있었지. 마르사가 죽은 그 날 밤이었다. 나는 내 두 손을 본다. 마치 피가 묻어 있는 것만 같아서 구역질이 난다.

“레이디.”

“레이디!”

나는 눈을 깜박이며 내 눈 앞에 있는 하녀들을 본다. 그들이 환하게 미소지어보인다.

“어서 아침 준비를 하셔야지요.”

“그, 그래.”

나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다. 멀리서 제롬이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 옷을 입고 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하녀들을 둘러본다. 익숙한 브리젯의 미소가 보인다.

나는 그들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문득 맨 발에 닿는 차가운 바닥이 이질적이다. 나는 정말 괜찮을 걸까. 여러 생각이 밀려왔지만 나는 샬롯의 조언대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럴 때 잭이 있었더라면 좋은 조언을 해 줬을 텐데. 그 생각을 하니 마음 한 구석이 괜히 공허해졌다. 나는 바닥을 바라보았다.

“식사는 어떻습니까.”

앗. 눈을 여러 차례 깜박인다. 제롬이 눈을 곱게 휘며 나를 바라본다.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나는 내 식탁에 놓인 메이플 시럽에 절여진 흰 빵을 가만 바라본다. 그것도 빵 하나 다가 아니고 반쪽이었다. 배가 고파서 더 많이 먹고 싶은데 소피아 부인이 진정한 귀족이라면 아침은 최대한 간단하고 적게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아침을 저녁처럼 먹는 것은 일하러 나가야 하는 평민들의 상징이라나 뭐라나.

게다가 포크와 나이프로 빵을 곱게 썰어 먹어야 하는 것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제롬을 바라보았다. 제롬은 책을 읽고 있다.

“제롬.”

“예?”

그가 책을 덮어놓고는 나를 바라본다.

“굳이 테이블에서 저 안 기다려주셔도 돼요.”

“괜찮습니다. 제가 그러고 싶습니다.”

그가 싱긋 미소지어보였다. 나는 다시 메이플 시럽에 절여진 빵을 가만 바라본다. 그리고 포크로 푹 찍어서 베어 먹으려는 것에서 전략을 바꿔, 빵을 보기 좋게 썰기 시작했다.

망할 예법. 생각하고는 나는 제롬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먹는 것을 제롬은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아마 듣기론 오스카와 견줄 수 있는 천재는 이 왕국에 제롬밖에 없다고들 하는데, 그가 저렇게 까다로운 책을 자주 가까이 하는 것을 보면 왜 그렇다고들 하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시종인 한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레이디.”

시간을 방해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제롬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드레스가 도착했습니다. 레이디 율리아 슐츠께서 보내셨습니다.”

“제롬, 무도회때 입을 드레스가 도착했대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무도회가 내일이었다.

방문을 허락하는 샬롯의 편지는 오후에서야 도착했다. 편지를 받아 볼 때, 나는 침대 위에 앉아있었고, 제롬은 서재에 있었다.

“고마워.”

하녀가 고개를 꾸벅이고는 멀어졌다. 실내에 나를 제외한 사람이 없음을 확신했을 때, 나는 내 베개 커버를 조용히 벗겨 그 안을 확인했다. 샬롯이 어제 내게 보냈던 편지는 그 속에 잘 숨겨져 있었다. 약포지도 그대로이다. 나는 안도한다. 편지는 안전하다.

나는 베개를 원래대로 돌려놓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문 쪽으로 걸어나가려다, 뒤를 한번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문 쪽으로 걸어나갔다.

층계의 기둥을 쓸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조용하다. 아마 집사장과, 마부는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얼마만에 맡아보는 바깥 공기이겠는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분주한 고성의 모습을 층계를 내려오며 감상했다. 걸음 하나, 하나에 아래층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나는 붙잡힌다. 말하지 않아도 제롬이라는 것을 안다.

그의 강한 두 팔이 내 허리를 감고, 그리고 나는 붙잡혔다는 것을 알고 천천히 뒤돌아 그를 바라본다. 그의 턱을 내 손으로 천천히 감싼다.

“꼭 나가셔야 하겠습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내 볼에 입을 맞추고는 나를 놓아준다.

“다녀오십시오.”

“그래요.”

나는 층계를 내려간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면 나를 바라보는 그가 있다.

나는 다시 앞을 본다. 조금 웃었다.

마차를 타고 도착한 곳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세이지 궁이 있었다. 왕궁시녀들은 나를 발견하고는 익숙하다는 듯 나를 왕세자비에게로 데려다 주었다. 그들은 하녀들과는 달리, 지체 높은 귀족 아가씨들이라 무조건적인 친절을 기대하기는 힘든 존재이다.

“고마워요.”

왕궁시녀들이 고개를 꾸벅이고는 멀어졌다. 기사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방 문 안으로 들어가니 친숙한 실내 풍경이 펼쳐진다. 오렌지와 아이보리를 섞어 낸 빛이 어우러진 곳. 나는 천천히 실내를 둘러보다 시선을 소파 쪽으로 고정한다. 왕세자비가 미소지어보인다.

“세실리아.”

“샬롯.”

그녀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하자 나는 그녀의 앞에 가 앉았다.

“편지는 잘 받았나 보네.”

그녀가 미소지었다. 나는 미소로 답했다.

“율리아가 전해 주었어요.”

“아, 그래. 율리아.”

“율리아와 샬롯이 사촌지간인줄 몰랐는데요.”

“정말 짓궂은 학생이구나, 세실리아는.”

샬롯이 교태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사시간에 조금만 집중했다면 알 수 있는 일인걸.”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샬롯은 까르르 미소를 터트린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세실리아. 어떤 이유로 나를 찾아왔지?”

“편지에 대해서요.”

“아. 그 편지.”

샬롯이 눈을 내리깔며 머랭 쿠키를 집어 깔끔하게 베어물었다. 나는 완강했다.

“왜 그런 일을 제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물론 나도 계획은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샬롯.”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편지속 그 가루가 진짜 독극물이라는 건 어떻게 알죠?”

“그 가루는 진짜야. 내가 약속하지.”

샬롯의 눈동자는 야망에 가득 차 있었고,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나는 물의 언어술사가 죽기를 원해. 그리고 그 약재가 가짜였더라면, 세실리아 너는 잃을 게 없고. 그 약재가 진짜였다면 너에게 잘 된 일이겠지.”

“……그래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시험해봤거든.”

샬롯의 손이 내 것을 잠시 덮었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내 말을 믿기 힘들다면 정원에 칼이라도 숨겨 놓지 그래.”

“아뇨, 믿어요 살롯.”

“믿어줘서 고마워. 아마 이 일로 우리는 더 돈독한 벗이 될 수 있을 거야. 안 그래, 세실리아?”

샬롯이 체리를 먹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내일의 태양이 밝길 기대하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샬롯의 미소가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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