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겨울밤의 고백-75화 (7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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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단지 방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었고, 정말 큰 돋보기를 받치고 있는 여러 개의 견고한 벽이라고 말해야 충분할 것 같았다.

보석처럼 각진 벽은 온통 까만 벨벳으로 덮여 있어 고요하고 엄숙하다는 느낌을 주었고, 그 방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그 끝에 있는 유리 천장이었다. 귀한 유리로 만들어진 천장은 위로 볼록 솟은 거대한 돔이었다.

그곳을 통해 빛이 타고 내려와, 한 곳을 비추었다. 그것은 방의 한가운데에 있는 거울이었다. 그야말로 어디에 서 있던 실내의 중심이 한 곳으로 쏠리는 구조였다. 그 장소 자체가 실내 정 중앙에 놓인 거울 앞을 돋보이게 해 주고 있었다.

상식을 벗어나는 건축 구조. 어쩌면 우스꽝스럽거나 말도 안된다고 할 만한 구조였지만 그것이 이 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아래, 각진 벽들 앞에는 동일한 보석 진열대가 위치했다. 모두 일정한 크기의, 무릎 높이의 화려한 진열대.

실내는 그 반대 쪽에 대해 완벽히 대칭이었다. 그러면서도 중심은 항상 거울 앞으로 향하는, 특이한 구조. 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릴 즈음, 차분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세실리아. 그 쪽이 아닙니다.”

나는 제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보석점의 주인이 방 중심에 놓인 책상 앞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에 집중했다.

“자연의 걸작이라고도 불리는, 태양의 눈입니다.”

“루비인가요?”

“그렇습니다.”

세 줄로 이어지는 섬세한 진주, 그리고 중간에는 타오를 듯 거대하고 붉은 루비가 위치하고 있었다. 상인은 조심히 그것을 잡아 들어올렸고, 제롬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나는 천천히 거울 앞으로 걸어갔고, 제롬은 내 뒤에 있었다. 그의 체향, 존재에 가슴이 뛰었다.

목에서 차가운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내려다보니 붉은 루비가 내 목에 걸려 있었다. 거울을 보니 루비 목걸이를 걸고 있는 여자, 내가 가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롬이 목걸이를 걸어주고,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조심히 진주를 만지작거렸다.

“어떻습니까?”

그가 내게 물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찬란한, 찬란한 빛에 눈이 멀 것 같으면서도 나는 앞을 본다. 제국에서 몇 없는 ‘이름이 있는’ 보석.

신문에서나 몇 번 보았던 것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전율이 돋았다. 보석을 잘 모르는 나조차 이 보석이 진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그가 내 허리를 껴안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눈을 감는다.

“고마워요, 제롬.”

“그게 제가 당신께 바랐던 전부입니다.”

“감사요?”

“아닙니다.”

그가 천천히 속삭였다.

“제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끔, 당신에게 줄 수 있게끔 항상 제 옆에 있어주십시오.”

“그럴게요.”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고마워요.”

그가 미소지어보였다.

우리는 그 뒤에도 다양한 보석을 구경했다. 나는 진열대 뒤에 있는 귀여운 코끼리 모양의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내가 눈을 빛내자 보석상 랜슬롯이 끼어들었다.

“저건 ‘상아’ 라고 합니다. 저 멀리 바다건너 미지의 땅에서 구해온 보석이죠.”

“주로 저렇게 코끼리 모양으로 조각해 놓나요?”

“아닙니다, 레이디. 휘어진 원뿔의 모양으로 만든 장신구도 있습니다. 주로 레이디들보다는 사냥을 즐겨하는 신사 분들에게 행운을 비는 의미로 많이 사용한답니다.”

“행운이라니, 딱 제롬에게 필요한 것 같은데요?”

나는 제롬을 바라보았다. 제롬은 차분히 답했다.

“그것보다는 레이디의 목걸이에 어울리는 부토니에를 찾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어떤 걸로요?”

“붉은 장미.”

그의 팔이 내 허리를 감았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깊은 시선을 교환했다.

“붉은 장미로 하고 싶습니다.”

그가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그를 장난스레 밀어냈다.

“보는 눈이 있잖아요.”

그가 낮게 웃었다. 우리는 한참동안 보석을 구경하고서야 보석점을 나올 수 있었다.

그 다음날에는, 할 것이 없어서 책을 읽었다. 오랜만의 평화인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을 만끽하려고 노력했다. 제롬은 황궁에서 서신이 와서 잠깐 저택을 비웠다.

나는 그리고 책을 덮었다. 제롬이 가지고 있는 책들은 모두 한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한 반쯤은 내가 알아먹지 못할 어느 고대어로 적혀 있었고, 나머지 반쯤은 읽을 수는 있어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 두고 온 책들은 더 이상 읽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래서 나는 지루함으로 몸부림치며 제롬의 방에 있는 소파에서 뒹굴고 있었다. 별로 레이디답지는 않았지만 보는 눈도 없다, 나는 과감하게 소파에서 체통은 다 잊고 뒹굴었다.

“레이디.”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소파에서 일어나 치맛자락을 정리했다. 그리고 기품있게 찻잔을 들어올리며,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시종인이 예를 표하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레이디, 편지가 왔습니다.”

“가져오세요.”

나는 그것을 기품있게 받아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율리아였다.

“고마워요.”

시종인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방 문 밖으로 향했다. 나는 편지를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그때, 눈이 번쩍 뜨였다.

“음, 저기…….”

“제프리입니다, 레이디 화이트.”

“네, 제프리. 그러니까 마차를 준비해 주세요. 친구 의상점에 좀 가봐야 겠어요.”

“알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꾸벅이고는 나갔다. 율리아가 옷 치수를 재러 잠시 의상점에 들르라고 했는데, 참 잘 된 일이었다. 심심하던 차에 바깥 공기좀 쐴 겸 나는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하지만 화이트 가문의 집사장, 랄프 파커는 내가 나간다는 소식에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나갈 준비를 마치고 마차 앞에 있었는데, 집사장은 마차 주변을 불안한 표정으로 맴돌며 내게 두어번 다시 물었다.

“레, 레이디. 나중에 로드가 돌아오신 뒤 천천히 상의를 한 후에 친구 분을 뵙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로드도 자리를 비우셨는데 굳이 나가시는 건…….”

“괜찮아요. 금방 다녀올게요.”

“하지만 제도에 있는 곳이라면 거리도 조금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해 지기 전까지는 다녀올 수 있는걸요.”

그 말과 함께 나는 마차 문을 닫았다.

“다녀올게요.”

“부디, 해 지기 전까지는 꼭 부탁드립니다. 레이디.”

“약속 지킬게요. 가요!”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집사장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제롬이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평온해 보이는 내 일상과는 달리, 내 머릿속은 온통 복잡했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바쁘게. 움직이면 생각을 덜 해도 좋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 날씨가, 순간이 너무, 너무 완벽했다. 바깥 풍경이 바뀐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더라. 너무 많은 일들. 너무 많은 가능성들. 나에게 뻗어있는 수많은 실과 같은 미래의 변수들.

눈을 뜬다. 마차는 계속해서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팔을 잠깐 들어주겠어?”

율리아가 검진하듯 천천히 나를 바라본다. 나는 천천히 팔을 들어올린다. 그녀가 끄덕이고는 종이에 무언가를 메모한다.

이런 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더라. 점점 지루해지고 있었다. 율리아의 옆에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오스카가 있다.

내가 웃는다.

“오스카 경, 이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지루해하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게다가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표정이시군요.”

“물론 그렇지만 당신이 너무 내 옆에 있는걸, 제롬이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내가 옷 치수를 재고 있을 때라면 더더욱.”

“알겠습니다, 그럼.”

오스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방 구석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시선이 만난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물론 비즈니스 관련으로.

율리아가 손짓하자 하녀들이 내 옷에 꽂혀있던 핀을 천천히 뽑아내기 시작했다. 율리아는 종이를 책상에 올려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다 됐어, 세실리아. 이제 그만 가 봐도 돼.”

“고마워. 율리아. 나 오스카랑 잠시 대화 좀 해도…….”

“미안해, 세실리아. 늦었잖아.”

나는 바깥을 본다. 바깥에는 어둠이 점점 깔리려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다면 해가 진다.

“잠시면 돼.”

“세실리아.”

율리아의 단호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늦었어.”

“그래.”

나는 나갈 채비를 하고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바쁜 율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스카도. 그러자 율리아가 즉시 반응했다.

“세실리아, 미안. 오늘 조금 많이 바빠서 지금 돌아가줬으면 좋겠어. 곧 무도회라.”

“응. 그래. 방해해서 미안.”

율리아는 아마 나와 오스카의 사이에 대한 이상한 오해라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긴 그럴 법도 하지. 나는 생각했다. 나와 오스카는 서로에게 가진 것이 정뿐인 친구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 둘은 그저 사내와 레이디였으니까.

게다가 너무 붙어 다니니 이상하게 생각될 법도 했다. 이런 오해가 싫었다. 그래서 재빨리 나가려고 했을 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에스코트 해 드리겠습니다.”

오스카였다. 나는 거절하려다 너무 불친절해 보일까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율리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리고 오스카의 에스코트를 받아 계단을 내려왔다.

“당신과 상의해야 될 게 있어요.”

나는 주위를 살피며 조용히 이야기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제롬의 신탁과 관련된 거예요.”

오스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 그 이야기로 떠들썩하지 않습니까. 물의 언어술사가 율러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맞춰 곧 물의 언어술사를 찾는 축제도 열리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 레이디를 뵈려 했습니다만 기회가 없어서…….”

보는 눈이 있어서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요. 무도회에서 이야기 많이 하자구요. 그런데 율리아와 제롬이 우리 둘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

나는 그 말과 함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뒤에 서 있는 것은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다. 제롬이었다.

“제, 제롬.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제롬은 싸늘한 눈빛으로 나와 오스카를 번갈아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전하.”

오스카의 목소리와 표정은 놀랍도록 태연했다. 나는 오스카의 팔에서 내 것을 빼내고는 미소지었다.

“곧 성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오스카는 잠시 여기서 우연히 만났는데…….”

“우연히?”

제롬의 한 쪽 눈썹이 들렸다. 그는 땅을 보고 어둡게 미소짓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안 그래도 레이디께서 슐츠 의상점으로 향했다는 이야기에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레이디께서는 한 순간도 저를 안심케 하지 않으시는군요.”

“제롬! 그런 게 아니라…….”

“자세한 이야기는 마차에서 듣겠습니다.”

그가 뒤돌아 마차로 향했다. 나는 제롬과 오스카를 번갈아보다, 오스카에게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오스카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그는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그저 나를 비웃듯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레이디의 문제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으셔야 하는 모양입니다.”

오스카가 얄궂게 말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각자의 문제에 직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슐츠 경.”

“공작 전하께서 저를 크게 의심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레이디께서 당분간은 제게 답을 구하려는 것을 그만 두셔야 되시겠죠.”

나는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오스카는 선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는 항상 그랬다. 항상 선한 중립의 자세로 팔짱끼고는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알게 모르는 미소로 나를, 세상을 관조한다.

“곧 무도회입니다. 레이디의 행보가 기대되는군요.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오스카는 그 말과 함께 부티크의 문을 닫고 문 뒤로 사라졌다. 나는 문과, 마차를 번갈아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천천히 마차 안으로 나를 들였다. 제롬은 말을 꺼내지 않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속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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