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을 부수고 불타오르라 -->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저 여자들한테서 정보를 캐낼 수 있을까? 상황을 파악할 때 사건을 벌이는 사람의 동기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나는 마르사가 나를 왜 죽이려고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내게 접근했고, 그 다음에는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나를 찾아와 내 약점을 이용해 이곳으로 끌고 왔다.
현 상황을 파악하자. 지금 나를 바라보는 저 여자들은 마르사 옆에서 10년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아마 그들은 열 살짜리 애였을 때부터 마르사를 보호자로 생각하고 쭉 살아왔겠지. 순순히 정보를 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 이 사람들을 어떻게 구슬린담…….
“그 이유 충분히 알겠네요.”
나는 목을 꼿꼿이 펴고 말했다. 리오네, 그러니까 마르사의 수집품 중 하나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금발에 푸른 눈, 정석적인 사교계 타입 미인이다. 눈이 크고, 보호본능을 일으킬 만큼 작고 귀여우니 아마 남자들한테도-또는 여자들한테도-인기가 많겠지, 정말.
“뭐요?”
그녀의 앙증맞은 분홍 입술이 움직였다. 아, 귀여워.
“리오와 리오네의 수가 딱 맞는 이유요. 이곳을 ‘졸업하는’ 나이 26살이라면 분명 혼처를 구하기 힘들겠죠. 아무리 여러분들이 율러의 이름난 꽃과 나비라도 그 나이대 사람들은 이미 다 짝이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미래가 걱정될 법도 한데, 남자와 여자의 수가 딱 맞으면 그 걱정이 사라지잖아요. 결혼에 대한 게.”
“그렇죠.”
“짝은 마르사가 지어주나요? 아니면…….”
내 말을 가로채는 목소리가 있었다.
“우리는 마르사의 리오네지, 가축이 아녜요. 짝은 상호 동의에 의해 약속을 교환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요. 그런데 당신이 끼어들었잖아. 그러면 안 돼는 거 아녜요? 우리 중에 한명은 짝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이건 불공평해.”
“맞아요. 우리는 빼앗길 수도 있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곳에 들어올 때, 우리의 격에 맞는 정당한 배우자를 약속받았어요.”
힐난의 눈빛들이 뒤따랐지만 나는 그 눈빛들이 달가웠다.
사람의 욕망을 알면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쉽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평생을 함께할, 없어서는 안 돼는, 완벽한 제 짝.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는 다행이게도, 나는 이곳의 리오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이 사람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고 있다니, 완벽한 조건이었다. 빨리 제롬이 보고 싶었다. 말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그가 보고 싶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나 혼자였더라면 소리를 지르면서 울고 싶었다. 나는 동생의 결혼식을 놓치고, 내 옆자리를 이름도 모를 물의 언어술사에게 뺏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애인의 곁에 떨어져 있었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머리가 어지럽다.
정신을 차린다.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리고 저는 그 권리를 침해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왜죠?”
“제 꿈은 성직자니까요.”
“제정신이세요?”
나는 그 리오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팔짱을 꼈다.
“성직자가 되고 싶으면 이곳에는 왜 왔는데요?”
“제가 마르사께 묻고 싶네요. 저를 이곳에 왜 데려왔는지.”
“스스로 걸어들어오신 거 아녔어요? 저희처럼…….”
“아뇨, 아뇨. 첫 날에 당신들을 만날 때, 저는 약에 취해 있었어요. 마르사가 준 약에요. 기억나죠? 저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저를 이곳에 데려왔죠.”
“세상에, 정말요?”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리오네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였다.
“나는 그것에 대해 마르사를 탓하지 않아요.”
탓하지 않을 리가.
“그리고 이곳을 나갈 때 쯤, 내 남자 옆에는 새로운 여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나는 처음에는 매우 절망했지만, 이것이 다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고는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답니다. 이곳에는 제 걱정들을 다 잊을 수 있어서 좋아요. 게다가, 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여러분들에게 위대한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일거에요. 그 증거로, 저는 위대하신 우니베르 신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거의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죠.”
불신의 눈빛이 뒤따랐지만, 나는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눈을 감았다.
“아아, 위대하신 우니베르님. 당신의 말씀이 닿지 않는 곳에 저를 보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제 힘을 다해 이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게…….”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마세요.”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눈을 천천히 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참, 그런 말을 우리더러 믿으라고요? 무슨 근거로?”
“하지만 그녀가 이곳에 온 날에 약에 취해있던 건 사실이었어요.”
“게다가 그녀는 미스트레스가 탐낼만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잖아요. 게다가 노아처럼…….”
그녀는 주위를 바라보았다. 노아라는 이름이 이곳에서 큰 무게를 가졌는지, 그녀는 노아에 대해 말하기 전에 눈치를 살피는 듯 했다.
“재능을 가진 사람이에요. 마르사가 필요한 재능. 재능에다가 아름다움까지 겸비했고, 마르사의 호감을 얻을 정도라면 그녀가 리오네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게다가 그녀의 손을 봐요. 정말로 반지가 끼워져 있는 걸요. 나는 그녀의 말을 믿어요.”
“고맙습니다, 자매님.”
나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미소로 응했다.
“어쩌면 정말 저 분은 우니베르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일지도 몰라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성녀님일텐데, 무려 신과 대화할 수 있는 성녀님을 우리가 언제 만나보겠어요? 매일밤마다 우리의 손을 잡아줄 성녀님께서 있으면 행복할 거예요. 마르사는 우리가 구원을 바라고 있는 걸 알고 있었을 거고요. 나는 저 분을 믿어요.”
다른 리오네가 거들었다.
“게다가 그녀가 우리들 중 유일하게 남자 방을 오갈 수 있는 건 그녀의 신념을 마르사가 믿어서일지도 몰라요. 그녀는 욕망에 초연한 성직자이니 남자 방 출입을 금지하는 건 오히려 리오들은 구원을 받을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거나 똑같다고요.”
나머지 리오네들이 수긍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두머리격 리오네가 천천히 팔짱을 풀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누그러졌다. 그때, 날 세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거짓말!”
나는 그녀를 보았다. 갈색 머리에 초록 눈동자.
“그럼 노아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소문은 뭔데요? 이 곳 시종인들이 내게 전해준 정보예요.”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노아, 인기 많구나. 하긴 그 애가 좀 잘생겼긴 하지. 나는 수긍했다. 그리고 그 리오네를 침착하게 바라보았다.
“제 마음이 다른 곳에 향해있는 이상, 그는 좋은 친구예요.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나는 그러고서는 내 네 번째 손에 끼워진 반지를 느꼈다. 그리고 다시, 차분히 이었다.
“당신들 말대로, 나는 남자들 방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들을 도와줄게요. 사랑이 이어지도록 말이에요. 나는 정보를 얻어올 수도 있고, 원한다면 당신들 편지도 전해줄 수 있어요.”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한시름 놓았다.
그렇게 또 3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일상이 반복되었다. 노아는 나를 운반했고, 나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 가짜 성녀 연기를 하며 마르사의 남자와 여자 수집품들에게 설교했다. 예전에 평민이었을 때 성당에 자주 다녔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마르사는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신실한 성직자였냐며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이곳에서 그나마 역할을 갖고 적응하려는 것을 보고는 점점 경계를 낮추었다.
리오와 리오네들은 내게 의지했다. 불신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리오, 그리고 리오네들도 있었지만 한번 우연히 비가 올 날을 때려맞추는데 성공한 뒤로부터 모두가 나를 '성녀님' 이라고 부르며 존중해 주었다. 나는 친절과 미소로 내 자신을 무장한 채 그들에게 무심하게 던지는 유도성 질문으로 정보를 얻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얻어낸 정보는 없었다. 그저 마르사가 나를 죽이려 나를 이곳에 데려왔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죽이려 하는 거였다면, 언제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까 궁금해졌다. 의문점만 늘어났다.
그렇게 오늘. 나는 침대에서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시종인들이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귀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또 적자래.”
그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는 줄 알고.
“지금도 가까스로 성을 유지하고 있건만, 나중에 리오와 리오네들에게 약속한 금액은 어떻게 부담하실지 모르겠어. 제정신일까?”
“쉬이, 성녀님 주무시잖아.”
“난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도대체 주인님의 생각을 모르겠어. 나는 그래서 리오랑 리오네님들이 걱정이 돼. 무일푼으로 쫓겨나는 게 아닌가 하고.”
아니면 단체로 죽일 생각일지도 모르지. 나는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일개 대공의 코르티잔이 경영하기엔 이 성이 너무나도 값비싸고 성대했다. 그리고 그녀가 리오와 리오네들에게 약속한 돈은 그녀가 부담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나는 왜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가.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었다. 삼일만에 얻어낸 중요한 정보였다. 시종인의 말이 이어졌다.
“게다가 오늘 물품을 보급받으려다 바깥소식을 엿들었는데, 벤 칼라일 대공 전하의 첫째 아들이 볼모로 끌려갔대. 화이트 공작가의 볼모로.”
“벤 칼라일 대공 전하라고 하면…….”
“그래! 마르사님의 애인을 말하는 거잖아. 대공전하의 첫째 아들이 볼모로 끌려갔다고, 화이트 공작가로.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화이트 공작가라 하면 제롬의 가문. 그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제롬이 마르사의 애인, 벤 칼라일 대공의 첫째 아들을 볼모로 데려갔다.
해갈, 여러날 동안 사막에서 말랐던 목을 갑작스레 내리는 비가 채워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이들의 말에 집중했다. 마음에 희망이 생겼다.
“그런 일이라면 대공비께서도 가만있지 않을 거 아냐. 일개 코르티잔이…….”
“쉿, 수잔. 말 조심해.”
“사실은 사실이야. 대공 전하께선 이쯤이면 골라야 하겠지. 대공비냐, 일개 코르티잔이냐. 그리고 어느 쪽을 끊어낼지는 뻔하고 말이야. 항상 한달치 보급되던 식자재가, 일주일치 밖에 도착하지 않았어. 라리아는 곧 망해. 화이트 공작의 군대가 이곳으로 오고 있어.”
그리고 문고리가 철컥,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성녀님께서 생각이 있으시다면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뻔하겠지. 안 그러면 우리는 모두 타 죽을테니 말이야.”
“수잔…….”
“가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분명 나를 두고 들으라고 했던 이야기였다. 가슴이 뛰었다. 제롬이 오고 있다.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을 때, 나는 내 침대 옆 선반을 바라보았다. 못보던 종이 뭉치. 아까 그 시종인들이 오기 전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자세히 보니 약포지였다. 나는 그것을 천천히 풀어보았다. 흰 가루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배게 속에 감췄다. 그리고 침대 옆 끈을 재빨리 당겼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몸이 움찔 떨렸다. 지금 부른 것 치고는 너무 빨리 도착했는데 생각하기도 전에 내가 본 것은…….
“성녀님, 성녀님!”
롤라였다. 롤라는 마르사의 리오네중 하나였는데, 내가 예전에 말했던 금발에 벽안을 가진 귀여운 여자였다. 독실한 우니베르 신자였던 그녀는 나를 잘 의지하고 따랐다.
그녀의 금발과 벽안은 내 동생 카밀리아를 떠올리게 했고, 카밀리아와 롤라가 나이까지 같은 탓에 나는 그녀를 살뜰하게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
“손님이 왔대요. 정말 오랜만의 일이에요. 구경가지 않을래요?”
“롤라, 말은 고맙지만 나는 아직도 몸이 불편해서…….”
“아아, 아쉽네요. 그럼 제가 보고 와서 다 말씀드릴게요.”
나는 빙긋 웃으며 미소지어보였다. 그녀가 뒤돌아 나가기 전에, 내 말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런데, 손님이 누구죠? 이 곳에 올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롤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소지어보였다.
“성녀님이 믿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그 유명한 잭 제커시스님이래요. 사업차 마르사를 보러 왔다는데 저는 잘 모르겠지만, 시종인들이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떠들어대더라고요. 게다가 엄청 잘생겼대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손이 떨렸지만, 나는 침착하게 미소를 돌려주었다.
“그래, 고마워요. 롤라.”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그때 조금의 시간을 두고, 노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눈이 마주쳤다. 그가 짓궂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성녀님. 내가 어디로 데려다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