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66화 (267/279)

266. 좀 더 멀리 - 2.

“안녕하세요.”

“잘 쉬었나?”

“네. 실장님은요?”

“나도 오래간만에 늦잠 좀 잤네. 가세.”

“네.”

일요일 낮, 두진의 집에 들러 그를 차에 태운 도훈.

영배는 오전부터 선본 일이 있어 오늘 오후에는 도훈과 두진 둘만 사무실에 나가기로 했다.

“오늘도 나간다고 자네 부인이 뭐라고 안 하던가?”

“서로 사정 뻔히 아는데요.”

“그래도 신혼 아닌가?”

“어쩔 수 있나요, 뭐. 그나저나 실장님.”

“왜?”

“어제 영배 형한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 웬만하면 당분간 자네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두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고, 도훈은 웃으며 말했다.

“영배 형이 좀 푼수 같은 면이 있습니다만, 이번 건은 잘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쩝.”

“꼭 그러셔야 하겠습니까? 아직 실장님 왕성하게 활동하실 수 있잖습니까?”

“건강은 하지. 하지만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체력적으로 부담이 가는 건 사실이야. 앞으로는 당연히 더할 테지.”

“일을 좀 줄이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비서실장이 아니라면 그래도 되겠지. 하지만, 비서실장은 그러면 안 되지.”

도훈은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두진의 표정을 살폈다.

담담하게 말하는 두진의 표정에서는 고민스럽다거나 아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미 스스로 결론을 내렸고 번복할 마음이 없다는 그런 모습이었다.

“... 그래도···.”

“어느 날 갑자기 결정한 거 아닐세. 꽤 오래전부터 생각한 거야.”

“......”

“시청에서 자네가 외부인을 데려다 앉힐 수 있는 자리는 비서관과 비서실장뿐이야. 두 사람 모두 시장과 언제 어디서든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게 힘에 부치면 당연히 물러나야지.”

“......”

“힘드니까 그만두고 자네랑 인연 끊겠다는 게 아니잖아. 난 외부에서 좀 더 여유 있게 자네를 지켜봤으면 싶어. 그러면서 때때로 잔소리도 하고. 하하하.”

“... 흐음.”

도훈이 뭐라 말을 못 하는데 두진이 쐐기를 박았다.

“난 그렇게 결정했네. 그러니 조 비서관 자리 맡을 사람 지금부터 찾아.”

“... 쩝. 알겠습니다. 대신에, 제가 아무 때고 찾아뵙고 조언 구해도 몸 빼지 마세요.”

“그야 물론이지. 하지만, 그럴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이제는 웬만하면 자네가 혼자 할 수 있잖아? 나 없더라도 조 비서관이 있고 말이야.”

“아무튼요.”

두진의 결심이 확고해 보였기에 도훈은 무척 아쉬웠지만 그를 설득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예비 시장 후보들 말일세. 어떻게 생각하나?”

“... 글쎄요.”

대선에 시선이 쏠려 무관심 속에 시장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한 것은 총 세 명.

대자당 한 명, 민국당 한 명 그리고 지난 선거 때 민의당 후보로 출마했던 사람이 무소속으로 등록했다.

대자당과 민국당 지역위원장은 등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 민의당 후보가 당적까지 버리면서 등록한 건 예상 밖이었다.

끝까지 민의당 후보로 등록하길 원했다는데 지역 당원 절대다수의 반대를 넘지 못해 무소속으로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민의당 표의 일부라도 가져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도훈은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지난 4년간 대흥시에서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민의당에서 예비후보 등록을 안 한 것 내부에는 이런저런 말이 있다더군.”

“... 저도 얼핏 들었습니다.”

지난 선거 때 시장 후보의 등록을 당원들이 결사반대했다면서도, 정작 민의당 소속으로 시장 예비후보로 등록을 한 사람은 없었다.

당장은 대선에 시선이 쏠려 그다지 사람들의 말이 없으나 평소라면 다를 터.

당사자인 도훈은 예외였지만, 아무도 등록하지 않았다는 말에 표나지 않게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이 여럿이었다.

어제 진주네 집에서 열렸던 고기 파티는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한 것이었다.

“나중에 본선 후보등록을 할 수는 있잖습니까.”

“그건 그렇네만, 당선 가능성이 작을 걸 모르지 않겠지. 뭐, 애초에 그간 시장직을 노리고 뛴 사람이 전혀 없다시피 하지만.”

여당인 민의당이 시장 후보를 배출하지 못한 데에는 도훈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터.

정당이란 게 아무리 전국조직이고 중앙의 올바른 지도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지역에서 일할 일꾼은 지역에서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게 맞다.

선거에 내보낼 후보가 없다고 중앙에서 무작정 후보를 내려보내는 건, 지방자치의 취지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대흥시 지역위원회에서 ‘전략 공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중앙당은 이에 부응하지 않은 것일 터.

“외부 사람을 대흥시로 보내려면 3월 안에 해야 할 텐데요.”

“그렇지. 60일 이전에는 주민등록을 이전해야 하니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출마에 주소지 제한을 받지 않지만, 지자체 의원이나 단체장은 출마하려는 지역에 선거 당일 60일 이전부터 주민등록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상 제한 조항이 있었다.

때문에 대흥시 시민이 아닌 사람이 후보에 등록하려면 선거일인 6월 1일 60일 이전에 대흥시로 주민등록을 옮겨야 했다.

“대선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안준식 의원이 애쓰고 있다고 들었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민의당 소속 현역 시의원이 공개적으로 발언은 안 해도 대부분 안 의원과 같은 생각이라더군.”

“네. 장민호 의원을 제외하면요.”

“그 사람은 독자 후보를 내야 한다고 진즉부터 주장해 왔으니까.”

여야 모두 ‘선거연대’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다.

야권은 중앙당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여권은 지역별 특성을 고려하기 위해 지역부터 논의가 취합되고 있는 중.

당장은 대선에 가려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민의당 대흥시 지역위원회는 여전히 ‘독자 출마’와 ‘도훈과의 전략적 연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로 갈려 논쟁이 진행 중이었다.

당원 숫자로는 ‘독자 출마’가 우세했지만, 논리와 명분에서는 ‘연대’가 앞서는 그런 논쟁이었다.

“이달 안으로는 어떻게든 결론이 날 테지.”

“네.”

몇 달 전부터 지루하게 계속된 이 논쟁은 60일 규정으로 외부 인사의 출마가 불가능해지는 시점이 되면 어떻게든 마무리될 터.

도훈은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두진을 비롯한 도훈 주변의 사람들은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들어보니, 장 의원은 자기 평판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던데.”

“이제야 평판 챙기는 건 늦었죠. 늦어도 한참 늦었죠.”

“하긴 그래. 그 사람도 참···.”

현직 시의원 6명 중 가장 평판이 나쁜 건 두말할 것도 없이 대자당의 차혜진이었고, 그다음이 민의당 장민호였다.

아무래도 양상택, 서태기를 따라다니며 그들과 같은 부류라고 인식된 점이 있고, 뒤늦게 그들과 갈라선 다음에도 뭔가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개인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들까지 고려하면 당선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랄까.

“겉으로는 느긋한 척하고 있지만, 속이 아주 타들어 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

“누구한테서요?”

“있어, 그런 사람이.”

“혹시 홍 주무관 아닙니까?”

“홍 주무관도 비슷한 얘길 했지. 하지만 그 친구 한 명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야.”

“그래요?”

“그래. 그러니 신빙성이 클 테지.”

그런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데,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때마침 이어폰을 하고 있지 않던 도훈이었던지라, 두진이 대신 전화를 받았다.

“김도훈 시장님 전화기입니다. 네? 아, 의원님이시군요. 저 비서실장입니다. 네.”

전화를 건 상대가 아무래도 의원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 조금 뒤에요? 네. 아, 잠시만요.”

두진이 전화기를 손으로 가리더니 묘한 표정으로 도훈에게 말했다.

“장민호 의원인데, 아주 중요한 일로 자네와 만나고 싶다는데?”

“조금 뒤에요?”

“응. 외부면 좋겠지만, 바쁘면 시장실로 찾아오겠다는군.”

“... 만나는 건 상관없는데 나가기는 좀 그렇습니다.”

“알았네.”

두진이 도훈의 뜻을 전하고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중요한 일이라니 뭘까?”

“글쎄요.”

‘독자 후보’ 주장을 공공연하게 하게 된 후로는, 도훈과 대화다운 대화도 해본 적이 없는 장민호.

대선이 본격화된 뒤로는 바빠서 얼굴 마주치기도 쉽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 도훈이었다.

곧 도훈의 차가 시청 주차장에 도착했다.

“장 의원 벌써 저기 와있는데?”

“... 네. 저도 봤습니다.”

청사 현관에 선 장민호가 두진과 도훈의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장민호가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십니까, 시장님.”

“네. 안녕하세요, 의원님.”

웃고 있었지만, 그 거죽 밑으로 왠지 애가 타는 얼굴이 보인달까?

가장된 웃음을 짓고 있는 장민호였으나 그에게서는 여유가 전혀 느껴지질 않았으니까.

“올라가시죠.”

“네.”

도훈과 두진이 앞섰고 장민호가 뒤따랐다.

‘... 무슨 일인데 저러지?’

계단을 오르며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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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시장실.

장민호가 독대를 원했기에 두진마저 배석하지 않은 상태.

도훈이 직접 탄 커피를 장민호 앞 테이블에 놔주고 그와 마주 앉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도훈이 채 앉기도 전에 말을 시작한 장민호.

“그러시죠. 중요한 일이란 게 뭡니까?”

“시장님과 상부상조를 했으면 해서요.”

“... 상부상조요?”

“네. 서로 돕는 것 말입니다.”

“......”

상부상조라는 말이 아닌 본론으로 들어가자 장민호의 눈빛이 변한 것 때문에 말문을 잃은 도훈.

간절하달까 아니면 애절하달까.

승낙이든 동의든, 도훈에게서 원하는 걸 꼭 얻어내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눈빛에서 그대로 읽힐 정도였다.

“...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의원님.”

도훈이 담담히 말하자 장민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대선도 대선입니다만, 지방선거가 목전입니다.”

“네.”

“저도 시장님도 재선에 도전하죠.”

“네.”

“서로의 재선을 위해 도울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요?”

담담하던 도훈의 표정이 굳어진 건 바로 그때였는데, 장민호는 자기 마음이 급해서인지 그 뻔히 보이는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면, 알아채고도 신경 쓰지 않았던가.

“제가 시장님 재선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시장님도 제 재선에···.”

“그만하시죠.”

도훈이 손을 들고 말하며 장민호를 제지했다.

재선에 나선 시장과 시의원이 사퇴 후 후보등록도 하지 않은 현직인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무척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장민호는 도훈의 만류에도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시장님. 제가 독자 후보 공천 요구를 철회하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시장님에 대한 당 지역위원회 차원의 지지 선언도 추진하겠습니다. 독자 후보 공천 요구했던 당원들 설득해서···.”

“그만하시라니까요.”

벌떡.

말은 담담했지만, 행동은 신속하달까.

다시 만류하는 말을 한 도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장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시장님!”

장민호가 다급하게 불렀으나 도훈은 멈추지 않았다.

벌컥!

문을 열고 나서야 다시 장민호에게 시선을 준 도훈.

“사정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저와 의원님이 나눈 대화는 무척 부적절한 것입니다.”

“......”

“직을 사퇴한 후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안 됩니다.”

“... 시장님.”

“돌아가 주세요.”

“......”

담담하고 차분하지만 싸늘하기 이를 데 없는 도훈의 축객령.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장민호가 입가를 씰룩이며 도훈을 노려보다 비서실에 있다가 놀라 문가로 다가온 두진과 시선이 마주쳤다.

“... 오늘은 일단 가겠습니다.”

씹어 내뱉듯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장민호.

콰앙!

마치 자신이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비서실 문을 세게 닫고 장민호가 사라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게?”

두진이 놀람과 기분 나쁨이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휴우. 저도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한숨을 내쉬며 답하는 도훈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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