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65화 (266/279)

265. 좀 더 멀리 - 1.

도훈의 시장 재선을 위해 본인은 물론 ‘여러’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노력하는 가운데도 시간이 흘렀다.

대선의 열기는 절정에 이르렀고,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도 시작되었다.

다만, 같은 선거임에도 전자는 모두의 관심을 받는 데 비해 후자는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 기간이 다른 거였어?”

“그렇더라고. 나도 이번에 알았는데, 선거구가 넓으면 넓을수록 예비후보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 대통령은 240일이고, 국회의원이나 광역시장, 도지사는 120일이고 그다음으로 90일, 60일 이렇게 되더라고. 그나저나 이걸 모르고 있었어?”

“... 몰랐지.”

“하하. 이런 사람이 비서관이라니.”

어이없어하는 도훈에게 영배가 투덜거렸다.

“야. 그동안 공직선거법을 여러 번 보긴 했다만, 이건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저건 하면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를 주로 찾아봐서 그렇지. 선거 관련한 부분은 찾아볼 이유가 없었던 것뿐이야.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너도 이번에 알았다며?”

“대충은 알고 있었지. 이번에 확인한 거고.”

점심을 먹고 청사 옆 자판기 근처 흡연구역에서 ‘식후 땡’을 하는 도훈과 영배.

그동안 초인적인 노력으로 담배를 많이 줄였던 영배도 도훈과 함께 식후 땡을 하고 있었다.

최근 그가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하니 와이프가 ‘식후 땡’은 허락해 줬단다.

“후우, 하루에 밥을 한 열 번 정도 먹을 순 없나?”

점점 줄어드는 담배의 길이가 안타까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영배.

“스트레스를 담배로 풀려고 하지 마라니까.”

“알지. 아는데··· 다른 게 딱히 없잖아.”

영배가 스트레스를 받는 건 본격적인 선거운동본부 조직화를 준비하는 책임이 그와 팬카페 운영진들에게 맡겨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도훈에게도 선거운동이 그야말로 목전에 다가와 있었다.

시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훈은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바로 시장선거 후보등록을 할 계획이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하려면 시장직에서 사퇴해야 하니까.

예비후보 등록을 하면 선거사무소를 열 수도 있고 사무원도 고용할 수 있지만, 등록을 안 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할 일은 많고 점점 더 늘어날 게 뻔한데 제약이 있으니 영배나 혜란, 차인호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그렇다고 도훈이 시장 업무를 보는 시간을 줄이고 끼어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도훈에게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뿐.

“... 퇴근하고 오래간만에 탁구나 한 게임 할래?”

영배의 스트레스를 걱정한 도훈의 말.

그러나 영배에게는 그 말이 다른 효과를 유발한 모양이었다.

“......”

“... 왜 그렇게 봐? 운동으로 스트레스 풀자는 건데?”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영배에게 도훈이 말했고, 영배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답했다.

“... 후우. 말을 말자.”

“아, 왜?”

“너는 실장님이랑 잔업을 하겠지만, 나는 나대로 혜란 선배랑 인호 씨 만나서 할 일이 많단다, 시장님아.”

“... 그래?”

“그래, 자식아. 퇴근하자마자 약속장소로 뛰어야 해.”

“... 흐음.”

업무시간에는 비서관 일로, 퇴근 후에는 선거운동본부 일로 바쁜 영배.

물론, 도훈과 두진이 그에게 ‘본부’ 일을 다 떠넘긴 건 아니었다.

시정 평가 및 정책이나 공약에 관한 중요한 글은 대개 도훈이 쓰고 있었고, 두진도 퇴근 후에는 영배의 일을 돕고는 했으니까.

게다가 영배가 퇴근해 선본 일을 보는 와중에도, 도훈과 두진은 잔업을 한다거나 시민들을 만나는 일을 예전처럼 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배의 부담이 크고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도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영배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야, 이제 우리 일이 되니 저게 대번에 눈에 들어오네.”

“응? 뭐라고?”

“저기 봐라. 저 상가 앞.”

영배가 가리킨 건 시청 청사 앞 상가에 선거용 점퍼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시청 청사가 약간 언덕 위에 있었기 때문에 좀 거리가 있어도 상가 앞이 한눈에 들어왔다.

같은 색의 점퍼를 입고 상가 앞 인도를 돌아다니는 운동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도 저렇게 좀 ‘떼’로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부럽다는 듯한 영배의 말을 가만히 들으며 도훈은 다시 생각했다.

혜란이나 차인호 등이 열성적으로 돕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영배의 업무 부담을 줄여줘야겠다고.

‘... 보좌관 일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본부 일은 어떻게 사람을 구해봐야겠네.’

도훈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영배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네, 선배님. 아, 그래요? 그거 잘됐네요. 하하! 아이고, 선거 때 얼마나 바쁜지 선배님이 직접 안 겪어보셔서 그래요. 파트타임이라도 자원봉사자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데요. 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하하하.”

내용을 들어보니 도훈의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파트타임이라도 자원봉사하겠다는 사람을 한 명 확보한 모양.

사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혜란은 그걸 일부러 전화해서 알리고 영배는 그 사소한 일에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

‘... 선본 일에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네.’

미안함을 느끼며 도훈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다시 시청 앞 상가 쪽을 봤다.

점퍼를 입고 길가는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 하긴 내 선거인데, 내가 가장 열심히 해야지.’

추위가 한결 덜해진 가운데, 태양 빛이 따사롭게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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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

진주의 집에 여러 사람이 모였다.

“야, 불 다 붙였다. 고기 어딨어?”

“가져다줄 테니까 기다려.”

밖에서 캠핑 그릴에 불을 피운 도훈이 문을 열고 묻자 주방 싱크대 앞에 선 진주가 답했다.

진주가 오래간만에 같이 영양보충 하자고 제안해 마련한 자리.

영배네 식구 전부와 도훈, 세경에 순심이까지 모두가 모여 있었다.

“오? 이거 뭐야? 삼겹살이나 목살이 아닌데? 소고기 맞지?”

진주가 내미는 고기를 받아든 영배가 감탄했다.

“응. 그러니까 태워 먹지 말고 잘 구워.”

“설마, 한우냐?”

“이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한우로 배 채우려면 이 건물 기둥뿌리 뽑아야 돼. 호주산이네요.”

“크으! 호주산이든 어쨌든 소고기가 어디냐. 이야! 네가 오래간만에 이 오라비를 제대로 대접하는구나. 오늘 허리띠 풀고 먹어야겠다.”

“그러시든가. 고기는 많이 사다 놨어.”

“술은?”

“오빠랑 도훈이 좋아하는 그 술? 소주에 맥주에 막걸리까지 박스로 사다 놨다. 됐냐?”

“오케이!”

영배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고, 진주가 그런 영배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하여간 단순하다니까.”

피식.

진주가 유리문 너머에서 열심히 고기를 굽는 도훈과 영배를 보며 웃었다.

진주가 운영하는 학원 부원장이자 선생님인 영배 부인 선아가 요즘 영배가 스트레스도 많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걱정해 오늘의 자리를 만든 그녀였다.

아직 음식과 술을 즐기기도 전인데 흥겨워하는 영배를 보니 벌써 효과가 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언니, 이거 다 씻었어요. 다음에 또 뭐해요?”

“갈게.”

주방에서 세경의 말이 들려왔고 진주가 걸음을 옮겼다.

치이이익!

“캬아! 이 소리! 역시 소고기는 소리부터 다르네.”

“... 누가 보면 평생 소고기라고는 냄새도 못 맡아본 줄 알겠다.”

그릴에 올려진 소고기에서 나는 소리에 과장되게 감탄하는 영배와 어이없다는 듯 핀잔하는 도훈.

“고기라는 게 원래 구워야 제맛 아니냐? 본격적으로 고기 구워 먹는 게 좀 오래간만이라 그런다.”

“... 어제 점심에 구내식당 육개장 먹으면서 고깃국이 최고라고 하던 사람은 어디 갔대?”

“자식이 별걸 다 기억하고 있네. 시끄러워.”

치이이익!

고기를 그릴에 가득 올려놓은 영배는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배부르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형.”

“어.”

“선본 일 맡길만한 사람 구할까?”

“선본 일?”

“응.”

영배가 도훈을 바라보다가 픽 웃고는 말했다.

“내가 요즘 그렇게 정신없어 보였냐?”

“조금 그랬지.”

“하하. 너까지 그럴 정도면 내가 정말 요즘 스트레스가 심하긴 했구나.”

“무슨 말이야?”

“오늘 진주가 고기 먹자고 한 것도 선아가 내 걱정하는 말 들어서 그런 것 같더라고.”

“그래?”

“응. 오늘 여기 오면서 선아가 진주한테 고마워하라고 하면서 얘기해 주더라.”

“... 그래?”

“응.”

피식 웃은 영배가 도훈을 빤히 바라봤다.

“왜?”

“... 그냥 봤어. 네 도대체 어떤 면이 그렇게 사람을 끌어당기는지 궁금해서.”

“... 뭔 소리야?”

어리둥절해 하는 도훈에게 영배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선아가 나 걱정하는 것도 진주가 나 챙겨주려는 것도 네 일이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잖아.”

“... 그렇겠지.”

“멋대가리 없는 김도훈이 도대체 뭐가 좋다고 그렇게 너 잘되길 바라는 마음인지 궁금해서 말이야.”

“갑자기 뭔 소리야? 감동해서 충격이라도 먹었어?”

도훈의 말에 영배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했다.

“그게 다가 아니야, 인마. 그거 아냐? 송 실장님, 너 재선되면 그만두시기로 마음먹은 거.”

“... 뭐? 진짜야?”

“응.”

“아니 왜? 아니 그것보다, 형은 누구한테 들었는데?”

좀 놀란 도훈의 반응에 영배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놀라는 걸 보니까 송 실장님이 중요한 분인 건 맞네.”

“당연하잖아. 실장님 아니었으면 우리 몇 배는 헤맸을 거 아니야. 임기 초에 예상보다 실수가 적고 잡음이 없었던 게 다 실장님 덕분인데.”

대흥시에서 정년퇴직한 두진이 도훈의 비서실장이었던 덕에 얻었던 긍정적인 효과는 절대 작은 게 아니었다.

시정 전반을 샅샅이 꿰뚫고 있는 경험은 물론, 하급 직원들이 그에게 가진 신망, 공무원 조직을 접할 때 유념해야 하는 은밀한 것들에 대한 지식 등.

도훈은 두진이 아니었다면 초창기에 몇 배는 더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을 테니까.

어쩌면, 취임 초부터 지금까지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두진이 도훈의 곁에 딱 붙어서 ‘게이트 키핑’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지금에야 온전히 도훈 스스로 판단하고 걸러낸다지만, 두진이 하는 양을 보고 배웠기에 그 능력도 키울 수 있었을 터.

그런 두진이 재선에 성공하면 그만두겠다는 얘기는 당연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직도 정정하신 양반이 도대체 왜?”

“너와 좀 더 오래 뭔가를 함께 하고 싶으시단다.”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나한테 그러시더라고. 재선되면 나한테 비서실장직 인수인계하신 다음에 시청 외부에 정식으로 네 후원조직을 만들 생각이라고.”

“... 뭐?”

“너는 한사코 네가 정치인이 아닌 행정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잖아. 기초단체장은 행정가의 임무가 큰 게 맞지만, 솔직히 정치인이 아니라는 네 말은 눈 가리고 아웅이야.”

“......”

“실장님은 네가 지금 같이 차분하고도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잃지 않은 채로 더 큰 정치인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시단다. 그래서 웬만한 정치인이면 다 있는 후원조직을 책임지고 싶으시다는 거고.”

“......”

“... 후원조직 내실 있게 만들어서 네 뒷받침을 하시겠다는 거야. 지금처럼 앙상한 선본으로 허둥대지 않게.”

“......”

“좀 더 멀리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

치이이익!

도훈은 잠시 말문을 잃었고 영배가 그릴 위의 소고기를 뒤집었다.

“... 실장님하고 직접 얘기한 거야?”

“그래. 어제 그러시더라.”

“... 아직 더 일하실 수 있는데.”

“나도 그렇게 말씀드렸거든? 그랬더니 나도 발전이란 걸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핀잔하시더라고. 4년 비서관 하면서 비서실장 역할 맡을 능력은 충분히 키우지 않았냐고 하시면서 그 얘기까지 하시는데, 차마 그러지 마시라고는 못 하겠더라.”

“......”

“너 재선되면 비서실장은 무조건 나야.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인마.”

“......”

“정임 씨나 지연 씨, 홍 주무관님도 그렇지만, 다른 직원 중에도 네게 끌린다는 사람 많잖아. 실장님에 혜란 선배, 차인호 씨나 다른 팬카페 분들도 그렇고···. 아무튼, 너 잘하고 있고 좋다는 사람 많다는 생각이 드니까 스트레스가 좀 풀린 거야.”

“......”

“... 뭐, 선거에서 이겨야 그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겠지만 말이다.”

뭔가 뭉클해진 도훈이 말을 못했고 영배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너랑 오래 친하게 지낸 사람의 하나로서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 뿐이냐? 오늘 얼마나 훈훈하고 좋냐. 진주가 겉으로는 딱딱하고 냉랭하지만, 속정이 깊은 애잖아. 너는 나를 뿌듯하게 만들고, 진주는 이렇게 나를 챙겨주니 기분이 좋을 수···.”

벌컥!

“아, 뭐해! 고기 다 탄다!”

“응? 아, 아차!”

갑자기 유리문을 열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진주.

대화에 정신이 팔렸다 움찔한 두 사람이 얼른 고기를 집어 그릇으로 옮겼다.

“탔다기보다는···.”

“좀 잘 익었네.”

한쪽 면이 새까맣게 변한 고기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두 사람.

그런 도훈과 영배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진주.

“... 탄 건 두 사람이 다 먹어!”

“......”

“어휴. 비싼 소고기 사 오면 뭐하냐고. 그것 하나 제대로 굽지를 못하는데.”

탁!

투덜거린 진주가 문을 닫고 돌아섰고, 영배가 유리문 너머로 진주의 등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야.”

“... 왜?”

“방금 내가 진주가 속정이 어쩌고 한 거 있잖아?”

“... 응.”

“... 그거 다 취소다. 저거 성질머리는 하여간···.”

“......”

치이이익!

영배가 투덜거리며 새 고기를 그릴에 올렸다.

그렇게 어느 ‘훈훈한’ 저녁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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