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64화 (265/279)

264. 선거 때니까 - 3.

- ... 3일 전 충남 대흥시 지역위원회가 여당에 맞선 범야권 선거연대와 후보 단일화 촉구 성명을 처음 발표한 뒤로, 이에 공감한다며 당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하는 전국의 대자당 지역위원회의 성명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 허허. 이런 뉴스에 대흥시가 언급되네. 그것도 전국 뉴스에.”

TV 뉴스를 보던 두진이 웃으며 중얼거렸고, 영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어떤 분야가 됐든 전국 뉴스에 대흥시에 언급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최근 몇 년간 전국 뉴스에 대흥시가 언급됐던 건 거의 도훈이 등장할 때였는데, 이번에는 도훈이 아닌 대자당 지역위원회가 언급됐다는 게 이채로웠다.

- ... 대자당 서울시당의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수일 내로 서울시당 차원에서도 같은 요지의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역 현장에서 ‘선거연대’와 ‘단일화’를 주장하며 중앙당 지도부를 압박하는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 서울시당 전체가? 허허. 하긴 그쪽은 여기보다 사정이 나쁘면 나빴지 좋을 리가 없겠죠?”

“그렇겠지. 민의당 후보 지지율이 전국 평균보다 수도권에서 더 높던데.”

“그것도 꽤 큰 차이로 말이죠.”

여당 대선후보는 영남 일부를 제외한 전국적으로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수도권에서 가장 큰 지지율 격차를 보이며 앞서고 있었다.

당연히, 지역보다 수도권의 현장에서 단일화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을 터.

“대선은 물론, 지방선거도 고려한 생각일 테지. 서울 구청장 한 명 빼고 전부 여당이잖나.”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은 더 심하죠.”

“지난 지방선거 때 워낙 여당이 압승하긴 했지.”

지난 지방선거는 대통령의 유례없을 정도로 높은 지지율에 힘입은 여당의 일방적인 압승이었다.

현재도 대통령 지지도가 40% 후반을 오가고 있고 여당의 지지도도 1등이긴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 때와는 많이 다른 게 현실.

하지만, 현직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유리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서 대선뿐 아니라 지방선거를 앞둔 야당의 사정은 결코 좋을 수가 없었다.

“민국당이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글쎄. 아직은 반응이 없지만 내심 반기고 있을걸? 어려우면 그쪽이 더 어렵지 않겠나?”

“하긴 그렇지요.”

휴일인 토요일에 출근한 것인지라 비서실에는 도훈과 영배, 두진 밖에 없었다.

세경도 오늘 오전에 볼일이 있어서 오후에 대흥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전문가들이 결국에는 선거연대가 이루어질 거로 전망하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네.”

“방식이 다르죠. 중앙에서 결정하고 지역에 지침을 내리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 먼저 주장해 중앙이 따라가는 식이잖습니까.”

“그만큼 마음이 급하다는 뜻이겠지.”

영배와 두진은 소파에서 TV 뉴스를 보며 대화하고 있었지만, 도훈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뭔가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영배가 도훈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을 걸었다.

“시장님아. 글은 잘 돼가냐?”

“그럭저럭.”

도훈이 작성하는 글은 지난 시정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

이 평가서는 도훈 혼자서 작성하는 게 아니라 시청 각 부서에도 사업을 중심에 놓고 성과와 한계를 냉철히 평가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도훈이 작성하는 총론에 각 부서의 평가서가 합해져 최종적으로 완성될 예정이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뭐를?”

“아, 야당에서 선거연대 한다는 거. 선거연대가 성사되면 후보도 단일화할 거 아니냐.”

“그럴 테지. 난 그렇게 될 것 같은데? 단일화될 것 같아.”

“... 하. 참, 쉽게도 말한다. 꼭 남의 얘기 하는 것처럼. 대선만 단일화하겠냐? 지방선거 때도 단일화할 거 아니야. 너 출마하는 지방선거 말이야.”

영배가 불평했고, 도훈이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돌리더니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그쪽 사람들은 크게 걱정이 안 돼.”

“뭐? 야! 우리나라 유권자의 30%는 보수성향이야. 기본적으로 3할은 그쪽을 지지한다고. 그거 엄청난 거야, 인마.”

“그걸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대선은 모르겠는데 시장선거는 그쪽 걱정이 안 돼.”

“허, 참. 왜?”

“나 시장 되고 나서 그쪽 사람들 여럿 만나봤지만, 시정에 관해 고민 꾸준하고 깊이 있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그래.”

“응? 그건 무슨 소리야?”

영배가 반문했고 두진도 도훈의 말에 흥미가 생겼는지 도훈에게 시선을 줬다.

도훈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명색이 정당 지역위원회고 거기 소속된 당원이면 그 지역의 발전을 위한 고민이나 노력을 해야 하잖아. 그래서 우리가 처음에 모든 정당에 시정발전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달라고 했고, 언제라도 논의하자고 제안했던 것 기억나?”

“그랬었지.”

도훈은 당선자일 때부터 여러 정당의 대흥시 지역위원회에 ‘뭐가 됐든 시정을 위한 거라면 솔직하게 토론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었다.

도훈이 제안해 각 당의 지역위원회에서 대표를 보내 토론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논의 자리가 계속 이어지지 않고 불과 두어 번만 열리다 없어지고 만 것은 야당들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대흥시 시정이나 현안에 관해 고민과 콘텐츠가 있었다면, 그 논의 자리가 흐지부지될 수가 없었어. 시의원 한 명뿐인 대자당이나 단 한 명도 없는 민국당이나 신민당이나 어떻게든 시정에 참여하고 계속 활동하고 있다고 시민들에게 알릴 좋은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토론 몇 번 하고 나니까 고민과 콘텐츠가 없다는 게 들통났잖아. 안 그래?”

영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진이 입을 열었다.

“지금도 그럴 것이라는 얘긴가?”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죠. 하지만, 개인이 노력하고 고민해 내용을 갖추는 것과 조직이 집단으로 움직여 내용을 갖추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잖습니까?”

“그렇지.”

“대자당이든 민국당이든, 실체도 흐릿한 신민당이든 지역위원회 차원에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민의당이나 진평당은 그나마 낫죠. 전부는 아니더라도 분명 대흥시 시정을 위한 콘텐츠를 꾸준히 고민해 온 이들이 있으니까요.”

“... 흐음.”

두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말로, 대자당의 시정에 대한 고민의 수준은 유일한 시의원인 차혜진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민국당과 신민당의 경우에는 조직이 많이 부실해져서 선거 때나 특정 이슈가 도드라졌을 때 당 지역위원회 이름으로 플래카드는 내걸린 적이 있어도 꾸준히 활동하는 이들을 보기가 힘들었다.

“지방선거 때 그쪽 당들이 연대해서 단일 후보를 내세운다면 유권자 중 보수적 성향인 분들 30%가 지지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이상 득표할 수 있을까요?”

“중도적 성향인 사람들의 표심을 자극할 콘텐츠가 없을 거라는 얘기인가?”

“네.”

“지금부터라도 개발할 수 있지 않겠나? 대흥시, 그렇게 큰 동네 아닐세.”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콘텐츠가 나올까요? 아무래도 허술하거나 구멍이 많을 텐데, 저는 요즘 시민들이 그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 흐음. 일리가 있긴 하지만···.”

두진이 말끝을 흐렸고, 영배가 입을 열었다.

“시장님아. 너 방금 말한 거 다 맞는데, 그쪽은 쪽수라는 게 있잖아.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서 머리 팽팽 굴리기 시작하면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싶다, 나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반면에 우리를 봐라. 선거운동본부 회의는 시작했다만, 거기 참여하는 사람이 겨우 다섯이야. 대한민국 어느 기초단체장 선거운동본부가 겨우 다섯으로 굴러간대?”

“... 뭐, 못할 거라는 법도 없잖아.”

“아무튼. 빈약한 건 사실이야. 그런 상황인데 우리라고 콘텐츠 자신할 수 있겠냐?”

영배의 말에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열심히 글 쓰고 있는 거잖아.”

“... 부디 더 열심히 얼른 써서 보여다오.”

“쳇.”

타닥. 타타탁.

노트북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더 빠르게 울리기 시작했고, 영배와 두진도 TV를 끈 뒤 다시 일을 시작했다.

문득 뇌를 스치는 어떤 생각에 두진이 도훈을 바라본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 야당이 저렇게 나오면, 여당은 또 어떻게 대응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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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저녁 늦은 시각, 민의당 충남도당 사무실 내부의 한 회의실.

민의당 소속인 충남의 현역 국회의원 전원과 원외 지역위원장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중요 의제에 관한 논의는 이미 마친 터라 참가자들이 조금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내일 아침에 서천, 천안 지역위가 성명을 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일 당진시도 모임을 하기로 했답니다. 만약 내일 당진 지역위원회까지 선거연대 촉구 성명을 발표하면 충남의 모든 대자당 지역위원회가 성명을 내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도 단위 지역위원회 모두가 성명을 내는 건 충남이 처음인 거죠?”

“네.”

“허허. 어쩌다 충남 대자당이 이렇게 앞장을 서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형편이 어려운 건 여기보다 서울이 더할 텐데요.”

“그러니까 이채롭다는 거겠죠.”

‘선거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회의 참가자들의 얼굴에서는 크게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선거연대를 예상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선은 크게 유리한 상황이고 회의 참가자 중 지방선거에 직접 출마할 예정인 이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후보자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예상했던 일이긴 한데, 우리 지역에서 이렇게 먼저 목소리를 낼 것까지 예상했던 건 아니었죠. 그래서인지, 좀 긴장하는 느낌입니다.”

“무리도 아니죠. 이렇게 앞다투어 성명을 낸다는 건 그만큼 의지가 강하고 다급하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참가자 중 논산-계룡-대흥을 지역구로 하는 김용진 의원도 있었지만, 그는 발언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오늘의 자리는 대통령 선거운동 중간 점검을 위한 것이었는데, 어느새 논의는 지방선거로 이어지는 중이었다.

중요하지 않은 선거라는 건 없고, 더욱 큰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정당과 정치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터.

야권 중 보수에 속하는 이들의 선거연대가 본격화될 것 같으니, 여당도 이에 대응해야 했고 이를 위해 각 지역부터 논의를 시작해 중앙으로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는 지역위원회별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위원장들의 기본적인 입장을 조율할 예정이었다.

“당 대표님이나 원내 대표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위원장님?”

원외위원장 한 명이 3선 현역의원이기도 한 도당 위원장에게 물었고, 위원장이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

“원론적이고 대승적인 견지에서 연대의 필요성은 인정하신다고 하더군요. 다만 그건 지방선거의 이야기지 대통령 선거는 이대로 끝까지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흐음. 딱 원론적인 말씀이네요.”

“네. 예상은 했어도 선거연대가 생각보다 늦게 불붙었잖습니까. 현재로써는 대선보다 지방선거 때 영향이 클 것 같아요. 그러니까 현장부터 논의하게 하신 걸 겁니다.”

위원장이 김용진에게 시선을 주고 말을 이었다.

“김용진 의원님. 의원님 지역구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거기 상황이 좀 특수하잖습니까?”

“... 그런 편이죠.”

“대흥시 시장은 무소속에 진평당 시의원도 하나 있죠?”

“맞습니다, 위원장님.”

“그리고 그 옆 OO 시는 시장이 사고치고 탈당해서 무소속이기도 하고요.”

“휴우, 그 사람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네요.”

“하하. 그 심정 이해합니다.”

지역에서 보기 힘든 진보정당 소속 시의원은 논외로 하더라도, 지역구 기초단체장 셋 중 둘이 무소속.

OO 시 시장의 경우에는 제명을 피하기 위한 자진 탈당이었지만, 제명이나 다름없이 민의당에서의 정치 생명은 이미 끝났다고 할 수 있었다.

“김도훈 시장은 여전합니까?”

“네.”

위원장의 여전하냐는 물음은 ‘안부’가 아닌 아직도 ‘무소속’을 고집하고 있냐는 뜻이었고, 김용진은 최근 반 년간 이 질문을 최소한 10번 이상 받았다.

민의당 내부 개혁적 세력보다 더 개혁적인 정치철학의 소유자인 데다가 초선답지 않게 시정의 성과도 견실히 내는 도훈은 충남지역은 물론 중앙에서도 관심을 두는 인물이었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매스컴도 여러 번 탄 도훈은, 대단한 수준은 아니나 국민적 지명도까지 갖고 있질 않은가.

“엊그제 내가 들은 이야기 하나 해 드릴까요?”

“... 그러시죠.”

“국회에서 우연히 임지희 의원님을 만났어요.”

“그런데요?”

“여기저기 선거운동하러 다니느라 목까지 쉰 양반이 지방선거 때 대흥시에 지원유세 하러 가고 싶어 죽겠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

“참고로, 시의원만 지원하러 가겠다는 얘기가 아니었어요.”

“... 하하.”

허탈한 웃음을 흘리는 김용진.

임지희가 대흥시에 지원유세 하러 가고 싶다는 얘기는 도훈의 ‘당적’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 휴우. 우리가 진평당보다 더 크고 여당이기도 한데, 우리도 최소한 그 정도 깜냥을 보일 수는 없는 건가.’

시장선거에 ‘독자 후보 공천’을 요구하는 대흥시 지역위원회 사람들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리며 김용진이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위원장이 회의의 종료를 알렸다.

“이걸로 회의 끝내겠습니다. 내일도 수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지역이 잘 되길 바라는 지역 정치인으로서나 도훈이 시장에 재선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굳게 믿는 김용진.

그는 정신없는 대통령 선거운동 와중에도 도훈을 위해 지역위원회 당원들을 다시 설득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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