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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에 시장 되다-263화 (264/279)
  • 263. 선거 때니까 - 2.

    아침 조회 시작 전 대흥시청 시장 비서실.

    소파에 도훈을 비롯한 모두가 둘러앉은 가운데, 영배가 뭔가를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 이렇듯 민감한 시기에 현직 시장이 특정 정당과 유착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희망하는 이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름없는···.”

    “거기까지요.”

    “... 아직 한참 남았는데요?”

    “됐어요. 그 정도면 무슨 내용일지 다 짐작이 갑니다.”

    “네.”

    영배가 손에 들고 읽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놨다.

    소파에 둘러앉은 모두가 그 서류를 바라보는 가운데 지연이 도훈의 눈치를 봤다.

    “왜 제 눈치를 봐요? 보고 싶으면 그냥 보면 되죠.”

    “호, 호호. 네.”

    지연이 슬며시 서류를 집어 들고 읽었고 옆에 앉은 홍영진도 몸을 기울여 서류에 시선을 줬다.

    도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이 없는데, 두진이 영배에게 물었다.

    “저 서류에 연명한 개인이 몇 명이라고?”

    “맨 뒤에 있는데 안 세봤습니다. 지연 씨. 마지막 장 확인 좀 해보세요.”

    “... 음. 하나, 둘, 셋···. 모두 열여섯 명인데요?”

    서류를 넘긴 지연이 답했고 두진이 말을 이었다.

    “대자당, 민국당 지역 대선본부와 출마희망자들이라···.”

    “개인 중에 대자당, 민국당 말고 신민당 사람들도 있어요.”

    “민의당은 없나?”

    “네. 민의당 사람은 없어요.”

    “... 흠.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두진의 중얼거림에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는 영배.

    “다행은요. 아마 지금 거기 사람들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치 보느라 정신없을 겁니다.”

    “다 그런 건 아니야. 자네도 알잖나?”

    “알죠. 하지만, 그런 게 아닌 사람들이 몇 안 되니까 드리는 말씀이잖습니까.”

    “... 그나마 그 몇이 어딘가?”

    “... 쩝. 그렇긴 하죠.”

    영배가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영배와 두진이 언급하는 ‘그 몇’은 민의당 소속으로 시의원 후보가 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젊은 신인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개 안준식과 행보를 같이 해 온 이들이었는데 전보다는 세가 늘었다지만, 아직도 민의당 대흥시 지역위원회에서는 다수가 아니었다.

    도훈, 두진, 영배와는 안면도 있고, 제법 친하기도 했다.

    지난 시간 잡음 없이 도훈과 협력해 온 안준식의 영향이었다.

    “그나저나 저 서류 언론사에도 보낸다고 했다고?”

    “네. 아마 그쪽이 진짜 목적일 겁니다. 시장이 특정 정당을 밀어준다는 이미지를 씌우려는 거겠죠. 내 참, 어이가 없어서.”

    “... 흐음.”

    지연이 읽고 있는 서류는 아침 일찍 민원실을 통해 시장실에 전해진 것으로 야당 대선 지부와 지방선거 출마희망자들의 ‘우려’를 담았다는 것이었다.

    시장과 ‘모’ 시의원이 유권자들 앞에서 친분을 과시하는 ‘등’, 특정 정당 후보를 위해 행동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으니 시장은 향후 행동에 주의해달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보수 야당 두 곳과 민의당 탈당파가 만든 신민당 쪽 시의원 출마희망자들이 전부 연명한 이 서류에 등장하는 시의원은 당연히 신길영.

    사흘 전, 도훈이 그와 함께 유서면의 마을회관과 노인정을 돌았던 게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것이었다.

    “... 민의당은 빠졌는데, 독자적으로 비판하려는 걸까?”

    “아마 아닐 겁니다. 그쪽 사정은 좀 다르니까요.”

    보수 야당만 비판 성명에 참여하고 민의당은 빠졌다.

    여기에는 대선에서 민의당 후보가 유리하다는 것 외에도 도훈이 민의당 소속 정치인들과 친분이 있고 임기 내내 별다른 문제 없이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게 영향을 끼쳤을 터였다.

    게다가 아직도 민의당에는 시장에 출마하겠다는 희망자가 없다는 것 역시도.

    두진이 도훈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이 서류에 답변해 달라는데 뭐라고 답하실 겁니까?”

    “굳이 답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답을 안 하면, 자기들 무시한다고 또 뭐라고 할 겁니다. 괜히 잡음 키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가요? 그럼 간단히 답하고 말죠.”

    “간단히요? 뭐라고 하시려고요?”

    “뭐라고 하긴요?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하면 되죠.”

    “......”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된 두진과 영배였고, 그새 서류를 다 읽은 지연이 도훈의 편을 들었다.

    “시장님 말씀 틀린 것 아니잖아요. 시장님이나 신 의원님이나 선거운동하러 돌아다닌 게 아니라 갑작스러운 한파에 시 외곽 농촌 지역에 주로 홀로 사시는 주민들 괜찮으신지 안부 살핀 건데 그게 뭐가 문제에요?”

    “... 쩝.”

    지연의 말에 영배는 입맛을 다셨고 두진이 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저쪽에서 원하는 건 그냥 시장님께 불공정하다는 이미지를 씌우는 거야. 비록 그게 시장님과 시의원의 당연한 업무 수행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해도 말이야. 그것도 대선을 위해 그러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있을 지방선거를 노린 행동이야. 다른 때라면 시빗거리도 안될 일이지. 이거 자네도 알 거 아니야?”

    “후우. 알죠. 우리끼리 있으니까 말이라도 시원하게 해보고 싶었어요.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에요.”

    “... 선거 때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시장님은 대선의 ‘대’ 자도 말 안 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거에 상관없이 이 사람들은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네. 대선뿐 아니라 지방선거도 이미 시작된 거야. 당락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그 선거 말일세.”

    “... 휴우.”

    “... 허허허.”

    두진이 씁쓸하게 웃었고, 도훈을 제외하고 다들 비슷한 표정을 했다.

    이 문서를 시장에게 보낸 건 그야말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목적은 이 문서를 지역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것일 테니까.

    ‘공정성 시비’ 어쩌고 하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건, 이 문서에 답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벌어질 테고 도훈이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도훈은 애초에 막을 생각도 없었지만.

    아무튼, 그야말로 눈 뜨고 뻔히 보면서도 속절없이 당하는 그런 경우라고나 할까?

    “답변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 알겠습니다.”

    “그럼 조회 시작하시죠, 실장님.”

    “... 네.”

    담담하게 넘어가는 도훈의 모습에 두진도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몸을 일으켰다.

    두진 뿐 아니라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다.

    예상 못 한 반전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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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 뒤 늦은 저녁, 대한자유당 대흥시 지역위원회 사무실.

    긴 테이블에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

    모종의 주제로 회의하기로 한 자리였지만, 발언하는 사람이 없이 다들 미간을 찌푸리거나 불편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는 상태.

    상석의 지역위원장 바로 옆에 앉은 유일한 현역 시의원 차혜진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한참 만에 침묵을 깬 건 시장선거에 출마할 계획인 상석의 지역위원장이었다.

    “더는 기사가 나온 곳이 없죠?”

    “... 아, 네. 어제 한군데, 오늘 또 한군데 해서 두 곳이 다입니다.”

    “흐음.”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는 위원장이었고, 그런 위원장의 눈치를 보던 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 기자라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시장의 눈치를 보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기자 정신이라는 말이 참 무색할 정도예요.”

    “허허, 참. 세상이 어찌 되려는지···.”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어요.”

    이 자리에 앉은 이들 중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다음 지방선거 출마희망자들이었다.

    이들이 불평하는 건, 대선으로 경쟁 중임에도 민국당, 신민당 출마희망자들과 애써 연합해 시장에게 흠집을 내려 ‘작업’을 했는데, 그 작업의 효과가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지역의 언론사라는 언론사에는 전부 시장에게 선거 공정을 침해할 행동을 하지 말라는 연명 서류를 보냈는데,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 이를 보도한 언론사가 단 두 곳.

    그리고 그 두 곳에서도 기대했던 것보다 한참 못 한 수위로, 시시한 ‘해프닝’ 정도로 다루고 짧게 다루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였지만, 현직 시장인 도훈에게 ‘시비 거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 모두가 동의한 가장 주요한 이유였다.

    “...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위원장의 말에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당의 출마희망자들이 연명했으니 제법 비중 있게 다룰 거라고 여겼건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몇 년 전이라면 절대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터.

    중앙부터 지방까지 대자당의 영향력이 이 정도로 참담해졌다는 걸 아프게 깨닫는 중이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입을 연 사람은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출마희망자가 아닌 대자당 충남도당 소속인물.

    “... 무슨 말이오?”

    “임기 말인 현직 시장의 눈치를 본다는 건 그의 재선 가능성을 크게 점친다는 뜻도 된다는 겁니다.”

    “... 내가 그걸 모르는 것 같소?”

    더욱 불편해진 표정인 위원장의 말에 도당 사람이 진지하게 답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번 일에 세 당이 암묵적으로 공동전선을 폈음에도 그렇다는 겁니다. 눈앞의 대선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당과 민국당 두 당이 지방선거 때도 각자 후보를 낸다면 어떻게 될지 그 결과를 기자들이 예측한다는 겁니다.”

    “흐음.”

    둘 다 보수 야당인 대자당과 민국당은 이 사안에만 잠깐 힘을 합쳤을 뿐, 대선도 지방선거도 각각 독자 후보를 냈고 또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의당 대선후보는 타 후보 모두를 누르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당장만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랬다.

    만약 보수 야당들이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는다면 패배는 자명한 일.

    이는 대선뿐 아니라 이어질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도훈은 현직 시장인 데다가 여당 대선후보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지지도가 높았으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민국당과 선거연대라도 하자는 거요?”

    “네.”

    “하하. 그걸 도당이나 중앙당 차원에서 받아들이겠어요?”

    지난 총선에서 국회 의석수가 많이 줄었고 현실적 영향력도 많이 떨어졌지만, 자존심만큼은 잃지 말자며 더 극렬한 태도를 보이는 보수 야당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 선거 후보 단일화에 관한 이야기나 요구가 진즉부터 있었지만, 아직도 성사되지 않고 있었다.

    “당 지도부는 바보가 아닙니다. 이대로는 모두가 패배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단일화해도 뒤집기가 어렵다는 예측도 합니다. 대선은 그렇다고 치죠.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야 하니까요. 하지만, 지방선거도 똑같이 맞이할 수는 없잖습니까.”

    “......”

    “대흥시만 이렇게 형편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수도권이고 지방이고 영남권을 제외하면 형편이 나은 곳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우리라고 그걸 모를 것 같소?”

    “당 지도부는 먼저 선거연대 제안을 꺼내길 꺼리는 것뿐입니다. 분명, 현장에서 먼저 나서주기를 기다리는 것일 테지요.”

    “... 흐음.”

    “도당에도 이런 각 지역위원회의 입장이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

    “대흥시 지역위원회도 뜻을 모아 주십시오.”

    “... 허허. 갑자기 회의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하더니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어요?”

    “네.”

    담담한 간부의 대답에 위원장과 출마희망자들이 말없이 머릿속 계산기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직 대선 투표일까지 시일이 남았으니 선거연대의 논의가 늦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선거연대의 필요성은 대선보다도 그 뒤에 있을 지방선거 때 더 클 수 있었다.

    그건 그 누구보다도 출마희망자들이 더 실감하고 있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이게 전부입니다. 여러분께서 논의하시고 그 결과를 도당에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친 도당 간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출마희망자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 혹시, 우리 말고 다른 지역위원회에도 이런 제안을 하고 있습니까?”

    “다른 도는 모르겠고, 우리 충남은 여기 대흥시 지역위원회가 시작입니다.”

    “우리더러 총대를 메라는 얘기네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앞장서고 다른 지역에서도 동참해 선거연대를 끌어낼 가능성은 절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게 되면, 여러분 각자의 당락 결과를 떠나 그 공적을 또 무시할 수 없겠지요.”

    “......”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당 간부가 자리를 떴지만,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지역위원장 한 사람을 제외하면, 그들은 바로 옆에 앉은 사람과도 경쟁하는 처지.

    눈앞의 대선, 이어질 지방선거, 그리고 그 이후를 생각하며 각자의 득실을 따지는 주판을 열심히 머릿속으로 굴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

    “......”

    아무도 입을 여는 이 없는 가운데, 회의장에 침묵이 오래오래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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