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62화 (263/279)

262. 선거 때니까 - 1.

2월이 됐다.

점점 더 열을 올리는 대선도 대선이지만,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라서인지, 출마희망자들의 움직임이 전보다 더 분주해졌다.

대선 운동원임과 동시에 지방선거 출마희망자들이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고, 장날 같은 경우는 아주 경쟁적으로 시민을 만나며 인사하고 다닐 정도였다.

“많이 파세요.”

“하하.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오래간만에 뵙네요.”

얼굴 가득 접대성 미소를 머금고 인사하는 운동원들을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는 각양각색.

다만, 대통령 후보와 관련한 이야기에는 때로 열을 올리지만, 운동원 개인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게 공통점이었다.

대선 선거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자기 얼굴도 팔아야 하는 지방선거 출마희망자들은 누구나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신인’들의 어려움은 더 컸다.

출마희망자들이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도훈은 그런 일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었다.

평소에도 시장의 일은 많고 선거 관리에도 신경 써야 했지만, 2월 들어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한파가 계속 몰아쳐 챙겨야 할 것들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2월 중순의 어느 날, 시청 소회의실 간부회의 자리.

“도시락은 어떻답니까? 아무래도 추위에 영향을 많이 받을 텐데요.”

“공장에서 뜨끈한 국물을 부족하지 않게 공급받고 있답니다. 국을 보온용기에 담아 차에 싣고 다니다가 배달지에서 직접 그걸 퍼서 전해준다는군요.”

“... 흐음.”

“아이들을 위해서는 급한 대로 보온도시락을 이용하고 있다니까, 도시락만이라면 당장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두진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도훈은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회장님께 매일매일 세심히 신경 써달라고 전해주세요. 도시락 먹는 사람 중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대다수인데 자칫 찬 음식 먹었다가는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시장님.”

“그럼 다음으로··· 사회복지실이네요. 먼저, 연탄은 어떻습니까, 실장님? 부족하지 않답니까?”

“최근에 추운 날씨로 사용량이 늘었지만, 가정마다 아직은 여유분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단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연탄도 있으니 그때그때 확인하면서 모자라지 않게 지원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긴급 생계비지원은요?”

“아닌 게 아니라 요청이 늘긴 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심사해 처리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실장의 답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인 뒤, 주민센터장들을 차례로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힘들겠지만, 방문 점검에 힘써주셔야겠습니다. 보건소에서도 매일 전화로 확인하며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시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센터장들의 답에 도훈이 덧붙였다.

“시청에서도 외곽지역 중심으로 계속 점검해 나가겠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합시다.”

“네.”

2월 한파가 워낙 위력적이었던지라, 도훈은 대흥시 시민 중 취약계층에 관한 확인과 점검, 지원 대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주민센터가 시 중심가와 센터 인근의 주택가를 주로 담당한다면, 시청에서는 기동점검팀을 꾸려 외곽 농촌 지역 마을을 매일 돌고 있었다.

“아, 참. 우리 위생과랑 외근 직원들에게 전해진 방한 장구는 쓸만하다던가요?”

“대부분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너무 추워서 환경미화원이나 방호원 등 외부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은 이들에게 추가로 방한 장구가 주어질 정도였다.

도훈은 시청 직원뿐 아니라 경찰관과 소방대원에게도 온열 장비를 지원해 동상을 최대한 예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아무래도 구급차 출동이 늘었을 것 같은데, 혹시 지원 필요한 것 없는지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시장님. 회의 후 바로 확인해 시장실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네. 다음으로는···.”

그렇게 하나하나 확인하고 점검해 나가길 얼마, 모든 안건에 대한 논의가 끝났다.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신 분 계십니까?”

“......”

“이만 회의 끝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간부회의 종료를 선언한 도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회복지실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실장님, 요새 직원들 호별 방문하면서 자기 돈 쓰고 있다면서요?”

“아, 그게···.”

머쓱해 하는 사회복지실장.

‘호별 방문’이란 혹한으로 인한 긴급 점검을 위한 취약계층 방문 점검을 말하는 것이었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방문해 현재의 환경을 살피는 것이니 사회복지실 직원들이 그런 시민들의 어려운 형편에 마음이 쓰이는 건 당연지사.

조를 이뤄 호별 방문에 나서는 직원들이 급한 대로 식품부터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 사비를 털어 사서 전달한다는 얘기가 도훈의 귀에도 들어갔던 것.

“잔소리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사비 그만 쓰고 이걸로 결제하게 하시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도훈은 사회복지실장에게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제 업무추진비 카듭니다. 이거 갖고 계시다가 호별 방문 나가는 직원들에게 주세요.”

“시장님···.”

미안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는 사회복지실장의 손에 카드를 쥐여 주며 도훈이 말을 이었다.

“이렇게밖에 못 거드는 게 미안하다고도 전해주세요. 미리 이런 경우를 고려해 사회복지실에 재량 예산을 배정했어야 하는데···.”

“...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감사는요. 아, 번거로우시겠지만 구매 및 지급 내용, 영수증은 잘 챙겨주셔야 합니다.”

“네.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잘 쓰고 돌려드리겠습니다.”

“네.”

말을 마치고 돌아선 도훈이 회의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두진과 대화를 이어갔다.

“오후에 노인정들 돌아보기로 했죠? 얼른 가시죠.”

“네. 바로 홍 주무관에게 차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도훈 일행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회복지실장.

부시장 전경완이 가까이 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보는 겁니까?”

“아, 네. 선거운동이 절정인데, 시장님은 전혀 그런 쪽에 신경을 안 쓰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심지어 시장님 본인의 선거도요.”

일부 기자들이 대선에 관한 도훈의 코멘트를 들으려 인터뷰를 청했지만, ‘공정한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리에 힘쓰겠다’는 말로 모두 거절하고 있었다.

“하하. 아닐 걸요? 대선에 본인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없겠지만, 자기 선거는 나름으로 준비는 하고 계실 겁니다.”

“선거 관련해서 시장님이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부시장님도 모르십니까?”

“당연히 모르죠.”

전경완의 말에 순간 의아하다는 표정을 하는 사회복지실장.

그런 실장에게 전경완이 담담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선거 중립은 공무원의 의무잖아요.”

“... 그렇죠.”

사회복지실장 뿐만 아니라 마침 주변에 있던 다른 간부들도 실장과 비슷한 표정을 했다가 이내 표정이 바뀌었다.

“... 역시 김 시장님은 그것 관련해서도 전임자분들과는 다르군요.”

“대흥시의 전임 시장님들은 좀 티를 냈습니까?”

사회복지실장의 중얼거림에 뭔지 알 듯하다는 표정으로 묻는 전경완.

실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답했다.

“은근히 그러는 분도 있었고 좀 노골··· 아니, 적극적으로 그러는 분도 있었죠. 선거가 다가오면 제가 알 게 모르게 속으로 의식을 해서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금 시장님은···, 하하. 제가 선거를 의식한다는 게 바보스럽게 느껴질 정도이십니다.”

“평소에는 유해도 단호할 때는 칼 같은 분이니까요.”

사회복지실장과 다른 간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 이번 선거 때 나 또는 우리 당 후보 밀어줄 거지?

이들은 지금 선거를 목전에 둔 단체장이 소속 단체 직원들에게 은근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걸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단체장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런 이들이 종종 있었는데, 지금의 도훈은 그런 쪽으로는 일절 낌새도 내비치지 않았으니까.

“저희 말고 부시장님께는 속내를 말씀하실 것도 같은데···.”

“하하. 가끔 그러실 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안이나 업무상 상의가 필요한 것들이에요. 선거나 그런 쪽 일은 일절 말을 안 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 편하고요.”

간부들은 부시장인 전경완이 도훈의 아내인 세경과 삼촌과 조카나 다름없이 오래 지내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시청 간부직원일 뿐인 자신들과는 달리 사적으로는 처삼촌이나 다름없는 전경완에게는 좀 다를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저 먼저 갑니다. 수고하세요.”

“네. 부시장님.”

전경완이 비서관과 함께 먼저 회의실을 나갔고, 다른 간부들도 회의자료를 챙겨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부시장님도 대쪽같은 분이니 시장님이 그러시는 거 아닐까요? 사람이면 재선되고 싶은 욕심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하하.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부시장이 다른 사람이라고 우리 시장님이 지금과 다를 것 같지 않은데? 지금껏 겪은 김 시장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지 않나.”

“... 하긴, 남이 보든 안 보든 원칙적이라는 면에서 두 분이 많이 비슷하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간부들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걷던 한 사람.

“시장님, 부시장님은 저런 양반들인데 어쩌면 그리···. 쯧쯧.”

맨 뒤에서 걷던 자치행정과장이 창밖을 내다보며 혀를 찼다.

자치행정과장이 시선을 준 창 너머에 대흥시 시의회 건물이 오늘따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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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시점, 시청으로 복귀하는 도훈의 승합차 안.

“... 시장님 덕분에 오늘 편하게 돌아다녔습니다.”

“뭘요. 차에 자리도 남고 목적지도 같았는데요.”

“하하, 그래서 더 저로서는 ‘꿩 먹고 알 먹고’였습니다.”

“의원님이 오늘 마을회관들 방문하실 계획인 걸 알았으면 처음부터 함께 했을 텐데요.”

“... 하하. 글쎄요.”

도훈은 시 외곽 농촌 지역인 유서면의 마을회관이나 노인정 등을 방문하다 우연히 시의원인 신길영을 만났다.

당원 한 사람과 같이 도훈처럼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주민들의 안부를 살피던 그는 ‘함께 하자’는 도훈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는 홀로 도훈 일행에 섞여 오후 일정을 함께 했다.

“... 저야 오늘 시장님께 묻어가니 좋았는데, 마뜩잖아하는 사람들이 좀 있을 겁니다.”

“다른 당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신길영은 유서면-남가동 선거구의 진평당 소속 시의원.

진평당은 이번 대선에도 독자 후보를 내고 경쟁하고 있었다.

아무리 현직 시의원이라 선거에 개입하면 안 된다지만, 아예 무소속인 도훈과 진평당 소속인 신길영은 입장이 많이 달랐다.

은근슬쩍 선거운동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신길영은 최소한 도훈과 함께 하는 동안 일절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었다.

“아마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분들은 좀 더할 겁니다.”

“그분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전 지금 제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의원님도 그런 것처럼요.”

도훈이 대통령 선거와 거리를 두고 있다지만, 보수 야당 쪽은 지방선거 때 시장에 출마하려는 이들을 중심으로 대선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시장 출마희망자가 없는 민의당은 상반된 모습을 보였는데, 일부는 도훈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민의당 쪽으로 끌어들이려 애썼지만, ‘독자 후보’를 주장하는 이들은 일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진평당을 제외한 다른 당 사람들이 오늘 도훈과 신길영이 함께 돌아다녔다는 걸 좋게 생각할 리가 없었다.

각 당의 지방선거 출마희망자들은 더할 터.

“지방선거 때 진평당으로 출마하려는 분들은 좀 있습니까?”

“일단 제가 있죠.”

“그거야 당연하고요. 운계면-금선면 선거구를 묻는 겁니다. 진평당 쪽 출마희망자가 활동한다는 얘기를 아직도 듣지 못해서요.”

“글쎄요. 한 분을 열심히 설득하고는 있는데···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

“... 흐음. 안타깝네요.”

“뭐,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서요.”

“... 그것도 안타깝네요.”

도훈이 무심코 한 말에 신길영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시장님. 방금 그 말씀, 누가 들으면 크게 문제 삼을지도 모릅니다.”

“제 개인적 성향은 의원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잘 아니까 저야 조용히 있는 거죠. 우리 당이 시장 후보를 못 내도 별문제 없다고 여기는 거고요.”

담담히 웃으며 말하는 신길영.

도훈도 비슷한 웃음을 머금고 되물었다.

“그렇습니까?”

“네. 이건 저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 중앙당 쪽도 공감하는 겁니다.”

현재로써 진평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무한히 0에 가깝고 진평당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 터.

당연히 대선에 전력을 기울이면서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진평당 소속 현역 자치단체장은 기초, 광역을 합해 전무.

과거, 울산 등 노동자 인구가 많은 곳에서 기초단체장을 배출한 적이 있었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었다.

그래서 무소속이나 성향은 진보정당에 더 가까운 도훈에게 당 지도부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 대선 때 그 당 후보로 출마했던 다선 의원과도 친분이 생긴 도훈이 아니었던가.

“시장님이 요청만 하시면, 어떤 분이 흔쾌히 지지연설 하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 하하.”

신길영이 언급한 ‘어떤 분’의 수더분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떠올리며 도훈이 웃었다.

도훈의 승합차가 남가동 길가에 잠시 멎었고, 신길영이 내렸다.

“고생하십시오, 의원님.”

“네. 오늘 감사했습니다, 시장님. 수고하세요.”

도훈과 신길영이 인사를 교환한 뒤 승합차가 출발했고, 신길영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멀리서 우연히 그 장면을 본 어떤 사람이 눈에서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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